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5
마루는 뭔가 미묘한 감각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폈다.
마루가 일하던 작업대 위에 붙은 투박한 CCTV. CCTV의 각도는 정확하게 지금 갈빗살을 떼어내는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른 CCTV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 작업대만 녹화하고 있다는 건데.
두근두근
불안에 떠는 심장.
심장이 쿵쿵 목구멍을 열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침착해.’
갑자기 식은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장이 불안에 떨었던 것은 아버지 사업이 망할 때, 그리고 중학교 시절 수학 여행에서 교통사고 나기 직전이었다.
‘아 씨- 뭔데? 뭔데 이러는 거야?’
마루는 톡톡 두들겼던 갈비뼈를 슬그머니 파란 소쿠리에 넣었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으로 일하던 작업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짧은 몇 걸음에도 얼굴과 등판을 축축하게 적신 식은땀.
CCTV 각도를 벗어나서야 마루는 참았던 한숨을 푹 내쉬며 수건으로 흐르는 식은땀을 훔쳤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갈빗살을 뗄 때 느꼈던 위화감. 그건 갈빗살 윗 부분을 식용 본드로 붙인 부분을 뗄 때의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갈빗살을 살짝 떼어내고 갈비뼈를 자른다. 자른 갈비뼈를 붙이고 다시 그 위에 떼었던 갈빗살을 도로 붙인다.
일반인이 육안으로 갈빗살을 떼었다 붙인 것을 구분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어째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했을까? 갈빗살이 아닌 다른 부위를 이어 붙인 것도 아니고, 떼었던 갈빗살을 다시 그 자리에 그대로 붙였다.
갈비뼈를 자른 흔적을 덮기 위해?
그럼 갈비뼈 속을 파내고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
엑스레이는 갈비뼈를 하얗게 표시한다. 갈비뼈 속에 뭔가를 넣었어도. 하얗게 보일 것이다.
만약 그 뭔가가 마약이라면?
“씨발-”
신고한다? 여기는 일본이다. 게다가 아직 취업비자도 받지 못했다. 취업비자도 없이 관광비자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1이 신고를 한다? 게다가 그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 올림픽 때 본 일본의 행정력과 혐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답이 없었다.
심지어 증거도 없다. 증거를 챙기려면 붙인 갈비뼈를 열어봐야 하는데, CCTV가 녹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붙인 갈비뼈를 열어보는 건 미친 짓이었다.
‘좆같이 엮였네.’
마약이라면? 협력업체인 월드 축산이 몰랐을까? 알았다면? 왜 날 보냈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빠져나와야 했다.
10시 야근을 마치고 마루는 숙소로 직진했다.
매일 일과를 마치고 편의점에 들려 샀던 시원한 맥주도, 닭꼬치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만 가득했다.
어쩌면 이게 다 망상일지 몰랐다.
그냥 소갈비에 실금 간 걸 보고 호들갑 떠는 것일지 몰랐다.
‘지랄- 눈깔로 보고도 그러냐? 행복회로 돌리지 말고.’
냉정하게.
최악을 가정하면, 마루는 지금 마약 관련 조직과 관련된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이렇게 뺑뺑이 돌리는 이유가.’
돈을 주급으로 제때 주니 의심하지 않게 된다.
몸이 피곤하도록 일을 시키니 의심하지 못한다.
만약 꼬리가 들키면 제거하면 그만이다.
관광비자로 들어와 일하다 말고 도망친 외국인 노동자로 정리하면 그만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자, 정말 극단적인 상황만 떠올랐다.
이게 다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야근과 휴일에도 일하는 이런 노동강도는 견디기 힘들었다.
어찌 됐든 확실한 건.
탈주가 답이었다.
그러니까
‘튀자.’
일단 한국으로 튈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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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탈주를 꿈꾸며 전전긍긍 생활을 하는 동안 10월 초순이 됐다.
10월 초순에도 한낮 최고 온도가 29~30도에 육박하는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는 일본이었다.
