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외전 5화>
* * *
엄밀히 따지자면 진유성은 오메가 플러스의 외부인이다.
1부 승격을 조건으로 붙은 스폰서는 심도훈의 아버지 회사인 공화시멘트.
구단주 겸 감독은 심도훈.
진유성은 그저 심도훈이 고용한 외부 인스트럭터일 뿐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심도훈은 오메가 플러스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면서 진유성이란 이름을 입에 담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이던가.
선수들이 별 생각 없이 또래 친구들에게 ‘진유성이 우리 코치다’라고 말한 게 어느새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결과?
[진유성의 팀, 오메가 플러스는 기적과도 같은 승격을 이뤄 낼까?]
[기-승만 써졌지만 벌써 소년 만화. 오메가 플러스 풀 스토리.]
인터넷 뉴스부터 유투브 렉카까지 온갖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덕분에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수도 없는 연락을 받았고, 그건 곧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실력적인 부담감은 아니었다.
그들의 걱정은…….
“연습량이 너무 적지 않나?”
“하루에 세 판이니까…….”
고작 이 정도 연습으로 승격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진지한 태도로 진유성에게 게임 수를 늘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진유성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러니까, 승격전이 걱정되니까 연습을 더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습니다.”
“거짓말 마라. 이 롤 중독자들아.”
“네?”
“그냥 게임이 더 하고 싶은 거잖아.”
“그게 아니고…….”
“어이, 본체 훈.”
“네?”
“용한테 물어봐라. 승격전이 부담스럽고 걱정돼 죽겠는지, 기대되는지.”
“…….”
조용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빨리 승격전이 오면 좋겠다.
요즘 선수 전원의 솔로랭크 승률이 80% 이상이다.
최상위권 게임에서 이 정도 승률이 나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판수가 적어서 랭킹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승률 자체는 놀라웠다.
물론 진유성은 이게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게 보이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일시적으로 기세가 올랐다.
이러다가 벽을 만나면 기세가 주춤해질 거고, 슬럼프가 찾아올 거다.
그걸 넘으면 진짜 실력이 되겠지만.
하지만 진유성은 승격전까지 기세를 유지해야 했고, 그러기 위한 3판 룰이었다.
본인들은 모르고 있겠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전력을 다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쉽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어떤 상황에 100%를 쏟아낼 수 있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그래서 3판이다.
한 판 한 판 소중하게 대하는 습관이 들어야 한다.
“우승팀 선수들은 맨날 게임하던데…….”
선수들이 궁시렁거렸지만, 진유성은 깨끗이 무시했다.
자신의 의도를 알려주는 건 승격전 당일이어야 한다.
왜냐고?
그게 더 멋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진유성은 문득 우승팀 선수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한때 자신과 자웅을 겨뤘던 ST-1의 미드라이너.
“그 친구는 어떻게 됐느냐?”
“누구요?”
“ST-1 미드 라이너. 손가락 부러졌던 친구.”
“아, 샤이나크요? 지금 퇴물 됐던데요?”
“그래?”
“손가락 부러지고, 에이징 커브까지 와서 폼을 못 찾더라고요. 북미 팀 어디 갔다가 방출되고.”
“어허. 역시 게임 중독자의 말로는 비참하군.”
“……?”
“아무튼 오늘도 딱 세 판만 해라. 이 중독자들아.”
“코치님. 진짜 딱 한 판만 더 하면 안 돼요? 네 판 정도는 괜찮잖아요.”
“흠. 하고 싶냐?”
“네!”
“그럼 조건이 있다. 두 판을 끝내고 기다려라.”
두 판은 순식간에 끝났고, 피드백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개인 기량을 높이는 피드백 위주였다면, 요즘은 팀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피드백 중이었다.
“본체 훈.”
“훈훈!”
“유준일이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말해 봐라.”
“음……. 연기 중인 거 같은데요. 우리 정글이 근처에 있다는 속임수.”
“정답이다. 이게 만약 솔로랭크가 아닌 대회 경기였다면 적들에게 거짓 정보가 공유됐겠지?”
“네.”
“그럼 넌 뭘 해야 하느냐.”
“우리 정글을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적들이 가짜 정보에 속았다면 완벽히 허를 찌르는 타이밍이 나올 거니까.”
“좋다.”
그렇게 피드백이 끝나고, 조건이 공개되었다.
“자랭이요?”
자유랭크 게임.
5명이 팀을 짜서 플레이하는 매칭 시스템.
프로들도 재미 삼아 하긴 하지만, 진지하게 임하는 게임 모드는 아니다.
최상위권 플레이어와 만날 수 없으니, 프로 레벨에서는 너무 쉽기 때문이었다.
“대신 경기를 20분 안에 끝내라. 그렇다면 각각 두 판씩 더 할 수 있게 해 주겠다.”
“두 판이나……?”
“근데 20분은 빡센데.”
결과적으로 승리는 쟁취했으나 진유성이 내건 조건을 달성하진 못했다.
플레이 타임이 23분이었으니까.
“아, 내가 세 번째 용에서 잘리지만 않았어도.”
“아뇨, 형. 제가 초반에 무리하게 카정 들어가서 게임이 안 굴러간 거예요.”
