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09화>
* * *
우산도 멤버들과의 짧은 만남 이후 진유성의 생활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수능이 5개월 남은 고3이자,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
생각해 보면 재밌다.
진유성은 아주 긴 세월 동안 목표 없이 살아왔다.
물론 대명제국을 통치해야 한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신으로 여겨지면서부터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관리들 입장에서는 백 년 가까이 늙지도 않는 신이 그들을 굽어보고 있는 셈이니까.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면 명령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수능 같이 기간이 정해진 작은 목표들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수능은 만점을 노려 봐야겠군.’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나쁘진 않았지만, 슬슬 질리는 참이었다.
어차피 유혜연도 한 달만 하라고 했고.
이처럼 진유성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왔다면, 오히려 삶이 조금 바뀐 것은 상림이었다.
상림은 펜션에서 우산도 멤버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아놀드 벡과의 비무를 통해서.
결론을 말하자면, 실전에서 두 사람이 만나면 무조건 아놀드 벡이 이긴다.
하지만 비무를 한다면 쉬이 결판을 내기는 힘들었다.
힘의 총량은 아놀드 벡이 앞섰다.
노련함은 상림이 앞섰다.
결정적으로 아놀드 벡은 몬스터와의 싸움에 특화된 각성자고, 상림은 사람과의 싸움에 특화된 무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무에서는 두 사람이 백중세를 보였다
우산도 멤버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문수혁과 차정명도 아놀드 벡에게는 몇 수 접어주니.
그렇게 상림은 각성자들의 인정을 받았고, 상림은 그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주기 시작했다.
상림은 어느새 각성자들과 꽤 친해진 듯했다.
진유성은 그게 신기했다.
그는 타인의 경외와 존경을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남과 친분을 쌓는 법은 몰랐다.
대정고의 학생들처럼 같은 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분을 다지기 마련이지만, 상림처럼 친화력이 높진 않았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친해지는 거지?’
진유성은 상림이 자신의 머리를 각성자들에게 만지게 해 주는 장면을 떠올렸다.
맨들맨들하니 꽤 촉감이 괜찮을 테니까.
‘이건 좀 말도 안 되나?’
사실 상림이 각성자들과 급격히 친분을 다진 방법을 간단했다.
“아니 미친놈이라니까!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말을 갖고 싶다는 거야. 말을.”
모두의 공감대인 진유성의 뒷담화를 까면서였다.
진유성은 영원히 모르겠지만, 그리고 몰라야겠지만.
* * *
일상으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을 때, 진유성은 JC 그룹의 김정철 회장에게 연락을 받았다.
정확히는 김정철 회장이 대정고 앞의 상가 건물로 찾아왔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김정철 회장의 말에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럭저럭요.”
“축하하네.”
“갑자기 뭘 축하해요?”
“정확히 알아본 건 아니나, 자네가 전 세계에서 현금 보유량 1위가 아니겠나?”
매년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 부자들의 재산 중에 현금은 거의 없다.
주식을 현금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기업을 일구는 이들이다 보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건 쉽게 팔 수 없는 주식이었다.
한데 진유성에게는 조 단위의 현금이 생겼다.
그전에 벌어들인 것과 앞으로 벌어들일 것까지 생각하면 더 많아질 것이고.
“최근에 팔아치운 마정석은 멕시코로 돌려줄 건데, 뭐. 내 돈이 아니죠.”
“정말로 전부 돌려줄 건가?”
“그럼?”
“통상적인 마정석의 가격은 그 절반이라네.”
현재 진유성이 벌어들인 돈에는 PPP가 KPM을 공격했기에 벌어들인 특수 차익이 있다.
마정석을 그대로 현금화했다면 절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즉, 김정철 회장은 특수한 상황에서 얻은 차익까지 전부 멕시코에 돌려줄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마정석으로 벌어들인 돈을 전부 돌려준다고 하더라도, 진유성은 큰돈을 벌었다.
마정석 판매금을 곧장 파생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 수익금은 진유성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1.5조다.
욕심이 안날 수가 없는 금액이다.
그 정도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진유성을 보니,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체 이 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때 진유성이 손을 휘휘 저으며 물었다.
“용건이나 말해요.”
“아, 별건 아니네. 앞으로 진행될 일들에 대해서 알려 주려고 왔네.”
“그거 때문에 직접 왔다고요?”
“그럼 직접 오지, 누굴 시키겠는가?”
“상림한테 알려줘도 되는 거 아닌가?”
“안본지 오래 되지 않았는가.”
김정철 회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진유성은 김정철이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정철은 그 뒤로 한동안 KPM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진유성은 KPM의 지분을 제법 쥐고 있었으니, 경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게 맞았다.
하지만 썩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딱 한 가지를 제외하면.
“북한이 마켓을 쓰고 싶어 한다고요?”
“북한은 그들은 현재 어느 마켓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 좋아 자급자족이지, 실상은 각성 경제가 없는 셈이네.”
“흠.”
진유성이 드물게 반응을 보이자, 김정철 회장이 물었다.
“왜 그러나? 혹 자네는 북한이 KPM을 사용했으면 좋겠나?”
“아니, 뭐. 그건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반대하고 싶네. 일이 번거로워지거든.”
“조건을 걸고 쓰게 해 주는 건 어때요?”
“어떤 조건을?”
“통일. 통일하면 쓰게 해 주는 쪽으로.”
“……?”
