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99화>
성좌가 심유한 눈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존재다.
누가 봐도 승부는 결정되었으나, 성좌는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압박에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폐부를 쑤시고 들어간 검 때문에 기침을 하면서도 진유성의 집요한 눈동자가 자신을 쫓고 있다.
그는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영원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렇게 죽는다고 해도.
진유성으로부터 범람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마음가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진유성과 성좌는 죽이기로 마음먹은 상대를 두고 구질구질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좌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입을 열었다.
[내, 너에게서 분화한 존재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구나.]
“네 삶은…… 지독히 부끄럽다.”
[내가 인간들을 죽인 것을 말하는 것이냐?]
“살인은…… 나도 저질렀다. 하지만 목적으로 품은 적은 없다.”
진유성에게 살인이란 수단이었다.
대척점에 선 상대를 벤 것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저 살인이란 목적을 원해서 누군가를 죽여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엿본 성좌의 삶은 너무나 파괴적이고, 너무나 참혹했다.
두 존재는 그 차이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고 있었다.
성좌는 진유성의 삶을 엿보며 가장 소중한 ‘--’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 간단한 것인지 몰랐구나.]
“웃기지 마라.”
진유성은 헐떡이면서도 성좌를 비난했다.
진유성도 ‘--’에 대해서 알게 된 순간에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좌를 보니 알겠다.
‘--’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한데 이상한 일이군.]
“뭘 말이냐?”
진유성은 성좌가 하는 말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대화를 이어 갔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회복하고, 기력을 가다듬기 위함이었다.
그때 성좌가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두 사람이 왜 지구에 있는 거지?]
“……뭐?”
[그들이 윤회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태어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지금 무슨 말을…….”
진유성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입신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오성을 품은 인간이다.
성좌가 던진 단 몇 마디의 말을 통해서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성좌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터인데, 구태여 말을 보탰다.
[그들이 네 신성의 출발점이 아니더냐.]
“…….”
[아무래도 네가 잃어버린 신성의 9할은 인(因 : 원인)에 치우친 모양이군.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다니.]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
성좌는 진유성의 삶을 엿보며 알 수 있었다.
진유성과 자신의 신성이 기인한 원인이자, 연유.
화전민 모녀.
그녀들은 진유성의 옆에 있었다.
유혜연과 상소윤이란 모습으로.
진유성과 성좌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화전민 모녀는 중원의 영성에 포함된 인류들이다.
그러니 중원에서 윤회해야 한다.
신주청처럼 영혼체의 상태로 상실의 공간을 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신주청이 이 같은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영혼체의 상태로 벽을 넘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격이 높아지면서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화전민들이 그 같은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일이다.
비정상적인 대부분의 일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의도가 들어가 있다.
그건 아마.
신의 자아, 혹은 그릇.
그 존재가 벌인 일이다.
“영웅이 탄생하도록 온 세상을 난세로 물들였다.”
“때론 방해물을 두었고, 때론 기연을 두었다.”
“간혹 길을 제시하기도 했지.”
“네가 천신궁 뒤뜰에 게이트를 열기 위해 묻어 둔 보석은 나의 진체(眞體)의 일부이다.”
정말 그 존재가 아주 오랫동안 영웅의 탄생을 기다렸고, 영웅의 길을 제시했다면…….
그 끝에는.
“내가 살찌운 돼지를 잡아먹어야겠구나.”
수확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릇.
모든 것을 먹어치울 수 있다.
만약 그 존재가 신성의 인(因)을 먹어치운다면 과(果)는 어찌 되는가.
만약 인(因)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과(果)까지 삼킬 수 있다면.
그릇이 진유성과 성좌의 신성을 먹어치우는 셈이었다.
“……!”
[……!]
상황을 파악한 진유성과 성좌가 동시에 놀랐다.
마침내 그릇이 그리고 있는 거대한 그림을 파악하게 된 것이었다.
