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31화>
* * *
함께 동대문 도매 상가를 돌아보던 중, 유혜연이 진열된 원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꽃무늬가 화사하게 들어간 연분홍빛의 원피스였다.
“이거 어때? 예쁜데.”
유혜연의 말에 상소윤이 원피스를 이리저리 확인하기 시작했다.
옷 뒤에 다른 색을 대 보기도 하고, 원단을 만져 보기도 한다.
“흠.”
유혜연이 팔짱을 끼고 상소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뭘 알고서 저러는 건지, 그냥 있어 보이려고 저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내심 후자에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딸은 예쁘고, 착하지만, 맹한 구석이 있으니까.
‘공부도 드럽게 못하고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중하게 옷을 살핀 상소윤이 돌아와서 귓속말을 속삭였다.
“별로야, 엄마. 가자.”
“왜? 뭐가 별론데?”
유혜연은 상소윤이 인터넷 쇼핑몰에 비싸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팔려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실속은 없고, 겉치레만 생각하는 그런 거.
동대문에 간다기에 냉큼 따라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순간, 상소윤이 입을 열었다.
유혜연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엄마, 저 원피스는 몸매가 엄청나야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핏이 살려면 몸매가 완전 좋아야한다고. 그게 아니면 원피스 위에 가디건 같은 걸 걸쳐서 하는데, 색이 너무 애매해.”
“어떻게 애매한데?”
“일반적인 가디건 색감이랑은 잘 안 어울리는 거 같아. 컬러가 예쁘긴 한데, 함께 코디하는 게 쉽지 않을 걸? 보기엔 예뻐서 샀다가 안 입고 방치되는 옷. 딱 그거.”
그렇게 말한 상소윤이 ‘쇼핑몰 만족도를 낮추는 주범’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유혜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유혜연은 딸의 모습을 보며 감격스러움을 느꼈다.
쇼핑몰을 허락해 줬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신경 쓸까 봐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데 아니었다.
상소윤은 쇼핑몰의 정확한 목적인 ‘판매’라는 행위를 이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역시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괜히 맹모삼천지교 같은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다.
“많이 사면 단가가 내려가죠?”
“그렇긴 한데, 몇십 장으로는 안 돼요.”
“몇 장부터 내려가요?”
유혜연은 그 뒤로 상소윤이 하는 일에 참견하지 않고, 지켜만 보았다.
그녀의 딸은 생각보다 훨씬 당찼고, 꼼꼼했다.
그렇게 동대문 상가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상당히 낮아져 있었다.
한 여름이다 보니 아직 환했지만. 배가 고프다.
“엄마, 나만 배고픈 거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DDP 가서 밥 먹을까?”
“그러자. 유성이랑 도윤이는 밥 먹었겠지?”
“알아서 먹었겠지. 근데 아빠는 왜 쏙 빼고 말해?”
“너희 아빠는 회사에서 맨날 맛있는 거 먹으니까 빼도 돼. 어제도 전복 드셨더라.”
“아항.”
청계천을 따라 자리 잡은 도매 상가들을 훑던 두 사람은 좌측에 보이는 DDP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줄여서 DDP라고 부르는 이것은 유명한 동대문의 랜드마크였다.
여성 건축가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세계 최대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
멀리서 보면 건축물에 햇빛이 부서지며 물결이 치는 것 같고, 가까이서 보면 커다란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혜연도 처음 DDP를 봤을 때는 이질적이면서 역동적인 모습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낯선 것이 익숙해지면 더 이상 별다른 감흥을 못 주기 마련이다.
유혜연은 딸의 손을 잡고는 별 생각 없이 DDP를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묘한 위화감.
변화를 먼저 알아차린 것은 상소윤이었다.
“어, 엄마? 저거 뭐야?”
“응?”
유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햇빛을 밭아 출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축물의 외관이었다.
문제는…….
출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다.
정말로 출렁이고 있다.
그 순간, 유혜연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출렁이는 건물의 벽면에서 괴물의 팔 같은 것이 튀어나오더니, 벽면에서 멀지 않은 한 여성의 발목을 움켜쥔 것이었다.
“꺄아아아악!”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화들짝 넘어졌다.
그리곤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치며, 넘어진 채로 바닥을 기어 벽면에서 멀어졌다.
여자는 운이 좋았다.
“으아아아악!”
“컥!”
