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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69화 (26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69화>

* * *

아이스크림을 사온 지종수가 공손한 태도로 진유성에게 진상했다.

하지만 진유성은 아이스크림을 받는 대신 지종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왜? 다른 거 사올까?”

“그게 아니다.”

“그럼?”

“쯧쯧. 이리 아둔해서야.”

진유성이 고개를 까딱한다.

“포장지를 벗겨야 먹지 않겠느냐?”

“…….”

지종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첫날에는 애원을 하고, 둘째 날에는 협박을 하고, 셋째 날에는 화를 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

그 다음으로 선택한 것이 아부였다.

이건 좀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지종수는 며칠 동안 진유성의 비위를 맞췄고, 진유성의 강경한 태도도 조금씩 유해졌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거의 다 왔는데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그럼. 당연히 포장지 채 먹을 수는 없지. 돼지 새끼도 아니고.”

“단어 선택이 천박하구나.”

진유성이 눈살을 찌푸리자, 지종수는 더 말이 나오기 전에 허겁지겁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벗겼다.

진유성이 양반이라도 된 것처럼 어흠, 어흠 하더니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 유성아.”

“왜 그러느냐?”

“메모리 카드는 언제 받을 수 있을까?”

“흐음…….”

진유성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더니 뭔가를 꺼내서 허공으로 튕겼다.

빠른 속도로 휘리릭 도는 저것은 메모리 카드가 분명했다.

지종수는 첫날에 아빠한테 불려가서 엄청나게 혼났다.

지종수는 공부는 더럽게 못하면서, 꼴에 3대 독자였다.

그런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지종수는 분노한 아빠 앞에서 필사적으로 사실 관계를 어필했다.

친구들과 몰래 카메라에 대해 상의했던 지난 메시지도 보여 줬고, 전후 사정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설명은 먹혔다.

이건 지종수의 아버지가 지종수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이 상소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불의의 사고로 진유성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못했던 지종수에게 전화를 건 심도훈이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지종수의 아버지는 이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일말의 의심은 거두지 않았다.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까 심도훈과 입을 맞췄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종수에게는 밀실 고백 사건의 유일한 증거물인 메모리 카드가 꼭 필요했다.

아빠한테도 블랙 박스 영상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고.

지종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소윤이 냅다 진유성의 등짝을 후려쳤다.

물론 진유성은 가볍게 몸을 돌리는 것만으로 상소윤의 공격을 흘려냈고.

“야, 그쯤 했으면 좀 돌려줘라!”

“소윤아…….”

“종수 꾀죄죄한 거 안보여? 딱 봐도 집도 못 들어가고 찜질방에서 자고 있잖아! 씻지도 못하고!”

“…….”

아니다.

지종수는 집에서 잘 자고, 잘 씻고 있었다.

물론 왜 이렇게 블랙 박스 영상을 안 가져오는지 눈치를 주는 아빠 때문에 심신이 피곤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건 사실 관계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상소윤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

“흐음.”

상소윤의 구박에 턱을 긁적이면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지종수.”

“어, 어!”

“반성하고 있느냐?”

“당연하지!”

“너의 마음을 어떻게 증명하겠느냐?”

“네가 매점에 다녀오라고 하면, 대정고에서 게이트가 터져도 다녀올게!”

“흠.”

어차피 진유성에게는 여러 명의 매점 심부름꾼들이 있기에 구미가 당기진 않았지만, 딱 한 번만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내가 내려 주는 물건을 공손히 받도록.”

“다, 당연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진유성이 아이스크림을 문 채로 지종수에게 메모리 카드를 내밀었다.

진유성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메모리 카드를 재빨리 낚아챈 지종수가 곧장 태도를 바꿨다.

“야, 이 더러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켄타우로스냐?!”

옆에서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심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켄타우로스가 뭐야?”

“인간 말종!”

“오, 지종수 씨는 우리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그의 손에 쥐어지는 합격 목걸이.”

