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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79화 (27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79화>

* * *

사람들은 F-1이 모터 레이싱이기 때문에 신체적인 피지컬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F-1은 목숨을 건 경쟁을 평균 시속 250~300km의 초고속에서 수행하는 스포츠다.

상대를 추월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담력.

모든 상황을 찰나에 확인하고 생각해 실행에 옮기는 동체 시력과 순간 판단력.

엄청난 횡가속력을 견디며 머신을 조작하기 위한 근력.

오랜 시간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체력과 지구력 등등.

생각보다 많은 운동 능력을 요구하는 스포츠가 바로 F-1였다.

이런 모든 조건에 이상적으로 부합하는 레이서, 워츠 마이빅.

그는 피트에서 인사를 나눈 진유성이란 한국인의 신체 조건이 꽤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레이싱 슈트로 갈아입기 전에는 마른 것 같았는데, 슈트로 갈아입으니 실용적인 작은 근육들이 온몸에 가득하다.

‘키만 10cm 정도 작았으면 최적의 신체 조건이었겠군.’

F-1은 규정상 체중 80kg 미만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다.

즉, 앞선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피지컬을 가지면서도 80kg 미만이려면, 신장이 작은 편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F-1 레이서들의 평균 신장이 170cm 전후인 것이었다.

사실 1년 팀 유지비가 3,500억이 넘는 종목의 특성상, F-1은 부자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는 스포츠다.

실력이 좋아도 스폰서가 붙지 않으면 선수 생활을 이어 갈 수 없다.

그래서 부친이 팀을 산 덕분에 아들이 데뷔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팬들에게 ‘페이 드라이버’라는 조롱을 받게 되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페이 드라이버로 시작했더라도 성적만 잘 내면 팬들은 환호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워츠 마이빅은 진유성이 F-1 드라이버가 되는 게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부친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월 인터내셔널 서킷의 전체 후원금 순위를 한 단계씩 내려 버릴 정도의 재력가니까.

‘랩 타임을 두고 경쟁하고자 했던 걸 보면, 마냥 취미는 아니겠지.’

워츠 마이빅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침내 연습 주행 신호가 떨어졌다.

F-1의 머신들은 초경량 고출력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편의를 위한 기계들이 부착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시동을 걸기 위한 스타트 모터도 따로 있는데, 이런 조작 방법들은 머신 종류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이번 연습 주행은 두 레이서가 머신에 익숙해지기 위함이었다.

적응 조건은 똑같았다.

워츠 마이빅도, 진유성도 처음 타 보는 머신이니까.

브으으응!

핏 개러지에서 마이빅의 차가 출발했고, 뒤이어 진유성의 차가 출발했다.

‘잘 타는데?’

마이빅은 트랙을 따라 슬슬 달리며 진유성이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타 보는 머신일 텐데, 꽤 능숙하다.

변속과 코너링이 제법이며, 속도를 내야 할 때는 확실히 낸다.

무엇보다 초보자들에게 보이는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

승용차로 고속도로에서 150km를 밟을 수 있는 일반인들 열 명을 데리고 F-1 머신을 타게 하면, 열이면 열 명 다 시속 100km도 내지 못한다.

속도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타이어가 노면을 읽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고, 코너링을 할 때마다 중력 가속도의 압박을 받는다.

아무리 수퍼 A 라이센스를 땄다고 하더라도 실제 레이싱에서는 초보일 텐데, 자질이 보인다.

‘다음 랩 때 속도를 좀 내 볼까?’

그렇게 워츠 마이빅은 첫 바퀴를 돌면서 트랙의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곤 첫 바퀴가 끝나 갈 때.

그는 가상의 레코드 라인을 설정했다.

레코드 라인.

한 바퀴의 트랙을 가장 빨리 돌 수 있는 가상의 선.

상상 속의 레코드 라인과 실제 최단 라인이 얼마나 부합하느냐가 레이싱 선수의 자질 중 하나였다.

브아아앙!

머릿속에 세운 가상의 선을 따라 워츠 마이빅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속도가 올라가자, 서킷 베이스에서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감독 크리스찬 바그너가 눈을 빛냈다.

