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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47화 (247/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47화>

하지만 지종수는 남산에 도착하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 이게 무슨?”

진유성과 상소윤이 커플룩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서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데, 잘 어울렸다.

무더운 8월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란 것만 제외하면 말이었다.

어찌나 잘 어울렸던지 남산의 이용객들이 지나가면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물론 지종수에게도 이성이 있으니, 두 사람이 쇼핑몰을 카탈로그를 위해 입은 옷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나도 할래!”

지종수가 헐레벌떡 상소윤에게 다가가는 순간, 정새롬이 인상을 팍 썼다.

“아, 뭐 해.”

몇 시간째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정새롬은 꽤 지친 상태였다.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 있어. 더우니까 빨리 끝내게.”

정새롬의 반응을 본 지종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꿍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주변을 오가며 진유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감시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다.

진유성이 몸이 상소윤에게 닿지 않는지를 눈에 불을 켜고는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서 있을 뿐, 별다른 접촉은 없었다.

마음의 평온을 찾은 지종수는 멍하니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문득 진유성의 신체가 완벽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종수와 진유성의 키는 비슷하지만, 비율과 밸런스가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바로 서 있다고 생각해도 막상 카메라로 찍어 보면 구부정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유성은 아니었다.

눈으로 봐도, 카메라로 봐도, 그림같이 꼿꼿하다.

그렇다고 경직되어 보이냐면 그것 역시 아니다.

멈춰 서 있지만, 금방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지종수는 분명 상소윤을 보려고 왔지만, 자꾸 진유성이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지종수뿐만이 아닌 듯했다.

진유성에게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종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주변을 오가던 사람 중 몇몇이 진유성에게 다가가서 명함을 건넸다.

그들은 쇼핑몰이나 잡지사처럼 모델이 필요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그 모습을 본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나한테는 안 주지? 내가 사장인 게 티 나나?”

그동안 수많은 기획사들의 명함을 받았던 상소윤으로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정답은 정새롬이 알고 있었다.

“연예인이랑 쇼핑몰 모델은 다르지. 얼굴은 포토샵이 되잖아.”

“몸도 되잖아?”

“어느 정도지. 많이 건드리면 부자연스럽거나 주변 사물들이 일그러지거든.”

“아, 그런가?”

“근데 쇼핑몰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나? 아무리 남산이 촬영 명소라지만, 벌써 네 명이야.”

“나 망하는 거 아니야?”

그때 명함을 받아 온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 마라. 완벽한 피사체를 쓰는 만큼 경쟁에서도 유리할 테니.”

“야, 진유성. 너 다른 쇼핑몰 가서 사진 찍으면 안 돼. 알았지?”

“안 되는 건 아니다. 독점 계약이 아니었으니.”

“아, 그런 게 어딨어. 안 돼, 안 돼.”

“하는 걸 봐서 결정하마.”

“아, 제발요.”

진유성은 간만에 저자세로 나오는 상소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 상소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진유성은 상소윤의 쇼핑몰이 아니었다면 억만금을 줘도 사진 모델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차피 그는 조 단위의 부자이니 말이었다.

진유성이 흔쾌히 모델을 해 준 것은 상소윤을 위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상소윤은 게이트에 들어갔었다.

거기서 생명의 지대한 위협을 느꼈고, 인간에 대한 극렬한 불신을 경험했다.

상소윤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이가 아니다.

당연히 게이트 안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상림의 성정을 이어받은 덕분인지 큰 티는 나지 않지만, 종종 악몽을 꾸는 듯했다.

그래서 쇼핑몰을 도와주는 것이다.

상소윤이 DDP에 방문했던 이유가 쇼핑몰이니, 최종 결과가 좋으면 좀 더 빨리 트라우마를 떨쳐 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상소윤을 위하는 마음 말고도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정새롬.”

“엉?”

“끝나 가느냐?”

“끝내려면 지금도 끝낼 수 있지. 난 전문 사진사가 아니라서 최대한 많이 찍는 거야.”

“그럼 적당히 끝내고, 사진이나 한번 찍자꾸나.”

“응? 또 무슨 사진을 찍어?”

“다 같이 찍잔 말이다. 지종수와 심도훈도.”

진유성답지 않은 말에 정새롬이 상소윤을 쳐다보았다.

평소 같으면 상소윤이 갑자기 감수성이 폭발했냐고 놀릴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소윤은 진유성을 가만히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찍을까?”

“장소를 옮길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그렇게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부탁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진유성은 사진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오늘도 박색한 상소윤과 상소윤을 쳐다보는 지종수가 재밌어서였다.

남들보다 긴 삶을 살았던 진유성이 중원에서 절실히 후회했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기억력을 너무 맹신한 것이었다.

진유성은 오성이 너무나 뛰어나 한 번 읽은 것을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고, 한 번 눈으로 본 것을 떠올리지 못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친우들과의 초상화를 남긴 적도 없었고, 추억이 담긴 물건을 보관한 법도 없었다.

물론 대명제국을 일통한 천마신교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혼자서만 이토록 오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었다.

그러나 분명 환골탈태 때문에 남들보다 수명이 길 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은 뭔가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다.

잊어버려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3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나고, 마침내 100년이 지났을 때 알았다.

여전히 대부분의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기억하는 것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라는 걸.