심도훈과 고인수가 시시덕거리는 걸 보며 지종수는 소중히 메모리 카드를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부러지기라도 할까 싶어서 냉큼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종수야.”

진유성이 성을 떼고 이름을 부르는 걸 처음 들어본다.

지종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호선을 그리고 있는 진유성의 입술과 잔잔한 미소.

언뜻 보이는 새하얀 치아.

모든 것이 평온한 얼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꺼림칙했다.

“왜, 왜?”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 그런 거 못 배웠어?”

“뭐?”

진유성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진유성의 손에 있는 것은…….

메모리 카드였다.

깜짝 놀란 지종수가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진유성의 손에 들린 게 진짜라는 걸.

지종수는 단 몇 초 전의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용물을 확인했어야했다.

진유성을 욕하더라도 그 이후에 했어야 했다.

지종수가 아득한 절망에 바스러지는 순간이었다.

진유성이 손에 들린 메모리 카드를 지종수에게 건넸다.

“이걸 왜……?”

“어차피 주려고 했다. 장난 좀 치려고 하나 더 준비해본 거다.”

“…….”

지종수는 믿기 힘든 진유성의 호의에 의심부터 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몸이 더 빨랐다.

가방을 뒤져서 메모리카드 리더기를 꺼냈고, 태블릿 PC에 곧장 연결했다.

그 안에는, 지종수가 간절히 원하던 그 영상이 있었다.

“야, 뭐냐. 지종수 연기 잘한다.”

“그니까.”

“아버지가 깜빡 속을 만하네.”

태블릿 PC에 얼굴을 들이민 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지종수는 진유성에게 다가갔다.

“고, 고마워.”

“됐다. 내가 장난이 지나쳤지.”

“그, 아니야. 내가 먼저 했는데.”

“나는 그런 장난을 싫어하니, 다음부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하지!”

이미 지종수는 진유성에게 크게 감동한 상태였다.

상소윤은 문득, 지종수와 진유성을 보며 아빠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진유성…… 은 사람을 들었다 놨다를 잘 해.”

“어떻게?”

“사람을 극한까지 갈구다가, 딱 포기하는 순간 갑자기 호의를 베푸는 거지.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

“화가 좀 덜 나나?”

“아니지. 화가 풀려 버려. 뭔가 되게 고맙고, 저 사람이 나한테 베푼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그래?”

“그래. 그게 놈의 노림수야. 그러니 딸아. 너도 조심해야 한다.”

상소윤은 당시 아빠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니 알겠다.

지종수는 억지로 아부를 해야 했던 때보다 몇 배는 격렬하게 아부를 하고 있었다.

* * *

“자, 오늘은 도로 주행을 할 겁니다. 혹시 긴장되시나요?”

30대 초반의 운전 면허 학원 강사의 말에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진유성은 이미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면허 학원의 강사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레이싱 선수들보다 훨씬 운전을 잘할 것이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진유성의 체술은 입신의 경지에 올랐는데, 체술의 기본은 신체를 통제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는 단순히 하고, 하지 않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10의 행동을 했을 때, 정량적으로 100이란 결과값이 나온다고 치자.

평범한 사람들이 50의 결과값이 나오도록 정확히 5의 행동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얼추 비슷한 결과를 낼 수는 있어도 정확히 얼마만큼 신체를 움직여야 얼마만큼이 나온다는 걸 통제하진 못한다.

그러나 진유성은 결과값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운전에도 적용된다.

진유성은 핸들을 돌리고, 페달을 밟는 것을 감으로 하지 않는다.

정확한 투입량을 대비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정확히 안다.

그러니까 운전 학원의 강사가 진유성한테 주차를 정말 잘한다고 감탄한 것이었다.

진유성은 2대의 차를 주차시켜서 그 틈새에 A4 용지가 끼도록 만들 수 있다.

진유성이 하는 것을 운전을 배우는 게 아니라,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나라에 양해를 구하는 것뿐이다.

“긴장이라. 참으로 낯선 단어군.”

