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9
119 구급대원이 펜 라이트로 오미예 여사의 눈동자를 확인했다. 동공수축반응을 살핀 구급대원이 수액을 꽂는 동안 오미예 여사는 반응이 없었다.
살아있지만 반응은 없는 마치 마네킹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세 그대로였다.
누워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앉은 자세로 저렇게 있으니 이상할 따름이었다.
“어떤가요?”
마루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반응을 보면 마약류를 투약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종류죠?”
구급대원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확실하지 않아서 제가 말씀드리기 뭐하고요. 저기 마약반 쪽에 물어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그럼 어머닌 계속 이렇게 이 상태로 계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마 2~3시간 뒤엔 움직이실 겁니다. 수액을 놓으면 더 빨라지고요.”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 하는 겁니까?”
“일단 응급실로 가서 수액과 중화제를 처방하는 쪽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루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함께 가야겠다 생각했다.
“거기 보호자님 되십니까?”
“네.”
마약단속반 형사가 마루를 불렀다.
마루를 보는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어머니 오미예 씨가 언제부터 약에 손댔는지 혹시 짐작되십니까?”
“아니요.”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대략적인 시기도 짐작하지 못하겠습니까?”
요즘엔 마약이 동네, 회사, 대학교, 클럽, 헬스장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퍼지고 있었다.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언제 마약을 시작했는지 대략적인 시기만 알아도, 휴대폰 위치기록이라든지, CCTV 기록이라든 지를 확보해 수사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뿌리를 뽑지는 못해도 최소 동네에 있는 유통책만 잡아도 자정효과를 낼 수 있었다.
“네. 제가 독립해서 살고 있어서요.”
“그렇습니까? 그럼 아버님과 동생분 연락처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와 동생까지 걱정하게 하는 건 아닌지 싶었지만, 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번호를 적어 형사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혹시 그 약이 어떤 약인지 아십니까?”
전화번호를 건네받은 형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거실을 살폈다.
“신종마약입니다. 일반인들은 아직 모르고, 그러니까 저쪽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약이죠.”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을 가리킨 형사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가의 마약입니다. 어떻게 유통되는지 짐작하기도 어렵고요. 이제까지 유통책으로 잡힌 사람들이 법조인과 의료직 종사자들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입니다.”
“뭐가 아쉬워서 전문직인 사람들이 마약을 하고 파는지···. 그러니까 이 동네에서 어떻게 이런 마약을 구했는지 이상하네요. 아마도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서 구한 게 분명한데······.”
형사의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오미예 여사가 쓴 마약이 아주 비싼 신종마약인데, 반지하에서 사는 전업주부가 어떻게 이 마약을 구했을까, 의심스럽다는 뜻이었다.
마루는 그 말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 심지어 의심될 만한 구석이 두 개나 됐다.
하아-
마루의 작은 한숨을 들은 형사가 안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1g당 천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더군요. 요즘 일반 마약이 1회 투여분에 싸게는 20선에서 유통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가격이죠. 싼 마약도 아니고 이런 마약을 어떻게 구했을지.”
형사가 증거보존용 비닐 팩에 담긴 하얀 약통을 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수면제가 들어있을 법한 하얀 약통이었다.
“이게 30g짜리 약통이거든요. 이거 한 통만 썼다고 가정하고 절반가량 남았으니 15g 정도를 쓴 것이죠. 1g당 두 번 정도 쓸 수 있다고 보면 한 달 됐고. 효과를 강하게 보려고 1g씩 썼다면 보름 됐다는 건데. 그걸 떠나서 30g짜리를 현찰로 샀다면 최소한 3억 넘게 썼다는 소립니다.”
약값이 3억이 넘는다는 말에 마루는 턱- 숨이 막혔다. 대체 무슨 돈이 어디서 나서? 나루 레슨비에 허덕였었다. 근데 3억? 마루의 표정을 본 형사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런 경우 사채업자랑 엮인 게 있나, 미리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사채업자요? 사채업자들이 약값까지 대출해 줍니까?”
