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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23화 (12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23화>

마술이란 말에 사회자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레크리에이션 경력 13년차인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장기자랑을 보아 왔다.

당연히 개중에는 마술을 시도하는 이도 있었고, 상당히 잘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마술은 큰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준비도 없이 할 수 있는 마술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동전 마술이나 카드 마술 정도.

이런 건 교실 같이 좁은 공간에서나 재밌는 거다.

사방이 탁 트인 큰 무대에서는 지나치게 정적이다.

프로들이야 화려한 퍼포먼스와 언변을 섞어 가며 재미있게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마술 트릭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뭐, 알아서 하겠지.’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생각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진유성 학생? 친구들을 어떤 마술의 세계로 초대할 거죠?”

“일단은…… 동전 마술.”

참 말이 짧은 친구였다.

게다가 최악의 마술을 골랐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는 직업 정신을 발휘해 분위기를 띄웠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학생들이 소소히 박수를 쳐 준 다음.

진유성의 마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동전이 많이 필요한데?”

진유성의 말에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 한 명이 500원짜리 동전 여러 개를 건넸다.

수학여행에 와서 화투라도 치려는 생각이었는지, 양이 꽤 많았다.

진유성이 오른손을 활짝 핀 채로 내밀었다.

그리곤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불렀다.

“여기다가 하나씩 붙여 주시죠.”

“붙이라고요?”

“네.”

“어, 알겠어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진유성이 활짝 내민 손바닥에 동전을 붙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동전은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활짝 편 손바닥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법 신기한 광경이긴 했다.

아주 잠깐.

이런 건 손바닥에 뭘 발라 놨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마침내 진유성의 손에 500원짜리 동전 10개가 붙었다.

“이제 이 동전을 없애겠습니다.”

“없앤다고?”

이제는 약간 흥미가 동했다.

한 개도 아니고 10개였다.

게다가 진유성은 오른손만 내밀었을 뿐, 왼손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보통 동전 마술은 양손을 화려하게 교차하고, 몸을 움직이면서 의식의 사각으로 동전을 없애기 마련이다.

왼손으로 가져가는 척 하면서 오른손에 쥐고 있거나 하는 식으로.

그러나 진유성은 정말 오른손만 활짝 내밀고 있었다.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이 상태에서 동전이 없어진다면 신기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진유성이 천천히 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까드드득.

마이크를 통해서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주먹이 다 쥐어지자,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쏠린다.

과연 동전이 없어졌을까?

그저 주먹을 꽉 쥐었을 뿐인데?

방심하지 말자.

상대는 진유성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동전이 없어졌다고 우길지 모른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생각이 공유되었다.

물론 마지막 생각은 상소윤의 것이었다.

“자, 이제 동전은 사라졌습니다.”

“정말요?”

“네.”

“여러분! 동전 10개가 없어졌다는데 믿기세요?”

강사의 물음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이었다.

“오!”

“진짜?”

학생들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진유성이 손을 펼쳤건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었다.

“바, 박수!”

가장 놀란 건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다.

그는 진유성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움직임을 상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

원래 마술이란 게 정면의 사람들에게는 트릭이 보이지 않아도, 측면에서는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

그럴 때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 주는 게 진행자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박수가 잦아들자 강사가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소멸 마술입니다. 제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모든 물건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물건이라도.”

“정말요? 제 차키도?”

강사가 주머니에서 자신의 차키를 꺼내자,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강사가 차키를 내밀었다.

그러자 진유성이 마찬가지의 자세를 취했다.

손바닥을 쭉 펼친 것이었다.

“또 붙여요?”

“네.”

강사가 다가가서 진유성의 손바닥에 차키를 붙였다.

차키가 제법 커서, 간신히 손바닥에 들어갈 것 같았다.

그나마 이것도 진유성의 손이 큰 덕분이었다.

손이 작았다면 한 손으로 감싸지 못했을 사이즈였다.

차키를 주먹으로 말아 쥔 진유성이 강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없어져도 상관없어요?”

꽤 마술사다운 멘트에 사회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멸시켜 보세요.”

고개를 끄덕인 진유성이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쥐었다.

꾸드드득.

이번에도 쇠와 플라스틱이 억눌리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다시 폈을 때는…….

손바닥에 아무 것도 없었다.

“뭐지? 어떻게 한 거지?”

“소매에 넣은 거 아니야?”

“손을 쫙 피고 있는데 어떻게 소매에 넣어.”

“손을 살짝 올려서 들고 있잖아. 소매로 흘릴 수 있는 거 아냐?”

“아닌데? 그럴 각도가 아니야.”

학생들이 삼삼오오 떠들며 트릭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진유성은 달아오른 분위기를 느끼며 방점을 찍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유튜브를 보는 진유성은 마술과 관련한 영상도 본 적이 있었다.

마술은 결국 눈속임이었다.

저잣거리의 야바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말은 즉, 눈이 속는 것처럼 느끼게만 만들면 눈을 속일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끝인가요? 진유성 학생?”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뭐죠?”

“공중 부양.”

“공중 부양을 한다고요? 여기서?”

사회자의 눈이 커진 사이, 진유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두 가지 물건을 준비했다.

하나는 장기자랑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위해 준비한 마이크 스탠드.

또 하나는 사용하지 않는 음향 장비를 덮어 놓은 것 같은 커다란 천.

두 가지를 가져온 진유성이 사회자를 멀리 물렸다.

“이 마술은 가까이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어디까지 멀어져요?”

“무대 끝으로.”

사회자를 무대 끝으로 보낸 진유성이 무대의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왔다.