그는 벌써 이름도 까먹은 한국인 후원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새 시즌을 준비하는 워츠 마이빅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심이 있지.

후원자와 함께하는 만큼 적당한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브아아아아아앙!

얌전히 마이빅의 뒤를 따르던 한국인 후원자의 머신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마이빅을 추월하겠다는 명백한 도전 의사가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마이빅이 위험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러나 감독은 자신의 바람이 통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계 제일의 선수이다.

그런 선수가 얼마나 강한 경쟁심과 향상심을 가지고 있겠는가.

연습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뒤차가 자신을 추월하려는 걸 본능적으로 견디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부아아아아앙!

마이빅도 뒤따라오는 차에 맞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머신의 출력 자체는 동일.

남은 것은 변속과 코너링 테크닉.

그것을 완벽히 수행하는 능력.

실수를 하지 않는 담력.

무수한 우승으로 견고해진 경험.

워츠 마이빅은 이런 모든 요소를 완벽히 갖춘 선수다.

팀 단위 레이스에선 종종 패배하지만, 개인 레이스에서는 차체의 결함이 아니라면 패배하는 경우가 드물다.

감독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란 요소를 제외하면, 워츠 마이빅은 진유성을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경험조차 진유성이 앞설 수도 있었다.

레이싱 경험은 없지만, 진유성은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서 무수히 많은 역전을 해낸 경험이 있으니.

“어?”

감독 옆에서 딴짓을 하고 있던 워츠빅의 팀 메이트가 뒤늦게 경기에 반응을 보였다.

3개의 S자가 촘촘히 연결된 난코스를 직전에 두고 한국인 후원자가 속도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이빅을 추월하기 위해 인코스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었다.

‘여기서 인코스라고?’

S자는 첫 번째 라인을 인코스로 들어가면 두 번째 라인을 아웃코스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인아웃은 랩 타임에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 용기가 있을까?’

완벽히 라인을 커버며 달리는 마이빅의 머신 옆으로 파고드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마 거대한 두 대의 트럭 사이로 오토바이를 밀어 넣는 기분일 것이다.

분명 지나갈 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차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는.

하지만 그때.

“아!”

감독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한국인 후원자의 머신이 절묘한 틈새로 인코스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서킷 베이스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진유성이 운전하는 머신의 차체의 균형이 살짝 뒤틀렸다.

나란히 트랙을 달리고 있는 워츠 마이빅은 그게 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수가 아니었다.

진유성은 온몸을 왼쪽으로 기울이고, 핸들을 아주 미묘하게 털어서 의도적인 불균형을 만들어 냈다.

일전에 지종수에게 보여 줬던 관성 드리프트와 원리는 같지만 훨씬 섬세한 기술.

그리고 이어진.

직선 가속.

브아아아아아앙!

“……!”

“말도 안 돼!”

감독과 팀 메이트가 깜짝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로 절묘한 컨트롤이었다.

“플루크(우연)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절묘하지 않았나요? 코너의 길이를 이용하는 게.”

“하지만…….”

저건 알아도 할 수 없는 기술이다.

아무리 F-1 레이서들이 노면을 읽으며 머신을 내 몸처럼 움직인다고 하지만, 머신은 손이나 발이 아니다.

그 반응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금의 컨트롤을 해내기 위해서는 차체의 불균형과 노면의 마찰력을 절묘하게 맞춰야 한다.

이는 말 그대로 만화나 영화에서 존재하는 기술에 가까웠다.

그런 생각이 든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연습 주행 두 바퀴가 끝이 난다.

서킷 개러지에서 머신을 정비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랩 타임을 측정하게 된다.

본래는 그사이에 후원자와 선수가 대화를 나눈다.

대화라곤 하지만 선수의 일방적인 가르침이다.

어떤 라인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달렸고,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그리고 감독은 그 대화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감독이 서킷 베이스에서 개러지 쪽으로 향하자, 호기심을 느낀 팀 메이트도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거기서 목격한 것은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었다.

한국인 후원자가 워츠 마이빅을 독일어로 혼내고 있었다.

