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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69화 (16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69화>

대정고는 하위권과 상위권의 성적 편차가 굉장히 심한 학교이다.

공부를 해야만 가업을 이을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절박함 차이 때문이었다.

절박하게 공부한 상위 30% 정도가 주르륵 줄을 서고 나면, 적당히 공부한 20% 정도가 뒤를 따른다.

남은 50%는?

그냥 찍기 실력에 따라 등수가 나뉜다.

대정고는 잘 찍으면 중위권, 못 찍으면 하위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대정고의 시험 문제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본래 고등학교의 시험이 상-중-하를 변별한다면, 대정고의 시험은 최상-중상-상을 변별해야 하니까.

그러니 진유성이 전 과목 100점을 맞은 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유성이 거들먹거려도 그 누구도 반박을 못했다.

“평균 81점, 전교 16등의 정새롬이로군. 너 정도면 같은 공기를 마실 자격은 있으나 성의를 보여야 한다.”

“…….”

“나와 대화를 하고 싶으면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도록.”

“…….”

심지어 진유성은 같은 반 친구들의 평균 점수와 등수를 외우고는 지독할 만큼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상소윤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어휴, 저 쪼잔한 거 봐라.’

진유성이 거들먹거리는 건, 스스로의 성적을 대단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볼링에서 진 게 억울해서였다.

볼링에서 느꼈던 패배감을 성적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독 다섯 명에게만 거들먹거릴 이유가 없었다.

진유성의 행동 패턴을 정확히 분석한 상소윤은 적절한 대답을 찾아냈다.

“공부만큼 볼링도 잘 쳤으면 좋았을 텐데…….”

“……!”

“거기서 패배하니 여기서 화풀이를 하고 있네.”

“우리가 져 줄걸 그랬나 봐.”

“그니까.”

상소윤의 대답은 적절했다.

진유성이 분노한 것이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난 퍼펙트게임이었다! 모든 핀을 쓰러트렸단 말이다!”

“하지만 졌쥬?”

“그 입 다물라!”

엄밀히 말하면 진유성은 볼링의 최고점을 냈으니 분노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잘했지만, 팀원들이 못한 거였으니까.

또한 그 팀원들은 전부 매수된 상황이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진유성의 사고방식에는 패배가 용납되지 않았다.

패배에는 그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다.

패배는 죽음이고, 변명은 무덤가에 남을 뿐이니까.

이런 가치관으로 100년이 넘도록 살아왔으니 말이었다.

그렇게 진유성은 매일마다 상소윤의 성적을 공격했고, 상소윤은 진유성의 패배를 지적했다.

이러한 설전은 의외의 방향으로 튀었다.

“아, 그러면 되겠다.”

“응?”

“네?”

진유성과 상소윤의 싸움을 BGM 삼아 아침밥을 먹던 중 유혜연이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원래 너희 보충 수업 받아야 했던 거 알지?”

유혜연의 말처럼 본래 진유성은 대정고에 입학한 다음에 보충 수업을 듣기로 했었다.

겸사겸사 전교 꼴등이었던 상소윤까지 묶어서.

하지만 진유성은 기말고사에서 출중한 성적을 거두면서 보충 수업 이야기가 알음알음 없어졌다.

유혜연이 학년 교감에게 말을 해 준 덕도 있었고.

“그걸 대신한다는 생각으로 유성이가 소윤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면 되지 않을까?”

유혜연의 말에 진유성과 상소윤의 시선이 마주했다.

지금껏 줄곧 싸워 왔던 이들이지만, 순식간에 생각이 통했다.

‘가르친 척을 하마.’

‘배운 척할게.’

짧은 의견 교환 끝에 진유성과 상소윤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유혜연을 잘 알고 있었다.

진유성이 워낙 꼴통이라 가려져 있을 뿐이지, 상림-유혜연-상소윤으로 이루어진 상씨 집안도 정상은 아니다.

그리고 셋 중 누가 가장 비정상이냐고 하면, 아마 유혜연일 것이었다.

상소윤은 철없는 10대고, 상림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면죄부가 있으니까.

이런 사실을 본능적으로 캐치한 진유성과 상소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혜연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몇 등 할래?”

“네?”

“공부를 가르치면 목표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상소윤, 너 이번에 몇 등이지?”

“나 95등…….”

꼴등은 아니지만, 꼴등에 근접한 등수이다.

“그럼 60등으로 하자.”

“나한테 60등을 하라고? 엄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60등을 할래? 등을 60대 맞을래?”

“…….”

“할 수 있지? 유성아?”

유혜연의 눈길을 받은 진유성이 흠칫 놀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혜연의 눈을 보니 안 된다는 말을 못하겠다.

가끔 보면, 유혜연이 무공을 배웠으면 엄청난 고수가 됐을 것 같았다.

“한번 해 볼게요.”

“그래.”

유혜연이 흐뭇하게 웃자, 상소윤이 끼어들었다.

“60등 하면 뭐 해 줄 거야?”

“칭찬해 줄게.”

“아, 엄마!”

“알았어. 원하는 거 무조건 하나 들어줄게.”

“무조건?”

“무조건.”

“오케이.”

“왜? 뭐 하려고?”

“비밀이야.”

상소윤이 뭔가 생각하더니 의욕에 찬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유혜연은 상소윤이 60등을 달성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별생각이 없었다.

“유성아, 너도 하고 싶은 거 있어?”

“남북통일요.”

“그, 그건 좀…….”

“그럼 전 원하는 게 없는데.”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는 어제 아놀드 벡과 통화를 했는데, 군대를 빼는 게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유성이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힘들었다.

아놀드 벡이 대한민국의 군수사령부에 직접 문의를 했는데, 육군을 UN SG 본부로 파견하는 게 불가하다는 의견을 받았다.