형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채업자야 받을 구멍이 있다 싶으면 빌려주죠. 그리고 그렇게 빌려준 돈이 마약 사는 데 쓰였다고 사채업자에게 책임 운운하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
담배를 물고 있던 형사가 라이터를 꺼내 보였다.
“실례지만···.”
“괜찮습니다.”
칙- 담배를 깊게 빤 형사의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설령 마약조직과 사채업자가 손잡고 작업을 친 것 같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개입하긴 어렵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증거가 없으니까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거죠. 사채업자들은 ‘내가 빌려준 돈으로 약을 할지 빨래를 할지 어떻게 아냐?’고 버티면, 어쩔 수 없죠. 마약 조직도 ‘약을 산 돈이 사채를 써서 가져왔는지 집을 팔아서 가져왔을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모르쇠로 일관해도 그렇고요.”
사채로 빌린 돈이 고스란히 마약을 사는 데 흘러가고, 그 돈은 다시 조직으로 흘러들어 간다.
“조언을 드린다면 어머니를 한정치산자로 하셔서 더 이상의 금융거래를 할 수 없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
“마약이라는 게 사람이 끊고 싶다고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 바닥에 있으면 알게 되더군요. 아직 학생이신 것 같은데, 마음 단단히 먹고 이겨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나중에라도 연락드릴 일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형사는 명함을 하나 건네주고 일어섰다.
빡-
형사가 현관 밖으로 나가자, 마루가 식탁을 내리쳤다. 대리석 식탁에 금이 쫙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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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담배 연기가 가득한 차 안, 운전하던 이 순경이 한 형사에게 볼 멘 소리를 냈다.
“한 형사님 창문 좀 열고 피세요. 너구리 잡을 일 있습니까? 너구리보다 제가 먼저 죽겠습니다. 이거 간접흡연이라고요. 간접흡연,”
“창문 열면 미세먼지 그냥 마시라고? 오늘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이라던데, 미세먼지 마시기 싫다. 막내야.”
막내 소리에 자지러지는 반응을 하는 이 순경이었다.
“아- 이제 막내 아니라고요. 차량에서 흡연 금지 공문 내려온 게 언제인데 아직도 이러세요. 이거 냄새난다고 저만 쪼인다고요. 진짜 카바 칠 수 있을 정도로 피셔야지 이렇게 피시면 탈취제로도 카바 안 된다고요.”
“그래. 그래. 누가 뭐라고 하면 내가 폈다고 해. 지지든 볶든 맘대로 하라고 해.”
한 형사는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았다. 연기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 뿌옇게 피어나는 연기와는 달리 답답했던 가슴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지랖이었을까?
피식-
한 형사가 조소했다. 오지랖이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오지랖 떤 이유는 어쩌면 그 어린 청년의 앞날이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아니면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상황이 눈에 밟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병중에 있는 아버지, 도박에 빠져 집안 말아먹은 어머니, 집구석 지긋지긋하다며 가출한 여동생이 떠올랐다.
경찰이 되고 형사가 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형사가 됐어도 여동생 하나 건사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죽음 또한 막지 못했고, 도박에 빠진 어머니조차 종국에는 행방을 찾지 못했다.
“한 형사님 그 집 말이죠. 반지하에서 사는 걸 보니, 돈이 나올 구석이 없는데 어떻게 약을 구했을까요?”
“약에 빠지면 뭔들 못하겠냐? 약이나 도박이나.”
“제가 안에서 쭉 살폈는데. 이게 있더라고요.”
이 순경이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급여봉투였다.
“와- 아직도 현금으로 주는 회사가 다 있네······.”
한 형사가 봉투 끝에 박힌 사명을 노려봤다.
[월드 축산]
“거기 사명 보셨죠? 월드 축산? 거기 월드파 유통망을 겸한 세탁소로 의심되는 곳이죠?”
한 형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 보이지는 않았는데, 감이 죽었나? 아니, 그 청년의 분노는 진짜였다. 타오를 것 같은 분노. 한 형사는 그걸 느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정황이 있다면 또 몰랐다. 아니면 조직에서 가족을 잡아 길들이려는 걸까? 배신할 수 없게? 그럼 조직이 신경 쓰고 있는 인물이라는 건데···. 아직 몰랐다.