다들 불만은 없었다.
그들도 자신이 최선의 플레이를 했다면 20분 안에 충분히 끝낼 수 있었다고 느꼈으니까.
선수들은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진유성을 쳐다봤지만,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어림도 없다. 오늘은 끝이다. 대신 내일도 기회가 있을 거다.”
* * *
승격전 D-13.
“오늘은 5회 이하의 데스로 게임을 이겨 봐라.”
“인당 5데스요?”
“아니. 팀의 총합 데스.”
실패.
D-12.
“타워를 포함한 오브젝트를 단 하나도 내주지 않고 이겨라.”
첫 성공.
D-11.
“20분 내로 이겨라.”
아슬아슬한 실패.
승리 타임은 21분 45초.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옆에서 선수들을 지켜보는 심도훈은 서늘함을 느꼈다.
팀이 날카롭게 벼려지는 기분이 든다.
스크림 한 번 없이, 제대로 된 팀 콜 훈련 한 번 없이 완벽해지고 있다.
‘승격…… 할 거 같은데?’
심도훈도 최상위 플레이어로서 보는 눈이 있다.
요즘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핸들이 고장 난 트럭이었다.
만나면 치인다.
그렇게 차곡차곡 흐르던 시간이 마침내 모두 흘렀고, 승격전 당일이 밝았다.
* * *
진유성이 인수한 팀(사실과는 다르다)이라는 소문 때문에 오메가 플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오메가 플러스의 승격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번의 스크림도 실시하지 않았고, 솔로 랭크도 하루에 두세 판밖에 안 했다.
놀았을 리 없으니 부계정으로 연습을 한 것 같긴 한데, 딱히 새롭게 순위권에 들어온 랭커도 없다.
그렇다는 건, 오메가 플러스가 단판 승부를 이길 깜짝 전략을 준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승격전은 4팀이 총 3일 동안 3경기를 치르는 구조.
3일 내내 깜짝 전략이 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메가 플러스는 이런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루틴을 끝내고 경기장에 도착한 것이 오후 4시.
딱히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선수들을 보며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지금껏 너희는 하루에 세 판만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했고, 전력을 다했다.”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하루에 두 판 이상 패배한 사람이 있나?”
처음에는 그런 일도 있었으나, 적어도 최근 3주간은 없었다.
가끔 지더라도 하루에 한 판뿐이었다.
“오늘도 달라지는 건 없다. 세 판을 하니, 두 판 이상을 이겨 와라.”
진유성의 말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약 1시간의 준비 시간 뒤.
오메가 플러스 선수들은 같은 2부 리그의 1위 팀을 상대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아니, 이게 무슨 경기력인가요!
-압도적인 개인 기량이 고스란히 팀의 기량으로 폭발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압도했어요! 라인전! 한타! 운영!
2 : 0 완승.
사람들은 오메가 플러스의 경기력에 박수 쳤지만, 막상 선수들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해 왔던 것들을 그냥 하니 이겨져 있었다고 해야 하나?
다음날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초반 단계의 인베이드 실수가 꽤 큰 실점으로 이어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이 정도 불리함은 순수 체급으로 극복한다! 그렇게 외치는 듯한 모습이었거든요!
또 한 번의 2 : 0 완승.
이날의 승리는 반향이 컸다.
사실 첫날에 거둔 승리는 어느 정도 폄하를 당할 수밖에 없는 승리였다.
상대팀이 같은 2부 리그인데다가, 게임이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터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메가 플러스가 잘했다기보다는 상대방이 못했다는 느낌.
하지만 2일차에 거둔 승리는 아니었다.
1부 리그의 꼴등 팀과 붙은 경기이긴 했으나, 내용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오늘 승리로 오메가 플러스는 2승으로 1부 승격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DP가 내일 이겨서 3승을 할 테니까, DP가 1등, 프라임이 2등으로 1부 승격하겠는데?”
내일 경기는 쉽지 않을 예정이었다.
오메가 플러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경기를 2 : 0으로 압도한 이 상대였으니까.
* * *
지난 시즌, 1부 리그 준우승을 달성한 멤버들이 고스란히 뛰고 있는 DP 게이밍은 승격전으로 떨어질 만한 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승격전을 치러야 하는 건, 불운한 사고 탓이었다.
팀의 휴가 기간에 다 함께 떠난 해외여행.
거기서 발생한 교통사고.
팔꿈치가 부러진 주전 선수 2명의 시즌 아웃.
감독은 부랴부랴 후보 선수들을 올렸지만, 1부 리그에서 경쟁하기에는 부족한 유망주들이었다.
덕분에 DP는 전반기에 1승 16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후반기가 거의 끝날 무렵 7개월간의 재활을 끝낸 주전 선수들이 돌아오면서 6연승을 질주.
그동안의 성적이 처참했기 때문에 승격전으로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으나, 그 누구도 DP 게이밍이 강등권 팀의 실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실력은 진짜였다.
-아! DP 게이밍의 노련함이 오메가 플러스의 무서운 기세를 잠재웁니다!
-세트 스코어 1 : 0!
