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4화 (4/280)

러스트 [RUST]-4

고깃덩이랑 뒤엉켜 쓰러진 사람이 웅웅 사지를 떨고 있었다.

어- 어-

마루는 인터폰을 들고 더듬었다.

같은 베트남 사람인데도 두 사람은 역병을 본 것처럼 벽까지 뒤로 물러서 있었다.

처음 우한에서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떠돌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한 경비원이 갑자기 쓰러지는 모습. 이후 사지를 경련하며 꿈틀거리다 죽는 동영상이었다.

오버랩되는 장면. 코로나가 무섭다 무섭다 소리만 들었지 막상 직접 눈으로 보니, 앞이 캄캄해졌다.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쓰고 있던 마스크를 다시 꾹 눌러썼다.

작업실 문이 열리고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서로 뭐라고 속닥이던 사람들이 커다란 비닐팩에 쓰러진 베트남 사람들 집어넣고 밀봉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하상- 하상!]

인터폰에서 야마츠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잠시 넋이 나갔던 마루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예.”

[하상- 지금 작업실은 소독해야 하니까 남은 작업은 제4작업실로 옮겨서 하죠.]

“예?”

[4번 작업실로 옮겨서 마저 작업한다고!]

“아- 예.”

이렇게 사고 터지면 일단 작업실 폐쇄하지 않나? 회사도 일단 폐쇄하고. 한국에서는 그랬다던데 일본은 방침이 다른 건가? 작업하던 물건은 전부 소각처리 하든지 그래야 하는 건 아닌가? 그냥 계속 작업 들어간다고?

마루는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도 기계적으로 물건을 옮겼다. 싱숭생숭한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사람들 작업 도와준다고 오지랖 부리며 같이 있었다가 전염됐을 수도 있었겠네.’

변이 바이러스는 감염성도 높다던데, 회사 직원들 전원 코로나 검사를 하겠지?

마루의 기대와는 달리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 일도 없었다. 회사는 놀랍도록 어제와 똑같이 굴러갔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마루가 인터폰으로 응급환자가 생겼다고 보고하고 2~3분도 지나지 않아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119 구급대가 회사 정문에 대기하고 있던 게 아니라면 그렇게 빨리 사람들이 올 수 없었다. 뭔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 싶었다.

‘일단 오늘은 일찍 퇴근하자.’

반나절이 어떻게 지났는지 몰랐다. 사람이 실려 갔음에도 별다른 소란도 소동도 없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몇 사람 없는 일본인 직원들도 묵묵했다.

한국에선 벌떼처럼 달려들던 베트남 사람들도 조용했다. 마루랑 일하던 베트남 사람만 3명이고, 회사 전체로 보면 10명이 넘었는데 다들 조용했다.

조용하든 시끄럽든 오늘 야근은 없다. 있어도 안 한다.

마루는 출퇴근기에 기록지를 밀어 넣었다.

기계식 기록기가 철컥하면서 도장을 찍었다.

집기를 넣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가자 야마츠키가 마루에게 말했다.

“하상- 오늘 낮에 일이 밀려서 야근을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저도 좀 힘들어서. 야근하기 어렵겠습니다.”

마루가 야근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야마츠키의 눈이 세모로 뾰족해졌다.

“지금 야근을 못 하겠다는 겁니까?”

“네.”

“아니 뭐 이런 민폐가 있습니까? 야근을 못 할 거 같으면 전에 미리 말을 하든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갑작스럽게 야근을 못 하겠다고 하면 작업물량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작업이 밀려서 발생하는 손해는 하상이 책임질 겁니까?”

“예?”

이 뭐 병신 같은 소리를? 마루가 24살 인생을 살면서 이런 신박한 소리는 처음 들었다.

반대 아닌가? 야근을 시키려고 한다면 미리 야근 물량이 있다고 해주는 게 정상 아닌가?

“아니 반대 아닙니까? 야근을 시키려면 미리 야근 물량이 있다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 거 아닙니까? 직원이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야근하라는 게 정상입니까?”

3주 야근에 휴일까지 군소리 없이 일했더니 무슨 사람을 가마니로 보나. 그렇지 않아도 계속된 야근에 스트레스에, 습도에. 9월 중순인데 한여름 같았다. 그래도 한국은 9월 중순이면 더위도 꺾이고 습도도 좀 낮아지고 그랬는데 일본은 이상고온 현상인지 뭔지.