홋카이도 옆, 후쿠시마 앞바다, 치바 인근 해역까지 일본 혼슈 관동지방 동쪽 바다 위아래로 규모 5~6 사이의 지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작년에 이어 뭔가 이상한 냄새가 올라온다고 도쿄만 인근 주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인터넷에서는 오다이바 똥물 냄새거나 썩은 물에서 나는 냄새라는 댓글과 함께 대지진 전조 증상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작년에도 대지진이더니 올해도 대지진이냐는 사람부터
진짜 올림픽도 망했는데 잦은 지진이 계속 생기는 거 보니까 무섭다는 사람.
이게 다 한국 탓이라는 않는 혐한까지.
마루는 인터넷을 살펴보다 몸을 떨었다. 도쿄 인근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터졌고 마루는 난생처음 지진을 경험했다. 해역에서 터진 지진이라 도쿄에서는 규모 3.8~4.0 정도의 지진이었는데, 그마저도 무서웠다.
작업대가 흔들리고 고정해 놓은 고기들이 앞뒤로 튕기고. 건물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탈출을 생각하던 마루는 지진 이후 미친 듯이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과장에게 전화해댔다. 심지어 하루에 3번이나 전화를 할 정도로 극성을 떨었다. 과장은 이왕 간 거 한 달만 더 있다가 오라는 둥 개소리를 시전했지만, 마루는 심적으로 한계였다.
‘미치겠네. 진짜.’
처음에는 몇 번 시키더니 이제는 대놓고 갈비작업까지 시키는 야마츠키였다. 그리고 갈비작업을 할 때마다 갈비뼈를 잘랐다 붙인 미세한 실금이 눈에 들어왔다.
3명 일본 덩어리 아재들은 언제부터인가 한 명씩만 와서 마루가 작업하는 걸 구경하는지 감시하는지 그러고 있었고.
“아이 깜짝이야. 작업하는데 그렇게 소리없이 오지 말라고 했죠. 놀라서 칼 나가면 어쩌려고.”
야근할 때, 갈빗살 떼고 갈비뼈만 따로 추스르는 작업을 할 때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서 일하는 도중 누군가 소리 없이 건드리면 들고 있던 칼로 쑤실 지경이었다.
“신기해서 그러지. 가볍게 슉슉-하면 쫙 살이 벗겨지는데. 장인이야 장인. 나이가 스물넷? 아- 한국식으로는 스물셋이라고 했던가?”
저번에 지진이 터졌을 때, 급박하게 건물 밖으로 나가면서 봤다. 이렇게 주둥이 터는 사람의 허리춤에 꽂혀있던 권총을. 마루가 이 업체가 야쿠자 업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계기였다.
일본도 총기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야쿠자들 사무소 털면 매번 총기가 쏟아져 나온다지만, 그럼에도 흔하게 진짜 총을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런데 권총을 허리춤에 숨기고 있다는 건, 이 축산공장에 구린 게 넘친다는 의미였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마루는 거의 4주에 걸쳐 탈출계획을 세웠다. 기순에게 연락해서 기순이 일본에 들어왔다가 나갈 때 같이 나가는 것을 기본 계획으로 세웠다.
기순이 관광비자 발급이 까다롭다고 징징댔다. 비자 발급에만 1달 걸리고, 일본에 들어가서도 2주 격리를 해야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마루는 월드 축산에서 진작부터 작업에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마루는 일본에서 건너와 숙소에 들어온 직후 14일간의 격리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엮여있는지 모르겠지만, 내일이면 끝이었다.
기순의 격리가 끝나는 시간은 내일 토요일. 기순이 미리 항공편을 예약했기 때문에, 마루만 빠지면 바로 갈 수 있었다.
“아 진짜- 모리노씨 그러다 큰일 납니다. 뒤로 가세요. 뒤로. 아니면 이쪽 옆으로 오든지.”
마루는 복잡한 속을 숨기며 모리노의 너스레에 맞춰줬다.
“그러지 뭐.”
모리노가 마루의 작업대 옆쪽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건물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시작됐다.
드드드드
더더더더
작업대 옆으로 오던 모리노가 팔을 허우적대다가 파란 소쿠리를 쳤다. 살이 잘 발려진 갈비뼈가 작업대 아래로 쏟아졌다.
다다닥.
틱- 소리와 함께 갈비뼈 붙인 부분이 떨어지면서 흰 수정 같은 결정들이 갈비뼈 속에서 쏟아졌다.
