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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10화 (10/280)

러스트 [RUST]-10

[왜 아닌 것 같냐?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있냐? 가족을 생각하면 네가 대놓고 그러지 못하지, 가족이고 나발이고 꼴리는 대로 하는 놈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 아니겠냐? 내가 널 딱 처음 봤을 때 필이 그냥 팍하고 꽂혔다니까. 너 일본 애들 잡았지? 그 치?]

“······.”

슬금슬금 훅 들어오는 홍 과장이었다. 마루는 침묵으로 응수했다.

[거참 입에 본드 칠을 했나. 이게 이쪽 업계에 전설의 백정이 하나 있는데, 그냥 스치는 칼질 로 상대방을 골로 보내는 사람이었거든. 전국구를 넘어서 그냥 세계급이었어요. 세계 그러니까 월드급. 그냥 영화 캐릭터가 현실을 찢고 나온 그런 인간이 하나 있었어. 근데 딱 너 같은 사람이었다. 타고난 백정 말이지.]

그놈의 백정. 마루의 얼굴이 무섭도록 냉막하게 변했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용건? 용건이야 많지. 느그 애미가 끌어다 쓴 돈 이야기도 있고, 눈물 젖은 애비 이야기도 있고, 산삼 같은 동생 이야기도 있고. 회사에서 큰 맘 먹고 인재양성을 위해 해외로 파견했는데 중간에 사고를 쳤는지 탈주를 했는지 튄 놈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이쯤 이야기를 했으니, 대충 감을 잡았을 거 같고. 그럼 가부간에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어?]

“······.”

그러니까 날 일본에 보낸 것도, 일본에서 작업 치려고 했던 것도, 울 엄마에게 약을 준 것도 날 백정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마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정해라. 진정해. 또 실수를 반복할 거냐?’

마루는 가늘고 길게 심호흡했다. 고작 10월 초인데, 마루가 후욱-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증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얼굴 좀 보고, 페이스 투 페이스. 허심탄회하게! 가슴을 탁 열고!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어쩔래?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아니면 네가 회사로 올래?]

“가죠.”

[캬- 배짱도 좋고. 그래야지. 그럼. 암. 내가 섭섭하게 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와서 이야기하자고. 최실장 알지? 최도일이. 최실장 보낼 테니까 그 차 타고 와.]

“이따 보죠.”

[그래 1시간 정도 걸리니까. 그리 알고. 오면 딱 점심시간이네,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뚝-

마루는 더 듣지 않고 휴대폰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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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하- 씨- 새끼 버르장머리하고는. 그냥 끊어 쌌네.”

홍 과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시렵니까? 가는 김에 손 좀 봐서 데려올까요?”

도일이 홍 과장을 보며 말했다.

“됐고. 점마 분위기가 변했다. 얼굴 봐야 알겠지만, 여기서 일 할 때는 순둥이 같던 놈이 날이 서 있는 게 말이지. 필이 팍 온다.”

회사에서 사람 잘 보기로 소문난 홍 과장이었다.

반쯤은 관상쟁이 취급을 받는 홍 과장이 이렇게 말한다면, 뭔가 변화가 있기는 있다는 말이었다.

도일은 석 달 전쯤 마루의 인상을 떠올렸다. 모범생 같은 분위기. 곱상한 얼굴. 축산물 해체 든 뭐든 몸 쓰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홍 과장은 그 곱상한 얼굴에서 뭘 보고 마루를 찍었을까? 그러나저러나 설계가 틀어진 게 문제였다.

“그 아줌마가 119 구급대에 실려 갔으니 더는 작업할 수 없게 됐는데, 아가씨께는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러게 그게 문제네. 두어 달 더 있었으면 완전히 숨통을 콱 잡았을 텐데, 두 달은 아무래도 짧긴 하지. 그래도 그게 한 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쉬운 건 아니지 않나? 특히 여자들은 말이지. 따로 손을 꼬박꼬박 관리하고 돈을 팍팍 쓴다면 모를까.”

도일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일이고 아가씨와 홍 과장이 진행하는 일이니까 하고 입을 다물었다.

“왜? 표정을 보니까 왜 이리 복잡하게 하나 싶은가 보지?”

“네.”

“이게 다 아가씨랑 관계있는 일이라서 말이지.”

“아줌마도 그렇고 그놈도 아가씨랑요?”

“뭐 나야 대충 스토리를 알겠다만, 너는 그런 거 모르는 게 좋다.”

“예.”

홍 과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각본, 연출, 감독, 전부 자기 손에 달려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 한 가정의 운명이 인간 홍준호 자신의 손에 달려 있었다.

대본에 조금 하자가 생겼지만, 전반적인 스토리는 문제없었다. 본래 인생 드라마는 쪽대본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겠는가?

“자 어디 보자. 이제 머리끝까지 빡친 마루 사원이 올 텐데, 준비는 해야겠지?”

“애들 몇이나 부를까요?”

