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4화>
상림이 물었다.
“그런 건 왜 생각하세요?”
“그냥 궁금해서? 각성자들이 어느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지 체감이 잘 안 되거든.”
진유성은 무공을 익힌 무인에 한해서는 그들의 강함을 아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삼류 무인을 슬쩍 봐도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각성자는 그게 잘 안 됐다.
스킬도 있고, 특성도 있고, 아이템도 있어서 판단 기준이 모호했다.
하지만 비교 대상을 특정하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전투에 관한 진유성의 동물적인 감각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예를 들어 상소윤과 유혜연이란 두 명의 각성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를 모를 순 있다.
하지만 상소윤과 상림, 유혜연과 상림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상림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십 할의 적중률은 아니겠지만, 십 중 오륙 정도는 맞출 수 있다.
“흐음.”
“왜요?”
“네가 지겠다.”
“제가 진다고요?”
“어. 내가 생각하는 놈이 그동안 봐 왔던 각성자들 중에서 손에 꼽는 놈이거든.”
“에이, 제가 이기지 않을까요?”
“내공도 코딱지만큼 있는 놈이 이기긴 뭘 이겨?”
“아니, 그래도 칼밥을 먹어 온 세월이 있는데…… 제가 옛날에 무공도 없을 때 난장 피우는 각성자들 제압한 적도 있거든요.”
“아냐. 네가 질 거야.”
상림은 몰랐지만, 진유성이 떠올리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랭킹 1, 2위를 다투는 차정명이었다.
괜히 자존심이 상한 상림이 물었다.
“그럼 제가 중원에 있을 때 수준이라면요?”
“당연히 이기지. 말이라고 하냐?”
진유성이 상림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상림은 서울역 각성자와 싸운다면 패배할 것이다.
하지만 죽고 죽이는 생사투를 벌인다면 상림이 이길 수 있으리라.
상림도 멀쩡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숨을 먼저 거두는 쪽은 각성자일 것이다.
상림은 중원에서부터 그랬다.
무공 자체는 중원에서 가장 강한 스무 명을 꼽을 때,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 스무 명에서 진유성과 신주청은 빠졌다.
두 사람의 무공은 구름 위에 있기에 지상의 무인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상림의 무공 서열은 고작 스물과 서른 사이의 어디쯤에 존재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무공의 경지만을 의미했다.
만약 전 중원의 무인들이 죽고 죽이는 생사투를 벌여 최후의 다섯만 살아남는다면?
상림은 그 다섯 안에 능히 들어갈 무인이었다.
“야, 상림아.”
“네?”
“생각해 보니까 넌 왜 게이트에 안 들어갔냐? 게이트에 들어가서 각성을 하는 게 어렵지 않잖아?”
“그쵸. 사실 돈과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각성자가 되는 건 쉬워요.”
가장 안전한 F급 게이트를 골라서 강한 각성자의 케어를 받으며 헌팅을 한다면?
아무런 리스크 없이 각성을 할 수가 있었다.
실제로 게이트 초창기의 재벌들 중에는 비공개로 각성을 한 이들도 있었다.
각성이란 미지의 것이 부자들의 영원한 소망인 불로장생으로 나아가는 열쇠가 아닌가 하는 추측마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게이트 초창기 때나 있던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부자들은 각성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거뒀다.
“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한데, 우선 수명이 전혀 안 늘어나요.”
각성자는 일반인과 비교해 무시무시한 힘을 냈다.
믿기 힘든 속력과 근력을 갖게 되고, 반사 신경과 지구력 역시 극대화됐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스탯을 통한 힘이 세포와 관련된 것인 줄 알았다.
세포를 진화시킨다든가, 분열시킨다든가 하는 식의.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능력이 발전해도 각성자의 신체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명도 그대로였다.
설령 암에 걸린 각성자가 S급까지 등급을 올린다고 해도 그는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었다.
또한 각성자라고 해서 병마에 대한 면역력을 갖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힘과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자체로도 메리트가 있을 텐데? 일단 인생을 사는 데 편하잖아.”
“그렇긴 한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각성자는 주기적으로 경험치를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픕니다.”
“아프다고? 어디가 아파?”
