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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9화 (2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9화>

* * *

1시간 넘게 진행된 성격 유형 검사와 지능 검사가 끝났다는 연락에 상림은 입학 사정관과 함께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태블릿 PC를 확인한 입학 사정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위 5퍼센트.

진유성의 지능 검사 결과였다.

“높군요.”

그러나 입학 사정관과 함께 검사 결과지를 보고 있던 상림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진유성이 머리가 좋다는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좋은 머리를 쓰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말이었다.

오히려 상위 5퍼센트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의아했다.

‘귀찮아서 대충하셨나?’

그사이, 검사 결과를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던 입학 사정관이 거듭 감탄을 내뱉었다.

“이거 참…… 대단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잠시만요.”

상담실 벽에 걸려 있는 빔 프로젝터 스크린에 진유성의 검사 결과들이 나타났다.

입학 사정관이 레이저 포인트로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보이십니까?”

“네.”

“조카분의 지능 검사 항목 중 상식 부분입니다.”

“음…… 하위 1퍼센트네요?”

“네. 이 정도면 ASD, 그러니까 자폐증을 앓고 있는 수준입니다.”

“문제가 되나요?”

“그건 조금 이따 설명드릴게요. 아무튼, 놀라운 건 상식 항목이 하위 1퍼센트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지능이 상위 5퍼센트가 나왔다는 겁니다.”

“그럼 상식을 제외하면……?”

태블릿 PC의 몇몇 부분을 조작하자, 상식 부분이 제외된 지능 검사표가 출력되었다.

“네. 모두 상위 1퍼센트 이내입니다.”

“음.”

“거기다가 조카님이 외국에서 오래 살았으니 언어 항목도 제외한다면…….”

상위 0.1퍼센트.

“이 정도로 머리가 좋은 학생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그 정도인가요?”

“네. 대정고에서 실시하는 지능 검사는 자체 개발한 것으로 멘사의 지능 테스트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능력을 요구합니다.”

상림은 문득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상소윤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쳤을 텐데, 당시에는 아내와 함께 학교를 방문했었다.

“혹시 2학년의 상소윤 학생은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었나요?”

“아, 소윤 학생이요? 잠시만요.”

상소윤을 검색해 결과를 확인한 입학 사정관이 멈칫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상소윤 학생은 저희 대정고의 명물이죠. 너무너무 예쁘고, 성실하고, 교우 관계도 완만하고.”

“그래서 검사 결과는…….”

“아버님.”

“네?”

“오늘은 조카분의 입학에 집중하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시죠.”

상림이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못난 DNA를 줘서 미안하다!

“무튼, 진유성 학생은 공간 지각 능력, 지각 추론, 작업 기억, 처리 속도, 모두 다 만점입니다. 이 정도면 아이비 리그에서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지능입니다.”

입학 사정관이 말을 이었다.

“상식 부분이 지나치게 낮은 게 문제가 되긴 합니다만…… 여길 또 보시죠.”

이번에 입학 사정관이 화면에 띄운 것은 성격 유형 검사의 결과지였다.

“보시다시피 사회성, 도덕성, 일관성 항목의 점수가 굉장히 높습니다. 사회의 공통적인 도덕에 대해 인지하며, 행동에 일관성이 있다는 거죠.”

“음, 네.”

“ASD를 앓고 있는 학생들과는 상반됩니다. 즉, 상식이 부족한 건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지 배움이 부족하다는 뜻이죠.”

“어렸을 때 홈스쿨링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학교에 다닌 적이 없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3개의 전혀 다른 언어 문화권에 거주한 탓도 있을 겁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입학 사정관은 알아서 진유성의 상황을 헤아렸다.

상림이 보기에 그녀는 이미 진유성의 높은 지능에 매료된 듯했다.

‘좀 어이없긴 하군. 재벌 3세들은 무조건 입학 허가면서.’

