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0화 (2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0화>

Quest 4. 도와주는 천마님

China-SG의 인적안전관리국.

21세기의 동창이라고도 불리는 인적안전관리국은 엄청난 악명과 위세를 동시에 지닌 기관이었다.

‘인적안전관리’라는 오만한 이름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기관이 인적자원을 관리한다는 소리인데, 어디 인간이 마음대로 관리가 되는 존재던가?

그들은 인간을 관리하기 위해서 협박을 하고, 매수를 하고, 살인을 하고, 조작을 한다.

이런 인적안전관리국에 5팀이 신설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서울역 게이트를 홀로 클리어한 ‘왕후’를 죽이기 위해서.

인안국 5팀의 부팀장이 된 강새룡은 지난 2달간의 서류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알 수가 없군.’

강새룡은 왕후와 접촉해 본 유일한 사람이라는 명목으로 5팀의 부팀장이 되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위세를 지닌 인안국에 소속되기엔 부족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말이었다.

그래서 강새룡은 하루라도 빨리 왕후를 찾지 않으면 자신의 자리가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왕후를 찾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왕후에게 목숨을 빚졌다.

왕후가 서울역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거기서 죽었을 것이었다.

‘마음이 복잡하군.’

그러나 강새룡의 심정이 어떻든 실제적으로 5팀의 활동은 지지부진했다.

왕후는 서울역 게이트 클리어 이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CSG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정보팀에도, 왕후를 쫓는 SG 서울지부에도, 제대로 정체도 모르면서 SG 서울지부를 견제하는 한국 정부에도.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왕후 정도의 각성자가 숨어 지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 강력하다.

설령 평소에는 조용히 지낸다고 해도, 게이트 헌팅을 끊을 수는 없다.

하이 랭커들은 전부 게이트 중독자와 다름없다.

전투가 주는 쾌감.

경험치를 통한 레벨업.

룬 가호와 아이템을 판매해 얻는 막대한 부.

이 세 가지에 중독되지 않은 이상 하이 랭커까지 성장할 수가 없다.

“왕후는 반드시 게이트에 뛰어들 것이다. 게이트를 감시해라.”

CSG의 수장 월성도 그렇게 말했고.

그런데, 아무 흔적이 없다.

지난 2달간 클리어된 전 세계의 게이트를 다 뒤졌음에도 왕후로 추정되는 이는 없었다.

오죽하면 강새룡이 종종 ‘어쩌면 내가 게이트 안에서 정신착란 공격을 당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니면 아프리카 오지에 출현한 게이트를 몰래 클리어한 건가?’

그러나 아프리카 오지에 게이트가 출몰할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인력과 비용의 문제로 SG의 GEL 감지는 문명 도시로 제한된다.

안타깝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혹은 소수민족이 사는 오지는 GEL을 감지하지 않는다.

GEL 감지 시스템의 설치 비용과 유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강새룡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도대체 왕후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한 건, 왕후가 무엇을 하든 상상 이상의 일일 것이란 점이다.

그가 가진 힘은 엄청나니까.

* * *

아멜라 메건은 호텔 방에 앉아 수십 장의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보고서는 총 4개의 기관에서 올라온 것이었는데, 그중 3개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었다.

FBI, CIA, SG 중앙본부.

나머지 하나는 대중들에게 이름이 공개돼서는 안 되는 비밀단체였다.

4개의 기관은 독자적인 방법으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심도 깊은 조사를 했다.

그 사안이란 바로 아멜라 메건의 정신 방벽을 해킹한 신원 미상의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멜라 메건이 누구인가.

정신계 각성자 세계 순위 9위이자, 미국 순위 3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 때문에 사건을 맡은 4개의 기관은 신원 미상의 인물을 찾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멜라 메건의 정신 방벽을 뚫을 정도의 인물은 전 세계에 100명도 되지 않으니까.

조건을 최대한으로 완화해도 200명 안쪽이다.

그러니 이들의 행적을 일일이 대조한다면 범인을 찾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어려운 건 범죄 행위를 입증하는 것이지.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4개의 기관은 전부 ‘확인할 수 없음’이란 보고서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멜라 메건을 해킹할 수 있는 각성자 200여 명의 모든 행적을 조사했음에도.

아멜라 메건의 모든 행적을 따라 반경 100미터의 CCTV를 확인하고, 한 번 이상 중복 등장하는 인물을 체크했음에도.

레벨과 관계없이 아시아 국가의 정신계 각성자들의 행적을 모두 조사했음에도.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가 없었다.

차라리 의심되는 자가 많았으면 소거법을 이용한다든가, 심문을 한다든가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전혀 없었다.

정보력에 있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4개의 단체가 정보 공유 없이 독자적으로 조사했음에도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는 건, 그들의 능력으로는 찾아낼 수 없다는 걸 뜻했다.

다만, 유일한 증거가 하나 있긴 했다.

비밀단체의 보고서에 첨부된 주차 차량 블랙박스 영상.

거기에 신원 미상의 인물이 찍혔다.

찍히긴 찍혔는데…….

“알아볼 수가 없군.”

영상 속 인물은 얼굴이 지직거리는 노이즈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만, 보통의 노이즈가 회색이라면 이 남자의 얼굴을 가린 노이즈는 환한 빛이다.

기술원에서도 이 노이즈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고, 노이즈 너머를 꿰뚫어 볼 기술이 없다고 했다.

계획적인 범행이 분명했다.

“후우…….”

보고서를 내려놓은 아멜라 메건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가부좌를 틀며 깊이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남은 방법은 그녀의 육감을 열어서 그날의 일을 재구성하는 것뿐이다.

위험한 방법이었다.