한 번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가는 돈 좀 있는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UN 파견군 형식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마스터의 통제사령부가 UN이 아니라, UN 한국군이 될 겁니다.

-그냥 군대를 가는 것보다 더 귀찮을 수 있다는 거죠. UN 파견군들은 품위 유지 관리 규율이 엄격하니까요.

결국 아놀드 벡은 좀 더 알아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각성자 등록을 해야 하나? 아, 그건 싫은데.’

상림의 말에 따르면 각성자가 되면 SG에서 귀찮게 군다고 했다.

‘그냥 북한에 한번 다녀와?’

지배일가를 싹 잡아와서 청와대 앞에 던지면 통일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역시도 애매하다.

상림의 말에 따르면 통일이 되도 10년 정도는 징집병이 유지될 거라고 했다.

진유성이 답답함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유혜연과 상소윤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일한 소망이 남북통일이라니, 어딘지 좀 짠했다.

“먹어, 유성아.”

“이거 먹어. 진유성.”

유혜연과 상소윤이 진유성의 밥그릇에 반찬을 놓아주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상림이 들어왔다.

“아, 벌써 먹고 있었네?”

급한 일이 생겨서 새벽 5시에 회사에 갔던 상림이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자리에 앉은 상림이 고기반찬으로 젓가락을 뻗는데, 유혜연이 손등을 탁 하고 때렸다.

“유성이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소윤이 고기반찬이 담긴 접시를 진유성 쪽으로 밀었다.

“아빠, 손이나 씻고 와.”

“이, 이럴 수가.”

“뭐가 이럴 수가야. 손이나 씻고 오라니까?”

“딸자식 키워 봐야 소용없다더니…….”

상림이 충격 받은 사이, 진유성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기반찬을 집어 먹고 있었다.

오늘도 상림은 진유성 때문에 슬펐다.

* * *

[1차 완성본입니다. 수정 요구 사항을 말씀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반영하겠습니다.]

수업 시간에 하릴없이 유투브를 보고 있는데 메일이 왔다.

상림이 직접 계약해 준 광고 회사에서 온 메일이었다.

진유성은 선생님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메일에 담긴 파일을 재생시켰다.

수업 시간이라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떤 퀄리티의 영상인지 보고 싶었다.

“흠…….”

영상을 보고 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진유성은 금세 묘한 기분의 정체를 파악했다.

주인공이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김정철이었다.

영상 군데군데 JC라는 로고가 들어가며, 요리의 리액션마다 삽입되는 영상들이 전부 JC의 홍보 영상들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상의 퀄리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포커스가 김정철한테 쏠린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요리 과정에 대한 편집은 흡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CG가 마음에 들었다.

황금색 가면을 쓴 진유성이 중식도를 드는 순간, 중식도에서 황금빛이 번쩍인다.

칼이 움직일 때마다 당근과 오이가 날아다니더니, 용의 형상을 이룬다.

구름 위를 노닐던 채소의 용이 용틀임을 하더니 냄비 속으로 들어간다.

중간 중간 요리왕 비룡의 장면들이 삽입되었고, 왼팔에는 ‘특급요리사’라는 완장까지 넣어 주었다.

‘뭘 좀 아는 놈이 했군.’

요리 장면은 굉장히 마음에 들고, 시식 장면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의 진유성이었으면 수정 요구를 했을 것이었다.

좀 더 내 위주로 해 달라고.

그러나 진유성은 메일로 영상이 마음에 들고, 고생했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는 현 시점에서 진유성이 집중하는 게 유투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유성은 유투브에 어떤 영상들을 올릴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협 소설을 어떻게 쓸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본 이후부터 자신이 겪은 중원에서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소설을 써 본 적이 없었다.

대명제국과 천마신교의 통치자였던 만큼 훈시(訓示)나 교시(校是)의 문장은 많이 썼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일대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내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수필인가?’

약간의 허구는 가미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실화에 기반할 것이니, 수필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진유성은 영상의 퀄리티에 적당히 만족했다.

‘일단 영상이나 업로드를 해야겠군.’

한데, 영상을 업로드하기 위해서는 우선 채널을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지존천마라는 채널명을 누군가 개설했다는 것이었다.

지존천마, Zi존천마. Zi존천ㅁr.

전부 누군가 사용하고 있는 채널명이었다.

롤에서 인기를 얻은 닉네임이기 때문인 듯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원에서 지존의 칭호는 진유성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고, 천마는 그의 적들이 두려움을 담아 부르는 것이었다.

사실 진유성의 공식적인 명칭은 천신이었다.

마(魔)보다는 신(神)이 더욱 성스러운 칭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천신보다는 천마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들었다.

천신은 너무 신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천마는 적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칭호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런 유구한 역사가 담긴 칭호를 누군지도 모르는 놈한테 빼앗겨 버리다니.

화가 난다.

그렇게 부들거리고 있는데, 상소윤이 다가왔다.

“뭐 하냐?”

“유투브 채널명을 고민 중이었다.”

“진짜 하게?”

“당연하다.”

“채널명은 약간 웃겨야 할걸? 그래야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않을까?”

“흠, 그런 것이냐?”

“그치. 엄청 전문적인 채널이 아닌 이상, 딱 봤을 때 유쾌한 느낌이 들어야지.”

그럴 듯한 말이었지만, 딱히 웃긴 채널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자, 진유성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수행했다.

“네가 정해 줘라, 상소윤.”

바로,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상소윤은 자신의 손아랫사람이지 않은가?

“그냥 이름으로 해.”

“이름을 쓰라고?”

“어. 진유성.”

상소윤은 어차피 이번에도 진유성이 잠깐 유투브를 즐기다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진유성은 [진유성]이라는 채널을 개설하고는 광고 회사에서 온 영상을 업로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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