3일차의 첫 번째 경기에서 오메가 플러스가 패배한 것이었다.
대기실로 돌아오는 선수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야! 괜찮아. 너희 잘못이 아니라 내가 밴픽을 잘못했어. 무슨 말인지 알지?”
심도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선수들을 격려했지만, 크게 와닿는 것 같진 않았다.
그때, 그들을 보고 있던 진유성이 툭 입을 열었다.
“손쉽게 승격하고, 1부 리그에서 우승하고, 롤드컵에서도 우승할 줄 알았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상상을 하긴 했다.
최상위권 게이머들이 모인 솔로 랭크에서의 승률을 생각해 보면, 괜한 망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진유성이 고작 한 달 넘게 코칭해 준 걸로 모든 걸 이룩할 수 있을 리가.
게다가 상대는 지난 시즌 1부 리그에서 준우승을 달성한 이들이었다.
주전 선수들이 돌아온 이후 달성한 6연승은 상위권 팀들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기도 하고.
“잘 들어라, 이 중독자들아. 너희는 질 거다.”
“야, 진유성…….”
당황한 심도훈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진유성이 손을 저어 말을 끊었다.
“하지만 이길 수도 있다.”
“이기는 게 당연하지도 않고, 지는 게 익숙하지도 않은 시점이다.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
“시작.”
“……!”
“가서 시작점을 채워 와라.”
진유성의 말에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심도훈의 주도하에 진행된 밴픽 이후, 2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는 치열했다.
1경기보다는 상황이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오메가 플러스가 불리한 상황.
그때 시야를 체크하던 두 팀이 중립 지역에서 조우했다.
선두에 서 있던 유준일에게 DP 게이밍의 원딜이 반사적으로 딜을 퍼부었다.
하지만 유준일은 가만히 있었다.
-아, 유준일 선수! 뭐 하는 거죠?
-바로 싸움을 열어도 괜찮았을 텐데요! 아니면 물러나든가요!
-당황해서 이도저도 선택을 못한 모습입니다!
잠깐의 시간 뒤, 유준일이 뒤로 물러나자 DP 게이밍은 홀린 듯이 뒤를 추격했다.
그러자 전장이 넓어졌다.
“야, 안 돼!”
DP 게이밍의 감독이 소리를 질렀으나, 플레이 중인 선수들에게 닿을 리 없었다.
이윽고 빠르게 합류한 오메가 플러스 미드 조용훈과 함께 일방적인 싸움이 벌어졌다.
압승이었다.
-아, 오메가 플러스! 게임을 끝내려고 진격합니다!
-부활 시간이 애매한데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오메가 플러스는 과감했다.
그리고.
-오메가 플러스! 승리합니다.
-일 대 일!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과감함이었습니다!
그들의 과감함은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트 스코어 2 : 1로 DP 게이밍이 승격전 1위로 1부 리그를 사수합니다.
-모든 팬들이 당연하게 예측했을 결과입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어요!
-3경기는 무려 44분간의 혈투였거든요.
-그렇습니다. DP 선수들, 이겼음에도 혀를 내두르는 모습인데요.
-앞으로 1부 리그에서 만나게 될 오메가 플러스의 경기력이 기대되는 승부였습니다.
그렇게 오메가 플러스는 경기 스코어 2승 1패로 1부 리그로 승격했다.
패배했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과 과감한 투자로 1부 리그의 구단주 겸 감독이 된 심도훈은 하늘을 날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2주란 시간이 흘렀다.
* * *
1부 리그는 2부 리그와 달리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이 많았다.
선수 로스터도 2군을 포함해서 최소 10명을 채워야 했고, 게임 협회에서 제시하는 최저 연봉을 맞추기 위한 재계약도 필수였다.
심도훈은 지난 2주 동안 이 모든 일에 힘을 쏟았다.
생각보다 어렵고 귀찮은 일들이 많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심도훈이 몰랐던 것이 하나 있다면…….
“왜! 그런 게 어디 있는데!”
“야 이 멍청한 놈아. 군대가 무슨 호텔 예약이야? 하루 전에 취소하게?”
“아빠가 국방부에 전화해 주면 안 돼? 면제 받자는 게 아니라, 연기만!”
“너 미쳤어? 오메가, 아니 공화 플러스가 승격한 이후 기사가 얼마나 많이 쏟아졌는데! 지금 이 상황에 그딴 짓을 하라고?”
“아 몰라! 나 군대 안 가!”
세상 물정을 몰랐다.
본인이 연말에 입대 일자를 받아 놓고도 바빠서 취소를 안 하고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당일 전에만 취소하면 될 줄 알았다.
결국 수장이 없어진 공화 플러스는 진유성의 CMSG와 공동 스폰서십을 맺어 운영되는 팀이 되었고…….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심도훈은 육군 훈련소에 입소했다.
조교 모자를 푹 눌러 쓴 누군가 심도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34번 훈련병! 심! 도! 훈!”
“구르는 게 당연하지도 않고, 갈굼 먹는 게 익숙하지도 않은 시점이다.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
“……?”
“짬찌.”
“……!”
모자를 슬쩍 들어 올리는 조교는 진유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