반응이 느린 사람들은 그대로 발목을 붙잡힌 채 벽면으로 끌려 들어갔다.
깜짝 놀란 유혜연이 상소윤의 손을 잡고 벽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순간.
일렁거리던 벽면이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츠츠츠츠츠츠츠-
이윽고 헤르츠가 맞지 않는 라디오의 잡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음은 커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린다.
공포 때문에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다.
불길한 잡음에 맞춰서 강제적으로 심장이 뛰고 있다.
“뛰어!”
위험을 직감한 유혜연이 상소윤의 손을 잡고 DDP에서 도망치려는데, 바람이 불어닥쳤다.
고오오오오오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사막의 고온 공기처럼 숨이 턱 막히는 바람.
한숨이라도 들이키면 폐부가 녹아 버릴 것 같은 불쾌한 느낌.
그것이 DDP를 포함한 인근 공간을 분리시켜 버렸다.
해가 긴 여름이라서 오후 6시임에도 주변이 환했는데, 순식간에 공간이 어두워졌다.
“사, 사람 살려!”
“여기요! 여기 사람이 끌려갔어요!”
“여보! 어디 갔어! 여보!”
유혜연과 상소윤은 공포를 느끼며 서로의 손을 꽉 붙잡았다.
“어, 엄마. 이거 뭐야?”
“걱정하지 마. 걱정할 필요 없어. 엄마 손 놓지 마.”
유혜연은 공포를 숨기며 딸을 안심시켰다.
그녀도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울역에서 비징후 게이트가 열린 적은 있지만, 그때는 게이트가 단숨에 인원을 선별해 갔다고 했다.
지금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 순간, 츠츠츳 거리던 소음과 숨을 막히게 하던 공기가 사라졌다.
대신 나타난 것은 은은한 푸른색을 띤 무언가였다.
인간과 놀랍도록 닮았지만, 누구나 인간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존재.
관리자.
[반갑습니다. 여러분.]
[페이즈2가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미션에 앞서 여러분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선택 : 게이트에 들어갈 인원과 들어가지 않을 인원을 구분지어 주세요.]
관리자의 심상 전달이 끝나는 순간, DDP 인근의 모든 사람들이 둘로 짝지어졌다.
상소윤과 유혜연처럼 이미 붙어 있던 이들에게는 변화가 없었지만, 홀로 떨어져 있던 이들은 정신을 차리니 누군가의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선택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안전 구역 밖으로 나가는 이가 게이트에 도전하게 됩니다.]
바닥에 둘로 짝지어진 이들을 포함하는 원이 생겨났다.
원은 두 사람이 서있기에 충분한 크기였지만, 단 두 걸음이면 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 크기였다.
원 안에 있는 이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원 밖으로 나가면 게이트에 도전하게 된다.
원 안에 있으면 게이트를 포기하게 된다.
[게이트를 포기하는 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게이트를 선택하는 이들은 각성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택에는 물리력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물리력이라는 심상이 퍼져 나감과 동시에 움직이는 남자가 있었다.
삐죽삐죽 다듬지 않은 머리 위로 대충 등산 모자를 눌러쓴 50대의 남성.
그는 같은 원 안에 있던 교복을 입은 남학생의 가슴팍을 밀어 버렸다.
남학생은 원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균형을 잃은 뒤였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원 밖으로 나동그라진 학생이 욕설과 함께 벌떡 일어났지만.
[72구역 선택 완료.]
이미 늦었다.
“미친 새……!”
욕설조차 끝까지 뱉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50대 남자는 그제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몸을 움츠리며 등산 모자를 최대한 눌러 썼다.
남자의 행동에 장내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들도 눈치를 챈 것이었다.
물리력을 동원해도 된다는 것은 힘없는 자들이 게이트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니까.
그 순간, 급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을 바라보던 유혜연과 상소윤이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를 향한다.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러나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는 시간.
어쩌면 오늘이 서로의 얼굴을 보는 마지막일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하지만 상소윤이 조금 더 빨랐다.
“소, 소윤아!”
유혜연이 깜짝 놀라서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상소윤은 이미 원 밖에 있었으니까.
“소윤아! 소윤아! 안 돼!”
유혜연이 뒤늦게 원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한 사람이 선택을 하는 순간, 공간은 닫힌다.
