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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4화 (31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4화>

*   *   *

진유성은 심도훈과 계약서를 쓰면서, 코칭 내용에 대해서 그 어떤 참견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사실 쓸 필요도 없는 조항이었다.

애초에 심도훈은 진유성을 간섭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배우겠다는 마음만 가득했으니까.

그도 아마추어 고수로서 챌린저(게임 내 최상위 플레이어) 티어지만, 프로와는 분명 실력 차이가 난다.

그런 프로와도 실력 차이를 내는 진유성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게다가 감독과 코치는 실력보다 게임을 보는 눈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진유성은 그걸 가지고 있다.

즉, 심도훈의 입장에서는 오메가 플러스가 승격하지 못하더라도 진유성의 방식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괜히 한 달 코칭 비용으로 500만원이나 제시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다음날부터 바로 금이 갔다.

“너희들은 롤 중독이다.”

“네. 그렇죠?”

“지금부터 그걸 치료할 거다.”

“……그 좋은 걸 왜요?”

“내 맘이다. 아무튼 오늘부터 롤 금지다.”

“그, 그럼 저희는 뭘 하나요?”

“산을 탈 거다. 심도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산이 어디냐?”

“……대모산일걸?”

“대모산 정상에 가장 먼저 오르는 이에게 백만 원을 주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컴퓨터 앞에 앉지도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등산을 하고 곯아떨어진 다음, 오후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근처 체육관에 등록해 운동을 해야 했으니까.

그래, 뭐. 하루는 그럴 수 있다.

심도훈이 협회와 이야기를 잘 끝낸 덕분에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5일.

쉼 없이 달려온 이들의 심신을 리프레시 시키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었다.

롤은 금지고, 신체 활동과 수면 시간을 늘렸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선수들이 은근슬쩍 언제 연습을 하냐고 물어봤을 때, 진유성은 단호했다.

“게임을 하다가 걸리면 팀에서 잘라 버릴 거다.”

“코, 코치님.”

“진심이다.”

마침내 5일이 지났을 때, 심도훈의 인내심이 닳아 버렸다.

“야, 이게 뭐야?”

“뭐가 말이냐?”

“왜 애들이랑 운동만 하냐고!”

“심신이 안정되어야 한다.”

“그건 게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게임이 애들 직업이라고.”

“심도훈. 계약서를 가져와라.”

“아니, 아는데…….”

“조항을 하나 더 써라. 절대 그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는 대신, 1부 승격에 실패하면 급여의 백 배를 토해 내는 걸로.”

“……!”

오백의 백 배면 오억이다.

저 간장 종지가 실제로 승격을 못한다고 오억을 줄 리는 없지만, 적어도 진지하다는 뜻이었다.

“……오케이.”

결국 심도훈은 말없이 진유성의 코칭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대신, 심도훈도 숙소로 들어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보겠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다시 이틀이 지나서 딱 일주일이 됐을 때, 선수들의 인내심도 끝이 났다.

진유성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진 않았지만, 이대론 안 된다고 합의를 본 것이었다.

“야야, 일어나.”

그들은 저녁에 짧은 잠을 자고, 다 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PC방으로 향했다.

숙소 내 컴퓨터는 진유성이 뭔 짓을 했는지 몰라도 전부 먹통이었으니까.

하루 종일 운동을 해서 피곤하긴 했으나,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다들 젊다 못해 어린 이들이었다.

“감독님, 저희 가도 되죠?”

“나도 모르겠다. 맘대로 해라.”

그렇게 도착한 PC방 앞에는 놀랍게도 진유성이 서 있었다.

“……!”

다들 얼어붙었을 때,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연습에 들어갈 테니, 오늘은 들어가서 자라.”

뭔진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전부 내다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 날,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오전 조깅을 하고는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무려 일주일 만에 시작된 첫 연습.

그러나 진유성이 순순히 연습을 시켜 주는 건 아니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하루에 정확히 세 번의 게임만 할 수 있다.”

“세 판밖에 못한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모두 최선을 다해라.”