“잘은 모르는데 머리 쪽이 아프다더라고요. 두통보다 더 깊은 느낌이래요.”
“이유는 몰라?”
“과학자들은 게이트 내부의 대기를 구성하는 물질에 중독 물질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던데, 아무도 모르죠. 저 기물을 누가 압니까?”
“흠.”
진유성은 과학자들의 말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만약 게이트 내부에 신체의 변화를 야기할 만한 물질이 있었다면 그가 몰랐을 리가 없었다.
흔히 인간의 신체를 작은 우주, 소우주라고 불렀다.
그만큼 방대하며 알 수 없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자신의 소우주에서 완벽하고 절대적인 신이었다.
그는 신체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
설령 신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신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 주기는 얼마나 되는데?”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도 있다더군요.”
“흠, 그럼 막 엄청난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그렇긴 한데, 결국 각성자가 된다는 건 주기적으로 헌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딱 한 번 안전하게 각성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안전한 헌팅을 하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언제나 늘 안전한 F급 게이트만 있는 것은 아니고, 고위 각성자들이 언제나 그들을 위해 대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재벌들은 각성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수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신체적인 능력이 강화되는 것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 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1순위는 언제나 돈이다.
“야, 근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거 같던데? 인터넷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찌라시로 몇 번 퍼지긴 했는데, 정부나 SG에서 무조건 은폐하죠. 각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면 나중에 게이트는 누가 클리어합니까?”
사실 각성자에 대한 이상한 루머 중 30퍼센트 정도는 정부와 SG에서 만든 것이었다.
각성 질병에 대한 이슈가 생기려고 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그렇군.”
“교주님 생각에는 어때요? 각성 질병이 뭐 때문에 생긴 것 같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게이트에 들어가 보셨잖아요.”
“흠…….”
진유성은 게이트란 기물이 늘 이상하다고 여겨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나치게 친절했기 때문이다.
도가에 ‘자연은 무정하다’라는 말이 있다.
자연 현상에는 정리(情理)가 없어 사람에 대한 편력이 없다는 뜻인데, 도가의 공부는 이러한 자연을 닮는 데 의의를 뒀다.
만약 게이트가 자연적인 현상이라면 이 역시 무정해야 마땅했다.
해일과 지진이 사람을 가리지 않듯.
홍수와 가뭄이 고을을 가리지 않듯.
그렇게 무정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가?
게이트와 시스템에는 편리가 넘쳐났다.
관리자는 게이트가 시작하기 전에 온갖 정보를 줬고, 모든 것을 등급화해서 인식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인벤토리는 지나치게 편리해서 비각성자들에게도 리스트를 공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것은 실로 비정상적이다.
자연이 진정 적자생존을 원했다면 좀 더 잔인한 방법이었을 테니까.
진유성의 말을 들은 상림이 무릎을 탁 쳤다.
‘과연 교주님이구나.’
평소에는 철도 없고, 생각도 없고, 배려도 없고, 인성도 없지만, 통찰력은 분명했다.
“어째 또 불경한 생각을 하는 거 같다?”
“에이, 아닙니다. 맨날 그렇게 찔러 보시더라. 근데 교주님.”
“엉?”
“돈이 엄청나게 많이 생기셨잖아요. 물론 한화로 바꾸는 데는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치.”
“그 돈으로 뭘 하실 겁니까? 헬리콥터 사실 거예요?”
“어, 아니. 헬리콥터는 생각 좀 해 보려고.”
진유성이 처음 헬리콥터를 갖고 싶었던 건 너무나 신기해서였다.
단풍잎 같은 것이 두두두 돌아가며 하늘을 나는데, 거기 타고 있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그는 더 화려한 기계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아이언맨 슈트도 있고, 변신 로봇들도 있다.
그런 걸 보고 나니 괜히 헬리콥터가 시시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럼 스포츠카는요? 그것도 꼭 살 필요가 없는 거 아니에요?”
“그건 수하가 약조를 지키게 만들려는 내 배려지.”
“…….”
상림이 잠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풀었다.
“그럼 뭘 하시게요? 그 돈으로?”
“몰라. 돈과 내공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하나쯤은 있지 않으세요?”
“음…….”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있긴 한데, 실현 가능한 건가?”
