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8화>
Quest 6. 등교하는 천마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상림이 입을 열었다.
“교주님.”
“왜.”
“제가 어떻게 성공한지 아십니까?”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서?”
“아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요. 진지하게.”
“몰라, 인마.”
“저 때는 말입니다…….”
SG가 출범하기 전, 게이트 사태 초창기의 세계는 위태위태했다.
각성자의 수는 늘 부족했고, 그나마 있는 각성자들도 레벨이 너무 낮았다.
과학자들은 GEL 수치를 발견하지 못했고, 정부는 전시체제에 돌입했지만 실체 없는 허깨비와 싸울 방법을 몰랐다.
전 세계가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한국은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여타 국가들처럼 패배주의와 비관주의에 찌들었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접니다.”
“그래?”
“네. 저는 상황을 전혀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거든요.”
“이유가 뭔데?”
“무공을 알잖아요.”
상림은 무공을 익혀 봤기에 인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다.
시간이 흐르면 각성자가 늘어날 거고, 노하우가 공유되면서 점차 강해질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안전하게 각성자가 되는 방법들이 생겨날 것이고.
중원에서 몇천 년 동안 전승되고 발전해 온 무공이 그랬듯이 말이었다.
그렇게 판단한 상림은 그동안 모은 재산과 중원에서 가져온 보물들을 팔아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목적은 딱 하나.
게이트 재해 복구 사업.
이게 의 시작이었다.
전시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가 정치권에 접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성공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림을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타인의 희망을 통해서라도 희망을 가져 보려던 시대.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그렇게 상림은 대한민국 최초로 게이트 폭주 지역에 주거 단지를 올렸다.
이어서 게이트 폭주로 허허벌판이 된 강남 일대에 부자들을 위한 전원주택을 지었다.
모두들 상림에게 미쳤다고 말했다. 게이트가 폭주한 지역에 누가 입주하겠냐고.
“음? 왜?”
“당시의 인식 중 하나가 게이트가 생긴 곳에 또 게이트가 생긴다는 거였거든요.”
“글쎄? 안 그럴 거 같은데. 게이트가 아무리 이물이라고 해도 기운의 흥망성쇠가 있을 텐데.”
“제 생각도 그랬습니다. 게이트가 탄생하는 데도 에너지가 들 테니, 한 번 게이트가 터진 곳은 오히려 안전하다고 추측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상림의 도박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과학자들이 GEL 수치를 발견했고, 게이트가 터진 지역은 오히려 재발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이어서 UN에서 SG가 출범했고.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자, 부자들을 위한 전원주택 중 하나가 상림의 소유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상림도 부자가 됐으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왜 드리냐면, 제가 부자라는 게 교주님의 학교생활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관련.”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부자들이 모여 살아요. 사회지도층들이 모여 살면 게이트 클리어 우선 지대가 되거든요. 그래서 돈 좀 있다고 하면 전부 압구정으로 오죠.”
“압구정이면 여기 아니야?”
“네. 제가 직접 재건했고, 우리 집이 있는 압구정. 민간 구역 최우선 지대, 흔히 로열 섹터라고 부르죠.”
상림이 긴 서두를 풀어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진유성이 앞으로 다닐 학교가 바로 로열 섹터의 사립 학교이기 때문이었다.
상림은 이미 상소윤이 다니고 있는 이 학교가 얼마나 미쳐 돌아가는 곳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학교가 좀 이상해요.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해요.”
앞으로 자신이 등교하게 될 곳이라 진유성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어떤데?”
“어, 일단 애들이 돈이 진짜 많아요. 상류층 자제들이라 그런지 금전 감각도 부족하고…… 자기들끼리 생일 파티를 하는데 풀 빌라를 빌려서 하더라고요.”
“음…….”
“진짜 문제는 애들 부모님이에요. 양복 바람이 어찌나 센 지, 한 번 학교에 등장하면 난리가 난다니까요. 총리, 차관, 대기업 회장, 대기업 임원 등등…….”
“흠…….”
“아, 그리고 학교 내에 은근히 계층도 있어요. 막 심한 건 아닌데 알게 모르게 영향이 있는? 아직 애들이라 그런지 외모가 더 중요하지만…… 아무튼 말도 안 되죠.”
상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림아.”
“네.”
“원래 그런 거 아니야?”
“네?”
“원래 고등학교가 그런 곳 아니냐고. 내가 알기론 그런데?”
상림은 그제야 진유성의 상식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떠올렸다.
드라마다.
“보통은 아닌데…… 아무튼 중요한 건 애들이 마음에 안 들어도 말로 해결하시라는 겁니다. 때리면 안 돼요.”
“알겠어.”
“진짜죠? 약속하셨습니다.”
“아, 알겠다고.”
상림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휴대전화를 보는 진유성을 불안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진유성은 학교에 등교한다.
이제 딱 4일 남은 셈이었는데, 마음이 불안하다.
오늘만 해도 사전 면담 때문에 함께 학교에 가고 있는데, 진유성이 아니라 자신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때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상림아.”
“네.”
“사업을 시작할 때 중원에서 가져온 보석들을 팔아서 밑천으로 삼았다고?”
“왜, 왜요?”
상림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진유성에게 반문했다.
“그 보석이 어디서 나왔지?”
“……천마신교 본부요.”
“그치. 그리고 천마신교 본부의 모든 물건에 대한 소유권은 나한테 있고.”
“무슨 말씀이 하시고 싶은 건데요?”
