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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2화 (2/280)

러스트 [RUST]-2

급하게 출국해야 하는지라 마루는 간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거의 한 달 만에 거는 전화였다.

[그래서? 일본엘 간다고?]

“그렇다니까요.”

[그럼 얼마나 있는 건데? 응? 기간은?]

“잘 모르겠어요. 말로는 1년 미만 단기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짧을 것 같아요.”

눈치가 그랬다. 일본으로 파견근무 보낼 뿐 아니라 지금 있는 원룸까지 알아서 관리해준다고 했다. 어지간하지 않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니? 회사 일이면 기간이 딱딱 정해져 있어야지. 엄마가 그랬지? 그 일도 그렇고 거기 회사도 좀 이상하다고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그랬잖니.]

“엄마!”

[에그. 얘가 왜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고 그래. 귀청 떨어지게.]

지금 돈을 벌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수험생인 나루는 어쩌고? 사업에 연이어 실패한 것도 모자라, 암에 걸려 투병하고 있는 아버지는 어쩌고? 버는 돈의 70~80%를 집에 보내도 쪼들리는 집안이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라니.

[아니, 마루야 너도 알잖니, 손에 피 묻히고 그러는 일 언제까지 하려고? 대학을 나와야 번듯한 직장도 구하고······.]

“.......”

마루는 반쯤 오미예 여사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데 모친의 이야기를 전부 듣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우리 뒷집에 살던 나오진 사장 알지? 오진제약. 나오진 사장. 주현이 잘 컸더라. 이번에 모임에서 만났는데]

“누굴 만나요? 나오진 사장을요?”

[응. 딸이랑 같이 나왔더라. 나루도 나사장 딸 주현이를 언니처럼 따랐잖니. 같이 가고 싶다길래 데리고 갔지.]

“모임이요? 파티에 갔다고요? 엄마! 거기에 나루를 왜 데리고 나가요? 진짜 무슨 생각인데요? 네?”

[어머. 어머. 너 지금 소리친 거니? 아까도 그러더니 엄마한테 어디서 못 배워 먹은 짓을······.]

“아니 말씀드렸잖아요. 나사장 그 사람 이상하다고. 그쪽 집안사람들 이상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네가 나사장 뭘 안다고 그래. 그리고 옛날 불미스러운 사건은 꽃뱀으로 판결 났는데 뭐가 문제야.]

“꽃뱀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여중생, 여고생이랑 그런 소문이 난 사람하고 왜 엮여요. 정말 왜 그러시는데요.”

[너 진짜.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걔들 전부 꽃뱀이었다니까. 나사장은 재능있는 애들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아까워서 도움을 주고 그랬는데, 그것들이 나사장에게 돈을 뜯으려고······.]

순간, 동생 나루가 떠올랐다. 동생은 예능계열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었다. 콩쿠르 준비니, 뭐니 해서 교수에게 레슨하고 그런 걸 생각하면 돈이 많이 들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하자면 그만둬야 하는 게 맞지만,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그쪽만 준비했던 동생이었다.

좋은 상은 받지 못했지만, 장려상이라든지 동상이라든지 3등 수상권 안에는 들어가는 실력이었다. 조금 더 좋은 교수에게 레슨을 받았다면 충분히 상위 메달을 땄을 거라며 모친은 늘 한탄했다.

이제 수험생인 나루에게 있어 남은 콩쿠르는 몇 개 없었다. 모친 오미예 여사는 무슨 방법을 쓰든 나루에게 좋은 교수를 붙여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파티에 참여를 했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사장이랑 갔다는 파티가 어떤 파티인지도 모를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루는 성질이 났다.

“엄마! 미쳤어요? 나사장 일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루를 왜 나사장이 있는 자리에 데려가셨냐고요. 나사장이 나루 후원이라도 해준대요?”

[뭐? 미쳐? 너 지금 엄마한테 미쳤다고 한 거니? 지금 엄마한테 미쳤다고 한 거야?]

“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나루를 후원한 대요? 정말 예술에 관심 있고 그런 사람이었으면 학교를 통하거나 제3자를 통해 후원하지 대면해서 만나자고 해요?”

