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09화>
* * *
“흐아암.”
교실 책상에 앉아 있던 진유성이 창밖을 쳐다보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
잠을 잘 필요가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하품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뇌가 잠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하품이 수면과 상관없는 신체의 작용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습관인가?
물론 진유성은 마음만 먹는다면 신체를 통제해서 하품이 나오지 않게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만년설 앞에서도 땀을 뻘뻘 흘릴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신체 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흠.”
진유성이 스마트폰을 들어서 하품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이 세계의 가장 좋은 점은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검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하품의 검색 결과를 대충 훑어보다가 덮었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대정고는 비싼 학비에 걸맞은 완벽하고도 비싼 시설들을 가지고 있었다.
체육 시설도 뛰어났고, 주차 시설도 넓었으며, 교육 시설도 세련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정의 풍경이 완벽했다.
봄 냄새를 물씬 풍기며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참 아름다웠다.
어쩌면 봄이라서 하품이 나는 게 아닐까?
“흐아아암.”
진유성이 재차 하품을 할 때 누군가 그의 입으로 손가락을 쑥 넣었다.
상소윤이었다.
진유성이 입을 벌린 채로 웅얼거렸다.
“바새하도로 화어라.”
입을 벌린 채로 말하는 거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상소윤이 손가락을 빼고는 물었다.
“뭐라고 했냐?”
“밖색하도록 하라고 했다. 참고로 쌍기역 받침이다.”
“쌍기역? 또 두 배로 박색해서 빢쌖이라고?”
“아니, 박색한 것을 밖으로 치우라는 말이었다.”
“놀고 자빠졌네. 대체 그런 창의력은 어디서 샘솟는 거냐?”
“씽크빅.”
코웃음을 친 상소윤이 의자를 드르륵 끌고 와 진유성 옆에 앉았다.
그러곤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네가 직접 좀 사다 먹어.”
“어차피 가는 길이었잖느냐?”
“그래도.”
“다음에 내가 갈 때는 네 것을 사다 주마.”
상소윤이 툴툴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진유성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안 사다 줄 거다.
상소윤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진유성의 2호 아이스크림 셔틀이었다.
1호는 지종수였고.
“뭐하고 있었냐?”
“앵화(櫻花)를 보고 있었다.”
“앵화가 뭐야?”
“벚꽃.”
“뭐여, 사쿠라여?”
“……?”
“사쿠라네.”
“…….”
진유성의 어이없다는 눈빛에 상소윤이 인상을 팍 썼다.
“야! 네가 이상한 대사 따라 할 때 나는 그래도 웃어 줬거든?”
“아니다.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웃겼고, 너는 안 웃겼다.”
“웃기고 있네, 방금 웃겼거든?”
“그래, 웃기고 자빠졌더구나.”
“기분이 좀 나쁜데?”
“참아라. 참으면 복이 온다더라.”
거의 척수 반사로 나오는 것 같은 진유성의 대답들에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평소의 진유성과 좀 다른 것 같았다.
“너 어디 아프냐?”
“안 아프다.”
“반응이 좀 이상한데?”
“뭘 좀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
“옛날 생각.”
진유성이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 칠성을 보여 주었다.
대명제국의 여황제 주혜미가 진유성을 사모하며 모은 일곱 개의 진귀한 보석을 엮어 만든 장신구.
그 보석 중에는 호박(琥珀)이 있었다.
중원에서는 호박 보석을 호랑이 혼이 굳어져 탄생한 보석이라고 믿었다.
호박의 색이 노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호랑이가 꼭 노란색의 개체만 있는 건 아니다.
하얀색을 띠는 백호도 있었다.
그래서 중원인들은 언젠간 백호의 색을 담은 백(白)호박이 발견될 것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긴 중원의 역사상 백호박은 딱 한 번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백호박은 현재 중원에 없었다.
진유성의 팔목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갑자기 백호박을 떠올린 것은 그 이름 때문이었다.
“이 보석의 이름이 앵화다.”
주혜미는 일곱 개의 보석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중 백호박에 붙여 준 이름이 앵화였다.
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게 꼭 벚꽃 같다면서.
“듣고 보니 벚꽃 잎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냐?”
진유성이 피식 웃는 순간, 상소윤이 진유성이 등짝을 짝 하고 내리쳤다.
“어, 뭐야.”
그러곤 때린 상소윤이 놀랐다.
지금껏 무수히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진유성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간첩답게 날랜 몸놀림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손맛(?)을 봤다.
“뭐야, 왜 맞아줬어?”
“다리.”
“엉?”
“의자 다리.”
진유성의 눈짓을 따라가 보니 상소윤이 앉아 있던 의자와 진유성이 앉아 있던 의자의 다리가 겹쳐 있었다.
진유성이 재빨리 피하려고 의자를 젖혔으면 상소윤의 의자가 뒤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맞아준 것이었다.
“올, 매너 다리.”
“그 말이 그런 때 쓰는 건 아니지 않나?”
“뜻만 통하면 그만이지.”
“근데 왜 때렸느냐?”
“쓸데없이 봄을 타고 있으니까 한 대 때려 준 거지. 정신 차리라고.”
“아이스크림을 사다 줬으니 봐주마.”
“야, 근데 너 왜 체육 대회 아무것도 안 나갔냐?”
상소윤의 말처럼 진유성은 대정고 체육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E-스포츠는 물론이고 다른 종목에도 전혀.
