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9화>
잠시 뒤, 아침 식사가 끝났다.
2층에 올라가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진유성은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쇼파에 앉아 상소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마다 궁금한 게 있다.
대체 왜 상소윤은 등교 준비를 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심지어 다 씻고 교복만 갈아입으면 되는데, 거기서도 20분은 족히 걸린다.
만약 자신에게 20분 동안 교복을 입으라고 하면, 그게 더 고역이다.
무공의 초식을 수련하는 방법 중에 만초(萬招)라는 것이 있다.
만초는 하나의 초식을 만 가지의 방법으로 수련한다는 뜻인데, 말은 복잡하지만 수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나의 초식을 최대한 천천히 펼치는 것이었다.
초식을 빠르게 펼치면 형과 식보다는 위력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이는 일류의 수준까지만 통한다.
수 싸움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고수들에게 현묘하지 않은 위력은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때 벽을 느낀 일류 무인들이 벽을 넘기 위해 수련하는 방법이 바로 만초였다.
초식 안에 담겨 있는 형(形)과 식(式)을 체화하는 것이었다.
상소윤은 만초를 수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머리를 말렸으니, 교복만 입으면 된다고 들어가서 이렇게 오래 걸릴 수가 없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현묘하게 교복을 입을 수 있는 게 상소윤이 아닐까?
진유성이 소파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에서 상림이 나왔다.
그리고는 진유성에게 다가오며 전음을 보냈다.
[교주님, 딥마인드는 왜요?]
[뭐?]
[아뇨. 아까 핸드폰을 보면서 딥마인드를 물어보셨잖아요.]
상림은 진유성이 어떤 낯선 단어를 꺼내면 꼭 확인해보는 버릇이 있었다.
잠깐만 방심하면 교주 놈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치니 생긴 버릇이었다.
상림의 물음에 진유성이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리곤 메일을 보여 주었다.
메일에는 구글 딥마인드 본사로 지존천마 팀을 초대한다는 내용이 한국어와 영어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비행기 티켓과 뉴욕 내 숙소를 제공한다는 말과 함께.
[이거 진짜냐?]
[진짠 거 같은데요? 근데 이 메일이 왜 교주님한테 왔어요? 지존천마는 또 뭐고요?]
[내 바둑 사이트 닉네임이다.]
[바둑 두셨어요? 알파고랑?]
[어.]
[누가 이겼어요?]
[8연패 이후 6연승 중. 대충 노하우를 알았으니 계속 이길 것 같다.]
진유성의 전음에 상림이 놀랐다.
세계 최고의 바둑 선수들도 이기지 못한 알파고를 진유성이 이겼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원래 바둑 잘 두셨어요?]
[당연하지.]
[왜 기억이 없지?]
진유성이 본격적으로 바둑에 심취한 것은 상림이 떠난 이후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림이 떠나고 시간이 흘러 신주청을 제외한 이들이 모두 늙어 버렸을 때였다.
그래서 상림은 진유성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중원 최고였다.]
[바둑도 잘 두시는 분이 대체 왜…….]
[뭐?]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뒷말 이어 봐.]
[참, 교주님. 곧 차가 올 것 같습니다.]
상림이 말을 돌린다는 걸 알았지만, 진유성은 넘어가 줬다.
반가운 소식으로 말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오냐?]
[예. 원래 슈퍼카는 주문이 들어가면 만드는 거라서 1년 정도 걸리는데, 앞선 주문자가 인수를 포기해서 그걸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면허는 생일이 지나야 딸 수 있지?]
[그런 셈이죠. 그전에 운전을 하면 불법입니다.]
가급적 법을 준수하는 진유성의 성향을 알고 있는 상림이 불법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생일까지 5개월 남았으니까 좀만 참으십쇼.]
[알았어. 넌 일단 이거 사기꾼들 아닌지 확인해 봐.]
상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비행기 표를 보내 준다는데 사기꾼이어도 상관없지 않아요?]
비행기 표를 보내서 초대한다는 말 자체가 사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럴 확률은 희박하지만, 정말로 만에 하나 사기라면?
한국인을 미국으로 불러들여서 납치하거나, 인질로 잡겠다는 건데…….
‘그건 아무 상관없잖아?’
정말 아무 상관없다.
