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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55화 (5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55화>

Quest 12. 시험받는 천마님

월요일 아침.

상하이에 다녀온 뒤 맞이하는 한 주의 시작이었으나, 진유성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무단결석은 아니다.

대외적으로 진유성의 보호자인 상림이 블랙마켓과의 거래가 어찌 될지 몰라서 학교에 미리 말해 둔 탓이었다.

월요일까지 일정이 있어 등교하지 못한다고.

유혜연이 상소윤을 태워서 등교하는 아침에 진유성이 할 일이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진짜로 할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어디…….”

거실로 나와서 물을 마신 진유성이 오감을 확장했다.

본래 상림의 집에서는 소리를 흘리고 있지만, 지금은 집에 상림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 안에서 상림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피곤했었는지 아침까지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딱 좋군.’

결심을 내린 진유성이 조심스럽게 상림의 침실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리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초절정 고수가 된 상림이라지만, 진유성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는 없다.

무공이 완전했던 중원에서도 그러했는데,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상림이 사물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방문처럼 익숙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내공으로 방문 전체를 감싸 기척 자체를 죽여 버렸다.

그러곤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살기 위해 숨어든 해남에서 입멸공을 얻은 진유성은 복수를 위해 중원으로 돌아왔다.

복수의 대상은 당연히 구대문파와 정도맹이었다.

노예와 고아들을 모아 멸마대를 만든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마교주가 주화입마로 사망하고 마교가 분열되었다고 멸마대를 토사구팽할 이유는 없었다.

멸마대가 그들의 생각보다 강해졌다는 핑계는 멸마대원들이 죽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진유성은 구대문파에 침투했다.

마교의 잔당을 흡수했으나, 정도맹과 싸우기에는 그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으니까.

그래서 진유성은 우두머리를 노렸다.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을 죽이려는 건 아니었다.

죽음은 복수의 원동력이 될 뿐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안겨 주어야 했다.

진유성은 문파에 몰래 침입해 장문인들의 오른팔을 베고, 단전을 하나씩 부수기 시작했다.

처음의 두 문파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진유성의 습격을 받아야 했다.

그 결과, 장문인들의 오른팔과 단전이 사라졌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나머지 일곱 문파는 엄청난 방비를 해 놓고 진유성을 기다렸다.

모든 제자를 동원해 물샐틈없는 삼엄한 경계를 펼친 것이었다.

그럼에도 진유성은 기어코 여덟 장문인의 팔과 단전을 가져갔다.

남은 것은 정도맹의 큰 어른.

태산북두, 소림(少林)이었다.

소림사는 다른 문파들과 다르게 전 제자들을 동원해 경계를 서지 않았다.

방장이 기거하는 용정(龍庭) 주변을 오직 백팔나한으로 지킬 뿐이었다.

수는 적었지만 앞선 여덟곳의 문파보다 훨씬 삼엄하고 무시무시한 경비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기어코 방비를 뚫고 방장실에 숨어 들었다.

그러곤 방장과 독대를 하고, 정도맹의 항복을 받아 냈다.

항복의 징표로 소림 방장은 스스로 단전을 폐했고.

정도무림이 탄생한 이래 처음으로 단 한 명에 의해 정도맹이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준 무공.

진유성이 생사입멸(生死入滅) 오의(奧義) 멸(滅)에서 착안해 만든 천마행(天魔行)이었다.

천마행은 오로지 의식의 사각에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만든 무공이었다.

그렇기에 정도맹을 꺾고, 중원을 일통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천마행이 90여 년 만에 펼쳐졌다.

중원이 아닌, 한국에서.

기척을 완전히 죽인 진유성의 몸이 상림의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설령 누군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하더라도, 그는 진유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진유성은 목표물 앞에 도착했다.

“으음.”

곤히 잠들어 있는 상림의 머리맡.

침실 전등이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작은 물건.

바로, 상림의 차키였다.

* * *

차키를 훔친, 아니 빌린 진유성은 다시 천마행을 시전해 침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유성이 이렇게 완벽을 기하는 것은 혹시나 몰라서였다.

만약 상림이 이제부터 자신이 할 행동을 보고 뭐라고 한다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대놓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네가 관심이 없던데? 라고.

이것이 바로 천마신교 교주의 절대공능.

잘못을 해도 눈앞에서 들키지만 않으면 무작정 잡아뗄 수 있을 정도의 드높은 권위였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서 나온 진유성은 곧장 차고로 향했다.

상림에게 애마를 받을 걸 확답 받은 뒤부터 생각했었다.

운전을 한번 해 봐야겠다고.

도로로 나가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불법이지만 상림의 집 안에서만 하면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운전이 익숙해지면 19살의 생일이 지날 때부터 운전을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상림이 운전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진유성 체술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다다라서 슬쩍 본 무공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었으며, 내공 하나 없이도 절정 고수의 목을 딸 수 있었다.

그러니 운전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했었다.

5분 전까지만 해도.

“이거 왜 이래?”

부으으으응!

시동을 걸고 상림이 하는 것처럼 페달을 밟았는데, 차가 나아가지 않았다.

커다란 엔진 소리만 나며 차가 부릉거릴 뿐이었다.

그 순간, 상림이 엔진 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초조해진 진유성은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상림이 이런 식으로…….

부으으으으응!

럭셔리 스포츠카의 수많은 기능 중에는 런치 컨트롤이란 기능이 있다.

자동차를 부드럽고 빠르게 나아가도록 해 주는 기능인데, 작동 방법은 간단했다.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동시에 밟아서 RPM을 빠르게 끌어올린 다음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된다.

바로 이렇게.

부아아아아앙!

쾅!