그는 서역으로 떠나던 상림이 지구가 평평하니 바닷길을 잘못 들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어쩌지 걱정하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진 못했다.

다시 상림을 만나서 그날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그래서 진유성은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나고, 다시 100년이 지났을 때.

지금의 사진들을 보면 오늘이 떠오를 거니까.

진유성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독일에 다녀온 뒤부터였다.

베를린 S급 게이트에서 멀더를 만나기 전까지는 멀더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니까.

상소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심도훈이 입을 열었다.

“끝난 것 같은데 이제 갈까?”

“종수야, 너 차 가져왔어?”

“응. 공영 주차장에 대 놨어.”

“옷 좀 트렁크에 넣어도 되지? 짐 싣고 밥 먹자.”

그렇게 그들은 사진 촬영을 위해 골랐던 장소를 벗어나 공영 주차장으로 향했다.

별말 없이 걷고 있던 중, 진유성이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낮에는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제법 있었는데, 저녁때가 되자 여자들이 엄청나게 많다.

“남산이 아니라 여산이구나. 여자들밖에 없군.”

“…….”

19살이 선보였다고는 믿기지 않는 말장난에 친구들이 인상을 팍 썼다.

지금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해산했지만, 그들은 전부 반 진유성 연합군 소속이었던 이들이다.

당연히 진유성을 비난할 수 있는 건더기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연적인 지종수는 더더욱 그랬고.

세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진유성을 비난하려는 순간.

상소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너무 재미있다면서 진유성을 칭찬한다.

정새롬, 지종수, 심도훈은 순간 상소윤이 더위를 먹었나 싶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웃는 척을 하는 상소윤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억지로 웃어 주는 모양새였다.

그것을 모르진 않을 것인데, 진유성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상소윤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유성, 유성, 유성 머니.”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쇼핑몰 홈페이지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서 추가로 돈을 빌린 상소윤 채무자의 비애였다.

* * *

지종수의 차에 옷을 싣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은 다섯 사람은 번화가에서 고민했다.

방학 중이라 제법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데,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웠다.

그렇다고 카페에 가서 앉아서 수다를 떨자니, 그것도 지겨웠다.

“사람 수도 다섯이라서 애매하네.”

“뭐 하지?”

한동안 고민하던 그들은 근처에 보이는 오락실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노래방으로 향했다.

딱히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었다.

다들 돈이 많다고 해서 언제나 특별한 방식으로 노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개중 한 명.

지종수는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진유성과 친해질 당시 홍대에 놀러 갔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진유성의 재력에 놀랐고, 진유성의 다재다능함에 놀랐지만, 그보다 그를 더 놀래킨 것이 있었다.

“그 노래는 부르면 안 된다.”

“왜?”

“상소윤이 어디 가서 절대 부르지 말라고 했다.”

바로, 상소윤의 취향이었다.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자신 있게 <한오백년>을 선곡한 지종수가 구성진 가락을 뽑아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

지종수의 노래를 들으며 진유성은 오랜 만에 인스타그램을 켰다.

역시 이 노래는 옛날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ㄱi억 ㄴrㄴi... 그 추억들...]

지종수와 진유성이 하는 짓을 보고 있던 친구들은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이 수치를 느끼는 대상은 지종수도 아니고, 진유성도 아니었다.

‘뭔가 내 현실 감각이…….’

‘망가진 거 같아…….’

저 두 사람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나 자신이었다.

* * *

방학이 보름 밖에 남지 않은 8월의 둘째 주.

마침내 상소윤의 쇼핑몰이 오픈을 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쇼핑몰 이름은 유니 셀렉샵(Yooni Select Shop).

멋들어진 이름을 짓고 싶어서 오그라드는 단어를 찾아 헤매는 상소윤을 보다 못해 유혜연이 추천한 이름이었다.

단어 그대로 상소윤이 선택한 옷이란 뜻이었다.

쇼핑몰은 본래 레드 오션 시장이었기 때문에 사업의 시작 단계에는 버티는 것이 중요했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한 번쯤 기회가 오는데, 그 기회를 얼마나 꽉 붙잡느냐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소윤도 괜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됐다.

엄청난 주문량이 쏟아졌다든가, 벌써부터 입소문을 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광고를 한 것치고는 주문량이 꽤 많았다.

상소윤은 외모 때문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많았는데, 거기다가 홍보를 한 덕분이었다.

덕분에 상소윤은 바빴다.

지금은 배송 관련 업무도 본인이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직원을 써야겠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직원을 쓸 수는 없다는 게 상림의 조언이었다.

하지만 상소윤은 육체적인 바쁨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즐거웠다.

자신이 발품을 팔아서 고른 옷들이 누군가에게 팔린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상림과 유혜연도 기뻤다.

그동안 커서 뭘 할지 걱정하던 그들의 딸이 일을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다.

설령 나중에 쇼핑몰을 사업을 접는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경험은 값진 것이었다.

이제 유혜연의 고민거리는 딱 하나였다.

‘계획을 수정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녀의 원대한 계획에는 본래 진유성이 사윗감이었다.

하지만 진유성과 관련된 진실을 알고 나니 애매한 감이 있다.

사실 유혜연은 진유성의 나이나 특이한 점들은 별론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상림과 진유성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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