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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42화 (14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2화>

아놀드 벡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남자가 만든 요리를 꼭 먹어야겠다.

“요리나 완성하시죠.”

“그럼 새 달걀을…….”

“그냥 저걸로 하시죠.”

아놀드 벡이 양푼을 가리켰다.

양푼 안에 철가루 같은 건 없었다.

검이 가루가 되었지만, 이는 표현의 방식일 뿐이었다.

실제로 검신을 구성하는 쇠가 가루처럼 분쇄된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산화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었다.

녹듯이 허공으로 사라졌으니까.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처럼.

‘도대체 무슨 스킬을 썼길래 검이 이 산화될 수 있지?’

아놀드 벡도 무기에 부담이 가는 스킬들을 몇 개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강철 검으로 사용했을 때는 검이 터져 버리는 스킬들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검을 터트려서 상대에게 예상치 못한 공격을 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퍼스트 가디언, 로열 나이트는 그런 검이 아니었다.

로열 나이트는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SSS급 무기였다.

그 어떤 스킬을 써도 내구도가 닳는 법이 없었고, 그 어떤 힘을 가해도 변형시킬 수 없었다.

SG의 과학자들은 로열 나이트를 부수려면 핵융합 폭발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다스 베이더는 핵폭발에 버금가는 힘을 집약시킨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계란의 내용물을 분리하려고!

아놀드 벡이 주먹을 꽉 움켜쥐자 진유성이 움찔했다.

딱 봐도 아놀드 벡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진유성이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볶음밥 두 개를 날렸다.

원래 진유성은 세 개의 볶음밥을 꺼내서 자신의 것을 찾아보라고 하려고 했다.

하나는 그가 만든 것이고, 두 개는 편의점에서 사 온 황금 볶음밥 도시락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 3개의 그릇을 내밀 정도는 아니다.

진유성이 아놀드 벡의 눈치를 힐끔 보다가 오른손을 들었다.

본래는 오른손으로 조리대를 팡! 내리치면 계란과 쌀밥이 허공에서 만나며 완벽하게 스며들게 된다.

내공으로 압박을 가해서 밥알 하나하나에 계란의 농도가 가득 차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을 드는 순간, 자신을 쳐다보는 아놀드 벡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더 이상 이상한 쇼는 하지 말라는 눈빛이다.

진유성이 번쩍 치켜든 오른손으로 주걱을 잡았다.

그리곤 계란을 풀어놓은 양푼이에 밥을 넣고 휘적휘적 저었다.

그냥 젓는 건 아니고, 내공을 쓰고 있긴 하다.

하지만…….

웅장하지 않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멋이 없었다.

“…….”

진유성이 초라한 모습으로 계란과 밥을 섞고 있는 사이, 아놀드 벡은 마음을 정리했다.

사실 세븐 가디언즈를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빌려줄 때만 해도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퍼스트 가디언을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도, 나머지 여섯 개를 돌려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러나 이 남자가 부숴 버린 검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다만 아놀드 벡이 평정심을 잃었던 것은, 그와 수많은 수라장을 헤쳐 온 퍼스트 가디언이…….

‘고작 볶음밥 때문에 부서져서.’

이것이었다.

하지만 아놀드 벡은 인품이 고아한 자였다.

몇 번의 마인드 컨트롤만으로 퍼스트 가디언의 존재를 말끔히 잊어 버렸다.

“이름이 뭡니까?”

“입멸공이라고…….”

“아뇨. 당신의 이름.”

“아, 진유성.”

“진유성…….”

진유성이란 이름을 몇 번 곱씹어 보던 아놀드 벡이 재차 말했다.

“가면을 벗어 주실 수 있습니까?”

“요리를 먹고.”

중간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긴 했지만, 진유성은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는 가면 요리사였다.

일단 가면을 쓴 이상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진유성의 말에 아놀드 벡이 어깨를 으쓱했다.

진유성이 풍기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영국에서처럼 휙 사라질 것 같진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에 본인의 영역으로 자신을 부르지도 않았겠지.