“네 회사에도, 집에도, 차에도 내 지분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겠어?”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긴. 천마신교에 있지.”
“저 천마신교 안 해요! 탈교할래요!”
“탈교할 거면 팔 한쪽은 내놓고 가라.”
“아니, 무슨 야쿠자예요?! 원래 그런 교리는 없었거든요!”
“교리는 교주가 만드는 거지.”
“아, 절대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상림이 진심으로 억울한 표정을 짓자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장난이야, 인마.”
“자, 장난이요?”
“내가 사채업자냐? 이걸 내 거라고 주장하게? 다 네 힘으로 일군 거잖아.”
“교주님…….”
감동을 받은 상림이 눈물을 글썽이다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억만창생! 신……!”
“보석 값만 내놔.”
“발…….”
진유성이 실컷 만지고 있던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법정이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이자는 법정이자로 하자. 90년으로 받는 건 좀 억울할 테니 네가 여기서 보낸 시간만큼. 딱 22년 치만.”
힘없이 툭 떨어진 상림의 고개 너머로 대한민국 최고의 사립고, <대정 고등학교>의 정문이 나타나고 있었다.
* * *
“야, 너 자꾸 그러면 탁기 안 걸러 준다? 기껏 얻은 머리숱 다시 날릴래?”
진유성이 시무룩해 하는 상림에게 말했다.
“상림아, 생각해 봐라. 네가 얻는 머리카락과 정력의 값어치가 얼마일지.”
“어…….”
“내가 게이트 안 넘어왔잖아? 넌 그냥 대머리 고자였어.”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흉측한 단어의 나열에 상림이 발끈했다.
“아무튼 그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돈도 잘 버는 놈이.”
진유성의 설명을 들은 상림의 마음속에 스리슬쩍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라는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의 재산에 비하면 보석 값이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알겠어요.”
상림이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진유성이 상림의 어깨를 툭 쳤다.
하지만 상림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상림은 천신궁의 게이트를 넘어가면서 본인의 재산을 전부 놔두고 갔다.
그럼 그게 어디로 갔겠는가?
천마신교 본부로 환수됐지.
그 가치는 보석이 가진 값어치의 몇 배는 족히 될 것이었다.
‘이런 어수룩한 놈이 어떻게 사업으로 성공한 거지?’
이 세상은 참 알 수 없었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며칠 뒤부터 다닐 학교의 전경을 살폈다.
딱 진유성이 드라마에서 보았던 학교랑 비슷한 풍경들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넓고, 더 고급스러운 것 같다.
‘시설은 마음에 드네.’
사실 진유성은 학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가 알기로는 아니다.
어차피 공부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를테면 함께 밤샘 공부를 하다가 스르륵 잠에 빠진다든가 하는.
‘아, 맞아. 학교는 연애를 하는 곳이었어.’
그때,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구보 구호와 함께 진유성과 상림을 향해 다가왔다.
“헛둘! 헛둘!”
대정 고등학교의 여자 역도부 선수들이었다.
진유성은 가장 선두에 있던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백육십이 될까 말까 한 아담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굵은 허리, 단단한 몸매.
진유성은 순간 깨달았다.
이 세상에 자신의 이상형이 있었음을.
* * *
“아, 그럼 어릴 적에는 한국계 미국인 가정에서 자란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생활 양식이 미국 쪽에 가깝나요?”
“아뇨. 막상 양친이 사업 활동을 벌인 곳은 중국이라서요. 생활 양식은 좀 섞여 있습니다.”
“흥미롭네요.”
상림은 대정 고등학교의 입학 사정관에게 진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야기 속의 진유성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계 미국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게이트 사태에서 양친을 잃은 것으로 꾸며졌다.
단순히 말만 꾸민 것만 아니라, 서류상으로도 그렇게 꾸몄다.
국가에 운영하는 정보기관이 마음먹고 몇 달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면 발각될 리 없었다.
게이트 사태 탓에 발생한 정보의 공백은 돈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를 보장하게 되었다.
당장 대한민국의 재벌 3세들 중에는 신분을 3~4개씩 가지고 있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어린 재벌 3세들이 사고를 너무 많이 치니 아예 대체 신분을 준비해 버린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 신분에 전부 뒤집어씌우고 미국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면 되니까.
‘돈은 좀 많이 들었지만…… 뭐 교주님한테 청구하면 되겠지.’
사실 상림이 생각하기에는 진유성을 양자로 받으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겸사겸사 남들 앞에서 교주님을 ‘자식 놈’이라고 부르면서 놀릴 수도 있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혜연과 상소윤이 극구 반대했다.
처음에는 아직 진유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러나 싶었는데, 행동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상림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입학 사정관은 진유성에게 영어와 중국어로 번갈아 가며 질문을 던졌다.
이럴 줄 알고 미리미리 멀더의 술법으로 언어를 익히게 해서 다행이다.
한데, 어딘지 입학 사정관의 표정이 묘해지고 있었다.
불안함을 느낀 상림이 집중해서 둘의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그도 영어와 중국어를 꽤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애당초 명나라 언어는 고대 중국어와 거의 흡사했고.
[진유성 학생, 만약 세계의 법전에 단 한 개의 조항만 쓸 수 있다면 뭘 써 넣겠어요?]
[천신 숭배.]
[……게이트 사태 이후로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향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잘될 겁니다.]
[왜요?]
[날 가졌으니까.]
진유성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입학 사정관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상림에게 말했다.
“저, 아버님.”
“네.”
“아무래도 성격 유형 검사와 지능 검사를 진행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상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