“야, 너 똑바로 안 해?”

“똑바로?”

“아까, 내가 너 추월할 때 일부러 비켜줬 지?”

사실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긴 했다.

마이빅이 머신 헤드를 들이밀었다면 그렇게 깔끔한 추월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니.

“이봐, 한국 친구. 내가 안 비켜 줬으면 넌 위험했어. 카운터 스피어를 쓸 거면 범프를 확실히 체크했어야지.”

마이빅은 진유성에게 감탄했기에 상세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감탄은 현 시점에서의 실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유성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대한 감탄에 가까웠다.

이 말인즉슨, 워츠 마이빅은 현시점에서 자신이 진유성을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0.001초까지 랩 타임을 재는 F-1의 특성상 최고 출력의 70% 정도로 달린 연습 경기는 말 그대로 몸풀기이기 때문이었다.

“뭐라는 거야? 카운터 뭐?”

“일부러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살짝 틀었지?”

“당연하지.”

“하지만 불균형한 요철까진 체크하지 않았고.”

“체크했는데?”

“체크했다고? 그런 식으로 움직였으면 차체가 돌았을 건데?”

“네가 안 비켜 줬으면 난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어.”

비상식적인 소리에 감독과 팀 메이트, 그치고 워츠 마이빅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진유성이 답답하다는 듯 자신이 했었던 생각을 말해 주었다.

그 말에 워츠 마이빅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지금, 더티 에어로 에이팩스의 에어로다이나믹스를 의도했다고? 그걸 믿으라고?”

“…….”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의 향연에 진유성이 멈칫하다가 뒤늦게 멀더의 술법을 사용했다.

이미 독일어를 쓸 수 있기에 사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독일어로만 말할 뿐 새로운 언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진유성은 워츠 마이빅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말도 안 되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때 서킷 개러지에서 머신의 점검과 주유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진유성이 헬멧을 쓰며 말했다.

“제대로 해. 실망시키지 말고.”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개러지를 나서자, 워츠 마이빅이 감독을 쳐다보았다.

감독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감독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일단 그는 워츠 마이빅이 패배감을 느끼는 걸 용납할 수 없다.

위닝 멘탈리티는 쌓기는 어렵지만 깨지기는 쉬우니까.

그러니까 워츠 마이빅은 이겨야 한다.

하지만 만약.

저 동양인 소년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그는 워츠 마이빅을 압도하는 새로운 F-1 선수를 얻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최선의 각오를 다진 마이빅이 머신에 올라탔다.

본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는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진유성의 말을 상기했다.

진유성의 말은 허황됐다.

F-1 머신은 휘발유가 아닌 특수한 기름을 이용한다.

그렇기에 연소되면서 일반적인 공기보다 훨씬 무거운 매연을 뿜는데, 이걸 더티 에어라고 부른다.

더티 에어는 실제로 랩 타임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솔직히 선수들은 체감하기 힘들다.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몸이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티 에어의 열기 때문에 뒤차의 엔진에 빠르게 부하가 걸리는 건 종종 느끼지만.

한데 진유성은 코너를 돌 때 두 대의 차체 사이에 발생하는 더티 에어의 밀도 차이를 이용.

코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 공기를 밀어내는 슬립 스트립의 이점을 봤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더티 에어 구간을 빠져나가는 순간 슬립 스트림의 공기역학이 발생할 수 있긴 하다.

밀고 나가는 공기가 뒤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거니까.

하지만…….

‘그걸 의도할 수 있다고?’

그런 건 그냥 경기 중에 종종 발생하는 우연이다.

말도 안 된다.

워츠 마이빅이 그렇게 확신하는 순간,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브아아아앙!

폴 포지션(스타트 라인의 제일 앞)에서 출발한 마이빅의 머신.

프론트 로(폴 포지션 뒤의 1열)에서 출발한 진유성의 머신.

두 대의 머신이 서킷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연습 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이는 워츠 마이빅이 진심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그걸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재밌겠군.’

그렇게 두 대의 차량이 가속 구간을 지나 변속 구간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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