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3화>
* * *
학교가 끝나자마자 지체없이 집으로 돌아온 진유성은 후다닥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공을 쓰지 않는 한 가장 빠른 몸놀림이었다.
‘오늘은 꼭 챌린저에 가야지.’
현재 진유성의 순위는 318위.
앞으로 18계단만 올라서면 천상계 중의 천상계인 챌린저에 도달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게임이 로딩을 기다리고 있는데, 2층으로 올라오는 유혜연의 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유성아?”
“네.”
노크 소리가 함께 문이 열렸다.
“나가서 저녁 먹을까 하는데 어때?”
“어, 저는 밥 먹고 왔어요.”
평소 식도락을 즐기는 진유성이지만 지금은 밥 먹는 게 귀찮았다.
밥보다 게임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진유성의 대답을 들은 유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밥을 먹고 왔다고?”
“네.”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온 거 아니야?”
“오면서 분식 사 먹었어요.”
“그래?”
“네.”
유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왠지 진유성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였다.
유혜연이 시선을 돌려 진유성의 방 안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모니터에 떡하니 떠 있는 게임 화면이 보였다.
유혜연이 모니터와 진유성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물었다.
“혹시 게임하려고 밥 안 먹는다는 건 아니지?”
“……아닌데요.”
“정말로?”
“네.”
평소에 진유성은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보통 사람보다 거짓말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유혜연이 진유성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상소윤은 매번 진유성을 애 같다고 말하지만, 유혜연이 보기에 진유성은 오히려 어른스러운 면이 많았다.
철이 없고 이상한 행동을 자주 하는 것은 맞다.
그건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진유성이 하는 이상한 행동의 대부분은 한국과 북한의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이었다.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면 진유성은 오히려 책임감이 있는 편이었다.
일단 내뱉은 말이나 약속은 무조건 지켰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본인이 기억하는 선에서는 절대 외면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 PC방에 갔다가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가구가 배송되면 나르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지나가듯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유혜연은 진유성을 볼 때면 마음이 짠할 때가 있었다.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무겁고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온 듯했다.
그러니까 저런 행동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리라.
이런 이유로 유혜연은 진유성이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보니 그냥 아이 같았다.
게임을 하고 싶어서 안 하던 거짓말까지 하는 걸 보니 좀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남자애들은 게임이 문제라지.’
다른 엄마들의 말을 들어 보면 남자애들은 게임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딸 밖에 안 키워봐서 지금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다.
그래, 게임 좀 하면 어떤가.
북한에 게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하는 것처럼 편하진 않았을 터였다.
유혜연의 웃음을 본 진유성이 물었다.
“왜 웃으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유성이 게임은 잘해?”
“당연히 잘하죠.”
“왜 당연해?”
“제가 못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음, 그것도 그러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소윤이도 잘 놀리고, 아이스크림도 잘 먹는다.
“너무 많이 하지는 말고. 건강 해치니까.”
“네.”
진유성은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유혜연은 모르겠지만, 진유성은 지난 일주일간 다섯 시간도 자지 않았다.
그나마 그 다섯 시간도 학교에서 잔 것이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게임을 하기 위해서.
물론 진유성은 잠을 자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의 온몸을 도도히 흐르는 엄청난 양의 내공은 항상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줬다.
그냥 뇌가 잠자는 시간에 익숙해져 있어서 자는 것뿐이었다.
‘건강 해치는 일은 없을 거니, 거짓말한 것도 아니겠지?’
진유성이 합리화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혜연은 웃으며 2층을 빠져나갔다.
유혜연이 1층으로 돌아가자 진유성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곤 본격적으로 무학을 시험할 수 있는 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과연 다르군.’
티어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달랐다.
진유성조차 깜짝 놀랄 만큼 창의적인 방식들이 쏟아졌다.
가끔은 너무 기발해서 박수를 쳐 주고 싶은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진유성은 기발한 수에 당하면 그것의 파해법을 꼭 생각하고 다음 게임에 임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A란 수법을 당하면 그것을 파해하기 위한 B를 생각하고, B를 파해할 수 있는 C와 C를 파해할 수 있는 D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간혹 D는 A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관계는 무공의 수 싸움과도 비슷했다.
쾌검은 환검을 이기기 힘들고, 환검은 중검을 버티기 힘들다.