엔진소리를 듣고 놀라 후다닥 뛰어나온 상림의 눈앞에서 두 대의 스포츠카가 부딪쳤다.

하나는 주차장에 잘 세워 놓은 차.

하나는 진유성이 올라탄 차.

보험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100 대 0 과실이 뜰 차 사고였다.

문제는 100의 실소유주도 상림이고, 0의 실소유주도 상림이다.

즉, 200 과실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사고였다.

“…….”

황망한 상림의 시선을 받은 진유성이 찔끔하며 차에서 내렸다.

진유성에게도 양심이라는 게 있었다.

보닛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보니 자연스럽게 눈을 피하게 됐다.

진유성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이것도 너프해 보시지!”

그러나 상림은 진유성의 생각과 다르게 웃지 않았다.

울었다.

* * *

차정명과 문수혁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나의 기운이 점차 농밀해지는 순간!

차정명이 문수혁에게 훌쩍 뛰어들었다.

차정명의 날카로운 일검이 문수혁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문수혁도 녹록치 않았다.

뒤로 부드럽게 물러난 문수혁의 돌려차기가 차정명의 턱을 노렸다.

파파파팟!

한국의 1, 2위를 다투는 두 S급 각성자들의 싸움은 일반인의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놀라운 건 속도가 아니었다.

그들이 스킬을 쓰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전투 스킬을 끝까지 쓰지 않았다.

스킬을 쓰다가 취소하거나, 스킬을 쓰다가 다른 스킬로 치환하고, 스킬의 사용 범위를 마음대로 움직였다.

손으로 쓰려던 스킬이 발에서 뿜어져 나갔고, 공격용으로 썼던 스킬이 산개되며 방어용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스킬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도달할 수 있다는 SS급 각성자들의 전투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지후 소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침내.

드디어 두 사람이 SS급의 실마리를 얻었다.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아직 완숙의 경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확실히 벽을 넘었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S급과 SS급의 차이는 실로 명확했다.

한지후는 며칠 전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물었다.

“지금 반SG 체제의 각성자와 싸우면 어떻게 될 것 같으십니까?”

마도보검을 강탈하고, 이지스의 방패를 부숴 버린 각성자들.

과거의 문수혁과 차정명은 반SG 체제 각성자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렸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SS급에 다다른 지금은 좀 다르지 않을까.

그때 차정명이 답했다.

“이길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속수무책으로 지진 않을 겁니다.”

“그 말씀은…….”

“다른 각성자들이 합공을 퍼부을 때까지 잡아 둘 자신은 있다는 말입니다.”

문수혁도 같이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후 소장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두 사람의 대련이 끝이 났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몸을 수건으로 닦던 문수혁이 말했다.

“소장님, SG 본부에 연락을 넣어 주시죠.”

“무슨 연락이요?”

“승급 심사를 받을 생각입니다. 저희 둘 다.”

A급까지는 SG 내부의 규칙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지만, S급부터는 아니었다.

S급부터는 미국에 소재한 SG 본부를 통해 승급 심사를 받아야 했다.

한지후가 기꺼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견제해 왔던 문수혁과 차정명.

두 사람이 힘을 합치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반SG 체제에서는 큰 곤란함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이게 전부 한국 SG를 지키겠다는 두 사람의 정의감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하지만 한지후 소장의 말을 들은 문수혁과 차정명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저희의 정의감이 아닙니다.”

“전부 소장님 덕분입니다.”

“그동안 저희는 서로를 견제하고, 질투하고 있었으니까요. 소장님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떨쳐 내지 못했을 감정입니다.”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며 그보다 더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던 세 사람이 코밑을 쓱 닦았다.

세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반SG로부터 반드시 한국 SG를 지키고 말겠다.’

물론, 이번에도 망상 폭주였다.

* * *

상소윤은 교실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진유성을 가만히 보았다.

요즘 느끼는 건데, 진유성은 완전 인싸가 다 됐다.

처음엔 다들 이상하게 느끼던 말투도 이제는 유행어처럼 쓰였고,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서 가장 활발했다.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와 친해진 뒤부터는 더욱 그렇다.

지금만 봐도 여학생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재밌는 걸 보여 주겠다며 고인수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인수 분해!’를 외치며 손날로 고인수의 셔츠 단추를 후드득 풀어 버렸다.

미쳤다.

미친 게 틀림없다.

저걸 재밌다고 꺄르륵 웃어 주는 여자애들을 보며 뭔가 자신의 상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아니, 무슨 간첩이 인싸 기질이 저렇게 충만해?’

상소윤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교실의 문이 열리며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쉬는 시간인 데다가 담임 선생님이 들어올 수업 시간이 아니라 모두들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권 선생님이 아프셔서, 다음 수업은 자습으로 진행할 거예요. 다들 내일부터 시험인 거 아시죠?”

“음, 알긴 알죠.”

“알기만 하면 안 되는 것도 알죠? 다들?”

왠지 모를 압박감에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제가 종종 왔다 갔다 할 테니까, 공부하는 학생들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자습하세요.”

“쉬는 시간인데요, 선생님.”

“그러니까. 쉬는 시간 끝나면.”

그렇게 담임 선생님이 빠져나가는 순간, 문득 드는 생각에 지종수가 눈빛을 빛냈다.

‘진유성! 너의 스피드, 밸런스, 파괴력, 통찰력, 집중력, 재력, 경험은 인정한다!’

하지만 공부라면?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진유성은 상식이 턱없이 부족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

게다가 공부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지종수는 마침내 진유성을 이길 종목을 깨달았다.

역시 학생은 공부로 승부해야 마땅했다.

여기서 승리한다면…….

더 나은 학생이란 타이틀을 거머쥘 수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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