“……그런가요?”

“아마 백 년 전쯤에는 느껴 봤던 것 같아요.”

“그, 그렇군요.”

강사는 기능 교육 때부터 느꼈지만, 진유성이란 학생이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운전 학원에서 일을 한 지 1년밖에 안 되긴 했지만, 아마 평생 일해도 이런 학생을 만나진 못할 것 같다.

‘얼굴은 멀쩡히 잘생겼는데 말이야.’

강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로 주행에 필요한 주의 사항과 교육을 실시했다.

상림이 등록해 준 면허 학원은 프리미엄이라서 모든 과정이 일대일이다.

“자, 그럼 도로로 나가 볼까요?”

약간 설렌다.

자동차는 진유성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기물이었다.

천신궁 게이트를 통과해 처음 봤던 것도 사람이 아니라, 새벽의 도로 위를 내달리는 택시들이었고.

“아까도 말했지만, 위험한 상황에는 제가 브레이크와 핸들을 조작할 수 있으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하세요.”

강사의 말처럼 도로주행용 차량은 보조석에 브레이크와 핸들이 있는데, 운전석의 것과 동시에 입력되면 보조석의 입력이 우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진유성은 보조석의 물건들을 쓸 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운전을 매우 잘하니까.

그렇게 진유성은 생애 최초로 도로 위로 차를 몰고 나왔다.

일요일 오전 10시라서 그런지 도로는 한산했다.

진유성은 아주 능숙하게 도로 위를 달렸고, 강사는 만족했다.

한 10년 운전을 했다고 해도 믿겠다.

하지만 운전을 잘한다고 면허 시험에 붙는 건 아니다.

실제로 학생들 중에는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돼서 다시 면허를 취득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운전을 잘하는 이들임에도 면허 시험에서 꽤 잘 떨어지곤 했다.

도로 위에서 운전할 때는 감점이 없지만, 시험에서는 감점이 있으니까.

“속도 낮추세요. 이 속도면 감점이에요.”

“에이, 어차피 연습인데.”

“그래도 실전처럼…….”

“아,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평소 기가 약하단 소리를 많이 듣는 강사는 진유성의 묘한 반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못했다.

사실 학생이 운전을 조금만 못했어도 강제로 차를 멈추겠는데, 운전을 너무 잘한다.

그 사이, 도로 주행용 자동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잠깐!”

뛰어난 운전 실력 탓에 바로 캐치를 못했는데, 속도가 너무 빠르다.

강사가 속도를 낮추려는 순간이었다.

빵- 빵- 빵!

도로 위를 꽤 빠른 속도로 달리는 1종 보통 면허 취득용 트럭이 웃겼는지, 아니면 거슬렸는지.

비싼 스포츠카 한 대가 후미에 나타나더니 후레쉬를 깜빡거리며 경적을 울렸다.

흔히 운전자들이 ‘똥꼬를 찌른다.’라고 표현하는 행위였는데, 일종의 도발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은 열이 받았다.

진유성은 기감이 민감하기 때문에 스포츠카의 차주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차주가 보조석의 친구에게 하는 말은 90%가 욕을 섞어 진유성을 모욕하는 말이었다.

“건방지군.”

진유성은 엑셀을 거세게 밟으며 트럭을 추월하려는 스포츠카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 잠깐만요! 여기로 가면 안 돼요!”

게이트 사태 이후 재정비한 도로 중 제한 속도가 가장 높은 곳이 있다.

평소에는 분당에서 강남 쪽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지만, 차가 없는 새벽에는 스포츠카 동호회의 주요 트랙이 되는 곳.

수직로.

진유성이 수직로로 트럭을 몰고 가자 강사가 어쩔 수 없이 핸들을 조작했지만.

보조석의 핸들은 작동하지 않았다.

진유성의 내공이 꽉 붙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우우우웅-!

“감히 날 제치겠단 말인가!”

진유성의 거친 고함과 함께 트럭은 스포츠카를 달고 수직로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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