중검은 유검으로 제압할 수 있고, 유검은 쾌검에 당한다.
결국, 뭐가 됐든 돌고 도는 거다.
하지만 무공과 게임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무공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이고, 게임에는 목숨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것.
또한, 무공은 정보를 무한정 공유하지 않았지만, 게임은 정보를 무한정 공유했다.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상위 게이머들의 사고 전환은 진유성에게도 꽤 큰 감흥을 주었다.
물론, 몇 판 했다고 진유성의 무공 수준이 증진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 행동이 아니기에 그 정도 자극은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 사고의 유연함과 발상의 전환은 배울 점이 있었다.
‘재밌군, 재밌어.’
호북의 제갈세가와 북경의 송백세가는 중원에서 지략가들을 배출하기로 손꼽히는 집안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두 집안에서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들이 많이 나왔다.
사실 제갈세가와 송백세가는 진유성이 중원을 일통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집안이었다.
제갈세가는 정도맹에 충성하고, 송백세가는 황실의 금군에 충성하기 때문이었다.
무력이야 다른 세가들과 비슷하게 고만고만했는데, 진짜 비겁했다.
너무 비겁하고 비열하기까지 해서 가끔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때는 너무 열이 받아서 제갈세가주와 송백세가주를 붙잡으면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볼기짝을 때려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적대하는 입장에서 비겁하다는 평가는 곧 최고의 찬사였다.
이들의 두뇌는 정말로 뛰어났고, 진유성은 이들을 무릎 꿇리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두 세가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을 알게 되었다.
롤을 깔아 주면 된다.
세가에 컴퓨터 100대 정도 놔두고 롤을 깔아 놓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주야장천 롤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한 100년 정도 롤만 연구하지 않을까?
제갈세가의 시조가 바둑의 필승법을 30년간 연구하다가 답을 찾지 못해 세상에 나와 제갈세가를 일구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였으니까.
진유성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게임을 즐겼다.
300위 구간에 접어들면서 10판을 하면 7판을 이기고 3판을 지는 형세였다.
이기는 판도 즐거웠고, 지는 판도 즐거웠다.
3판 중 1판 정도는 악질적인 유저 때문에 지는 판이지만, 나머지 2판은 상대방이 진유성조차 놀랄 정도의 플레이를 선보여서 졌으니까.
그때였다.
다음 게임에 들어온 진유성의 눈에 문득 익숙한 아이디가 보였다.
킹도훈.
심도훈에게 들었던 아이디였다.
“호오.”
진유성의 눈이 흥미로 빛났다.
* * *
심도훈은 자신이 후원하는(돈은 아버지 돈이지만) 프로게이머 선수와 음성 채팅을 나누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처음 시작은 후원자와 후원사의 선수였지만, 나이가 동갑이라서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는 관계였다.
-어, 뭐야?
“왜?”
-지존천마네?
“3픽? 유명한 애야?”
-어, 선수들 사이에선 좀 유명하지. 지금 1군 선수들 세계 대회 나가 있잖아?
“그치.”
-걔들 돌아와서 지존천마랑 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 많아.
“왜? 엄청 잘하나?”
-어. 무슨 핵처럼 잘해. 아, 근데 핵은 아니야. 예측샷은 제법 맞아 주는 편이라서.
심도훈이 호기심에 Zi존천ㅁr란 아이디를 검색했다.
검색 기록에 따르면 승률이 무려 68퍼센트였다.
‘근데 68퍼센트면 압도적인 건 아니지 않나?’
그때 선수 친구가 말했다.
-아마 아이디를 샀거나 빌린 거 같은데, 다이아2부터 그마까지 승률이 한 85퍼센트쯤 될걸?
“와, 씨. 진짜?”
-어. 아, 근데 우리 팀이네. 적으로 만나 보고 싶었는데.
“근데 아이디가 왜 저래.”
-킹도훈이나 지존천마나. 아, 근데 쟤 컨셉 쩐다던데. 막 그 무협지에 나오는 사람들 있지? 그런 말투 쓴대.
“진짜?”
-어어. 기다려 봐.
친구가 지존천마에게 말을 걸었다.
[지존천마님 어디 가심?]
[네 눈엔 내가 미드를 골라 놓은 것이 보이지 않느냐?]
[아니, 혹시 다른 데 가고 싶으실까 봐요ㅋㅋ]
[본좌의 소명은 미드를 폭격하는 것이다. 정글러는 잘 보필하도록 하여라.]