그 뒤로 아놀드 벡은 말없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진유성은 요리를 만들었다.

잠시 뒤, 요리가 완성되었다.

진유성이 요리를 내오며 말했다.

“로열 황금 볶음밥이다.”

분명 아까는 Golden Fried Rice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Royal Golden Fried Rice라고 한다.

로열 나이트가 재료로 쓰였다는 소리에 아놀드 벡이 슬쩍 인상을 찌푸리는데, 진유성이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쓴 검에는 무인의 혼이 깃든다.”

“혼……?”

“우린 그것을 검혼이라고 부르지.”

“검이 자아를 가진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고……. 음, 만약 로열 나이트와 완전히 똑같은 길이, 무게, 균형을 지닌 검이 있다고 치자. 아니, 그냥 똑같은 검이야.”

진유성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그럼 넌 그 검을 쓸 때와 로열 나이트를 쓸 때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아놀드 벡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로열 나이트와 무수한 수라장을 헤쳐 왔다.

이길 수 없다고 절망했던 싸움을 이겼던 순간 손에 남아 있던 감촉.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기뻐하던 순간 오른손을 꽉 채웠던 느낌.

그것은 무기질의 질량이나 질감 같은 것이 아닌, 보다 높은 차원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놀드 벡에게 로열 나이트는 검이면서 동료였고.

“거기서 느껴지는 게 검혼이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 볶음밥에는 검혼이 들어 있겠지.”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했으면, 아놀드 벡은 바보 취급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이다.

이름은 방금 알았지만, 진유성이 선보인 기예는 아놀드 벡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마지막.

계란에서 내용물을 분리해 내던 그 검은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검술에도 빙산의 일각이란 표현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놀드 벡이 이해한 것은 진유성이 가진 무의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혼이란 얼토당토않는 단어가 의미심장하게 들린 것이었다.

아놀드 벡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딱히 거창한 수식어가 없어도, 따뜻하고, 맛있었다.

아놀드 벡은 진유성의 말처럼 이 볶음밥 안에 검혼이 있다고 생각하며 볶음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놀드 벡의 표정을 살피던 진유성이 주방으로 향했다.

물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믿냐?’

실제로는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온 시절이 너무 길기 때문에 진유성은 종종 거짓말을 하는 티가 날 때가 있었다.

무혼은 개뿔, 그런 거 없다.

그런 게 어디 있겠는가.

입멸검도 그냥 검이었다.

검은 그냥 검이고, 사람은 그냥 사람인 법이다.

진유성은 표정을 관리하며 물을 가져다 줬고, 아놀드 벡은 로열 황금 볶음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잠시 뒤.

식사가 끝이 났다.

“이제 그 헬멧을 벗을 수 있습니까?”

아놀드 벡의 말에 진유성이 군말 없이 헬멧을 벗었다.

본래 같으면 좀 더 장난을 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지은 죄가 있어서 좀 참기로 했다.

진유성이 다스 베이더 헬멧을 벗자, 아놀드 벡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를 통해 나이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어려 보인다.

하이스쿨의 학생 정도?

서양인들의 눈에 동양인이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이 쳐줘도 스물다섯 정도 된 것 같다.

“나이가 어떻게……?”

본래 미국인들은 상대의 나이를 신경 쓰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려 보였다.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다. 너보다도 많고.”

아놀드 벡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강함을 생각해보면 거짓은 아닐 것 같았다.

아놀드 벡은 잠시 말을 잃었다.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고, 나이를 물어보고 나니 선뜻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궁금한 게 없어서가 아니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놀드 벡의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진유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너희가 모시는 어머니가 아카샤냐?”

“……!”

아놀드 벡이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진유성이 언노운 엠페러라는 건, 완전한 희소식은 아니다.

이태원에서 아멜라 메건에게 패스워드를 강탈했던 괴인.

그 괴인이 언노운 엠페러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한데 아카샤를 곧장 입에 담는다는 건, 분명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어쭈? 수련 좀 했네?”

