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0화>
잠시 뒤.
유혜연은 상소윤과 진유성을 데리고 교실을 나섰고, 교감은 각성 검사 서류를 가지고 교무 건물로 돌아갔다.
반에 남은 건 3학년 1반의 학생들이었다.
“정말 두 사람이…….”
“아, 헛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그냥 유성이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오셨나 보지.”
지존천마 해킹 사건 이후로 어딘지 시니컬해진 심도훈이 지종수의 등짝을 후려쳤다.
“하지만 어머니라고…….”
“뭐라는 거야. 너도, 나도 소윤이 어머니보고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잖아.”
“보통은 아주머니라고…….”
“친하니까 그랬나 보지.”
심도훈과 지종수의 대화는 딱 3학년 1반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절반 정도는 지종수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고, 나머지 절반은 심도훈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러나저러나 당사자들이 없는 데서의 이야기는 적당히 끝나기 마련이다.
진유성과 상소윤이 유혜연을 따라 사라지자, 남은 학생들도 삼삼오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종수만 제외하고.
“야, 지종수. 너 안 가?”
“난 잠시…….”
“야, 소개팅 시켜 줘?”
지종수의 주접을 보다 못한 정새롬의 말이 끝나는 순간.
탕!
지종수가 번뜩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빛냈다.
“그거다!”
“뭐가, 그거야?”
“소개팅!”
지종수는 진유성이 역도부원이었던 최유리에게 작업을 치는 모습을 보았었다.
옆에서 보기에 어이없는 일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제법 진지해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진유성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면 되지 않을까!
오늘도 단순한 지종수는 금세 기력을 회복했다.
* * *
진유성은 유혜연의 손에 붙들려서 상소윤과 함께 대정고를 빠져나왔다.
“정말 다행이야.”
진유성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유혜연은 꽤 기뻐 보였다.
그녀 역시 상소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탈출한 진유성이 각성을 하는 것은 너무나 가엽다고.
진유성은 그런 유혜연을 보며 웃었다.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상림은 혼인을 참 잘했다.
‘생각해 보면 상림이 진짜 대단한 놈이란 말이지.’
말도 못하는 세계에 떨어져서 무공도 잃고 혼자서 지구에 적응했으며, 번듯한 회사도 차리고 좋은 아내도 두었다.
물론 상림이 무일푼으로 지구에 온 것은 아니다.
그는 천마신교에서 내어준 보석류들을 꽤 많이 들고 지구로 왔었다.
그러나 처음 몇 년 동안은 보석을 아예 쓰지 않았다고 했다.
지구에 적응을 못해서 제값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고.
상림이 중원에서 가져온 보석을 사용한 것은 게이트가 열리고 LF 건설을 차릴 때였다.
이런 걸 보면 어쩌면 상림의 가슴 속에는 승부사 기질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진유성은 늘 궁금했다.
상실의 공간에서 상실한 것들은 다시 얻을 수 없는가.
진유성 같은 경우는 상실의 공간의 법칙에 위배되는 존재였다.
진유성은 위상의 수호자를 이겼고, 완전한 상실을 피했다.
그는 9할의 무를 잃어버렸지만, 1할을 품었다.
그리고 1할을 통해서 다시 예전의 무를 되찾았다.
식물의 뿌리까지 뽑아 버리면 식물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식물의 뿌리를 남기고 줄기를 잘라 버린다면, 다시 자랄 수 있다.
진유성은 1할이란 뿌리를 남겼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시 무의 꽃을 피운 셈이었다.
그에 반해 완전히 상실한 상림은 뿌리조차 없다.
상림은 진유성의 도움으로 내공을 쌓고, 무공을 되찾고, 위력을 길렀지만, 예전의 날카로움은 없다.
자신보다 하수를 상대로는 이기겠지만, 자신과 동수거나 고수라면 무참히 살해당할 것이다.
주청이도 마찬가지다.
신주청의 마음에는 더 이상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과거의 진유성과 신주청은 서로를 위해 죽어 줄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은 궁금했다.
상실의 공간에서 상실했지만, 다시 한번 씨앗을 뿌릴 수 있다면.
그것은 발아해서 꽃을 피울 것인가?
