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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86화 (8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86화>

* * *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한 팀 우산도의 전투 방식은 간단했다.

99명은 수비를 하고, 1명은 공격을 한다.

그 한 명은 당연히 진유성이었다.

진유성의 일검이 뻗어 나가는 순간, 수많은 몬스터들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성자들이 편히 진유성의 뒤를 따르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도 쉴 새 없는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

끼리릭!

용암 속에서 튀어나온 가느다란 몬스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각성자의 발목을 휘감았다.

각성자들은 개구리 혀처럼 생겨서 보랏빛이 도는 이게 몬스터의 본체인지, 꼬리인지, 혓바닥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주 위험하다는 것.

얇으면서도 탄성이 엄청나서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덕도 없었다.

“흡!”

발목을 붙잡힌 각성자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해 무게 중심을 낮췄다.

진유성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초라해졌다지만 이들도 수많은 수라장을 지나온 백전의 용사들이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붙잡힌 이가 버티자 주변 동료들이 나섰다.

냉기 계열의 스킬을 가진 이가 재빨리 스킬을 시전했다.

용암 속에 사는 놈이라서 그런지 화염 계열의 스킬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

사실 냉기 계열의 스킬에도 딱히 데미지를 입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적중당하면 순간적으로 탄성을 잃고 검으로 잘라 내기가 수월해졌다.

혓바닥의 움직임이 뻣뻣해지자 차정명이 검을 휘둘렀다.

혓바닥이 잘려 나간다.

그 순간.

팟!

잘라진 혓바닥이 꿈틀거리더니 엄청난 속도로 각성자의 목을 노렸다.

각성자는 공격을 피해 냈지만 완벽히 피해 내진 못한 탓에 턱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젠장. 존나게 빠르네!”

“잘라 낸 다음이 더 위험해!”

각성자들이 몸을 한껏 긴장시켰다.

저 공격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각성자가 벌써 둘이다.

한 명은 발목이 꿰뚫려 창을 목발 삼아 걷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오른팔의 힘줄이 끊겼다.

진유성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벌써 수십 명이 죽었으리라.

정면으로 달려드는 몬스터 수십 마리를 베어 낸 진유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S급 게이트의 난이도는 진유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이걸 평범한 놈들이 클리어할 수가 있나?’

전성기 시절의 상림이 온다고 해도 한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

진유성 혼자라면 몬스터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겠지만, 몬스터들은 진유성을 피해 집요하게 각성자들을 공격했다.

내공을 터트려 일거에 쓸어버려도 용암과 바위 틈새에서 끊임없이 등장했다.

진유성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차라리 빠르게 보스를 클리어하는 게 희생자를 줄이는 최선이었다.

‘멋은 멋대로 부렸는데, 모양 빠지는군.’

희망이 되어 주겠다고 외칠 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간지란 것이 폭발했는데…….

약간 민망했으나 이것은 진유성만의 생각이었다.

99명의 각성자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진유성의 등을 보며 엄청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는 몬스터들의 파상 공세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 덕분이었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면 저 남자가 게이트를 클리어해 주리라.

그런 믿음이 생겨났다.

마치, 진유성을 따랐던 중원의 수하들처럼.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화산지대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각성자들이 부상을 입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모두 베테랑답게 등장하는 몬스터 개체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뒤가 안정되니 진유성도 운신하기가 한결 편해진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진유성은 각성자들에게 조언을 해 주기 시작했다.

“야. 그, 뭐야. 왼쪽에 있는 갈색 창 쓰는 놈.”

“저 말입니까?”

“너 말고, 인마. 그 왼쪽에 턱수염 기른 놈.”

“아, 넵!”

“너 이름 뭐야.”

“김우영입니다!”

진유성이 김우영에게 말했다.

“너 창 휘두를 때 새끼손가락에서 힘 빼라.”

“어, 하지만…….”

“창의 파지법이 새끼손가락에서 시작하는 건 맞는데, 넌 너무 힘이 들어갔어.”

김우영은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들을 이끌어 주는 각성자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몬스터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가끔 뒤를 돌아보긴 했지만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파지법을 확인하고 단점을 알아차렸다고?

정말 가능한 일일까?

