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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19화 (11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19화>

첫째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천신궁 게이트 너머, 중원의 절대자가 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첫째가 입을 열었다.

“중원의 진유성. 이대로 싸움을 계속할 생각인가?”

“그렇지 않으면? 너와 내가 담소라도 나눠야 한단 말인가?”

“담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화는 나눌 수 있지.”

“대화는 격이 맞는 이들이 하는 것이다. 넌 내가 묻는 것에 대답만 하면 된다.”

중원의 절대자가 신조차 두려움에 떨게 할 힘으로 첫째를 겨냥했다.

“그리고, 대답은 팔다리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오만한 발언에 첫째가 웃음을 터트렸다.

신선하다.

수백 년을 살아왔지만 그를 이렇게 취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만이 과하군.”

하지만 중원의 절대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뛰어들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머뭇거리지 않는 게 진유성이었으니까.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푸욱!

입멸검이 첫째의 가슴을 찌르는 순간, 첫째가 육신을 벗어던졌다.

쿠르르르릉.

잠잠하던 구름이 다시 한번 뇌성을 토해 냈다.

영혼체로 돌아온 첫째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오른손에 들린 무언가가 중원의 절대자를 향해 날아갔다.

이것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법칙에 자신의 사념을 끼워 넣은 것이었다.

파파파파팍!

파공음 소리와 함께 진유성의 칠공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피는 순식간에 멎었다.

진유성이 검을 내지르고, 첫째가 손을 들어 막았다.

쿠쿠쿵!

중원의 절대자와 서역의 절대자가 온 역량을 동원해 충돌했다.

세상을 재단할 거력이 부딪치자, 천신궁 상공에 머물던 먹구름이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두 사람의 힘이 백중세임을 의미했다.

[너만 신을 죽일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나?]

첫째의 질문에 진유성이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셋보다 하나가 낫군. 그때는 꽁지 빠지게 도망가지 않았던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과거, 세쌍둥이 마도사들은 진유성과 싸우다가 물러난 적이 있었다.

끝까지 싸워봐야 얻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유성도, 첫째도 서로를 죽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둘째와 셋째는 그들 세쌍둥이가 지닌 힘이 동일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둘째와 셋째는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둘째와 셋째는…….

첫째의 의지 아래 태어난 존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가 죽은 셋째의 기억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대화를 할 생각이 없나?]

“물론.”

진유성의 손에 들린 입멸검이 빛을 뿜어내며 점점 크기를 불렸다.

본디 입멸검은 평범한 장검이었기에 양수검의 자세를 취하기에는 조금 작아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입멸검을 뒤덮은 빛이 거검의 형태를 갖추자, 양수검에 어울리는 크기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첫째의 온몸을 둘러싼 공간이 스멀스멀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성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록펠러가 독도의 게이트 안에서 펼쳤던 것보다 훨씬 농밀하고 치밀했다.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죽겠군.”

[그걸 원하나?]

“그게 너라면 얼마든지.”

마침내.

일멸공의 오의를 품은 입멸검과 신성의 공간이 충돌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프스스스스스.

백 년 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던 천신궁의 게이트.

그것이 두 사람의 충돌에 반응하더니, 갑자기 크기를 키웠다.

투화악!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게 천신궁 게이트가 그들을 뒤덮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서로의 기억을 읽게 되었다.

* * *

첫째는 어미의 뱃속에 있었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사물을 인식했고, 이치를 깨달았으며, 어미의 감정을 읽었다.

그는 정상적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사악한 마도비술에 심취한 어미가 궁극의 마도술을 위해 만들어 낸 재물이었다.

출산하는 순간, 재물로 바칠 존재란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첫째는 뱃속에서부터 사악한 심성을 타고났다.

어미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숨을 쉬는 모든 존재를 죽이고,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너무나 거대한 힘을 품고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육신은 한없이 작고 여린데, 품고 있는 힘이 너무 과했다.

그 불균형이 첫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탄생하면서 마도술의 비의를 깨달았지만, 마도술을 쓰는 순간 연약한 아기의 육체가 터져 버릴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태어나는 순간 어미의 손에 심장이 도려져,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첫째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내 어미의 당황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어째서 세쌍둥이가!

이것이 천상의 노랫소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어미는 어리석었다.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가 아니었다.

둘은 자신의 힘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분화시켜 만들어 낸…… 자신의 자식이었다.

거대한 힘을 나누자 첫째는 비로소 마도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미의 자궁을 찢고 세상으로 나와 서역을 공포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신체가 성장한 이후에는 둘째와 셋째를 죽이고 힘을 거둬들일 수도 있었다.

타고난 모든 힘을 사용할 강인한 육체를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첫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둘째와 셋째를 사랑했다.

이는 어미의 모성애보다, 연인의 사랑보다, 친우의 우정보다 깊었다.

하지만…….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첫째가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은 육체가 아니었다.

둘째와 셋째는 육체를 잃어버렸지만, 그는 아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그의 형제이자, 자식이자, 연인이었던 둘째와 셋째에 대한 마음이었다.