[아니 후원하려면 직접 만나보고 하지 그럼 그냥 하니? 물건을 살 때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사는데, 미래의 예술가를 후원하는 일이야. 당연히 봐야지. 그리고 나사장이랑 우리랑 전혀 모르는 사이니? 옆집 이웃이었잖아.]

마루는 속이 콱-막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옆집에서 살던 사람인데 뭘 더 봐요? 뭘 또 봐요. 진짜 후원해 줄 생각 있으면 조용히 했겠지요. 모임? 파티? 무슨 모임이고 어떤 파티인데 딸까지 데려가고 그러는데요? 지금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욱하는 성질에 그대로 뱉어낸 마루였다. 잠시간의 정적. 수화기 저편에서 색색이는 숨소리만 잠시 들렸다.

[너. 지금 엄마한테. 너.]

이윽고 목소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리는 오미예 여사였다. 마루는 이야기를 마저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에이- 씨. 아오-”

내일 일본으로 출국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복잡해진 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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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깃덩이가 숯불 위에서 퍼덕였다. 고소한 냄새로 변할 즈음, 얼큰하게 취한 기순이 입을 열었다.

“야. 그거 근데 진짜 이상하지 않냐?”

“뭐가?”

“뭐긴 뭐야. 왜구들이 어떤 새끼들인데 한국산 소고기를 수입해가겠어. 그 섹히들 뭐라더라 무슨 야규 소인가? 아규 소인가?”

술에 취했는지 말이 늘어지는 기순이었다.

“여튼. 소에 명찰도 달아서 키우고 그러잖아. 수입 소고기 하면 호주에서 곡물 먹인 손가? 무슨 유기농 소? 아씨. 그렇게 특별하게 키운 소 아니면 수입 안 하지 않냐?”

반쯤 취한 마루가 트림을 살짝했다.

“새끼 무슨 소릴 일본 애들도 우리랑 똑같지 뭐. 우리도 명찰 달고 다 달고 그래. 요즘엔 호주도 그렇고 소 좀 키우는 나라는 다 그래. 그리고 고기 잡는 거 아니면 왜 날 그쪽으로 보내겠냐?”

똑같다는 말에 기순이 소주잔을 비우곤 인상을 썼다.

“똑같기는 우리가 어디가 걔들하고 똑같아.”

“야- 일본에서 유행 타는 거 고대로 한국에서 유행 타잖냐? 그게 그거지.”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어, 요즘엔 한국에서 유행하는 게 일본에서 뜬다더라. 그리고 유행 말고 새꺄. 너 일본 가는 거.”

“뭐가 이상한데? 회사에서 보내주는 거잖아.”

“일본이 어떤 나란데. 그렇게 쉽게 취업비자가 나온다고?”

“아- 당장 급한데 인건비 싼 한국 사람 쓰면 좋지 뭘.”

기순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야 아무래도 이상해. 인건비가 싸? 요즘 한국이랑 일본이랑 임금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오히려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우리가 더 월급 많이 받는 곳도 많을걸.”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냐. 네 말대로 요즘 한식 열풍인가 뭔가 그런다니까 이왕 쓰는 거 한국산 소를 쓰겠다고 그러는 거겠지. 가격도 일본 소보다 싸고 나름 품질도 괜찮고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일본 소가 얼마나 비싼 줄 아냐? 한 마리에 일억씩 하고 그런다더라.”

“이. 일억?”

“그래.”

“소 한 마리에?”

“아- 그렇다니까. 경매로 해서 1400~1500만 엔 뭐 이렇게 낙찰받기도 한다고 하더라.”

“어우 씨- 비싸서 소고기 먹겠냐?”

“걔들도 다 똑같아.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우리처럼 서민들은 수입 소고기 먹고 돈 좀 있는 애들이나 라벨 붙은 거 먹고 그래. 있는 애들이 먹는 비싼 소는 진짜 미치도록 비싸다고. 그러니까 한국 소도 수입하고 그러겠지.”

마루의 대답에, 기순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방사능도 그렇고.”

“그치?”

픽 웃으며 대답한 마루가 소주잔을 거푸 비우곤 숯불에 살짝 구운 등심에 소금을 살짝 찍어 흔들었다.