이는 진유성만의 위험이 아니다.
성좌는 진유성과 다른 존재가 되었지만, 그 출발점은 같았다.
사실 진유성은 줄곧 압구정에 두고 온 가족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게이트에 들어온 이후 아멜라 메건의 몸을 뒤집어쓴 그릇이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걱정을 버렸다.
등 뒤를 신경 쓰는 무사는 볏짚조차 베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압구정에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시간이 없군.]
촤악-!
성좌가 진유성의 가슴팍에 박힌 검을 횡으로 그었다.
“커억!”
검이 살과 뼈를 가르며 튀어나왔다.
진유성의 정수리로 세상을 양분할 듯한 성좌의 일검이 떨어졌다.
* * *
눈을 질끈 감았던 상소윤이 눈을 떴다.
압구정 전체를 집어삼켰던 회백색의 반구체가 다시 빠른 속도로 밀려나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도윤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상소윤이 마지막으로 진유성을 확인했다.
진유성이 사라져 있었다.
문제는…….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군.”
아멜라 메건을 뒤집어쓴 그릇이 여전히 그들의 보금자리를 침범한 상태라는 것에 있었다.
본디 그릇은 아카샤의 의지 때문에 진유성의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릇은 타트바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이제 아카샤의 의지는 자신을 배척하지 못한다.
“소윤아!”
상림과 아놀드 벡이 황급히 움직이며 상소윤, 상도윤, 유혜연을 등 뒤로 숨겼다.
그와 동시에 무기를 꺼내 들고는 아멜라 메건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멜라 메건은 둘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직 진유성만이 자신과 대적할 수 있다.
인간 세계에서 조금 강한 존재들 따위는 벌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멜라 메건의 얼굴을 한 그릇이 무표정하게 아놀드 벡을 쳐다보았다.
“너의 선량한 의지가 아카샤의 눈을 훌륭하게 가렸구나. 수고했노라.”
“……!”
“악을 잉태하는 선은 악함인가, 선함인가? 내 몹시 궁금하구나.”
그렇게 말한 아멜라 메건이 한 걸음 걸어 나왔다.
상림은 아놀드 벡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멜라 메건이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아놀드 벡이 나가떨어졌다.
그게 다였다.
전 세계에 3명뿐인 SSS급이자, 전 인류에게 황제라고 불리던 아놀드 벡의 심장이 멈추는 데 필요한 행동은.
아멜라 메건이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며 상림은 떨리는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왜, 왜 이렇게 떨리지.’
두렵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자신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강적과 싸우고 무수히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두렵다.
이유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교주님,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도 되찾을 수 있는 겁니까?”
“무슨 말이야?”
“전능의 존재가 전능의 9할을 놓고 넘어와서 힘을 회복했다고 했잖아요.”
“그치.”
“그럼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 아닙니까?”
“갑자기 왜?”
“요즘 무공을 다시 익히면서 드는 생각이, 아무래도 제가 잃어버린 게 무의(武毅)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은 그 어떤 적 앞에서도 시퍼렇게 타오르던 불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천마신교의 3인자였던 상림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이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아멜라 메건이 손을 들었다.
“으아아아앙!”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상도윤이 울음을 터트렸다.
“여보!”
유혜연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빠!”
상소윤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상림이 도를 휘둘렀다.
빛살과도 같은 발도술이 아멜라 메건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베인 것은 아니었다.
가볍게 피한 아멜라 메건이 손을 휘둘렀다.
거력이 날아 들어오고.
까앙!
도의 끝이 부러졌다.
그러나 분명 막아 냈다.
아멜라 메건이 눈을 크게 떴다.
“너…….”
상림의 떨림이 사라져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하잘것없는 인간이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 * *
진유성은 상림을 두고 늘 궁금해했었다.
식물은 몸체가 잘려도, 뿌리만 무사하다면 다시 자란다.
