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32화>
어떤 생물체든 간혹 거대하게 자라나는 돌연변이가 있는 법이다.
진유성이 중원에 있을 때, 중원인들의 평균 신장은 163~165cm 정도로 작은 편이었다.
그나마 내가기공으로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무인들의 경우, 이보다 5~7cm 정도가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진유성이 중원에서 본 가장 큰 사람은 무인이 아니었다.
어디서 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떤 곡창 지대를 지나다가 본 한 농부였다.
대충 210cm 정도 됐던 것 같다.
주변 농부들이 160 남짓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거인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그의 기감에 잡힌 물고기가 딱 그러했다.
해저를 유유히 헤엄치는 이놈은 다른 놈들과 비교하자면 압도적으로 컸다.
호기심을 느낀 진유성이 내공을 움직여 놈을 붙잡자, 펄떡거리며 내공을 뿌리치고는 도망가 버렸다.
‘호오.’
많은 내공을 쓴 건 아니지만, 이 정도 내공이라면 어지간한 각성자들도 꼼짝 못할 양이었거늘.
그런데도 도망친다.
바다라는 특수성과 엄청난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때문인 것 같았다.
진유성이 다시 한번 내공을 움직이려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옹기종기 모여서 그를 놀리고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인상만 쓴다고 잡히냐?”
특히 지종수가 가장 열심이다.
진유성은 이놈들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며 본격적으로 내공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
배 위의 사람들은 들리지 않겠지만, 해저에서 물거품이 일어나며 거대한 물고기를 조여 들어갔다.
놈은 펄떡거리며 내공에 대항했지만, 진유성에게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바다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좀 더 촘촘히 내공의 그물을 짠 것이다.
진유성은 해저 1km 아래에 있던 놈을 점점 수면 가까이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낚싯대와 연결된 미끼를 움직여, 놈의 입에 물려 버렸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진유성이 내공의 억제력을 없애는 순간.
파라라락!
갑자기 진유성의 낚싯대의 릴이 미친 듯이 돌아가며, 낚싯대가 활처럼 휘기 시작했다.
“흡!”
진유성이 과장된 기합을 넣으며 요트 선상의 끝에다가 발을 올렸다.
그리곤 릴을 감았다 풀며 물고기와 싸움을 하려는데…….
파라라락!
릴의 제동장치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풀려버린다.
‘이거였군.’
낚싯대에 무슨 장난을 쳐 놨는지 깨달은 진유성이 낚싯줄 자체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리곤 천천히 감아 올리기 시작했다.
아마 미끼를 물고 있는 놈에게 이성이 있다면, 철로 된 막대기에 끌려오는 기분이 들 것이었다.
진유성은 낚싯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내공을 불어넣은 채 놈과 씨름했다.
물론 그냥 건저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저토록 거대한 놈을 그냥 잡아 버리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약간의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진유성이 혼신의 연기를 다했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들은 진유성의 낚싯대는 물고기가 무거운 순간 릴이 풀려 버린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의 저 사투는 작은 물고기를 두고 주접을 떠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캡틴은 아니었다.
‘낚싯대가 너무 휘는데?’
탄성 좋은 낚싯대가 잔뜩 구부러진다는 건, 대어(大魚)임을 뜻했다.
게다가 한국인 남자애가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니까, 어째 릴도 고쳐진 것 같았다.
어쩌면 헐거워서 달칵거리던 릴의 나사가 운 좋게 맞물렸을 수도 있다.
진유성이 사투 끝에 작은 물고기를 잡으면 놀려 주려던 친구들의 표정이 변한 것은 잠시 뒤였다.
수면 아래에서 요동치는 거대한 검은 형체.
그게…….
너무 크다.
“뭐, 뭐야?”
친구들이 진유성이 낚시를 하는 자리 근처로 모여들어 수면을 쳐다보았다.
거뭇거뭇한 거대한 것이 수면 아래에서 보였다가, 보이지 않았다가 한다.
크기가 2m는 훌쩍 넘는 것 같다.
캡틴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깜짝 놀랐다.
“참다랑어 같은데?”
하이난은 태평양의 섬이고, 태평양의 어부들이 가장 잡고 싶은 물고기는 참다랑어다.
참다랑어.
다랑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며, 흔히 말하는 참치가 바로 참다랑어다.
본래 죽순여 근처에는 참다랑어가 잡히지 않았다.
참다랑어를 잡으려면 좀 더 먼 바다로 나가야 했다.