꼴통에 망나니 재벌 3세들은 프리패스 입학을 하지만, 상림처럼 애매한 부자의 자제들은 복잡한 입학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사실 상림의 생각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대정고는 학생의 지능을 가지고 입학 허가를 내지 않았다.

대정고는 입학금만 몇천만 원이고 1년에 들어가는 학비만 또 몇천만 원이다.

어차피 부잣집 자제가 아니라면 입학 진행을 밟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들 중에서 지능까지 검사해서 입학 인원을 가리는 건 학교를 운영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대정고의 입학 과정은 성격적으로 모난 이들을 쳐 내는 과정이다.

학교에 워낙 어마어마한 거물의 자제들이 다니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가 큰 문제가 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아버님이 한 가지만 동의해 주시면 진유성 학생의 입학이 진행될 겁니다.”

“그게 뭐죠?”

“내년도부터 학업 성취가 부족한 3학년 학생들에 한 해 기초 클래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진유성 학생은 검사 결과 기초 클래스를 수강해야 하고요.”

한 마디로 열등반이란 소리.

상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유성에게 상식이 생기는 건 그가 바라던 바였다.

“알겠습니다. 배움이 부족하니 들어야죠.”

상림이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입학 사정관이 덧붙였다.

“이왕 오신 김에 상소윤 학생에 대한 동의도…….”

“네? 왜요?! 우리 소윤이 완전 똑똑한데요?”

“지능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기초 클래스는…….”

“진유성 같은 애들이나 듣는 거죠!”

딸바보 상림이 발끈하다가 흠칫했다.

[지겹다. 빨리 집에 가자.]

진유성의 전음이었다.

“저, 아버님, 그게요…….”

“아주 좋습니다.”

“네?”

“제 조카처럼 미래가 촉망되고 지능이 뛰어나지만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그 취지. 너무 좋습니다.”

“……?”

“어디에 사인하면 되죠?”

상림이 일필휘지로 진유성, 상소윤의 이름 옆에 사인하고 라운지로 튀어 나갔다.

라운지 소파에 앉아 있던 진유성이 싱긋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엄지 척?’

그러곤 엄지로 목을 그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상림이 힐끔거리며 진유성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의 일로 괴롭히려면 벌써 열 번도 더 괴롭힐 수 있는데 아무 반응도 없는 게 더 무섭다.

‘차라리 빨리 괴롭혀 줬으면!’

하지만 진유성은 상림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괴롭힘을 갈구하던 상림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여는 순간, 진유성이 말했다.

“상림아.”

“네? 네! 네, 네…….”

“한 번만 대답해라.”

“넵.”

“넌 아내랑 어떻게 만났냐?”

“혜연이랑요? 그건 갑자기 왜요?”

“묻는 말에나 답해라.”

“넵. 처음 만났을 때는 공사장에서 노가다할 때였습니다. 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군대를 제대하고 노가다를 시작했을 때요.”

예상치 못한 상림의 말에 진유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군대 다녀왔어?”

진유성도 대한민국에 국방의 의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림이 군대에 다녀왔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기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림이 처연한 미소를 짓다가 슬쩍 말했다.

“말씀드리면 안 혼내실 겁니까?”

“재밌으면.”

“제가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게이트 사태가 시작되기 전이었습니다. 신분을 사는 게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는 거죠.”

지금이야 전산상의 생존자가 사망해 있는 경우도 많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한국말도 못하다 보니 불법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았죠. 아, 뭐 틀린 말도 아니네요. 밀입국에 외국인이니까.”

“그래서?”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한 달 내내 미친 듯이 일했더니 80만 원 주고 월급이라고 하질 않나, 노가다 뛰는데 소장이 중간에서 관리비라고 떼어먹질 않나.”

“가만있진 않았을 거 같은데?”

“처음엔 힘을 좀 썼는데, 중원의 엉덩이 무거운 포졸들이랑 다르게 한국의 경찰들은 기민하더라고요.”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

상림은 결심을 내렸다.