아니면 씨앗째 썩어 버릴까?
그게 궁금…….
그 순간이었다.
생각을 이어 가던 진유성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니?”
함께 걷던 진유성이 멈춰 서니, 유혜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저 잠깐 할 일을 까먹었어요.”
“할 일?”
“네. 먼저 집에 가세요. 저녁 먹고 들어갈 거 같아요.”
진유성의 말에 유혜연과 상소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별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래. 알겠어.”
“혼자 맛있는 거 먹냐, 돼지야.”
“어허, 오라버니한테 그 무슨 불손한 언사냐.”
“오라버니 좋아하시네.”
“그리고 신장 대비 체지방량을 측정하면 네가 나보다 돼지다.”
“뭐?!”
“하지만 너는 살이 좀 더 쪄도 된다.”
“뭐, 뭐라는 거야.”
진유성이 상소윤을 보고 피식 웃더니 유혜연과 상소윤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진유성이 사라지고 유혜연과 상소윤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조용히 소곤거렸다.
“부하들에게 말하려는 거 같지?”
“그치. 북한에서 따라온 애들도 걱정하고 있을 거니까.”
“고생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집에서 밥이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그럼 국정원이 우릴 데려가서 국밥을 먹이지 않을까, 엄마?”
“그러려나?”
“그치.”
오늘도 여전히 오해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진유성은 대정고 옆쪽으로 골목으로 향했다.
물론 압구정은 로열 섹터기 때문에 골목이라고 해 봐야 낙후된 곳은 아니었다.
흔한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하기도 했고.
하지만 CCTV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긴 했다.
골목에 들어간 진유성은 기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유성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내공에 대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이는 선천적인 능력이지만, 후천적으로 갈고닦기도 했다.
그래서 진유성은 아주 재미있는 걸 한 가지 할 수 있었다.
흔히 무인들은 내공을 쌓기 위해서 일주천을 했다.
일주천이란 단전에서 출발한 내공이 모든 주요 혈도를 통과해 다시 단전으로 돌아오는 걸 뜻했다.
일주천의 효능은 신체의 모든 혈도를 데워서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든다는 것과 내공을 쌓는 것에 있었다.
당연히 일주천은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놀랍게도 신체 외부에서 일주천을 할 수 있었다.
이걸 일주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진유성의 절대적인 구속력이 통용되는 반경 1장(3m)의 기운을 회전시키는 것이니까.
지구에 와서 배운 과학으로 설명해 보자면, 원심력을 통해서 기운을 모으는 것이었다.
중원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단전에 내공을 채우기도 했고, 단전을 통하지 않고 곧장 전투에 이용하기도 했다.
입신의 경지에 오른 순간부터 내공을 신경 쓰지 않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상당히 유용했던 진유성만의 기술이었다.
진유성은 옛날 생각을 하며 신체 외부에서 일주천을 시작했다.
산재된 기운들이 원심력에 이끌려 모여들기 시작한다.
후웅- 후웅-
여기에 의념까지 섞은 다음에 진유성 본연의 내공을 넣는다면?
진유성은 단숨에 압구정의 3분의 1 정도를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유성이 원하는 건 파괴가 아니었다.
당연히 축기도 아니었다.
지구의 기운은 지나치게 혼탁해서 품고 싶지 않은 기운이었으니까.
진유성이 외부의 기운을 일주천하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기운에 이끌린 두 사람이 골목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정말로 당신이…….”
문수혁과 차정명이었다.
진유성은 대정고의 정문을 나오는 순간 두 명의 시선을 느꼈다.
아무래도 SG에서 만났던 문수혁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차정명과 함께 대정고로 찾아온 것 같았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고등학생이 독도 게이트의 ‘진유성’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은근한 기세를 보내고 있었다.
이 정도 기세면 진유성이 반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이며.
그러나 진유성은 반응하는 대신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엄청난 기운을 끌어 모은 것이었다.
“왔냐?”
진유성이 문수혁과 차정명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정말 당신입니까?”
“독도 게이트에서 우리를 이끌었던 진유성이 맞습니까?”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닌 것 같냐?”