김우영이 그런 고민을 하다가 번뜩 놀랐다.

이어진 진유성의 말 때문이었다.

“너 약지 다친 적 있지?”

“어, 네!”

“잘릴 뻔했냐?”

“……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약지에 힘을 덜 주고 새끼손가락으로 지탱하고 있어. 그러니까 창에 회전이 덜 먹지.”

김우영은 남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켠 김우영이 의식적으로 새끼손가락의 힘을 뺐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수슉!

지금껏 뚫리지 않았던 몬스터의 피부가 단번에 뚫려 버린 것이었다.

그 광경에 주변 각성자들이 깜짝 놀랐다.

진유성이 김우영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네.”

고수의 조언을 즉시 반영할 수 있다는 건 기본기가 튼실하고, 재능이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진유성이 보기에 저 김우영이란 놈은 재능 면에서는 두 SS급 각성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아주 약간 떨어지는 정도?

하지만 그 정도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진유성은 그 뒤로도 각성자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꼭 무기를 쓰는 이들에게만 조언을 해 준 건 아니었다.

스킬술사들에게도 조언을 해 주었다.

진유성은 스킬이 발동되는 원리나 느낌 같은 건 전혀 모르지만, 공방에 대해서는 통달한 이었다.

“야! 너! 못생긴 놈!”

“저 말입니까?”

“어, 잘 아네.”

“…….”

“너 스킬 쓰고 자꾸 뒷걸음질 치지 마라. 이 자식, 이상한 버릇이 있네.”

“뒷걸음질 친 적이 없는데…….”

“누가 몸이 간대? 마음이 뒤로 가잖아, 마음이. 너 스킬 쓰다가 뒤통수라도 맞은 적 있냐?”

“……!”

진유성한테 지적을 받은 스킬술사 이종학이 깜짝 놀랐다.

너무나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종학은 게이트 사태 초창기 때부터 활약해 왔던 A급 스킬술사였는데, 친동생처럼 여겼던 각성자에게 기습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이상하게 스킬 적중률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내가 아직도 그날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나?’

이종학이 뒤를 돌아보았다.

우산도란 이름 아래 모인 바보들이 보였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전부 버리고 게이트로 뛰어든 바보들.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등 뒤를 완전히 맡길 수 있지 않을까?

고작 돈 몇 푼과 욕심 때문에 타인의 뒤통수를 때릴 이들이었다면, 처음부터 독도 게이트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까.

이종학이 그런 생각을 하며 이를 앙다물었다.

그러곤 스킬을 난사했다.

퍼퍼퍼펑!

이종학의 스킬이 쏟아진다.

사실 그는 애국이나 독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우산도에 합류해 독도 게이트 클리어에 도전한 것은 지쳤기 때문이었다.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즐기고 싶은 것도 즐길 만큼 즐겼다.

더는 싸우고 싶지 않다.

이것은 스포츠 선수들이 겪는 매너리즘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원하던 것들의 대부분을 성취하고 승리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감정.

하지만 각성자들은 스포츠 선수와 달리 은퇴가 없다.

헌팅에 나서서 경험치를 획득하지 않으면 두통과도 같은 고통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종학은 독도 게이트에 도전했다.

누군가의 기억과 찬사 속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게이트 안에 들어오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깨달았다.

지옥의 단면을 마주한 자신의 가슴속에서 들리는 진실한 목소리.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그것이 생존을 울부짖고 있었으니까.

이종학이 진유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이종학입니다.”

진유성은 싸우느라 바빠서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종학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니까.

1세대 때부터 A급으로 활약했지만 더는 등급이 오르지 않아 만년 A급으로 불리던 이종학.

그가 마침내 자신의 틀을 깨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종학뿐만 아니었다.

진유성에게 기술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조언을 받은 각성자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렇게 한국의 내로라하는 99명의 각성자들은 마음 깊이 진유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 * *

계속해서 나아가던 팀 우산도의 각성자들은 그들이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화산지대의 끝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2차 관문이 남아 있다.

화산지대와 칼로 나눠놓은 것처럼 명확한 경계를 가진 열대우림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여기선 또 다른 놈들이 나오겠지?”

“젠장, 간신히 적응했는데.”