이제 그는 세상의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언젠간 자신에게 부인을 잃은 서역의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정한 악신(惡神)은 인간을 빌어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이 하나라도 남아있는 악이 어찌 진정한 악이란 말인가.

-그러니 넌 그저 고강한 힘을 지닌 무뢰배일 뿐이다.

첫째는 인간을 벌레와 다름없이 생각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벌레처럼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철학자의 말은 그의 폐부를 찔렀고,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끝없이 고문하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상실의 공간에서 마음을 잃어버린 순간, 철학자의 말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진정한 악신(惡神)이 되었음을.

이제 남은 것은 아카샤와 아카식 레코드를 정복하고 신의 영역에 이르는 것뿐이었다.

* * *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의 무(武)는 규칙을 뛰어넘었기에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는 ‘--’의 9할을 잃고, ‘무’의 1할을 잃겠는가.]

[아니면 ‘무’의 9할을 잃고, ‘--’의 1할을 잃겠는가?]

진유성은 상실의 공간에서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 냈다.

무의 9할을 포기하는 대신, ‘--’의 9할을 지켜 낸 것이었다.

[통과하라.]

[그대는 자신을 온전히 보존한 최초의 통과자이다.]

[그럼, 그대가 문을 닫을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그렇게 진유성은 상실의 공간을 넘어 지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무(武)의 9할은 아니었다.

그것은 상실의 공간의 법칙대로 중원에 남겨져야했고, 자연으로 환원되어야 했다.

하지만 무(武)의 9할은 자연에 환원되지 않았다.

첫째의 가설이 옳았다.

진유성의 힘이 너무나 강대하고 방대하여 의지를 품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힘의 총량 때문은 아니었다.

9할이 품고 있는 입멸공의 성질 때문이었다.

입멸공에는 생(生), 사(死), 입(入), 멸(滅)의 인과율을 조작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진유성이 상실한 무(武)의 9할은 소멸과 죽음을 피하고, 생의 의지를 이어 간 것이었다.

“나는…… 진유성인가?”

문제는 그가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에 있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중원의 진유성은 ‘--’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중원의 진유성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무(武)의 9할을 품고 있지만, 진유성이란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의 9할은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뭔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늘 중원의 진유성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넌 가짜라고.

대명제국을 순조롭게 통치하고, 모두가 너를 신으로 받들어도 사실을 알지 않냐고.

네가 가짜라는 걸.

이것은 중원의 진유성에게 깊은 심마를 안겨다 주었다.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밤.

중원의 진유성은 천신궁 뒤뜰의 게이트로 들어갔다.

‘--’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거기서 상실의 공간의 관리자를 만났다.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나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해 다오.”

[그대는 상실의 공간을 지나치려는가?]

“아니! 나는 그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알고 싶을 뿐이다!”

[불가하다.]

[물러나거나, 통과해라.]

하지만 관리자는 말해 주지 않았다.

결국 진유성은 관리자를 향해 입멸검을 들었다.

결국 ‘--’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상실의 공간을 통과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채 통과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결국은 관리자를 물리치고 공간의 법칙을 이겨낸 다음에 통과해야 했다.

진유성은 달포 동안 관리자와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그대는 ‘--’의 9할을 잃고, ‘무’의 1할을 잃겠는가.]

[아니면 ‘무’의 9할을 잃고, ‘--’의 1할을 잃겠는가?]

그는 마침내 관리자를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통과하라.]

[그대는 자신을 온전히 보존한 통과자이다.]

그렇게 진유성은 상실의 공간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절망해야했다.

상실의 공간을 통과했다고 생각했건만, 눈을 뜨니 천신궁이 있었으니까.

“이게 무슨…….”

처음에는 상실의 공간 너머에 또 다른 천신궁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시 중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진실을 알게 되었다.

게이트를 넘어가는 것.

‘--’의 9할과 무(武)의 1할.

중원에 남는 것.

‘--’의 1할과 무(武)의 9할.

문제는 자신은 진유성의 남기고간 무(武)의 9할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즉, 영원히 중원에 남는 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게이트 안에서 들었건만, 생각나지 않았다.

가짜에겐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씨발!”

화가 난 진유성이 손을 움직여 천신궁을 전부 부숴 버렸다.

놀란 천마신교도가 다가와 진유성에게 진노한 이유를 묻는데, 화가 났다.

우드득!

진유성은 저도 모르게 천마신교도의 목을 꺾어 죽여 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의미한 살생을 했다.

한데,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무공을 연마하며 바위를 부쉈을 때의 느낌이다.

천마신교도의 시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게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은 ‘--’의 9할을 잃는다.

그는 진짜 진유성이 남긴 ‘--’의 1할을 가지고 있었고, 게이트에 한 번 더 들어가면서 그 중 9할을 잃어버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 ‘--’는 1할의 1할인 1푼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내가 가짜지?

자신에게는 진유성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의 1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와 진유성은 독립된 존재가 아닌가?

게이트 너머의 진유성을 죽인다면, 난 완전히 독립된 존재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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