지종수가 애써 다른 반 학생들과 딜을 해서 축구와 농구 외의 종목에는 참가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 왔는데도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추모의 시간이었다.”
“추모? 누굴 추모해?”
“나 자신을 추모했다.”
“널 왜?”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사라졌으니까.”
요 몇 주 동안 진유성은 진유성이 아니었다.
지존천마였다.
하지만 지존천마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처음엔 금방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존천마의 빈자리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결국 진유성은 경건한 마음으로 지존천마를 추모하고, 애도했다.
유투브에 들어가서 ‘지존천마 하이라이트’를 감상하면서.
그사이 ST-1 단장에게서 전화가 50통쯤 걸려온 것 같았다.
문자까지 합치면 100개도 넘을 것 같다.
하지만 진유성은 단 한 번도 연락에 답장하지 않았다.
지존천마는 죽었으니까.
지존천마를 간절히 찾아 헤매는 이는 비단 ST-1 구단의 단장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유저들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대표적인 지존천마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는 엄청난 댓글이 달려 있었다.
이러한 댓글들은 누군가 지존천마의 아이디가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더욱 가속화되었다.
또한 ST-1의 2군 선수들을 통해서 지존천마가 구단에 방문했으며, 1군 선수들을 압살하고 사라졌다는 정보가 유출된 뒤에는 정점을 찍었다.
처음에는 루머 수준이었지만, 1군 선수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는 사실로 인정받았다.
└교주님께서 타 주시던 차 맛이 그립습니다…….
└차 이름이 무엇이냐?
└미드차이였습니다…….
└세계 1위 팀을 압살하고 시시하다며 사라진 교주님 클라스…….
└존이를 아냐고요? 그는 내가 아는 게이머 중 최고였어요.
아무튼, 이런 이유로 진유성은 체육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었다.
진유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소윤이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집에 가냐?”
“오늘 좀 늦는다.”
“왜?”
“어디 갈 곳이 있어서.”
“일찍 일찍 다녀라.”
“12시 전에는 들어가마.”
“근데 어디 가냐?”
“비밀이다.”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때마침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상소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고 남은 껍질은 진유성의 책상에 올려 둔 채로 후다닥.
* * *
4시 반에 학교가 끝나자마자 진유성은 재빨리 대정고를 빠져나왔다.
갈 곳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진유성이 향하는 곳은 논산이었다.
논산에 보스 레이드 게이트가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일전에 마도사들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한국에 열릴 모든 보스 레이드 게이트를 클리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해서 마도사들의 영성을 가로채다 보면 언젠간 첫째와 둘째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근에는 게이트가 잘 열리지 않았다.
보스 레이드 게이트만 안 열린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게이트 자체가 잘 안 열렸다.
어쩌면 록펠러의 죽음이 첫째와 둘째에게 경각심을 심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게이트를 열려면 셋이 같이 열어야 하나?’
진유성이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현재 진유성에게는 록펠러가 남기고 간 지식이 있었다.
물론 지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애매했다.
언어로 옮겨 보라고 하면 단 한 글자도 적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게이트나 아카샤와 관련된 특정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 보면 직감이 섰다.
맞는 것 같다, 아닌 것 같다 정도의 직감.
게다가 록펠러는 죽기 전에 진유성에게 많은 정보를 줬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식은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본인 말로는 수백 년 동안 타인과 소통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하는데, 진유성이 보기엔 원래 말이 많은 놈이었다.
진유성은 직감과 대략적인 정보 덕분에 게이트에 대해서 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곰곰이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게이트는 마도사 혼자서도 열 수 있을 것 같다.
“흠.”
그게 아니라면 셋째의 죽음이 첫째와 둘째에게 어떤 제약을 줬을까?
보통의 쌍둥이는 육체적인 형질만 비슷할 뿐 본질적으로는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이 세쌍둥이는 영혼의 일부를 공유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명의 죽음이 다른 둘에게 어떤 타격을 줬을 수도 있을 듯했다.
‘에이, 알게 뭐야.’
이왕 알려 줄 거면 둘째와 첫째의 이름이나 알려 주고 갈 것이지, 쓸데없는 정보들만 남겼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 논산 톨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논산은 한산했다.
C급 보스 레이드 게이트가 예정되어 있기에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상태였다.
진유성은 CCTV의 기척을 신경 쓰면서 게이트가 예정된 곳으로 다가갔다.
오늘, 진유성은 한 가지를 실험해 볼 생각이었다.
그동안 진유성은 게이트가 선별 인원을 선별할 때 함께 게이트로 들어갔다.
나중에는 게이트를 찢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어쨌든 선별 작업 이후에 들어가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별 작업 이전에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게이트의 구조와 역학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진유성이 한산한 도시의 가운데에 섰다.
그러곤 눈을 감았다.
게이트는 아카샤를 속이고 아카식 레코드를 찬탈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혀 독립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분명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진유성이 검을 빼 들었다.
문득 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까 이 검은 꽤 잘 써먹고 있었다.
입멸공은 몇 번이나 사용했는데도 큰 문제는 없었다.
입멸공을 구현하는 진유성의 실력이 상승했기 때문도 있지만, 검 자체도 굉장히 좋았다.
그래도 아놀드 벡의 검이니까 돌려주긴 해야 한다.
역시 입멸검이 아쉬웠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들었다.
막대한 기운이 요동치더니, 일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유성이 들고 있는 검의 끝으로.
이윽고…….
촤아아악!
진유성의 검이 공간을 찢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