진유성의 경우가 그와 같았다.
그는 상실의 공간에서 9할의 무(武)를 잃어버렸지만, 그 뿌리는 잘리지 않았다.
온전히 나 자신을 보전했기에 다시 무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물의 뿌리를 뽑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같은 식물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
이것은 상림의 경우였다.
상림은 시퍼런 불꽃을 잃어버렸고, 그것은 결코 다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식물이 자랐던 토양은 변하지 않은 게 아닌가.
그러니 그 위에 다시 한번 씨앗을 뿌릴 수 있다면 어찌 될까.
발아해서 꽃을 피울 것인가?
씨앗채로 썩어 버릴 것인가?
진유성은 늘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
꽃이 자라났다.
* * *
상림의 도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아멜라 메건은 도의 영역을 가뿐히 넘나들었지만, 기분이 불쾌해졌다.
자신은 신의 자아에서 비롯해 모든 것을 포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 따위가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대적하겠다는 마음조차 품어서는 안 된다.
“감히!”
콰과과과광!
아놀드 벡처럼 상림을 상대할 수 없었던 아멜라 메건이 기운을 뿜어냈다.
상림의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상림의 씨앗은 진유성이 뿌렸다.
“상림아.”
“어떤 상황이 닥친다면, 그리고 그게 버겁다면…….”
“옥천문의 해검봉을 떠올려라.”
옥천문의 해검봉.
그곳은 상림의 죄가 기록된 것이다.
정사지간의 옥천문은 생존대원들을 가엽게 여겨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길을 열어 주고자 했다.
하지만 길을 열기 위해서는 조사들의 위패를 모시는 해검봉으로 지나가야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옥천문이 해검봉을 지날 때 해검(解劍 : 검을 풀어놓다)을 요구한 것이었다.
생존대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다.
전 중원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호의를 받아들여서 검을 풀어 놓으라고?
이게 함정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
그러나 진유성은 옥천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주!”
모두가 진유성을 설득하려 했지만, 진유성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상림이 오해를 했다.
촤아아악-!
어린 옥천문의 제자 중 한 명이 상림에게 월병을 건네주려는 걸 암기로 오해하고 제자를 베어 버렸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고, 생존대는 옥천문의 일대제자들을 다수 베어 내고는 해검봉을 통과했다.
조사들의 위패를 짓밟으며.
진유성은 그 뒤로 단 한 번도 그날 상림의 성급함을 탓한 적이 없었다.
진유성은 이미 벌어진 잘못을 책망하는 대주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림은 아주 오랫동안 깊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옥천문은 정말로 그들을 보내 주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상림은 가슴에 뜨거운 불꽃을 갖게 되었다.
전투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
상림을 천마신교의 3인자로 만들어 준 힘.
사실 그 냉철함과 죽음으로 뛰어드는 과감함은 죄책감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상림은 아멜라 메건을 상대로 수백 초를 버텨 냈다.
하지만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그리고.
쩌저저저정!
도가 산산조각 났다.
상림은 도가 부러지는 잔해로 주먹을 날렸지만.
꽈앙!
그보다 빠른 아멜라 메건의 손이 상림의 머리를 산산조각 내기 직전.
취이이이이익-!
상림의 주머니에게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놀랍게도 그 연기는 아멜라 메건의 공격을 막아 냈고, 아멜라 메건을 뒤로 튕겨 냈다.
“잘 버텼다. 상림.”
연기 속에서 한 명의 인간이 나타났다.
* * *
“그걸 잘 가지고 있어라.”
“예?”
“손에 들린 것.”
뒤늦게 손을 보니 상림은 차 키만 움켜쥐고 있던 게 아니었다.
차 키와 함께 아주 작은 구슬 같은 것이 함께 있었다.
“이게 뭡니까?”
“미혹된 시간 안에서 교분을 나눴던 친우에게 주는 것이다.”
* * *
그는, 신주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