육감을 잘못 개방하면 과다한 정보량으로 인해 뇌가 타 버릴 수도, 영원히 이성을 찾지 못해 백치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정신분열이 생길 수도 있고, 미쳐 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해야 했다.

신원 미상의 적에게 강탈당한 패스워드!

그것은 그녀의 목숨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소중한 정보이기 때문이었다.

육감의 영역으로 천천히 침전하던 아멜라 메건이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전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을 전부 바보로 만들어 버린 그 남자.

그 남자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음모를 분쇄하리라!

* * *

“끝이라니!”

드라마를 보고 있던 진유성이 눈물을 글썽였다.

감동적이긴 한데, 작품이 끝을 맺었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처음 진유성은 이 세상에 영화나 드라마가 엄청나게 많은 줄 알고, 초집중 상태에서 8배속으로 돌려 보는 만행을 저질렀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재밌는 영화나 드라마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뒤부터는 정상적인 속도로 작품을 즐겼다.

물론 간혹 뒤가 너무 궁금한 경우에는 8배속으로 보기도 했지만.

“…….”

용건이 있어서 진유성의 방에 들렀던 상림은 할 말을 잃었다.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저 사람이 진짜 내가 알던 천마신교의 교주인가?

‘어쩌면 게이트 안에서 잃어버린 게 내공이 아니라 철딱서니가 아닐까?’

상림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표현하진 못했다.

진유성이 기세를 뿜으면 무서우니까.

그렇게 한참을 감동에 빠져 있던 진유성이 상림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왜 왔냐?”

“여쭤볼 게 있어서요.”

“뭔데?”

“저번에 교주님이 홍대에서 사고 치신 거, 제가 수습했잖아요.”

“어, 그치. 왜?”

태연한 진유성의 반응에 상림이 울컥했다.

‘미안한 기색이라도 좀 보여라!’

그러나 표현은 못했다.

무서우니까.

“어쩌다가 그날 CCTV 영상을 얻게 되었는데요.”

“어.”

“얼굴이 안 보이시던데요?”

“엉?”

“교주님 얼굴이 안 보여요. 노이즈 같기도 하고, 빛 같기도 한 것 때문에.”

상림이 진유성의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메일로 로그인했다.

그러곤 메일에 있는 영상을 다운받아 재생했다.

실내 낚시터의 CCTV 영상이었는데, 상림의 말처럼 진유성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얼굴 부분을 빛 같은 노이즈가 가린다.

“이것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다른 영상에서도 그러더라고요. 교주님이 의도한 겁니까?”

“응?”

고개를 갸웃하던 진유성이 박수를 짝 쳤다.

“아! 이거 그거 때문 아니야? 먼지?”

“네? 먼지요?”

“아니, 처음 한국에 오니까 미세한 먼지가 너무 심하더라고. 그걸 코로 마신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고.”

“아, 맞다! 내공으로 미세 먼지를 걸러 내고 계신다고 했죠?”

“어. 아무래도 그래서 그런 거 같은데?”

상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한번 내공 운용을 멈춰 보시죠. 확인해 보게.”

“귀찮은데. 꼭 확인해야 해?”

“해야죠. 안 그러면 누군가와 사진 찍을 때마다 의심 받을 겁니다.”

“흠. 지금 찍어 봐.”

상림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진유성을 찍으니, 노이즈가 없는 정상적인 사진이 나왔다.

“내공 운용을 멈추신 겁니까?”

“어. 다시 찍어 봐.”

다시 한번 사진을 찍자, 이번에는 CCTV 속 영상처럼 빛 같은 노이즈가 나왔다.

진유성의 말처럼 미세먼지를 걸러 주는 내공 운용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이러면 내가 홍대에서 그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잖아!’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이런 의문점으로 외부의 관심을 끌 바에는 깔끔히 처리하는 게 낫다.

“앞으로 누군가와 사진 찍을 일이 있으시면 내공 운용은 멈추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심 받으니까요.”

“그래, 그게 낫겠다.”

진유성의 대답에 상림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럴 수가……!’

상림은 당연하게도 진유성이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내가 왜 남이랑 사진을 찍어?”

그러면 그는 구구절절 어떤 상황이 있을지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물어보지 않았다.

상림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교주님.”

“엉?”

“교주님이 보시기에 누군가와 사진 찍을 일이 뭐가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 많지 않겠어?”

진유성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여행을 가서 찍을 수 있겠지.”

지극히 정상적인 대답에 상림이 살짝 놀랄 때 진유성이 이어 말했다.

“보통 이 경우에는 남자나 여자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확률이 높아. 하지만 난 시한부가 아닐 거니, 최대한 밝은 얼굴로 찍어 줘야겠지.”

“어…….”

“범죄에 연류되는 경우도 있어. 아마 검찰 쪽에서 날 찍으려 하겠지. 하지만 이건 확률이 좀 낮아. 내가 범죄에 연류될 리도 없거니와, 설령 된다고 해도 날 추적할 단서를 주진 않을 테니까.”

“음…….”

“아마 확률이 가장 높은 건 재벌가의 딸과 사귀는 사이가 되는 거지. 그럼 비서가 사진을 찍어 가겠지. 이런 경우에는 나중에 돈 봉투를 주던데 대체 거기 얼마가 들어 있는 거냐?”

진유성은 그 이후로도 자신이 사진에 찍힐 수 있는 경우를 몇 가지 언급했다.

개중에는 평범한 것들도 있었고, 보통 사람의 99퍼센트는 경험하지 못할 드라마 속 상황들도 있었다.

애매하다.

‘이걸 한국 사회를 잘 이해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잘못 이해했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교주님의 상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겠다.

그때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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