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2화>
* * *
한국의 SG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그 시각.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한국의 회의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면, 일본의 회의는 아주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일본 SG 본부장 야마모토 고이즈가 산뜻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국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당연히 게이트를 포기하겠죠.”
“강행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블러핑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초지일관 클리어를 위해 최상위 랭커 50명을 지원한다는 주장만 반복하면 됩니다.”
“클리어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일한의 각성자 우위가 바뀌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허허.”
야마모토 고이즈도 답변을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그저 승리를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다케시마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면 최대한 빨리 국제사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우츠료토(울릉도)까지 사라진다면 일한의 EEZ(배타적 경제 수역)를 완전히 재설정해야 합니다.”
“허허, 다들 성격이 급하시군요. 너구리 굴을 보고 가죽의 가격을 흥정할 필요는 없는 법입니다.”
“너구리 굴이라. 오랜 속담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아주 적절하군요.”
“너구리가 굴 안으로 들어갈지 밖으로 나올지 기대되는군요.”
“금방 볼 수 있을 겁니다. 게이트 생성까지 5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 * *
독도 게이트를 포기한다는 SG 본부의 입장이 발표되자 한국이 들썩거렸다.
사실 각국의 지도자들은 한국이 이런 결정을 내릴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다.
독도는 일본의 야욕 때문에 특별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면적은 0.18제곱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울릉도의 면적은 72.9제곱킬로미터.
즉, 두 섬을 합쳐 봐야 100제곱킬로미터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도 100제곱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좁은 땅 때문에 하이 랭커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으리라.
그게 내륙이어도 그러할 것인데 섬이라면 더더욱.
SG를 비롯한 각국의 정상들은 한국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화를 냈다.
화를 내는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벌써부터 신이 나 떠드는 일본 때문이었다.
[한국, 다케시마 수호를 포기하나?]
[영유권의 주장 근거, 실효적 지배의 의무는 어디로?]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게이트가 예정된 섬이 독도가 아니었다면 분노 여론은 형성되진 않았을 것이었다.
여론은 과격하게 흘러갔다.
이때다 싶었는지 야당이 여당을 공격하며 SG의 의사 결정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민의 관심을 받고 싶은 비주류 정치인들 중에는 친일적인 결정이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야당이 나서서 SG의 결정을 비난하자 국민들도 비난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그동안 수많은 권리를 누리다가 중요한 순간에 겁을 먹고 도망친 각성자를 욕했다.
또한, 세금은 거둬 가고 게이트를 외면하는 정부와 한국의 SG를 욕했다.
그러나 각성자나 정부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건 한지후 소장이었다.
SG는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오랫동안 서울의 게이트 치안을 담당해 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것은 이름만 밝히지 않았을 뿐, 한지후 소장을 지칭하는 것과도 같았다.
일각에서는 한지후 소장이 책임지고 서울 소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 시점에서 SG는 한지후 소장의 사퇴 요구를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지후 소장은 손꼽히는 실무자였고, 유능한 현장책임자였다.
또한 고위 각성자들의 존중을 받으며, 오랫동안 서울의 평화를 유지해 온 공로가 있다.
하지만 한지후 소장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SG가 막아 주지만, 언젠간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 생기면 자신이 1순위가 될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 언젠가는 선거철일 것이었다.
한지후 소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묵묵히 칩거했다.
‘차라리 잘됐지, 뭐.’
각성자를 욕할 바에는 자신을 욕하는 게 낫다.
소장은 그저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일 뿐이다. 비난을 받고, 멘탈이 흔들려도 생명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각성자들은 생사를 걸고 싸움을 한다.
때론 정신적인 문제가 죽음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한지후 소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담담히 사람들의 비난을 수용했다.
그날 밤.
한지후 소장의 집으로 두 명의 각성자가 찾아왔다.
“여긴 어떻게……?”
“걸어왔죠.”
“기자들이 많았을 텐데?”
“지금 웃으라고 하는 말입니까?”
잠깐 멈칫했던 한지후 소장이 뒤늦게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 보니, SS급 각성자에게 기자들이 많다는 말은 농담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랬다.
한지후 소장의 집으로 조용히 찾아온 두 명의 각성자는 문수혁과 차정명이었다.
S급을 넘어 전 세계에 100명도 되지 않는다는 SS급의 고지에 올라선 고위 각성자들.
“야밤에 무슨 일입니까?”
“일단 목이 말라서 그런데, 캔맥주 같은 거 없습니까?”
“캔맥주는 없고 보드카는 있군요.”
“보드카도 괜찮네요.”
한지후 소장이 보드카와 얼음을 내오자 세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목만 축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한지후 소장이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안 됩니다.”
“뭐가요?”
“만에 하나라도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할 생각이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어째서죠?”
“대부분, 아니 어쩌면 모두가 죽을 테니까요.”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한지후 소장이 덧붙였다.
“독도 게이트 폭주 당일, SG 소속의 모든 각성자들은 교육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인원을 제외하면요.”
교육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은 격리였다.
각성자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대중들의 분노와 마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인내심이 약한 각성자들은 스킬을 사용해 대중을 공격할 수도 있다.
그래서 SG는 모든 소속의 각성자들을 본부로 불러들여 합숙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 합숙은 3일간 진행될 것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차정명과 문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수혁이 입을 열었다.
“SG 소속의 차정명과 문수혁은 교육에 참여하겠습니다.”