마루의 대꾸에 야마츠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에서 뭔가 자신의 권위? 같은 걸 건드렸다는 표정으로 변하더니, 이윽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국인들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니 직접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오늘 야근 하세요. 야근하지 않을 시 생기는 손해는 하상 책임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상의 태도는 월드축산에 바로 알리도록 하죠.”

야마츠키가 바로 전화기를 들며, 고갯짓으로 나가라고 했다.

아니 씨발 야근 안 한다고. 야근 안 하면 자를 거냐? 외노자 1이 야근 안 하겠다는데 뭔 손해 배상이야. 아무 일 없이 일 할 때는 몰랐는데, 이게 외노자의 설움인가 싶었다.

대충 도시락 까먹은 마루가 군대에서 끊은 담배 생각 대신으로 커피를 마실까 말까 고민하던 찰라 휴대폰이 울렸다.

[회사 살과장]

한국 월드축산 과장이 전화한 것이다.

‘아주 입이 싸구나.’

야마츠키가 한국 회사로 진짜 바로 연락했다는 걸 알곤 어이가 없었다. 어쩌고저쩌고하더니 바로 협력업체로 연락? 사람 바꿔 달라고 한 건가?

순간적으로 잘리면 어떡하나 싶다가도, 한국에서 일자리 다시 찾으면 되지 하는 생각에, 일자리 찾는 동안 집에 돈은? 벨이 울리는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을 한 마루였다.

“예- 하마루입니다.”

[야- 하마루. 거기 갔으면 거기 룰을 따라야지. 솔직히 몸이 좀 고돼서 그렇지 그 정도 버는 거 한국에서도 흔하지 않다.]

바로 쪼아대는 과장이었다. 선후 관계고 나발이고. 지금 거의 한 달 야근에 주말까지 일하고 있는데, 뭣보다 힘들었냐 어쩌냐 그러는 것도 없이. 뭔가 빈정상했다.

“예. 근데 저 지금까지 하루도 못 쉬고 일했습니다. 하루 정시퇴근하겠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오늘 일하는데 베트남 사람 한 명 실려 나갔어요. 과장님. 저 한국 돌아가고 싶습니다.”

[··· 야. 지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일본 올림픽 끝나고 물량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갑자기 네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겠냐?]

내가 일본 오고 싶다고 했던가? 그냥 자기가 밀어붙여 놓고 뭔.

“그리고 아직 취업비자 나오지 않았다고요. 저번에 통화했을 때 금방 나온다면서요? 지금 한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안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요? 과장님 저 지금 진짜 외노자 된 기분입니다.”

[취업비자 금방 나온다니까? 나오지 않아도 2~3달만 일하면 되는 걸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 거기 일하러 가려고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돈이라도 주급으로 계산해서 바로 꽂아주지 않았으면 진작 엎었을 텐데. 꼬박꼬박 매주 주급으로 찍어주니 아쉬운 건 마루였다.

“한국에서 이렇게 야근 주말 일했으면 여기 만큼 벌었지 싶습니다. 과장님 진짜 여기 좀 이상하다고요. 사람이 실려 나갔는데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일하는 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회사가 바쁘면 다 그렇지 우리라고 안 그러겠냐? 작업 쉬면 손해가 얼만데. 내가 야마츠키한테는 잘 말해 놓을 테니까 성질 좀 죽이고 그냥 해라. 지금 네가 그만두면 당장 누굴 또 보내라고. 돌아오면 내가 보너스도 좀 꽂아 줄 게. 일단 좀 욕봐라.]

“보너스요? 얼마나 꽂아주실 건데요? 300%~400%?”

[미친 무슨 400%. 거기서 보름치 받는 거 정도 챙겨 줄 게. 아니 뭔 돈 이야기만 나오면 애가 변해.]

“과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단 이번 달 참고 가겠습니다.”

[그래 진짜 너 성질 좀 죽이고 그렇게 갑자기 욱하면 한국에서야 회식하면서 풀지만 일본 문화는 그게 아니야. 좀 수그리고 좀. 끊는다. 잘하자.]

“예.”

금융치료라면야. 한 번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 근데 취업비자는 왜 안 주는 거?