드드드드
끼이이익
H빔으로 연결된 부위가 비명을 질렀다.
흔들리는 건물처럼 모리노의 눈빛도 흔들렸다.
터진 갈비뼈에서 쏟아진 반투명한 알갱이와 주변을 왔다갔다하는 눈동자. 금새 눈동자에 스며드는 살기. 허리 뒤춤으로 옮겨지는 손.
마루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그 모든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모리노의 손이 완전히 허리 뒤쪽으로 돌아간 순간. 마루가 들고 있던 칼로 모리노의 오른팔 견관절을 찔었다. 허리춤의 권총을 잡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이어진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크-
일본 아재의 입에서 크- 소리가 이어지기 전, 어깨관절을 찔렀던 칼이 쇄골옆을 지나가면서 위로 솟구쳐 목의 경동맥을 스치듯 비껴갔다.
허리 뒤춤으로 갔던 모리노의 손이 목의 경동맥을 틀어막으러 올라왔다. 마루는 반사적으로 모리노의 갈비뼈 사이와 간장에 칼을 쑤셔 넣었다 뺐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목을 부여잡고 버둥거리던 모리노가 조용해졌다.
드드드득-
······
두근두근
두근두근
“씨발. 씨발. 씨발. 씨바알!”
하루만. 딱 하루만 조용히 지나갔으면 한국으로 튀는 건데. 10초 조금 넘게 흔들렸던 지진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사람을 죽였는데.
미치도록 뛰는 심장.
터질 것만 같은 가슴.
가쁜 호흡.
널브러진 시체.
쏟아진 건···아마도 마약.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마루의 머리는 팽팽 돌았다. 마약 사건으로 터트리자. 일단 익명의 제보로 터트리고 CCTV 자료 지우고. 아! 취업비자로 바꿔준다고 가져간 여권 찾고.
CCTV만 지우면 야쿠자 사이의 항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마약이 발견되면 더 그럴 거고, 운이 좋으면 한국의 월드 축산까지 한 번에 엮어서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내 알리바이는?’
“씨발.”
일단 무조건 빨리 움직여야 했다. 결정적 증거만 없으면 된다. 일단 움직여야 했다. 마루는 바닥을 뒹굴고 있는 갈비뼈를 내리밟았다.
꽈득-소리와 함께 이어붙인 부분이 터지면서 반투명한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렇게 4~5개의 갈비뼈를 짓밟은 뒤, 모리노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찾았다.
베레타와 여분 탄창 2개. 어차피 장갑을 끼고 있으니 지문은 문제가 없다. 위생모와 앞치마, 작업용 부츠까지.
좋아.
마루는 아직 약하게 흔들리는 복도를 거쳐 사무실로 향했다. 두 번째 책상 가운데 서랍. 서류와 비자들을 거기에 넣는 걸 봤다. 따로 옮기지 않았다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만약 거기에 없다면, 금고는 소파 뒤쪽. CCTV는 탕비실 옆에 공조실.
야근인데 야마츠키가 있을까?
훅 훅
두근두근
거친 호흡을 꾹 누르며 사무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고리를 돌리려는 순간, 미묘한 느낌에 마루가 고개를 들었다. CCTV가 사무실 출입문 부분을 향하고 있었다.
만약 작업실에서 벌어진 사건을 누군가 봤다면? 지진이 났는데 그걸 보고 있었을까? 저번에도 지진 때문에 CCTV가 오작동했었다. 그러니까 꼭 CCTV를 의식할 필요는······.
생각과는 달리 마루는 안전장치를 풀고 베레타를 꼭 쥐었다.
그리곤 허리를 푹 숙이고 문을 벌컥 열었다.
탕! 탕!
문을 열자마자 머리 어림으로 쏟아지는 총탄!
마루는 깊게 숙인 허리를 둥글게 말아 앞구르기를 한 뒤, 서 있는 형상을 향해 베레타의 방아쇠를 연발로 당겨버렸다.
타다다 타타탕!
슬라이드가 앞뒤로 흔들리며 매캐한 총연을 뿜었다.
팅- 티팅- 빈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며 금속성을 내뱉었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