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61화>
Quest 30. 봉사하는 천마님
“흐음.”
진유성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계약 목록을 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상림이 고용한 CEO가 제법 유능한 것 같다.
그는 진유성이 원하는 대부분의 작가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몸이 아프다거나, 해외에서 살고 있는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상림이 투덜거렸다.
“아니, 교주님. 돈을 너무 막 쓰시는 거 아닙니까?”
“왜? 회사가 돈을 좀 써야지 의심받지 않고 좋다며.”
“그렇긴 합니다만…….”
진유성이 차린 출판사는 수익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보여 주는 걸 목적으로 한다.
정권이 바뀌고, 비리로 쫓겨난 국세청장의 흔적들을 추적하기 시작할 때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돈을 땅에 버리는 기분이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까지 CMSG 출판사가 계약한 작가는 24명인데, 이들에게 지급된 돈만 35억이 넘었다.
유명한 작가들에게는 2억을 배팅했고, 비교적 덜 유명한 작가들에게는 1억을 배팅했다.
들어간 돈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중 작품의 판권을 사 오는 데도 많은 돈이 들었다.
판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들이 ‘이 작품은 더는 나오지 않는다.’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판권을 판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돈이 들어갔다.
상림은 이렇게 큰돈이 단지 진유성의 취미 생활을 위해 사용됐다고 생각하자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이런 상림의 생각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진유성이 선택한 연중 작품은 모두가 재밌고, 유명한 작품들이었다.
작품들의 연재가 재개된다면 출판사도 나름대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유성이 투자한 돈을 전액 회수하는 건 힘들겠지만, 10년 정도 팔다 보면 근사치까지는 올 수도 있다.
즉, 돈을 완전히 땅바닥에 버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가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연중하고 있던 작가들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교주님 작가들 안 때릴 거죠?”
“안 때린다니까?”
“그럼 어떻게 글을 쓰게 만들려고요?”
“계약서에 적어 놨잖아?”
진유성이 내세운 계약 조항은 아주 간단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무조건 일주일에 3편 이상의 글을 쓴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 계약 조항을 위반하는 셈이다.
그리고 계약 조항을 위반하면 받은 계약금의 3배를 토해 내야 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안 될걸요?”
상림이 계약서 목록 옆에 적힌 숫자를 가리켰다.
숫자는 계약한 지 일주일이 넘은 작가들이 그동안 쓴 글의 분량이었다.
계약 조항에 따르면 일주일이 지났으니 무조건 3편 이상의 글을 써야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쓴 작가라고 해 봐야 1.5편 정도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0편을 썼다.
그나마 한 편이라도 쓴 작가들도 계약 첫 주라서 그런 것이었다.
몇 주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들 변명으로 일관할 것이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글이 안 써져서 등등.
이런 경우에 있어서 출판사들은 속수무책이다.
내용증명을 띄워서 고소를 하면 되겠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고소하는 데도 비용이 들고, 인력이 들고, 시간이 든다.
게다가 고소하는 순간 그 작가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진 셈이 된다.
“상림아.”
“네?”
“네가 해 줘야 할 게 있는데.”
“뭔데요?”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 * *
일주일 전, 신생 출판사 CMSG와 계약을 한 박태석은 기분이 좋았다.
계약금으로 무려 1억이나 들어왔는데, 이게 공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난 일주일간 신나게 돈을 썼고, 글은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계약서에는 매주 3편의 글을 줘야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다음 주에 주지 뭐.’
다음 주부터 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 주, 다음 주 하다가 3년이 흘렀음에도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 CMSG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아마 원고를 재촉하기 위함인 듯했는데, 이럴 때는 뻔뻔해야 했다.
괜히 연락을 피했다가는 도망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만나서 글이 잘 안 써진다는 것을 어필하고, 다음 주부터는 꼭 쓰겠다고 해야 한다.
그렇게 박태석은 홍대에 도착했고,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앉아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CMSG입니다. 어디죠?
“저 2층 창가 끝에요.”
잠시 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박태석에게 다가왔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남자였다.
‘편집자가 잘생겼네.’
박태석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많이 쳐줘봐야 23살이나 될 것 같으니, 신입 편집자인 게 틀림없었다.
신입은 구슬리기 쉽다.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박태석 작가?”
“네, 맞습니다.”
“흠.”
편집자는 박태석을 가만히 내려다보고는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화장실을 가는 건가 싶었는데, 간다는 말도 없었다.
“뭐야?”
화장실이 급했던 건가 싶은 순간.
시끌벅적했던 카페가 확 조용해졌다.
‘와, 씨.’
누가 봐도 조폭처럼 생긴 6명의 남자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조직의 배신자를 찾는 것 같은 분위기다.
남자들이 박태석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박태석이 놀라서 뒤를 쳐다봤지만, 그는 창가 끝 쪽에 앉아 있었다.
뒤에는 자리가 없다.
놀란 박태석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남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박태석이 앉아있는 테이블의 좌우에 섰다.
호위를 한다기보다는 감시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사라졌던 신입 편집자가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났다.
똑같은 옷 덕분에 알아본 거지,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을 때는 호감 가는 외모였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 조폭들 사이에서도 위화감이 없었다.