진유성은 아놀드 벡이 기세를 일으키는 순간, 자연스럽게 의념이 일어남을 느꼈다.

놀랍게도 아놀드 벡은 벌써부터 의념을 쓸 수 있었다.

심동이 유형화됐다는 소리였다.

의념이 살상력을 가지는 단계는 아니지만, 기세에 묻어난다.

진유성의 말이 아놀드 벡의 기세를 가라앉혔다.

진유성이란 남자는 자신에게 수련법을 알려줬으니까.

“시키는 대로 성실히 훈련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그걸 했더니 의념을 얻었다고?”

“그렇습니다.”

“……진짜?”

진유성은 깜짝 놀랐다.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그리고 러닝 10km. 이걸 매일 해!”

이게 정말 효과가 있다고?

그때 아놀드 벡이 진유성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강한 의지와 마력이 합쳐지면 유형화된 힘이 발현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진유성은 아놀드 벡의 정수리를 살폈다.

아쉽게도 대머리가 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풍성하다.

“음, 그래. 내 가르침을 깨우쳤다니 다행이군.”

진유성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아놀드 벡이 물었다.

“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 무슨 이야기?”

“숨길 부분은 숨기고, 숨기지 않을 부분은 숨기지 않는 이야기.”

“흠…….”

진유성이 턱을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면.”

“말씀하시죠.”

“좀 어려운 일인데.”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나 군대 빼 줄 수 있냐?”

“……예?”

“아니, 그 SG 상비군 같은 거 없냐? 너 옆에 따라다니면 군복무로 인정해 주는.”

“……?”

“그럼 내가 게이트 클리어하는 것도 도와줄 수 있는데.”

아놀드 벡은 간신히 한국에 징집병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한국 청년들에게는 애석한 시스템이지만, 징집병 시스템은 한국이 각성 강국의 반열로 들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회 초기의 무질서를 놀랍도록 빠르게 제압했으며, 한국의 초창기 각성자들은 대부분이 군인이었다.

미지의 존재였던 게이트에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군인들이 목숨을 던진 탓이었다.

솔직히 반인륜적인 행위도 많았다.

인류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명목하에 집행된.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혹시 몇 살이십니까?”

“아, 먹을 만큼 먹었다니까?”

“아니, 서류상으로.”

“큼. 19살.”

“생일은 지났습니까?”

“아니.”

그럼 미국 나이로 17살이다.

“…….”

아놀드 벡은 세계를 오시(傲視)할 무력을 지닌 남자가 대체 고등학생들 틈에서 대체 뭘 하고 지내는지가 궁금해졌다.

물론 실제로 뭘 하고 지내는지 알면 기겁을 하겠지만.

“UN군으로 파견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자세한 건 저도 알아봐야겠지만.”

“오, 진짜?”

“예.”

“그럼 해 줘.”

“독도 게이트는 왜 클리어하신 겁니까?”

“응?”

“아무리 당신이 고강한 무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군 소속을 바꾸는 것과, 군 비리를 저지르는 건 다르니까요.”

아놀드 벡의 말에 진유성이 간단히 대답했다.

“할 수 있으니까.”

“게이트 클리어 말입니까?”

“응. 내가 안 했으면 우산도 애들 다 죽었을걸? 독도도 지도상에서 지워졌을 거고.”

“그게 답니까?”

“어. 거창한 사명감은 없는데? 그냥 할 수 있어서 한 거야.”

그러나 아놀드 벡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드벡아.”

“예?”

“어디 어리고 약한 게 건방지게 평가질이야? 혼날래?”

아놀드 벡은 또다시 낯섦을 느꼈다.

자신을 이렇게 하는 대하는 남자는 이 남자가 유일하다.

“됐고. 일단 네 이야기부터 해 봐.”

“제 이야기 말씀입니까?”

“어.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야 나도 이야기가 편하지.”

진유성은 아놀드 벡이 마도사들의 존재, 게이트의 기원, 아카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진유성의 물음에 아놀드 벡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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