김정철 회장이 잠깐 당황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전쟁을 하자는 말인가?”
“전쟁?”
“KPM을 쓰고 싶으면 통일을 하라는 건……. 한국으로 쳐들어오라고 도발하는 게 아닌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꼬우면 뺏어 보시던가.’라고 느낄 수도 있다.
“아, 그러네.”
상황을 파악한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김정철 회장은 그 뒤로 이런저런 사안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김정철 회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참. 그 유투브 말이야. 내가 출연한 영상.”
“왜요?”
“혹시 그 영상을 내려 줄 순 없나?”
“갑자기 왜요?”
“아니, 뭐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의 경영자였지만, 앞으로는 세계를 상대로 각성 물품 장사를 하는 경영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요?”
“그게 좀, 사회적 체면과 위신이…….”
김정철은 얼마 전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대중들은 드라마에서 다루는 재벌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재벌도 사람이다.
혼자서 편의점을 갈 때도 있고, 슬리퍼를 신고 산책을 할 때도 있다.
김정철 회장이 알기로 치안이 좋은 한국에 24시간 경호원이 붙어 있는 재벌 같은 건 없었다.
외국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혼자 있다 보면 종종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한데 요즘은 그 빈도가 좀 잦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10대와 20대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알아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KPM 때문인 줄 알았다.
어린 친구들은 각성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KPM을 만든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김정철은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글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가장 많이 쓰이는 신조어를 다룬 글.
거기에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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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하다.
‘존나 처먹다’의 줄임말로, JC 그룹의 김정철 회장이 출연한 유투브 영상의 댓글에서 유래했다.
특유의 찰진 어감 때문인지 널리 퍼져 나갔으며, 먹방 콘텐츠에서 특히 많이 쓰인다.
유래 때문인지 ‘정철하다’로 변형해서 쓰기도 한다.
Ex) 치킨 JC 해야겠다.
Ex) 오늘은 피자를 정철해 보겠습니다.
김정철 회장의 짤방으로 영상 후원을 하는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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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진유성의 유투브 영상을 편집한 짤방이란 것이 온 천지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그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김정철 회장은 홍보팀을 소집해서 무단 얼굴 도용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JC하다는 말 자체를 못 쓰게 할 수는 없지만, 짤방을 못 쓰게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홍보팀은 난색을 표했다.
이는 진유성이 올린 유투브 동영상 말미에 적혀 있는 문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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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 추구 목적이 아닌 한, 영상을 얼마든지 공유하거나 편집해도 좋다.
가져다 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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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내용이 들어간 건, 진유성이 ‘가면 요리사’가 인기가 많아질 거라고 착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홍보팀에서는 영상 말미의 문구를 바꿔야 법적 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홍보팀은 모르겠지만, 이 빌어먹을 영상을 올린 게 언노운 엠페러니까.
김정철이 진유성을 직접 찾아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상황을 설명한 김정철이 진유성을 쳐다보며 간절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나이에 유투브 스타가 되었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 순간, 진유성이 벌컥 화를 냈다.
“이런 불한당 같은 놈들이!”
진유성의 분노에 김정철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진유성이 공감을 해 준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내 말이 그 말일세! 아무리 인터넷이라고 해도, 내 나이가 몇 인데 아이들의 농담의 소재로 쓰일 수가 있나?”
세태를 풍자하거나, 맥락의 의도가 담긴 농담이라면 웃고 넘어갔을 것이었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하려면 날 해야지!”
“그래! 자네를…… 뭐?”
“아니, 솔직히 그 영상에서 네가 한 게 뭔데?”
“너……?”
“내가 열심히 만든 요리를 먹은 것밖에 없잖아? 그럼 그 영상의 주인공은 나지!”
“…….”
“눈이 어디에 박혔길래 처먹기밖에 안 한 영감이 뭐가 좋다고!”
한동안 분노를 토해 내던 진유성의 눈길이 김정철에게 향했다.
진유성이 어딘지 아니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자랑하러 온 겁니까?”
“……자랑?”
“두고 보쇼. 나도 준비한 게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진유성이 떠나고 텅 빈 상가 건물.
황당한 표정으로 건물을 돌아보던 김정철은 문득 몇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방문한 압구정.
거기서 들어온 폐업 전의 마지막 영업을 하는 식당.
그리고 만난 언노운 엠페러.
이제는 안다.
자신이 살아난 것이 언노운 엠페러가 뭔가 손을 쓴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러지 말걸…….”
김정철은 처음으로 그날을 후회했다.
* * *
두드림(DO DREAM) 픽쳐스는 CF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업체로,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영상 광고 회사였다.
이런 두드림 픽쳐스 앞에 난제가 주어진 것은 오늘 아침.
좀 더 정확히는 팀장이 계약한 영상이 회의 안건으로 올라오고, 실무진들이 영상을 확인하면서였다.
하지만, 이미 이들은 똑같은 난제를 해결한 적이 있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김정철 회장 먹방의 클라이언트 맞지?”
“맞습니다. 가면 요리사가 요리를 해 주는 콘텐츠까지 똑같습니다. 게스트가 다를 뿐이죠.”
“문수혁, 차정명…….”
첫 번째는 당황스러웠지만, 두 번째는 아니다.
“저번보다 더 고퀄리티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신 있지?”
“있습니다. 저희가 JC를 친근한 기업으로 만들었잖습니까? 이번에는…….”
팀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SG를 친근하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여전히 가면 요리사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두드림 픽쳐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