상림은 진유성의 무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지만, 그 한계를 짐작해 본 적은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다가 진유성과 전 지구가 싸운다고 해도 진유성이 이길 것 같다.
애초에 천신궁 게이트 안에서 신 같은 놈을 이기기도 했고.
상림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진유성은 민망해하고 있었다.
상림의 말이 맞다.
사기꾼이든 뭐든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보이스 피싱을 당했던 기억 때문에 괜히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야, 알아볼 필요 없다. 내가 전화해 보지, 뭐.]
[미국 가시게요?]
[어. 안 그래도 한번 가 보고 싶었어.]
[확정되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기업 탐방 같은 걸로 돌리면 출석 인정해 줄 거예요.]
워낙 부유한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보니 대정고에는 이런저런 편리함이 많았다.
[알았다.]
[근데 JC 그룹 회장이랑 거래하실 거라고 했죠? 그럼 블랙 마켓 쪽은 정리할까요?]
[일단 있어 봐.]
어차피 미국에 가게 되면 아놀드 벡과 만날 것 같으니 말이었다.
그렇게 전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드디어 만초의 수련을 끝낸 상소윤이 나타났다.
“고수가 나타났군.”
“뭐?”
“아니다. 가자.”
진유성은 그렇게 상소윤과 함께 대정고로 향했다.
* * *
딥마인드 최고의 두뇌들이 패배자의 몰골로 나타났다.
그들은 지난 이틀 동안 지존천마, 아니 벨제붑의 알고리즘을 분석했다.
하지만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수많은 분석 방법을 동원해도 규칙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벨제붑도 인간의 신경계를 본뜬 딥러닝의 알고리즘을 사용했을 확률이 높다는 건데…….
왜 이토록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
11승 25패.
지금까지 알파고와 벨제붑이 기록한 대전의 결과였다.
처음에 거둔 8연승을 제외한다면 3번 이기는 동안 25번 졌다.
이 결과는 명백한 실력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인공지능에게 완벽한 바둑 규칙을 적용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사실 알파고의 AI는 ‘바둑’이라는 존재를 완벽히 알고 있는 게 아니다.
프로 기사들의 기보를 인공 신경계로 습득해 ‘바둑에서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바둑을 알고 있는 것과 바둑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게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분명 다르다.
흔히 알파고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부분이 중후반의 끝내기이다.
딥러닝으로 중반 이후를 학습하기 위해선 그 시점까지 미세하게 진행된 엄청난 양의 기보가 필요한데, 이는 알파고끼리의 강화 학습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알파고는 인간이 무리 없이 계산하는 후반의 사활과 끝내기에서 실수를 보일 때가 많았다.
만약 알파고가 정말로 바둑의 규칙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실수가 나와서는 안 됐다.
또한 일부러 이상한 모양을 만들어서 바둑 퀴즈를 내면 알파고는 오류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상한 모양’이라는 것은 승부가 걸린 바둑에서는 절대로 안 나오고, 퀴즈를 위해 인위로 만든 모양을 뜻했다.
승부에서 나오지 않는 모양은 딥러닝으로는 배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딥마인드 측은 어쩌면 벨제붑이 바둑의 규칙을 인공지능에게 완벽히 이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몰랐다.
그들은 해내지 못한 부분이니까.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벨제붑은 알파고와 비등한 연산 능력을 지닌(혹은 연산 능력 자체는 알파고보다 조금 낮은) AI지만, 보다 바둑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러나 오늘 딥마인드 두뇌들이 회의실에 모여든 것은 패배의 슬픔을 나누기 위함이 아니었다.
드디어 벨제붑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상금을 받을 거고, 미국으로 가겠다는 연락.
그 전에 통화를 한 번 하기로 했는데, 그게 지금이었다.
뉴욕과 한국의 시차 차이가 큰 만큼 통화를 하기 위해서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시간을 체크하던 딥마인드의 팀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약속 시간이 됐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한국어를 쓸 수 있는 앤던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메일에 따르면 벨제붑은 영어가 능숙하다고 했다.
“앤던.”
“네?”
“벨제붑의 아이디를 어떻게 읽는다고?”
“지존천마.”
“발음이 너무 어렵네.”
“스펠링을 써 드릴게요.”
앤던이 ‘Zi Zon Chun Ma’라는 스펠링을 써서 팀장에게 건넸다.