“하지만 코치님…….”

“그 세 판을 아주 자세히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진유성의 말에 선수들이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도 1부 리그 팀과의 연습 경기 이후에는 한 게임을 두고 3시간이 넘게 피드백만 한 적도 있으니까.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진유성은 선수들의 뒤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 어떤 조언도 건네지 않았다.

처음엔 진유성이 괜히 신경 쓰여서 멋진 모습을 보이려던 선수들도 이내 금방 적응해 버렸다.

롤은 짧으면 15분이고, 길어 봤자 40분 이내로 한 판이 끝난다.

세 게임이라고 해 봐야 게임을 잡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 판 연속 15분 게임을 한 원딜은 플레이 타임보다 게임 매칭 시간이 더 걸렸을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게임이 끝났을 때,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아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진유성이 탑 포지션의 선수, 유준일의 첫 번째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피드백을 해 주는 순간,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유준일. 여기서 왜 앞으로 나갔느냐?”

“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아요? 절 때리는 적 딜러를 물어야 하니까. 그래서 이겼잖아요.”

“당연할 리가. 여기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섯 가지가 있다.”

“다섯 가지나 된다고요?”

“첫째는 네가 선택한 전진이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라.”

“음……. 옆으로 돌아가는 거? 그러니까, 벽으로 붙어서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압력을 행사하는 느낌으로?”

“나쁘지 않군. 또?”

“음.”

유준일은 한참 동안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지만, 이 순간에 선택지가 다섯 개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그냥 시야 장악을 위한 팀의 이동 중 벌어진 평범한 한타였으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나머지 세 개는 뭔가요?”

“셋째, 물러나는 것이다. 딱 네가 들어갔던 만큼.”

“네? 여기서 뒤로요?”

“그래. 정확히는 우측 아래로.”

“그러면 빠지면서 맞기만 하는 거 아니에요?”

“맞겠지. 아마 대충 체력이 682 정도 깎일 거다.”

“무슨 이득이 있는데요?”

“전장이 넓어진다. 네가 적들을 넓은 곳으로 유인하는 거다. 체력 682를 희생해서.”

“넓은 곳……?”

유준일의 머릿속에 새로운 싸움 구도가 그려졌다.

적군은 좁은 지역의 싸움을 좋아하는 챔피언들이고, 아군은 좁은 곳에서는 조작 난이도가 올라가는 챔피언들이다.

‘엄청 크게 이겼겠는데?’

하지만 문제는 있다.

“적들이 안 딸려 오면요? 그냥 저 좀 때리다가 물러날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특히 더 높은 수준의 경기였다면. 그래서 네 번째 방법이 있다.”

“뭔데요?”

“잠깐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물러나는 것이고.”

“일부러 좀 더 맞으라고요? 적들이 잘 빨려 오게?”

“그렇지. 하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서 맞으라는 건 아니다. 우측 아래로 물러나는 시간을 3초만 딜레이 시켜도, 왼쪽 위에 있는 아군이 전투에 투입되는 시간이 3초 빨라진다.”

진유성의 말처럼 아군 미드 라이너는 왼쪽 위에서 미니언을 사냥하다가, 싸움이 나는 순간 부랴부랴 뛰어왔다.

자신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합류 시간이 짧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인 거 같다.

하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어쩌면 말만 번드르르하고 사실 해서는 안 되는 플레이가 아닐까?

유준일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진유성이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해야 팀이 잘될 거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네?”

“전쟁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죽을 걸 알면서 적들을 매복지로 유인하는 것. 그들의 역할은 원하는 곳에서 죽는 것이다. 그렇지?”

“그렇죠?”

“넌 저 전투에서 잘했으면 안 됐다. 네가 너무 잘해 버려서 적 딜러만 자르고 싸움이 정리되었지. 저기서는 못함으로 전장을 넓히고, 아군의 합류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러면…….”

“그래. 아마 전부 죽였을 거다. 넌 죽었겠지만.”

“…….”