원 밖에 선 상소윤이 침착한 눈빛으로 유혜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엄마, 사랑…….”
잔인하게도, 상소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즉시 사라졌으니까.
[37구역 선택 완료.]
그저 잔인한 심상이 유혜연을 덮었을 뿐이었다.
“소윤아! 소윤아! 날 데려가! 내가 간다고!”
유혜연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소리를 질렀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약 30분 뒤.
모든 구역의 선택이 끝이 났다.
[모든 구역의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페이즈2가 시작됩니다.]
그 짧은 심상이 끝이었다.
관리자도, 일렁이던 건물의 외벽도, 불길한 소음과 공기도, 눅눅한 어둠도.
모든 게 사라졌다.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여름의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평온한 일상의 공간이었다.
유혜연은 핸드폰을 들어 상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남편은 딸을 사랑하고, 돈이 많다.
그러니 무슨 방법이든 찾아낼 것이었다.
그럴 것이었다.
-응, 여보.
그러나 눈물이 흘러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 * *
진유성과 상림은 군부대나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동대문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에 꽉 막힐 서울의 교통을 고려해, 경공을 써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DDP 인근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벽면에 끌려갔던 이들 모두가 시신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고, 유려한 곡선을 자랑했던 건축물의 일부는 부서져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원 안에서 치고받고 싸웠던 이들 중에는 꽤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상대를 밀어내는데, 상대가 손에 들고 있던 열쇠 따위로 얼굴을 긁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꽤 많은 이들은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누군가를 사지(死地)로 밀어 넣고 살아남은 이들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 공포에 사로잡혀서 도망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진유성과 상림에게는 주변 광경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유혜연이다.
“여, 여보! 혜연아! 유혜연!”
상림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DDP 인근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도 유혜연이 받질 않는다.
유혜연을 찾아낸 것은 진유성의 기감이었다.
상림이 빠르게 달려가서 바닥에 주저앉은 유혜연을 일으켰다.
망연자실한 유혜연의 얼굴에는 슬픔과 체념이 어려 있었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게이트에 끌려 들어간 이상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나 때문에……. 소윤이가 나 때문에…….”
유혜연은 상림을 보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오열했다.
상림도 유혜연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진유성은 유혜연의 눈물을 보며 가슴이 아팠고, 상소윤이 무사하기를 원했다.
그 순간, 상림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DDP 주변을 훑었다.
이상하다.
게이트가 보이질 않는다.
본래 게이트가 탄생하면 허공에 타원형의 빛이 맺혀 있어야 하는데,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 게이트가?”
상림은 내심 진유성을 믿고 있었다.
진유성은 게이트를 찢고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상소윤이 게이트에 빨려 들어갔다 하더라도 진유성이 구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소윤은 대체 어디로 끌려갔단 말인가?
그리고, 진유성은 어떻게 상소윤을 구해야 한단 말인가.
불안함이 극에 달한 상림이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교, 교주님! 게이트가 없어요! 게이트가 없다고요!”
상림의 비명에 이성을 잃고 있던 유혜연이 뒤늦게 진유성을 발견했다.
“소윤이! 우리 소윤이 구할 수 있는 거죠? 그쵸?”
당황한 남편이 목소리를 높이며 진유성에게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이상하다.
남편이 진유성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교주님이란 이상한 호칭을 쓰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유혜연은 그런 것에 반응할 힘이 없었다.
그녀의 딸이 없어졌으니까.
세상을 살아갈 의미가 없어졌으니까.
그 순간, 진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림아. 천라멸문에 쫓기던 때를 기억하느냐?”
“네?”
“네가 아는 것과 다르게, 천라멸문은 단 한 명의 생존대원도 죽이지 못했다.”
“그게 무슨…….”
모두들 천라멸문의 손에 생존대원의 반이 죽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천라멸문의 손에 죽은 게 아니었다.
진유성의 손에 죽었다.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을 더는 볼 수 없어서 원하는 대로 해 준 것뿐이었다.
“나의 품에서 생을 갈망한 이들 중에는 죽음을 맞이한 이가 없다.”
죽기를 원한 이들은 죽었으나, 생을 갈망한 이들은 모두 살려 냈다.
진유성의 품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놈은 수명뿐이었다.
“상소윤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담담한 선언과 함께 진유성이 입멸검을 빼 들었다.
그리곤 휘둘렀다.
이윽고, 진유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