입으로 지존천마를 중얼거리던 팀장이 마침내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곤 국제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가 가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연결되었다.
“Hello?”
팀장은 지존천마와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한국은 요즘 날씨가 어떠냐, 영어를 정말 잘한다 등등의 대화가 오가고, 회의실에 모인 석학들의 시선이 쏠렸다.
사실 그들이 궁금한 건 한국의 날씨 따위가 아니었다.
이 알고리즘을 몇 명이서 개발했는지, 어떤 알고리즘을 이용했는지, 바둑 이외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그게 사무치게 궁금했다.
하지만 원래 대화에는 순서가 있는 법.
한참 동안 환담을 나누던 팀장이 슬쩍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는 공적인 이야기라서 스피커폰을 켜도 될까요? 팀원들도 들을 수 있게요.”
지존천마가 수긍을 했는지, 팀장이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우선, 당신 팀의 이름이 뭐죠?”
-팀? 무슨 팀?
“이번 프로젝트의 팀명이요.”
-무슨 프로젝트?
“알파고와의 대국을 위한 프로젝트.”
-아, 그럼 지존천마.
딥마인드의 구성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어 발음은 네이티브와 다를 바가 없는데 리스닝이 별론 것 같다.
말귀를 잘 알아먹지 못한다.
영어의 발음만 연습을 한 걸까?
“개발 기간은 몇 년입니까?”
-알파고를 이길 바둑 실력을 얻는 데 걸린 기간?
“맞아요.”
-그럼 대충 10년 정도.
10년이라면 역시 바둑 전용 알고리즘인 것 같다.
딥마인드가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바둑 AI를 평정하기 전에 한중일에서는 바둑용 AI를 개발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마 12년 정도 됐을 거다.
어쩌면 그 성과가 드디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팀원은 몇 명이죠?”
-팀원? 한 명이지.
“네?”
-한 명이라고.
“설마 당신 혼자 개발했다는 건가요?”
-혹시 누가 나한테 바둑을 가르쳐 줬는지를 체크하는 거야? 그럼 한 명은 아니고.
순간, 묘한 공기가 딥마인드 회의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마, 지금 이 남자는 자신이 알파고와 바둑을 뒀다고 말하는 건가?
개발한 AI로 겨룬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말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들킬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팀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혹시 당신이 알파고와 바둑을 뒀다고 말하는 겁니까?”
-뭐라는 거야? 그럼 바둑을 두지 바둑을 먹냐?
“그러니까 당신이 직접, 당신의 두뇌로 뒀다는 거죠?”
수화기 너머의 지존천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상황을 파악한 듯 물었다.
-혹시 내가 알파고랑 비슷한 걸 만들었다고 생각한 거야?
“맞습니다. 우리는 벨제붑, 아니 지존천마 팀이 새로운 AI를 개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닌데? 내가 둔 건데?
팀장이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팀원들의 표정을 보니 절반 정도는 지존천마의 말을 믿고, 절반 정도는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기꾼과 관심 종자들이 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사기꾼이든 아니든, 지존천마는 정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알파고를 이겼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팀장이 침착히 말을 골랐다.
“그럼 뉴욕에 와서 알파고와의 대국을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돈 주냐?
“물론입니다. 상금과 별개로 경기비를 드리겠습니다.
-비행기표랑 숙소도?
“그것도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일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당장 내일 자 티켓 발권도 가능합니다만.”
-아, 그건 너무 빠르고. 3일 뒤로 하자.
“공개 대국을 원합니까? 비공개 대국을 원합니까?”
-비공개.
지존천마와 몇 가지 사항들을 협의한 팀장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팀원들이 입을 열었다.
“정말일까요?”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뭐가 됐든 알파고를 이긴 건 사실이잖습니까?”
“인공지능이 아니면 알파고를 이길 수 없습니다. 뭔가 노리는 게 있어서 자신이 둔 척하는 걸 겁니다.”
“맞아요. 그러니까 비공개 대국을 요구하겠죠.”
“말도 안 됩니다.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이였다면 오히려 공개 대국을 원했을 겁니다.”
팀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팀장이 노크하듯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그 소리에 모두가 조용해지고, 팀장이 입을 열었다.
“3일 뒤면 알 수 있겠지. 알파고를 이긴 게 인공지능인지, 사람인지.”
그렇게…….
3일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