“전쟁에 개인의 인격은 없다. 오직 부대의 인격만이 존재한다. 개인의 인격을 챙기는 순간은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뿐이다.”

유준일은 진유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드디어 깨달았다.

적을 유인할 때는 허술해야 한다.

강렬한 저항으로는 적을 유인하기는커녕 쫓아낼 뿐이다.

그렇다면 허술함을 훌륭히 수행하는 건 개인의 멋진 플레이일까?

아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실수처럼 보일 수도 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팀원이 나의 허술함을 믿고 공유하고 있다면, 그게 팀의 예리함이 되는 셈이었다.

“……!”

유준일은 몰랐겠지만, 진유성은 오메가 플러스에서 그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심도훈이 준 영상을 봤을 때, 가장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물론 늘 그러라는 건 아니다. 네가 주인공이 되는 판에는 지금 말한 일을 다른 사람이 해 줘야겠지.”

“이해했습니다. 근데 방법이 다섯 가지라고 하지 않았나요?”

“한 가지는 네 스스로 생각해 봐라. 아마 내일쯤 알아차릴 것 같군.”

진유성은 그 뒤로 유준일의 영상을 하나 더 피드백 해줬고, 정글의 영상을 하나, 서폿의 영상을 두 개 피드백 했다.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오는지 잔뜩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던 미드와 원딜을 보면서는 고개를 저었고.

“너희는 피드백 없다.”

“네? 왜요?”

“감정에 지배당해서 게임을 하니까. 그런 건 피드백을 해도 의미가 없다.”

“아닌데요!”

잠시 미드를 쳐다보던 진유성이 미드의 플레이 영상을 틀었다.

“여기서 왜 딜 교환을 했느냐?”

“적이 때리니까. 저만 손해를 볼 순 없잖아요.”

“적 정글 동선이 바로 아래쪽일 거라고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잖느냐? 지금까지의 정보를 취합하면.”

“그렇긴 한데,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게 감정 지배다. 싸우고 싶으니까 정보들을 자기 편의에 맞게 무시해 버리는.”

“…….”

“고칠 때까지 피드백은 없다.”

진유성이 보여 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피드백을 기대했던 두 사람이 고개를 푹 숙였다.

*   *   *

일주일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전히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하루에 3판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고작 21판.

보통의 프로게이머들이 하루면 연습할 경기 수.

심지어 그 적은 게임 속에서도 냉철한 이성으로 플레이를 한 경기들만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한데, 탑과 서폿의 성장세가 미친 수준이었다.

특히 탑 라이너인 유준일은 21판을 하면서 딱 2판밖에 지지 않았다.

그나마 2판도 초반에 진 거고, 현재는 16연승 중.

하루에 영상 하나 정도는 피드백을 받는 정글도 우상향 중.

진유성이 큰 방향성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도 잘 가르쳐 줬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처음에는 약간의 반항심을 가졌던 원딜과 미드도 넙죽 엎드렸다.

사실 ‘진유성’에게 반항심을 갖는 것도 웃기긴 했다.

태양을 보고 너무 밝아서 화를 내면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진유성은 그런 존재였다.

“야, 싸울까 말까?”

“싸워!”

“진짜? 냉정하게?”

“아냐. 빼자. 지금 컨디션 별로잖아. 서폿도 엉덩이 뒤로 빼잖아. 지금 싸우는 건 감정 지배야.”

욱하는 성질이 문제였던 원딜이 제2의 자아를 만들어 혼자 대화하기 시작했고.

“원딜. 이리 와라.”

“오! 우와! 와아아아아!”

일주일 만에 첫 피드백이 나갔다.

“준비 됐어, 용?”

“물론이지. 훈.”

미드라이너 조용훈도 용과 훈이라는 자아를 만들어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용이 올 거냐, 훈이 올 거냐?”

“네?”

“피드백이다.”

“우와아아아악! 가자, 용!”

“훈이 본체였군.”

참고로 승격전을 앞두고 인권실태조사를 나온 e-sports 협회 직원이 심도훈에게 넌지시 마약 검사를 권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이제 승격전은 14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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