먹이가 풍부한 지대에서 참다랑어는 수심 30~50m에서 활동하지만, 그 외에는 더 깊은 곳에서 헤엄치기 때문이었다.
이 한국 관광객은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저만한 크기의 참다랑어가 미끼를 덥석 문 것 같으니까.
하지만.
‘잡진 못하겠군.’
아마 참다랑어 낚시 세계 기록이 410kg이 조금 넘을 거다.
수면 밑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참다랑어도 대충 그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참다랑어를 잡기 위해서는 PE 합사로 제작된 특수 낚싯줄로 1시간이 넘게 사투를 벌여야 한다.
평범한 낚싯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령 잡았다고 하더라도,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저건 사람 손으로 배 위로 올리는 게 아니라, 기계를 이용해서 끌어 올리는 거다.
하다못해 거대한 뜰채라도 있으면 시도라도 해 보겠지만, 요트에 있는 뜰채는 1m도 되지 않는 크기였다.
너무 아까웠다.
저 정도 크기라면 엄청난 값에 팔릴 텐데 말이었다.
그때였다.
끼익, 끼익.
갑자기 배가 좌우로 흔들리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어어.”
균형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사람들이 자세를 낮추는 순간.
거대한 물보라가 배를 강타했다.
“아!”
“뭐야!”
진유성 근처에서 있던 이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어 버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사람은 순간적으로 물이 닿으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쿵!
거대한 무언가가 요트 위로 떨어지더니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2미터? 3미터?
아무튼 사람보다 훨씬 거대한 참다랑어였다.
오늘 그들이 타고 온 요트는 세일링 요트 중에서 가장 큰 모델이었다.
슈퍼 요트처럼 30m가 넘진 않지만, 충분히 컸다.
하지만 그 큰 요트가 작게 느껴졌다.
참다랑어, 그러니까 참치가 펄떡거리며 난리를 치기 시작하니까.
“으어억!”
상소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도망쳤다.
뉴스에서 거대한 물고기를 낚았다고 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눈앞에 있으니까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좀 무섭다.
모두가 빨리 물고기를 풀어 주라고 아우성치는 사이, 진유성이 다가왔다.
모두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쫄딱 젖었는데, 진유성은 머리카락이 살짝 젖은 정도밖에 안 됐다.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패배?”
“아…….”
참다랑어에 놀라있던 그들은 뒤늦게 그들이 무슨 내기를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야! 네가 잡은 게 아니잖아!”
유일하게 참치가 잡히는 과정을 본 지종수가 발끈했다.
그는 똑똑히 보았다.
참치가 갑자기 뛰어오르더니 선상 위로 떨어지는 걸.
즉, 진유성이 낚아 올린 게 아니라 참치가 발광을 하다가 운 좋게 뛰어오른 것이었다.
지종수가 열변을 토해내자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종수.”
“뭐!”
“지갑에 돈이 있느냐?”
“돈? 있지?”
“그게 네 돈이냐?”
“당연하지. 그럼 니 돈이냐?”
“하지만 그건 네가 번 게 아니지 않느냐? 네가 우연히 부모님의 품으로 떨어진 것이지.”
“그……!”
지종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사이 캡틴이 뛰어와서 감탄을 내뱉었다.
참다랑어가 선상으로 뛰어 오른 건 운이겠지만, 그걸 수면 위까지 데려온 건 엄청난 스킬이라고.
그리곤 진유성의 낚싯대를 살피는데, 낚싯대를 받자마자 낚싯줄이 픽 하고 끊어진다.
이제는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다.
그사이 진유성은 캡틴과 끙끙거리며 갑자기 잠잠해진 참다랑어를 선두 쪽으로 옮겼다.
참다랑어는 멸종 위기를 겪고 있기에 포획이 엄청 까다로웠다.
낚시 라이센스가 있어도 딱 한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의 요트에는 라이센스가 없었다.
즉, 풀어 줘야 했다.
진유성은 설령 라이센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풀어 줄 생각이긴 했다.
캡틴이 아쉬움에 이런저런 불법적인 방법들을 입에 담았지만, 진유성은 단호했다.
자꾸 헛소리하면 신고할 거라고 말하면서.
진유성의 협박에 찔끔한 캡틴이 투덜거리며 참다랑어를 선두 쪽으로 옮겼다.
“근데 왜 이렇게 잠잠하지? 어디 아픈 건가?”
캡틴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이 정도 크기의 물고기가 정상이었다면 아마추어의 손에 낚이진 않았을 거다.