“뭔데요?”
“재미있게 본 무협 소설 중에 후속권이 안 나오는 것들이 몇 개 있거든?”
“어, 그렇죠.”
“출판사 차려서 그 작가들 싹 다 잡아다가 정신 개조 좀 시키고 후속권 쓰게 하는 거.”
“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좀 뜬금없네요. 그 많은 돈을 버셔 놓고.”
“돈이 별거냐? 중원에서는 내가 제일 부자였어.”
맞는 말이긴 했다.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아,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뭔데요?”
“유혜연과 상소윤의 선물을 사야겠다.”
진유성은 인간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역경을 겪어 본 사람이었다.
반역이 일어나 왕자에서 도망자가 신세가 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국외로 도망쳤다.
중원에서는 노예가 됐다가, 비밀 단체의 무력 요원이 됐다가, 다시 도망자가 되었다.
구대문파 전체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치기도 했고,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과 친우의 죽음을 겪었다.
모든 이들이 죽고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외로움도 느껴 봤다.
하지만, 또한 진유성은 인간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즐거움도 누려 보았다.
중원을 통일해 구대문파에 복수를 하고, 황실을 집어삼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
모든 산해진미와 여흥이 그를 위해 존재했고, 그것을 함께 누릴 친우도 있었다.
무공이 극의에 도달해 온몸을 관통하는 쾌감을 느꼈고, 드높은 깨달음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만족도 있었다.
호불호는 있었지만, 진시황이 그토록 탐내던 불로장생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알고 있었다.
인간의 피륙을 괴롭히는 고통과 인간의 피륙을 만족시키는 쾌락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중요한 건 마음이다.
그리고 진유성의 마음은 한국의 압구정에 있었다.
상림, 유혜연, 상소윤, 대정고등학교까지.
지금 누리는 평범한 하루가 진유성이 가장 원하는 것이었다.
그 평범한 하루 속에 하고 싶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자유.
그게 좋았다.
그러니 유혜연과 상소윤의 선물을 사고 싶었다.
“그렇군요.”
진유성의 말을 이해한 상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 상하이의 마지막 날이니 같이 쇼핑이나 가시죠.”
“쇼핑…… 너랑 가면 괜찮겠지?”
“네? 뭐가요?”
“두 여자와 함께했던 쇼핑은 지옥과도 같았다.”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내일 비행기가 몇 시지?”
“저녁 7시요.”
“그럼 빨리 자자. 나야 안 자도 되지만, 넌 자야지 내일 움직이잖아.”
“저도 이제 내가고수라서 하루쯤은 안 자도 되는데요?”
“내가고수는 개뿔, 네가 고수면…….”
“술이나 한잔할까요?”
“너 정도면 고수지.”
룸서비스를 부른 상림과 진유성은 과거의 일들을 안주 삼아 진탕 술을 마셨다.
그렇게 상하이에서 머무는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
* * *
다음 날.
상림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자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상림은 아직 주정(酒精)을 말끔히 해소할 만한 내공이 안 돼서 잠에 빠졌지만, 진유성은 아니었다.
그냥 잔 거였다.
“아니, 교주님! 안 깨우고 뭐하셨어요? 알람 끄신 거예요?”
“아, 몰라. 귀찮아.”
“이러다 비행기 시간 놓쳐요.”
“이 정도 거리는 헤엄쳐서도 갈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상림과 진유성은 빠르게 씻고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곤 근처 쇼핑센터에서 유혜연과 상소윤의 선물을 샀다.
진유성이 산 것은 고가의 명품 가방이었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여자 선물은 무조건 가방이라던데?”
“어, 그렇긴 하죠. 무조건 평타는 치니까요.”
이후 두 사람은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해 출국 심사를 하고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겨울 방학 때는 다 같이 해외 여행이라도 가시죠.”
“그래.”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제법 즐거운 여행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상하이에서 즐길 수 있는 건 전부 즐겼던 거 같다.
그리고.
“뭐야? 이거 짝퉁이잖아?”
“어?”
“이거 안 보여? 브랜드 마크가 떨어지잖아!”
“…….”
상림과 진유성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 상하이의 명물인 이미테이션 시장도 즐긴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