키가 크고, 단단한 체격에 어깨가 딱 벌어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저벅저벅 걸어온 편집자가 박태석의 앞에 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듯 긴장된 분위기.
잔뜩 겁에 질린 박태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누, 누구신데 저한테……?”
그 순간이었다.
편집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했더니 레벨업하는 마법사>의 작가!”
순간 박태석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 부끄럽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런 소리를 꺼내다니!
박태석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지만, 편집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했더니 레벨업하는 마법사>의 원고는 언제 줄 건가?”
“그, 드릴 테니까 제발…….”
“제발 뭐?”
“목소리가 너무 커서…….”
“네가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했더니 레벨업하는 마법사>를 순순히 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잖아?”
편집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카페를 울린다.
사실 엄청나게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시끌시끌한 카페 안에서 이 정도 목소리는 좀 시끄럽게 구는 정도니까.
하지만 카페가 워낙 조용하다 보니까 모든 손님들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쪽에 앉아있던 커플들이 말했다.
“명문, 마법사? 그게 뭐야?”
“소설 제목인가 봐.”
“제목이 왜 저딴 식이야?”
“몰라?”
그때 편집자가 커플을 휙 하고 노려보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커플을 향하자, 커플이 찔금 했다.
편집자가 말했다.
“내 앞에서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했더니 레벨업하는 마법사> 욕하지 마.”
“네?”
“네가 명문가보다 엄한 곳에서 살아 봤어? 막내아들만큼 기반이 없어 봤어? 다 잃고 회귀해 봤어?”
그때, 편집자가 박태석을 다짜고짜 일으켰다.
“이 남자가 바로,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했더니 레벨업하는 마법사>의 작가야.”
그 순간, 편집자의 좌우에 서있던 조폭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박태석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 *
박태석은 조폭들과 함께 커다란 승합차에 탔다.
집으로 데려다준다는 명목에서였다.
박태석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지만, 놀랍게도 조폭들은 정말 그를 데려다주기만 했다.
딱 한 마디만 남겨 놓고.
“다음 주에 원고 안주면 재미없을 줄 아슈.”
그렇게 박태석이 사라지자, 진유성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좀 먹혔으려나?”
진유성의 말에 조폭처럼 생긴 상림의 동생들이 어깨만 으쓱했다.
그들은 상림의 부탁을 받고 진유성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지만, 좀 재밌었다.
과거, 진유성이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진유성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고, 홍대에서 사고를 쳤었다.
내공만 사용하지 않으면 각성자로 의심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상림이 험상궂게 생긴 동생들을 이끌고 홍대로 출동했었던 적이 있었다.
오늘 조폭 역할로 동원된 이들은 과거에 상림과 함께 홍대에 왔었던 멤버들이었다.
“근데 조카.”
“네?”
진유성은 상림의 조카로 소개됐기 때문에, 이들도 모두 진유성을 조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건 왜 하는 거야?”
“아, 외삼촌이 너무 좋아하는 소설인데 보고 싶다고 해서요.”
“……상 대표님이?”
“네.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했더니 레벨업하는 마법사>는 외삼촌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죠.”
이들은 상림의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떠올린 다음에 말을 아꼈다.
어쨌든 그들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니까.
“근데 너무 갈군 거 아니야?”
“당근과 채찍이 적당하지 않았나요?”
“당근? 당근이 어디 있었는데?”
“원래 작가들은 관심받는 걸 좋아해서, 치켜세워 주면 의욕이 생기죠.”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 치켜세워 줬는데?”
“박수도 쳐 주고, 작품 홍보도 해 주고, 편도 들어 줬잖아요?”
진유성의 말에 상림의 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들이 작가였다면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죽어 버렸을 것만 같다.
‘작가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 이들인가?’
하긴 그러니까 창의력을 발휘해서 글을 쓰겠지.
너무 괴롭힌 것 같아서 불편했던 이들의 마음이 편해졌다.
“다음은 뭐야?”
“다음에는 <주인공이 힘을 숨길 듯 말 듯하다 얻음>이네요.”
진유성은 그 뒤로도 상림이 소개시켜 준 이들과 함께 여러 명의 작가들을 만났다.
패턴은 거의 비슷했다.
카페에서 만나서 응원을 해 주고, 치켜세워 주고, 홍보를 해 주고, 그러면서도 약간 협박을 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작가들이 원고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심지어 아직 진유성이 만나지 않은 작가들도 그러했다.
작가들 사이에는 커뮤니티가 있어서 같은 출판사와 계약하면 연락이 닿곤 한다.
한데 CMSG가 조폭들이 세운 회사라는 소문이 쫙 돈 것이었다.
그동안 원고를 주지 않고 배짱을 부리던 이들도 감히 조폭의 돈을 떼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원고를 주지 않으면 찾아와서 엄청난 수치심을 준다지 않은가.
덕분에…….
“흠, 역시 재밌군.”
진유성은 그동안 작가들이 연중해 볼 수 없었던 소설들의 뒷내용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CMSG는 상림의 험상궂은 동생들을 프리랜서로 고용했다.
원고를 주지 않는 작가들이 나올 때마다 찾아가 당근과 채찍을 선사하는 역할로.
그렇게 CMSG는 엄청난 돈을 계약금으로 주지만, 원고를 주지 않으면 지옥을 선사하는 출판사로 업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