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22화>
* * *
비행기에 올라탄 진유성이 자신의 자리에 앉자, 심도훈이 그의 옆에 앉았다.
앞으로 5시간 동안 함께할 그의 파트너가 심도훈이 것 같았다.
심도훈이 좌석을 편하게 조정하더니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곤 멀뚱멀뚱 앉아 있는 진유성을 향해 말했다.
“진유성.”
“왜 그러느냐?”
“요즘은 롤 영상도 안 보고, 비룡 만화도 안 보더라?”
“둘 다 극의를 봤기 때문에 접었다.”
“극의?”
“끝을 봤다는 소리다.”
진유성의 말은 요리와 롤의 두 분야에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뜻이었지만, 심도훈은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다.
그냥 볼 만한 영상을 전부 봤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이것도 봤냐?”
심도훈이 자신의 노트북을 조작하더니 한 영상을 틀었다.
‘킹도훈’이란 유저의 플레이 하이라이트를 모아 놓은 롤 영상이었다.
즉, 심도훈의 영상이란 말이었다.
“이건 네가 아니더냐?”
“맞아. 인터넷에 보니까 누가 만들어 놨더라고.”
“흠.”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으며 심도훈의 영상을 구경했다.
한심한 수준이었다.
잘한 플레이만 모아 놓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갈 길이 멀다.
영상을 좀 보던 진유성이 손을 휘휘 저었다.
“눈이 아프다.”
“눈? 눈이 왜?”
“너무 한심한 장면들 밖에 없어서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다.”
“……!”
지종수가 축구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심도훈은 롤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축구처럼 훈련을 하려면 돈이 들어가는 스포츠가 아님에도 많은 돈을 쓰고 있기도 했고.
“나 지금 챌린저거든?”
“챌린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플레이가 한심하다는 거지.”
“그럼 누가 안 한심한데?”
“두 번 말하면 입 아프지 않겠느냐? 지존천마다.”
심도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자식, 인성이 쓰레기야.”
“뭐?”
“그거 자기 실력도 아니야. 핵 프로그램 쓰는 거라고.”
심도훈은 지존천마가 해커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압도적인 게임 실력도 전부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나타나서 세계 1위를 패고는 홀연히 사라질 이유가 없다.
걸릴까 봐 사라진 것이다.
이번엔 진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다. 그 자는 훌륭한 인격을 지녔으며, 정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걔 알아?”
“알지 못해도 느낄 순 있지.”
“뭐야? 알지도 못하면서. 그 자식 쓰레기라니까?”
“아니다! 입 조심해라!”
“너 뭐야? 지존천마 빠돌이냐?”
“그는 충분히 존경할 만한 위인이다.”
“웃기고 있네. 사기꾼인데.”
진유성과 심도훈이 게임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하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상소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주 그냥 열사들 납셨네.’
정말 남자애들이란 한심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아마 진유성은 100살을 먹어도 그대로일 것 같다.
정답.
진유성과 심도훈은 그 뒤로도 계속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런데, 갑자기 심도훈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고 있던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싸우다가 ‘너랑 말 안 해!’ 같은 식으로 입을 다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게 아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침묵했다.
‘뭐야?’
의아함을 느낀 상소윤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앞자리를 살폈다.
그러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심도훈이 보였다.
“……!”
상소윤이 깜짝 놀라서 진유성의 귀에 속삭였다.
“너 설마 기절시켰어?”
그러나 뒤통수만 보이는 진유성은 미동도 없었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설마 진유성도 잠이 든 건가?
왜? 저 자리에 수면 성분이라도 있나?
아니면 비행기 전체에?
상소윤이 재차 귓속말을 건넸다.
“진짜 기절시킨 거야? 진짜로?”
진유성이 스윽 뒤를 돌아본다.
“이래서 감이 좋은 꼬맹이는 싫다니까.”
* * *
대정고 학생들이 탑승한 좌석의 등급은 비즈니스 클래스였다.
아무리 돈이 많은 대정고라고 해도 수학여행에 퍼스트 클래스를 동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 중 몇몇은 개인 마일리지로 좌석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했지만, 학교 측에서 허락하진 않았다.
항공사마다 편차는 있지만 비즈니스 클래스는 보통 두 좌석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심도훈이 잠에 들자, 진유성은 아주 조용한 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잠이 든 건지, 잠으로 보내 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흠.’
진유성은 비행기 창문 밖을 구경하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와 비행기를 보고 소유욕을 불태웠었는데, 이제는 좀 시들해졌다.
그래도 비행기는 참 신기했다.
순간 속력만 따지면 진유성이 비행기보다 빠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여객기 평균 속도가 900km/h 정도 되는데, 진유성은 마음만 먹으면 훨씬 먼 거리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특성상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비행기가 진유성보다 빨랐다.
어떤 의미에서 무공은 인간에게 무용한 것 같기도 하다.
무공이 없는 이 세계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했는데, 그가 살던 중원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 세계를 운영하는 아카샤라는 의지가 이종의 기운들을 배척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상관없는 게 이상하단 말이지.’
세쌍둥이 마도사들은 게이트를 통해 얻은 힘만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았는데, 자신은 아니었다.
역시 잘 모르겠다.
이제는 세 명이 두 명이 됐으니까, 조만간 한 명으로 만들 기회도 찾아오겠지.
그의 생은 기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 비행기는…….