마루는 아이스 커피를 계산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철컥. 출퇴근 기록기가 소리를 냈다. 야근 시작. 6시부터 10시까지 야근이었다. 사무실에서 장비 챙기고 나서는데 저쪽에서 야마츠키가 마루를 봤다. 마루는 못 본 척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물량이 쌓였다고 하더니, 확실히 쌓이긴 했다. 한국에서는 한우를 들여와서 작업해야 했고, 반대로 일본에서는 와규를 정형해서 보내야 했다.

마루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와규건 한우건 한국은 한국에서 하면 되고 일본은 일본에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여기서 이러는지.

덜컹-소리와 함께 일본소를 끌고 들어오는 일본 아재들. 저번에 그렇게 갈비만 붙잡고 버둥거리던데. 사람이 없네? 3명이서 하던 걸 혼자 한다고?

그러든지 마루는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식 갈비찜이 유행을 타고 있는지,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이런 건 그냥 기계 같다 놓고 매장에서 즉석으로 하지 않나?

이것도 다 정리해서 식당으로 보내야 한다고? 이렇게 단순 작업은 동남아 애들도 할 텐데 걔들 시키고 자신은 다른 일을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싶은데, 여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국룰이라고 하니까.

마루는 기계적으로 가르고 자르고 나누고를 반복했다. 3명이서 하던 일을 혼자 하던 일본산 덩어리 아재는 갈비와 사투를 벌이다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알아서 도우란 건가?

마루는 성질을 부리든 말든 자기 일만 묵묵하게 했다. 돕겠다고 하다가 물량 밀렸다고 한 소리 듣기 싫었다. 일본인은 일본인이 돕고, 한국인은 한국 사람이 돕는 거다. 암 그래.

“칙쇼!”

빠깡-

소를 잡던 일본 아재가 뭔 톱으로 소갈비를 조지다 집어 던졌다. 척추에 붙어 있는 갈비를 자르려면 차라리 전기톱이 더 편할 텐데, 대체 소갈비에 뭔 한이 맺혔다고 갈비만 뜯어내는 건지. 아이고 갈빗살 아까버라.

위생 앞치마를 벗어 던진 일본 아재가 밖으로 나갔다.

슬쩍 작업대를 보니, 무슨 난도질을 해놨는지. 한 달 되도록 저렇게밖에 못하나 싶었다. 아무리 초짜라고 한 달 해체하면 느릿해도 대충은 할 텐데.

띠리리릭-

인터폰이 울렸다. 마루는 본능적으로 촉이 왔다.

아- 씨발.

“예. 하마루입니다.”

[하상. 거기 3번 작업대 물량 말입니다. 하상이 마무리 좀 해야겠습니다.“

일본 아재가 개판 친 작업대다.

“어떻게 마무리하라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부위별로 나누는 것도 아니고, 갈빗살만 발라내는 것도 아니고.”

[큼- 그냥 갈빗살만 발라내고 갈비뼈를 옆에 파란 소쿠리에 넣으면 됩니다.]

야마츠키가 웬일인지 떽떽이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다른 부위는 작업하지 않아도 되고요?”

[네 일단 오늘 물량은 3번 작업대 쪽을 우선해 주면 됩니다.]

그렇다면야 뭐

“알겠습니다.”

[다 끝나면 바로 연락하세요.]

“예.”

일단 앞다리까지는 마저 작업하고.

어디 보자. 와 진짜 개판이네. 이거 고기 아까운 거. 갈빗살을 잘 벗겨야지 이걸 이렇게. 아-

3번 작업대에 있는 물건은 엉망이었다.

갈빗살만 따로 뭔가 한다는 건가?

마루는 너덜거리는 갈빗살을 쭉쭉 벗겨냈다. 순식간에 한쪽 갈비를 정리한 마루가 정리된 뼈를 들었다.

응?

뼈를 들던 마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무게가···

다시 갈비뼈를 들면서 확인했지만, 확실히 이상했다. 갈비 한 짝 살을 완전히 발라내면 뼈 무게는 15kg 내외. 견적을 보면 살을 발라냈을 때 뼈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16kg 안쪽이어야 할 사이즈인데. 20kg이 넘게 느껴졌다.

마루가 톡톡 갈비뼈를 칼로 살짝 두들겼다. 용가리 통뼈 갈비인가?

어?

갈비뼈 사이에 미세한 자국이 보였다. 아주 자세하게,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본다거나 조도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본다면 찾기 힘들 정도로 아주 작은 자국.

갈비뼈를 잘랐다가 붙였다?

왜?

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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