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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남자 I (17/31)

책을 읽지 않는 남자 I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가끔씩 책을 봅니다. 많이 보지는 않습니다만.

책 좋아하는 몽상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저도 좀 유별나다고 하는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전 책을 끝까지 읽지 않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재밌습니다. 표지부터 매우 마음에 들어요. 내용도 제 마음에 듭니다. 읽다가, 읽다가, 저는 언제나 끝까지 읽지 않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예? 아니요,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끝일까 봐서가 아닙니다. 저는 이야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읽지 않는 것은 끝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저는 마지막을 읽는 것이 싫은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겁니다. 제가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갖게 되고, 등장인물들을 응원하며 모험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련을 극복하는 것을 보며 박수를 치는 겁니다. 하지만 그리고 나면?

이제는 끝을 맞이할 때가 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후련한 사람도 있고, 이걸로 끝이야? 하면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제가 끝을 읽지 않는 이유도 그런 까닭입니다. 이미 이야기의 끝은 평범할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사실 그리 대단한 책은 아니니까요. 그냥… 통속소설입니다. 그러니까 끝도 압니다. 통속소설의 끝은 반드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 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예상한다고 해서 제 눈으로 끝을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끝을 읽지 않고, 또다시 책의 맨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또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끝이 어떻든 이미 그것은 제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야기는 또다시 시작합니다. 끝이 아니라 또다시 그들은 시작을 합니다. 다시 만나서, 시련을 겪고, 신뢰와 사랑을 쌓아 나가면서 극복해 나가는 것을 보는 겁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몇 번이고 읽습니다. 그러면 그 작은 이야기 안에서 영원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겁니다.

아마 제가 끝을 보는 날은 오지 않겠죠.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세상에 특이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에서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영생을 꿈꾸고 있으면서, 왜 영생을 손에 넣지 못할까요.

사랑도 증오도 도덕도 안식도 모든 것은 무구한 세월 앞에 퇴색됩니다. 영원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고귀합니다.

왜 눈앞의 영생을 두고 다른 길을 보십니까?

영원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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