입으론 투덜거렸지만, 각성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클리어의 희망을 보았고, 강해질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현재가 아무리 괴로워도 미래가 밝다면 웃을 수 있는 게 사람이란 동물이었다.

그때 문수혁과 차정명이 진유성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경계에는 몬스터가 없는 모양입니다.”

“잠깐 쉬는 건 어떨까요?”

두 사람의 말투는 처음과 달리 꽤 공손해져 있었다.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기척도 안 느껴진다. 잠깐 쉬자. 부상자도 치료하고.”

진유성의 말에 문수혁이 각성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각성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휴식을 취했고, 부상자들에게 포션을 붓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뭐냐?”

“예?”

“아니, 막 상처에 부으면 새살이 돋네. 마데카솔이야?”

“포션 모르십니까?”

“포션? 아, 포션?”

진유성도 포션이 뭔지 알고 있었다.

블랙 마켓에서 마정석 다음으로 현금화를 잘해 주는 품목이라서 기억했다.

사실 진유성은 포션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료제라기에 금창약 같은 것인 줄 알았다.

중원에서도 효과가 좋은 금창약은 자상도 며칠 만에 낫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좀 이상했다.

혓바닥 같은 것에 관통당한 발목이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왜 전투 중에 뿌리지 않은 거야? 치료하고 싸우면 되는 거 아니야?”

진유성의 질문에 문수혁이 당황했다.

모든 각성자들이 알고 있는 기초적인 상식을 물어보는 이유를 몰라서였다.

물론 민간인 중에는 포션을 만능 치료제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에는 워낙 헛소리와 음모론이 많았으니까.

일각에서는 민간인들이 포션을 탐내지 않도록 포션의 효능을 의도적으로 낮춰 설명한다고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션은 만능 치료제가 아니고, 사용하는 데 많은 조건이 붙은 물건이었다.

우선 각성자가 아니면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각성하지 않은 민간인들에게는 맹물이나 다름없다는 것.

또한 각성자라고 무조건적인 치료를 보장받는 건 아니었다.

포션을 사용하면 마력이 소모됐다.

즉, 잔여 마력이 있어야지만 포션을 사용할 수 있었고, 필요한 마력의 양은 상처의 경중에 따라 달랐다.

또한 마력이 소모되는 동안에는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급박한 전투 중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포션을 뿌리고 무방비 상태가 됐을 때 아까 그 혓바닥 같은 게 날아든다면?

바로 용암 속으로 끌려가거나, 두개골을 관통당해 죽었을 것이다.

문수혁의 설명을 들은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으며 신기해 했다.

그 모습에 문수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모르십니까?”

“뭘? 포션?”

“예.”

“아니, 알긴 아는데 쓰는 걸 본 적이 없어서.”

“포션을 한 번도 안 써 봤다는 겁니까? 여태까지?”

“어. 없는데?”

아이언맨 헬맷 안에 감춰진 진유성의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던 문수혁이 물었다.

“하나만 대답해 주십시오.”

“뭔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진유성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이다.

굳이 선천진기를 엿보지 않아도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겠나.

처음 서울역 게이트에서 왕후란 가명을 쓴 것은 피휘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사실 중원에서는 감히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이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거부감이 옅어졌다.

99명의 각성자가 쳐다보는 와중에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진유성이다.”

“진유성…….”

문수혁이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릉!

열대우림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무가 허공으로 비산하고, 땅이 흔들렸다.

뱀.

아파트 몇 채를 이어 놓은 것 같은 거대한 뱀이 열대우림의 모든 것을 부수며 각성자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무, 뭐야!”

“으아아아악!”

화산 지대에서 용기를 얻었던 각성자들이 순식간에 패닉에 빠졌다.

너무나 거대했다.

아니, 거대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아득했다.

[보스 몬스터 아낙키나의 이무기]

뱀의 움직임에 따라 열대우림의 생태계가 모조리 박살 나며 길이 생겨났다.

패닉에 빠지지 않은 진유성은 구불거리는 뱀의 움직임 뒤로 익숙한 것을 발견했다.

보스의 신전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보스의 신전에서 끔찍한 악의의 기운이 느껴졌다.

프라하의 올드 캐슬에서 만났던 이상한 놈.

그놈이 저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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