병에 걸렸거나, 아픈 것 같다.
선두에 참다랑어를 올린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무로 돌아가라.”
그리곤 바다로 풀어 주었다.
진유성의 주접과 함께 바다로 돌아간 참다랑어가 펄떡거리더니 수면 아래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진유성은 물고기를 풀어주고는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패배의 냄새가 풍기는군.”
“…….”
진유성이 도발했지만, 모두 말을 아꼈다.
아무리 분전한다고 하더라도 진유성이 낚은 물고기만한 걸 어떻게 잡겠는가?
연합군의 작전은 실패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사악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연합군이 잊고 있었던 사실을 끄집어냈다.
“요트비를 누가 내게 될지 기대가 되는군.”
“……!”
그 순간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랬다.
진유성이 승리자의 포지션으로 올라서는 순간, 패배자의 자리는 공석이다.
즉, 그들끼리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고인수에게 말했다.
“고인수.”
“왜?”
“나에게 사과를 한다면 낚시를 도와주지.”
“사과? 무슨 사과?”
“감히 내 이름을 선생에게 고자질한 것을 사과해라.”
“…….”
사람의 그릇이 간장종지만도 못하다.
지가 먼저 술 먹는다고 고자질해 놓고선 자기 이름을 언급했다고 사과하라고?
세상에 이런 좀생이는 없을 것이다.
“안 해!”
지종수가 거절하자, 진유성이 이번엔 상소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과하면 낚시를 도와주마.”
상소윤이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소리를 질렀다.
“고자질해서 미안!”
“…….”
“…….”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사이, 진유성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상림의 딸이다.
이런 처세술은 상림을 꼭 닮았다.
“따라와라. 내가 너에게 희망을 보여 주마.”
진유성이 상소윤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가자, 친구들은 의구심을 품었다.
캡틴은 진유성의 낚시 스킬을 칭찬했지만, 큰 물고기를 잡는 건 그냥 운이 아닌가?
무슨 도움을 받고…….
“자, 잡았다!”
상소윤의 외침에 모두가 후다닥 달려갔다.
미끼를 던진 지 1분도 되지 않아서 벌써 월척을 낚았다.
그것도 꽤 크다.
저 정도 크기라면 상소윤은 확실히 패배자의 포지션에서 벗어나게 된다.
진유성의 시선이 이번엔 정새롬에게 향했다.
“정새롬…….”
“미안하다!”
그러나 먼저 사과를 한 것은 심도훈이었다.
심도훈이 냉큼 달려와서 진유성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자 정새롬도 사과 대열에 합류했다.
“후후.”
진유성이 비열하게 웃으며 낚싯대 던지는 걸 도와주었다.
이윽고.
“월척이다!”
“잡았다!”
정새롬과 심도훈이 연이어 월척을 낚았다.
“하하하하!”
진유성이 웃음을 터트리며 학생들을 굽어보자, 눈치를 보던 여학생 둘이 다가갔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과 세 번은 우연일 수 없다.
그렇게 사과를 하고, 월척을 낚았다.
이제 패배자를 두고 싸우는 것은 고인수와 지종수뿐이었다.
고인수는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많이 다니는 편이었다.
바다낚시도 많이 해 봤고, 낚시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니 진유성에게 굴욕적인 사과 조약을 맺을 수는 없었다.
그에 반해 지종수는 그냥 사과를 하기 싫었다.
이것마저 연적에게 질 수는 없었다.
진유성은 낚싯대를 드리운 지종수와 고인수의 사이를 오가며 사과를 종용했다.
“반성하면 길을 열어 주마. 딱 한 마디만 해. 고자질해서 미안했다고.”
악마의 속삭임이 따로 없었다.
결국 먼저 사과를 한 것은 지종수였다.
“미, 미안하다!”
내기 종료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 고인수보다 작은 것을 잡은 상태였던 지종수가 사과했다.
고인수는 입술을 깨물었을 뿐, 사과를 하지 않았고.
그러나…….
“난 지조 있는 이를 좋아하지.”
진유성이 고인수의 낚싯대를 낚아채더니 힘차게 던졌다.
던지자마자 입질이 왔다.
잠시 뒤, 고인수는 친구들이 낚았던 것 중 가장 큰 놈을 낚았다.
결국 요트비는 지종수의 몫이었다.
연합군은 철저히 패배한 것뿐 아니라, 분열까지 일어났다.
“하하하하!”
유일한 승자.
진유성의 웃음이 선상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