“야. 기순아. 나는 일본 비싼 소 못 먹어봐서 모르겠는데, 씨발. 한국 한우도 비싸고 맛도 좋다. 아니냐? 아니야?”

“어련하겠냐?”

캬-하는 소리와 함께 소주잔을 비운 마루가 빙글빙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형님이 일본에서 새끈한 애를 사귀면 연락할 테니 바로 튀어와라.”

“퍽이나. 여자애들 은근히 냄새 민감하다. 특히 피 냄새. 여기서도 너 하는 일 듣고 여자들 별로 좋아하지 않던데, 일본 애들이라고 다르겠냐?”

“새끼. 기분 잡치는 소리 하지 말고, 시작도 안 했는데 욕하냐? 욕해?”

“오케이- 쏘리. 쒜끈하신 일본 여신 만나면 콜해라. 내 출석 제끼고 간다. 오케이?”

소주잔이 가볍게 부딪치고 다시 크-하는 소리가 뒤이었다.

“그래도 엄마한테 전화는 하고 가야지. 안 그러냐?”

“아- 씨발 모르겠다. 전화기가 꺼져있는데. 아 진짜. 동생년도 같이 씹고 있다. 대충 톡은 보내서 쌓고는 있는데.”

마루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기순은 고기 두 점에 소주 한잔 걸쳤다.

“그 나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문제고?”

“몰라. 예전에 우리 뒷집 살던 사장인데, 내가 진짜. 아오.”

“아- 니네 뒷집 나사장? 그 사람 소문 좀 그렇지 않냐?”

“그러니까 내 말이··· 아 진짜 미치겠다니까.”

마루가 고등학생 때, 나사장이 어린 여자와 차에서 그러는 걸 봤었다. 아무리 봐도 상대 여자는 잘 봐줘야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어린 여자였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꽃뱀 사건 때문인지, 나사장 하면 안 좋은 생각이 드는 마루였다.

“야- 오버하지 말고. 좀. 네 여동생도 나사장 딸래미랑 노는 걸 좋아했다며, 친언니처럼 따랐다고 했잖냐? 자기 딸래미가 동생처럼 생각하는 앤데 나사장이 생각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냐? 앞집에 살던 애가 딱하게 됐으니까 도와주려고 하겠지.”

“아씨- 그럼 내가 넘 민감했냐?”

“그래. 내가 보기엔 그래. 까놓고, 나사장이 뭐가 아쉬워서 그러겠냐? 돈이면 여자고 남자고 옷 벗을 애들이 넘치는데. 엄마한테 음성녹음으로라도 죄송하다고 하고 그래.”

“하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야 근데 일본 방사능으로 맛이 간 애들 많다던데, 방사능 걱정은 안 되냐? 산재는 된데?”

“야- 너 아까도 그러더니 지금 대놓고 저주하냐? 욕하는 거지?”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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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당신 왜 그렇게 눈이 퉁퉁-부었어?”

“몰라요. 당신은 아픈 사람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요? 진득하게 병이 낫기를 기다려야지, 돌아다니다 어디 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아내가 울었나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마디 했지만, 부인 오미예의 역공에 쩔쩔매는 하현석이었다. 현석은 주제를 바꾸려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하마루 이 녀석. 일본 간다고 나한테는 문자 하나 달랑 보내고, 당신은 마루하고 통화 좀 했어?”

현석의 질문에 오여사의 목소리가 쏙 올라가며 노기를 태웠다.

“걔가 그렇게 버릇없게 된 게 당신 때문이라고요.”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아들 버릇 이야기를 하면서 성을 내는 아내를 보곤 현석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무슨 일인데 그래? 마루가 어떻게 버릇없이 그랬는데?”

“몰라요. 군대 갔다 와서 의젓해지나 했더니, 엄마가 능력 없다고 막 전화에다 대고 소리 지르고.”

“소리를 질렀다고? 마루가 당신한테?”

“미쳤냐고. 소리 질렀다고요. 진짜 아직 장가도 가지 않았는데 벌써 이러는데 장가가고 나면 어떡해요. 내가 잘못 키웠지 잘못 키웠어. 엄마가 능력이 없다고. 돈 못 번다고 그러면 어떡하라고.”

현석은 오여사의 목소리, 돈에 옥타브를 올리는 그 목소리에 속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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