“……현명한 선택,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국인 차정명과 문수혁은 아닙니다.”
차정명이 말을 받았다.
“하이 랭커 56명과 랭커 43명으로 구성된 팀을 결성했습니다.”
“……!”
한지후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됩니다!”
하이 랭커는 200위 이내의 각성자들이고, 랭커는 400위 이내의 각성자들이다.
즉, 차정명과 문수혁은 400위 이내 각성자들 중 99명을 선발하여 독도 게이트 클리어에 도전하겠다 선언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안에는 한국의 유일한 SS급인 차정명과 문수혁도 있다.
이 둘은 한국의 유일한 SS급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S급 이상의 각성자였다.
둘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각성자들은 AAA급.
한지후 소장은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만약 99명이 몰살당한다면?
400위 이내의 97명이 죽고, 랭킹 1위와 2위가 죽는 것이다.
S급 각성자를 보유하지 못한 한국의 각성 순위는 현저히 낮아질 터였다.
한지후는 차정명과 문수혁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을 쳐다보다가, 숨이 턱 막혔다.
차정명과 문수혁의 눈빛.
그것을 본 순간 어떤 설득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소장님, 공교롭지 않습니까?”
“……뭐가요?”
“딱 저희 둘이 SS급이 된 순간 독도에 게이트가 열렸다는 것이요.”
“저는 운명론을 믿지 않습니다.”
“저희는 믿습니다. 인외의 벽을 넘어선 이 힘에 쓰임새가 있다고요.”
한지후 소장이 보드카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말했다.
“이건 항명입니다. SG법에 따르면 각성자의 항명은 심각한 범죄입니다.”
“아뇨. 항명이 아닙니다. 소장님이 나서 준다면.”
“네?”
“그거 아십니까? 수혁이 형과 제가 돈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
문수혁과 차정명이 호형호제를 하게 됐다는 사실이 설핏 놀라웠지만, 그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두 분이 돈이 많은 건 알고 있습니다만?”
“돈은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그렇게 말한 문수혁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밀었다.
한지후 소장은 깜짝 놀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온통 ‘한수혁’과 ‘차정명’, ‘99인의 결사대’의 이야기밖에 없었다.
“우산도? 이건 뭡니까?”
“팀의 이름입니다.”
우산도(于山島).
독도의 옛 명칭에 한지후 소장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이미 돈의 힘을 통해 온 언론에 저질러 버렸다.
56명의 하이 랭커와 46명의 랭커들이 팀을 꾸려 게이트 클리어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국가가 길을 열어 주지 않아도 갈 생각입니다.”
“헛된 죽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죽더라도 헛되지 않는 길을 소장님이 열어 주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차정명과 문수혁이 자신들의 계획을 말했다.
한지후 소장은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들이 죽음의 의지를 불태운 덕분에.
“아, 참. 최대한 빨리 미국에 다녀올 수 있는 비행기 하나만 수배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받을 물건이 있는데.”
“무슨 물건이요?”
“어제, 황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놀드 벡 말입니까?”
“예.”
“뭐라고 하던가요?”
“독도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한지후 소장은 조금 놀랐다.
아놀드 벡은 잠깐의 만남으로 통찰력을 발휘해 차정명과 문수혁의 움직임을 예측한 것이니까.
사실 아놀드 벡은 이미 SG에 TFT팀의 결성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팀의 리더로 자신을 뽑았다.
이 말은 아놀드 벡이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에 도전하려고 했다는 소리였다.
아놀드 벡이 한국을 사랑한다던가, 특별한 의미를 가져서 이러는 건 아니다.
그는 인류가 더 이상 S급의 게이트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도전하고, 성취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놀드 벡의 이러한 제안은 SG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SG 입장에서는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위해 그들의 상징이자, 리더이자, 희망을 잃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
“아놀드 벡은 대신 자신의 아이템들을 빌려준다고 했습니다.”
“아이템이라면……?”
“세븐 가디언즈.”
“……!”
세븐 가디언즈(Seven Guardians).
황제를 지키는 일곱 수호자.
이는 아놀드 벡이 가지고 있는 SSS급 아이템 7개를 의미했다.
2개의 검, 방패, 망토, 갑옷, 쇠사슬, 구슬.
“설마 세븐 가디언 전부를 빌려주겠다는……?”
“그렇습니다. 그분은 정말 인류의 황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분입니다.”
게이트 클리어에 실패하면 당연히 각성자가 들고 있던 아이템도 모조리 사라진다.
황제는 SSS급 아이템 7개가 사라질 리스크를 감수하고, 차정명과 문수혁에게 대여를 약속한 것이었다.
“저희는 준비가 끝났습니다. 저희의 의지와 황제의 배려가 헛되지 않게 만들려면, 한지후 소장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한지후 소장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을까란 걱정은 집어치워야 했다.
반드시 해내야 했다.
문수혁과 차정명이 한지후 소장의 잔과 자신들의 잔에 보드카를 채웠다.
“저희 죽으러 가는 거 아닙니다. 멋지게 클리어해서 살아 돌아올 겁니다.”
“또 누가 압니까? 생각보다 쉬울지.”
세 사람이 잔을 들어 올렸다.
조금 유치한 말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유치해질 수 있겠는가?
문수혁이 선창했다.
“우산도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이내 세 사람의 뱃속이 뜨거워졌다.
이 뜨거움이 보드카에서 기인한 것인지, 웅심에서 기인한 것인지 몰랐다.
그저.
아주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