[예, 전하.]
[본좌는 왕이 아니라 황제의 윗사람이다. 전하란 표현은 옳지 않다.]
[니예에. 총총.]
[고추가 없는 게냐?]
지존천마와 친구의 대화에 심도훈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와, 씨. 골 때리네.”
-존나 웃기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게임이 시작되었다.
원거리 딜러 포지션을 고른 심도훈은 종종 지존천마가 있는 미드 라인을 구경했는데, 진짜 감탄만 나왔다.
예측샷에 잘 맞아 준다는 친구의 말은 거짓이었다.
상대방의 예측샷은 전부 피했고, 본인의 예측샷을 전부 꽂아 넣었다.
“와, 진짜 잘하네.”
-대박인데? 들었던 것보다 훨씬 잘한다.
“승리당하겠는데?”
그렇게 게임이 클라이맥스로 진행되었다.
한참 게임을 하고 있는데, 심도훈이 인상을 팍 썼다.
롤에는 ‘레드’라는 버프가 있는데, 이것은 게임이 후반에 접어들면 원거리 딜러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었다.
한데, 지존천마가 갑자기 쓱 달려와서 자신의 레드 버프를 먹은 것이었다.
아무리 지존천마가 게임을 이끌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분이 나쁜 행위임은 틀림없었다.
[그걸 왜 먹어요 ㅡㅡ]
[네가 먹는 것보다 내가 먹는 게 훨씬 게임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아닌데? 나도 스코어 좋은데.]
[본좌의 강력함 아래 기생한 것이 아니더냐. 불만 갖지 말거라.]
그러나 심도훈은 이미 빈정이 상해 버렸다.
[사과 안 하면 게임 안 함.]
심도훈의 말에 같이 게임을 하고 있던 프로게이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심도훈과 친구가 되고 나서 심도훈이 엄청난 부잣집 자제 같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심도훈은 그가 막연히 생각했던 재벌 2세보다 훨씬 소탈했고, 훨씬 이성적이었다.
그러나 몇몇 순간에는 고집을 꺾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이럴 때였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때.
지존천마의 도발이 심도훈의 자존심을 긁고 지나간 것이었다.
‘에이, 이 판은 졌네. 편하게 이기나 했는데.’
프로게이머가 그렇게 생각할 때, 지존천마가 채팅을 쳤다.
[사과를 하라고?]
[ㅇㅇ]
[기다려라. 네가 어디 사는지부터 알아보마.]
[또라이냐?]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못 알아낼 거 같더냐?]
심도훈이 피식 비웃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존천마의 채팅이 다시 올라왔다.
[심도훈, 19살.]
순간 깜짝 놀랐지만, 놀람은 금방 가셨다.
킹도훈이란 아이디를 보고 성을 찍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나이를 찍어 맞추는 건 쉽지 않지만…….
‘아, 내가 얘랑 듀오하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얘는 프로게이머니까 나이를 알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았다.
하지만.
[대정고 3학년 1반, 키 175, 몸무게는 68, 생일은 6월 9일.]
심도훈이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부잣집 자제였군. 공화 시멘트.]
“뭐, 뭐야!”
심도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너무 놀랐다.
유투브에서 봤던 딥웹 같은 해커 관련된 무서운 영상들이 마구 떠올랐다.
순간 대정고의 학생이 장난을 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알기론 대정고에는 이 정도 티어에 상주하는 이가 없었다.
지종수가 축구에 집착하는 것처럼 심도훈도 롤에 집착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가 있나 찾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지.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간신히 심도훈이 가슴을 진정시키는 순간, 지존천마의 채팅이 올라왔다.
천천히 올라오는 채팅이 어딘지 공포스러웠다.
[simkacola69.]
-!
남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어 단어겠지만, 저것은 심도훈이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에서 쓰는 비밀번호였다.
이건 대정고의 학생이라고 해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ㄴ구야!]
[누구냐고!]
심도훈이 오타까지 내면서 발작하듯 물어봤지만, 지존천마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
[넌 평생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거다.]
라고 말하고 게임을 떠날 뿐이었다.
보이스 채팅 너머로 친구가 묻는 말들이 들리지 않았다.
놀라서 손만 떨 뿐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진유성은 웃겨서 몸을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