그리곤 우측에 마이크 스탠드를 놓고, 천을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그러자 학생들에게 보이는 거라고는 진유성의 정강이뿐이었다.

‘공중으로 뜬다고?’

‘저기서 어떻게?’

‘설마 잠깐 점프하고 공중 부양이라고 우기는 건 아니겠지?’

마지막 생각은 이번에도 상소윤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짧지만 묵직한 기합을 내뱉었다.

“합!”

기합과 동시에 천 밖으로 오른손을 내밀어 마이크 스탠드를 잡았다.

그리고…….

“어어!”

“뜬다!”

진유성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 천을 뒤집어썼을 때, 진유성의 머리의 위치는 키와 똑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천을 뒤집어쓴 진유성의 머리통이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뭐야?”

“스탠드 잡고 뜬 거 아니야?”

“그게 말이 되냐? 스탠드가 2개도 아니고?”

양쪽에 스탠드가 있다면 체조 선수처럼 팔의 힘으로 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다.

한 팔로 스탠드를 잡고 허공으로 떠오를 수는 없다.

“발 보여?”

“안 보이는데?”

까치발로 보기엔 머리통이 너무 높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까치발 정도였다.

하지만 너풀거리는 천 아래에는 분명 진유성의 발이 보이지 않았다.

“바, 박수!”

무대 끝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사회자가 뒤늦게 직업 정신을 발휘했다.

학생들이 박수를 치자, 천을 뒤집어쓴 진유성의 머리통이 점점 낮아졌다.

그리고는 바닥에 발을 디뎠다.

짝짝짝!

잠시 박수 소리를 만끽하던 진유성이 천을 걷어 냈다.

그리고는 대단한 마술사가 된 것처럼 양팔을 좌우로 펼치고, 인사를 했다.

“1반 진유성 학생의 마술 쇼였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대단한 마술이었다.

진유성이 마이크 스탠드와 천을 원상 복구해 놓고 자리로 내려가려고 하자, 사회자가 어깨를 붙잡았다.

“학생?”

“왜 그러시죠?”

“차키는 주고 가야죠. 저 학생 동전이랑.”

진유성이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소멸됐다니까요?”

그리고는 내려가 버렸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는 진유성이 끝까지 컨셉을 지키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니 레크리에이션이 끝나면 와서 차키를 돌려줄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진유성의 능력 밖의 일이었으니까.

압축된 물체를 대충 비슷한 형태로 펼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제 기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도 레크리에이션은 계속되었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하이난으로 수학여행을 온 명문 사립고의 첫날 행사치고는 살짝 평범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학부모들의 의지였다.

대정고의 학생들은 성인이 되면 필연적으로 친구들이 사라진다.

부(富)의 정점에 올랐다는 것은 모든 관계가 자본으로 이어짐을 뜻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니까 다들 친구일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그들은 경쟁사의 CEO거나, 재벌과 검찰이거나, 언론사와 정치권이다.

그쯤 되면 더 이상 친구란 단어는 사라지고, 적과 아군만 존재한다.

그래서 대정고의 학부모들은 그들의 자식이 학창 시절만이라도 평범하길 바랐다.

이런 식의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이 준비된 이유도 그것이었고.

학부모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다들 즐거워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모든 행사가 끝이 났다.

“자, 그럼 장기자랑 1등을 발표합니다! 1등은…….”

진유성이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가상 두 명과 2, 3등이 발표될 동안 자신의 이름은 없었다.

당연했다.

그의 이름은 1등이란 타이틀과 함께 호명될 거니까.

진유성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도 전에 이미 몸을 일으켜서 무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1반의 정새롬 학생!”

진유성의 몸이 덜컥 멈춰 섰다.

그리곤 현실을 부정했다.

내 이름이 정새롬이었지, 아마?

하지만 아니었다.

고려의 왕자로 태어나 멸마대주와 생존대주를 거쳐 천마신교주가 된 그의 이름은, 진유성이었다.

“말도 안 돼!”

진유성이 분기탱천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의미 없었다.

1등은 이미 정새롬으로 확정이 났으니까.

다들 우두커니 서 있는 진유성을 보고 킥킥거릴 뿐이었다.

“이건 음모다!”

진유성이 현실을 부정하며 상소윤에게 시선을 확 돌렸다.

그래, 상소윤은 철도 없고 머리도 없지만 제법 정직하다.

“상소윤!”

“아, 소리 지르지 마!”

“왜 내가 일등이 아닌 것이지? 내 마술에 모두가 혼이 나가지 않았더냐?”

“아니, 신기하기는 했는데…….”

확실히 신기하기는 했다.

손바닥에 들어간 동전과 차키가 없어지는 것도 신기하고, 허공으로 떠오른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본래 마술은 관객과 소통하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놀려 주기도 하는 퍼포먼스였다.

그 과정이 재밌는 거고.

그냥 속임수 테크닉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유성의 마술은 너무 일방적인 속임수 테크닉이었다.

그냥 마술을 보여 주고, 신기하지?

끝.

본 순간에는 굉장히 신기했지만, 막상 일등 투표를 할 때는 전혀 손이 가지 않았다.

“야, 힘내.”

진유성이 너무 절망하자 상소윤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사이, 진유성은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허공답보나 능공허도를 보여 줄 걸.

이형환위나 백보신권도 괜찮았을 텐데.

전혀 핀트를 못 잡은 채 후회만 하고 있었다.

그사이 1등 상품을 받고 다가온 상소윤의 절친 정새롬이 진유성에게 다가왔다.

“그, 이거 가질래? 난 출시하자마자 샀었는데…….”

“날 동정하지 마라!”

그렇게 수학여행의 첫날 행사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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