“제 생각은 그 집 아들내미가 조직원인데, 집에 약을 흘린 게 아닐까 싶어서요.”
“······.”
한 형사의 묵묵부답에 이 경장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아니. 약통도 딱 수면제 통에 넣고. 그렇게 집에 뒀는데 가정주부인 오미예씨가 청소를 하다 그걸 발견하고, 불면증이 있어서 또 우연히 먹게 되면서. 일이 터진거죠.”
“······.”
“밖에서 세일즈 하다 간만에 집에 와 보니, 이게 어쩐 일? 비즈니스 해야 할 걸 엄마가 먹어버렸네? 대책이 없네? 그러니까 자진 신고해서 꼬리 끊고, 엄마도 살리고 그러자. 딱 이런 시나리오가···.”
“그러니까 신고한 사람이 진짜 약팔이다?”
“아니면 사채업자가 눈이라도 삐었는지 3억도 넘는 돈을 가정주부에게 줬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막말로 그거 한 통에 3억이 넘는데 그걸 전에도 먹었다면 6억이 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죠. 사채업자가 6억 이상을 가정주부에게 밀어 넣는다? 그건 진짜 이상한 거 아닙니까? 거기에 그 아줌마 그 약 먹은 반응을 보면 한 달 먹은 반응은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
한 형사가 담배를 비벼 끄고 새 담배를 물었다.
칙-
후우-
“일단 상황 좀 자세히 보자. 오미예씨 통장하고···. 아니, 그 집 사람들 금융기록이랑 휴대폰 위치기록 다 확인하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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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뭡니까?”
[아이고 뭡니까? 뭡니까가 뭐긴 우리 마루 사원이 귀국하셨는데 연락이 없으니까 이렇게 전화를 했지. 일본에서 귀국하셨으면 회사에 연락 먼저 하셔야지 너무한다.]
마루는 홍 과장의 너스레가 역겨웠다.
[아니 근데 너무 빨리 왔다. 한국 오겠다고 징징대서 설마 올까 했는데 진짜 왔네. 운도 좋아 일본에 있었으면 지진으로 전화 통화도 못 할 뻔했는데···. 진짜 운이 좋은 백정 마루라니까.]
“······”
[일본 애들이 그냥 보내줄 애들은 아니고, 몇 달 더 잡아 두고 진행하기로 했는데 그걸 또 어떻게 알고 탈주를 했어요. 탈주를. 백정이라 그런지 탈주본능이 뛰어난가? 응? 말해봐. 어떻게 튀었어? 눈도 있고 꼬리도 있었을 텐데? 백정 마루야 응? 존나 궁금하네.]
“그 백정 소리 좀 그만하죠.”
[오- 목소리 까니까 진짜 칼 밥 먹는 사람 같은데? 설마 싹 잡아 버린 건 아니지? 소 잡듯이 싹 잡아 버리고 당당하게 돌아온 건가?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근데 너무 냉정하다.]
피가 끓는 것 같았다. 옆에 홍 과장이 있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주먹부터 나갔을 것이다.
[아니, 사람이 그렇지. 오래간만에 본 엄마가 약쟁이가 됐으면, 엄마부터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 ‘엄마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라든지, ‘우리 힘들겠지만, 가족이 함께 극복하자.’라든지 뭐 눈물의 휴머니즘이 있는 그런 전개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
[와 근데 이게 냉정하게 119를 불러 버리네, 덤으로 짭새도 뜰 걸 알면서 말이지. 냉정해 냉정. 냉혹한 결단력, 가족이 빨간 줄 긋든가 말든가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비정함. 사채업자랑 엮여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냥 질러 버려서 당황했다 진짜.]
“······”
마루의 침묵에도 홍 과장의 입담은 끊이지 않았다.
[애비는 어쩌고? 뒤탈은 생각해 봤고? 동생은? 산삼보다 좋다는 고삼이던데 업자들이 찾아가면 어쩌려고? 설마설마 하다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내가 사람을 잘 봤어. 내가 처음에 그랬지? 딱 보니까 넌 백정이 천성이라고.]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