진유성이 주변에서 회전하는 기운을 가리키자, 두 사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저런 식으로 마력을 운용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수많은 각성자들이 있고, 각자의 전투 방법이 있다.
하지만 독도 게이트에서 만났던 진유성은 특별했다.
그는 각성자라기보다는 초인 같았다.
각성자는 말 그대로 각성을 한 인간이지만, 초인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다.
그 순간이었다.
“너희 이거 못 견디면 폐인 된다?”
“네?”
“내공, 아니 마력이 폭주할 수가 있다고.”
“그게 무슨…….”
“원심력보다 너희들이 가진 마력 장악력이 낮으면 큰일 난다는 거지.”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다짜고짜 두 사람을 향해 일주천하던 기운을 집어던졌다.
거대한 기운이 두 사람을 덮쳤다.
“……!”
“무슨!”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신체를 보호하는 순간.
진유성이 회전시킨 내공과 그들의 마력이 충돌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원심력과 장악력의 싸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회전하는 거대한 기운이 두 사람의 몸에 담긴 마력을 훔쳐 가기 시작했다.
마치 세탁기가 회전을 통해 이물질을 털어 내는 것과 비슷했다.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는 버티기 힘들어졌다.
모든 마력이 원심력에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순간, 진유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악한다는 것은 억지로 꼭 쥐고 있는 게 아니다. 큰 흐름에 순응할 줄도 알고, 흐름에 올라탈 줄도 알아야한다는 거다.”
진유성의 말은 큰 힌트가 되었다.
그들은 원심력의 반대 방향으로만 힘을 발휘했을 뿐, 거기에 순응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간신히 버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이 조금은 편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는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펴졌고, 긴장하고 있던 근육이 이완했다.
그쯤 되자, 진유성이 손을 흔들었다.
진유성의 손짓에 두 사람을 압박하던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거대한 기운을 손짓 한 번으로 흐트러트려 버리는 신기였다.
진유성은 완전히 지쳐 버린 듯 탈력감을 느끼는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SSS급이 된 기분은 어때?”
“네?”
“내가 SG의 기준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SSS급이 됐을걸?”
“네?!”
그랬다.
진유성이 거대한 기운을 집어던진 것은 두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SG의 엘리베이터에서 문수혁을 만났을 때 알았다.
문수혁이 심기체의 조화를 이룬다면 진유성을 만나기 전의 아놀드 벡과 거의 비슷해진다는 걸.
물론 지닌바 재능은 아놀드 벡이 월등하기 때문에 그들의 간격이 쉽게 좁혀지진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문수혁과 차정명.
두 사람이 SSS급에 올라서는 것은 어마어마한 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당장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SSS급이 두 명인 국가는 없었으니까.
물론 진유성이 그런 부분을 신경 쓴 건 아니지만.
“저, 정말 저희가 SSS급이 된 겁니까?”
“모른다니까? SG 기준을 몰라서. 그래도 6개월 전의 아놀드 벡과 비슷한 수준이 된 건 맞아.”
“그게…….”
“야, 일단 따라와 봐.”
진유성이 두 사람을 데리고 길을 건넜다.
대정고 입구에서 길을 건너면 진유성이 구매한 천마신교 건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상가 건물로 들어서자 말이 없던 차정명이 입을 열었다.
“여긴 아지트 같은 곳입니까?”
“아지트?”
“비밀 기지 같은 거 아닙니까?”
아놀드 벡도 여기서 만났고, 김정철 회장도 여기서 만났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뭐, 얼추.”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체가 무엇입니까?”
차정명의 말에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전에 할 게 있다.”
“무엇입니까.”
“배고프냐?”
“네?”
“배고프냐고.”
“어, 조금 고픕니다.”
탈력감을 느끼고 있던 두 사람은 허기도 느끼는 듯했다.
진유성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일단 여기 앉아.”
“뭘 하면 됩니까?”
“감탄.”
잠시 뒤.
문수혁과 차정명은 얼마 전 아놀드 벡이 느꼈던 것과 똑같은 자괴감을 느끼며 입을 열고 있었다.
“어헉! 당근이 날아다니다니!”
“얇아! 그리고 정교해!”
제대로 안하면 다시 SS급으로 내려 버린다는 협박을 받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