가만 들어 보니까 난기류와 만날 예정이라 비행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였다.
이내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안전벨트를 채우라고 당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유성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곤 비행기의 이동 경로에 있는 난기류를 없애 버렸다.
몇 분 뒤, 난기류가 소멸됐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오늘의 비행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이었다.
다섯 시간 뒤.
비행기가 하이커우 메이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 * *
공항에서 호텔에 도착하니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짐을 풀고 씻은 다음, 6시까지 호텔 식당 앞으로 오라는 담임의 말에 학생들이 체크인을 하려고 줄을 섰다.
“4인실은 처음 써 보는데.”
“나도.”
같은 방을 쓸 인원은 담임이 학생들의 평소 친분을 보고는 배정했다.
그러니 진유성,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가 한 방에 모인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종수가 물었다.
“진유성 너 코 고냐?”
“안 곤다.”
“확실해?”
“확실하다.”
“그걸 어떻게 믿어.”
“상소윤한테 물어봐라.”
“……!”
지종수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소윤이가 그걸 왜 알아!”
“집에 놀러 갔을 때 소파에서 잔 적이 있다.”
“그래……?”
“TV를 보다 보면 잠이 들 때도 있으니까.”
물론 진유성은 잠을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으면 잠드는 일이 없었다.
수면이 필요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깜빡 조는 일 따위는 일절 없었다.
이번엔 심도훈이 끼어들었다.
“야, 진유성.”
“왜.”
“내가 비행기에서 언제 잠든 거냐?”
“갑자기 열 내다가 잠들었다.”
“갑자기? 갑자기 잤다고?”
“그래. 그러니까 화 좀 내지 마라. 화가 머리에 치솟으니까 심혈관이 막히고, 뇌에 산소가 안 통해서 너도 모르게 졸도한 것이다.”
“지, 진짜?”
“그래.”
진유성의 말에 심도훈이 겁을 먹었다.
안 그래도 갑자기 기절하듯이 잠든 게 이상했었다.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의 주치의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나 화병이 심혈관 질환이나 뇌졸중을 만드는 거라고.
그때 아버지가 자신을 가리키며 ‘이 놈이 내 화병의 근원이다.’라고 말했었고.
“……앞으로는 화를 안 내야겠다.”
심도훈이 굳게 다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또 한 번 좋은 일을 한 것 같다.
앞으로 심도훈은 화를 내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체크인이 완료되었고, 네 사람은 호텔로 올라갔다.
* * *
짐을 풀고, 밥을 먹은 대정고 학생들은 호텔의 지하 1층에 있는 비즈니스 센터로 모여들었다.
본래 이곳은 기업 프레젠테이션이나 설명회 같은 행사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대정고의 레크리에이션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학교라고 해도 연례행사는 비슷하게 진행되기 마련이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대한민국 최고의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초빙했다는 것과 상품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한 경우, 바로 어제 출시되었던 최신형 노트북을 받을 수 있었다.
‘흠.’
진유성은 갑자기 노트북이 탐났다.
물론 그에게 노트북을 살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상림의 집을 노트북만으로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공짜가 아니던가?
공짜는 언제나 옳은 법이다.
특히 손쉽게 얻을 수 있을 때는.
진유성이 장기자랑 참가 신청을 하자, 옆에 앉아 있는 고인수가 물었다.
“너 설마 요리하게?”
“무슨 요리냐. 장비도, 재료도 없는데.”
“그럼 뭐? 축구? 트래핑?”
“허어. 그런 걸로 1등을 할 수 있겠느냐?”
진유성이 자신 있게 장기자랑에 참여한 것은 1등을 할 수단이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요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정확히는 요리왕 비룡을 따라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트릭이 있는 척 꾸며 놓으면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해도 ‘트릭이 있겠거니.’ 생각한다.
물론 트릭이 대해서 집요하게 궁금해하고, 물어보는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거까진 자신이 대답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럼 뭐 하게?”
“궁금하냐?”
“어어. 뭔데?”
“비밀이다.”
고인수가 궁금해했지만, 진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진유성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상소윤의 메시지였다.
[야, 너 이상한 거 할 거면 하지 마! 뭐 할라고 그러냐?!]
진유성이 참가 신청을 하는 걸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대답하는 게 귀찮아서 폰을 덮었다.
그러자 또다시 메시지 폭탄이 날아왔다.
[씹냐?]
[지켜보고 있거든?]
[아, 뭐 할라고!]
뒤를 돌아보니 우측 측면에 상소윤이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스마트폰을 사정없이 가리키는 걸 보니, 빨리 답장을 하라는 뜻 같았다.
[보면 안다.]
[아, 뭐 할 거냐고?!]
그러나 진유성은 답을 할 수 없었다.
앞선 차례 지원자의 노래가 끝나자, 사회자가 ‘3-1반의 진유성’을 호명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유성이 무대 위로 올랐다.
진유성의 등장에 대정고 학생들이 묘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진유성이 얼마나 엉뚱한 인간인지 모두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소개 부탁드릴게요.”
사회자의 말에 진유성이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나다.”
그리곤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사회자가 잠시 당황하더니 금방 표정을 회복했다.
또라이 기운을 재빨리 감지한 것인지, 다른 이들의 장기자랑보다 훨씬 진행하는 속도가 빨랐다.
“진유성 학생은 어떤 장기를 보여 줄 건가요?”
“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