중원에서 가져온 보석의 일부를 처분해서라도 신분을 사야겠다고. 이대로 외국인 노동자로 살 수는 없다고.

그렇게 상림은 신분을 샀다.

하지만…….

“미필이라는 문제를 몰랐죠.”

상림은 37살에 입대를 했다.

“저기, 아저씨 누구세요?”

“충성! 이병 최정태! 2001년 3월 7일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시, 신병이라고?”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나이가……?”

“스물다섯입니다!”

“근데 얼굴이 왜…….”

“어렸을 때 한약을 잘못 먹었습니다!”

“하, 한약이 이렇게까지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유성이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근데 군대는 어때? 진짜 그렇게 거지 같아?”

“아, 뭐. 훈련 같은 건 쉬웠습니다. 멸마대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근데 사람이 거지 같습니다.”

“선임 말하는 거지?”

“네.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 귀찮게 구니까요.”

게다가 상림은 말년 병장들보다 15살 이상 나이가 많은 상태였다.

“어디 음침한데 몰래 데려가서 혼내주면 안 돼?”

“에이, 안 돼요. 애들이 하극상으로 찌르면 조사 나올 거고, 조사 나오면 저만 후달리잖아요. 내 신분이 아닌데.”

“흠, 합격.”

“네?”

“불쌍했을 거 같으니까 오늘은 한 번 봐준다.”

진유성이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그래서 아내랑은 어떻게 만났는데?”

“아, 노가다를 하고 있었는데 현수막이 떨어지는 안전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때 구해 주면서 안면을 텄습니다.”

“위험에서 구해 줬다…….”

“당시에 아내가 근처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오가면서 자주 보다가 용기를 내 커피 한잔하자고 했죠.”

“자주 봐야 한다…….”

진유성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호응하자 상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왜 그러십니까? 마음에 드는 여자라도 발견하셨어요?”

“그래.”

상림이 깜짝 놀랐다.

“진짜요?!”

“내 심장이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진유성의 눈이 아련해지자, 상림이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앞서나간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진유성이 결혼을 하면 그 여인이 자신의 대모(代母)가 되는 것이다.

관심 없이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체 누굽니까?”

“기억 안 나?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던 절세미녀를.”

“절세미녀?”

상림이 기억을 더듬었지만 도저히 기억나는 얼굴이 없었다.

“언제요? 차 타고 지나갈 때? 아, 집에서 나올 때?”

“아니, 학교에서.”

“학교요?”

상림은 제1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곧장 면담 건물로 향했었다.

그사이 그들이 마주친 사람이라고는 체육부 여고생들뿐이었다.

“아……!”

상림은 뒤늦게 진유성이 마음에 들어 한 여학생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선두에서 달리던 학생 맞죠?”

“어.”

단정한 이목구비에 아담하지만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던 여학생.

전형적인 중원의 미인상이었다.

상림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소윤이의 동창이 교주님의 아내가 되면 족보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꼭 동창이라는 보장도 없다.

딸의 후배는 대모님?

딸의 선배는 대모님?

딸의 친구는 대모님?

뭐가 됐든 족보가 꼬여도 한참 꼬인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상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제가 아내를 어떻게 만났는지 여쭤보셨군요?”

“나는 이 세계 여인들의 마음을 모르니까.”

“음…….”

“좀 부끄럽긴 한데, 이왕 말했으니 물어보자. 한국의 여자애들은 뭘 좋아하냐?”

잠깐 진유성을 쳐다보던 상림이 입을 열었다.

“궁금하시면…….”

“하시면?”

“10만 원 주시죠.”

교주님이 자본주의에 빨리 적응했다지만 난 22년 전에 적응했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권영(拳影)이었다.

하늘을 수놓는 주먹을 피하던 상림은 몇 대 얻어맞고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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