인간의 심리는 미묘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멍청한 짓을 하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홍 과장이 좋아하는 영화의 대사가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광기는 중력과 같아서 살짝만 밀어주면 된다.’

있는 년이건 없는 놈이건 미치게만 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살짝 밀어주는 것만 남을 뿐.

선은 한 번 넘기 어렵지 두 번, 세 번 넘다 보면 줄넘기를 하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우리의 마루 사원이 어느 정도 포텐을 가지고 있는가? 인데.

“든든한 놈들로 다섯? 아니다. 누를 때는 확실히 눌러야 하니까 열 명 부르고. 장소는 안팎으로 조용한 거기로 하지 분위기 좋게.”

“조용한 거기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가족도 버릴 백정 새끼라고 이빨 깐 것도 다 빌드였다. 심리란 게 묘해서 단정해 버리면 반발심으로 반대로 간다.

가족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냉정한 놈이라고 했으니, 반발심도 반발심이겠지만, 속으로는 미칠 것 같겠지.

망한 집구석 혼자 떠받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회사에도 돈 몇 푼 집에 보내겠다고 들어온 놈이 술과 약, 여자에 빠져 흔해 빠진 덩어리가 되는 경우는 흔했다.

근데 녀석은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해가며 번 돈을 거의 전부 집에 보내고 있었다. 한창나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을 텐데 청춘을 버려가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놈일수록 잘 가공하면 작품이 되는 법이었다.

일단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콱 누르고, 눈물겨운 애비 스토리 좀 풀고, 향긋한 산삼 여동생 좀 어르고 하면 반쯤 꺾일 것이다. 그리고 클라이맥스로 약 빤 애미가 딱 등장해버리면 좋았는데.

쯥-

그래도 일단 구도는 잡았고, 빡쳐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좀 박아주고. 약값 6억부터 시작해서 옭아매면 일단 기본적인 목줄은 채우는 거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운전 조심히 하고. 우리 마루 사원이 개념 없이 해도 꾹 참고 데려와. 일단 데려오면 되는 거니까.”

“네.”

“아- 혹시 또 모르니까 애들도 데려가고.”

“알겠습니다.”

최실장이 밖으로 나가자 홍 과장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살짝 굳었던 목이 풀어지며 투둑 소리를 냈다.

“이쁘게 작업해서 작품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까다롭네.”

뭐 까다로운 재미로 하는 일이지만

홍 과장은 분위기를 어떻게 잡을까 연출에 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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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형사는 서류를 들고 고심했다. 마루의 출입국 기록이었다.

‘두 달하고 보름 넘게 일본으로 관광을 갔다?’

관광비자로 갔으니 관광을 했겠지 하는 건 웃기는 일이었다. 반지하에 사는 게 흉은 아니지만, 시국이 시국인데 그 형편에 그것도 이 시점에, 관광차 일본에 갔다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그냥 해외여행이라면 무비자로 하는 나라들도 많았다. 그런데 비자신청에 한 달 많게는 두 달까지 질질 끄는 일본으로 갔다는 건 뭔가 있다는 소리였다.

‘출국 때 항공권을 예약한 곳도 걸려.’

월드 인터네셔널. 월드 축산처럼 월드파 계열사로 추정되는 회사였다.

‘정말 월드파와 관련 있다는 건가?’

한 형사의 미간이 구겨졌다. 출입국 기록까지야 어떻게 확보를 했는데 휴대폰 위치추적과 톡내용 확인은 반려됐다. 전과가 없고 특수 범죄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지능범, 특수범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대응은 늦어지고 있었다. 개인정보나 인권도 중요하지만 일단 수사를 할 땐 손발이 자유롭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다 원죄 때문이지 원죄.”

해방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검경이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그럼직도 하다 싶기도 했다가도 이렇게 팍팍한 현실을 생각하면 또 갑갑했다.

한 형사가 다른 서류를 집어 드는데, 이 순경이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형사님, 마약 2과 3팀 안 형사가 우리 사건 넘기라는데요?”

“안 형사가?”

“왜 그 사람이 이걸? 이거 우리 사건이잖아. 최초 수사도 우리가 했고.”

“그런데 사건 이관하라면서···.”

반쯤 열린 문을 활짝 열며 머리숱이 적은 머리통이 불쑥 들어왔다.

“사건은 그쪽 담당인데, 거기서 나온 약이 우리가 추적하고 있는 약이라서 말이지.”

“우리는 뭐 구경만 하고 있었나? 우리도 추적하고 있다고 그런데 갑자기 사건 이관?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그렇게 성질 내도 어쩔 수 없다고. 이거 과장님이 하신 말이야. 좋게좋게 넘기고 그러라고, 같은 밥 먹고 있으면서 의 상하면 되겠냐고 하시더라.”

“누가? 어느 과장이?”

“나 과장님이.”

“씨발-.”

저번에도 하던 걸 뺏어가더니 또 이렇다. 위에 무슨 줄을 잡아맸는지 모르겠지만, 아슬아슬한 선에서 여럿 피곤하게 하는 나 과장이었다.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까지는 좋은 데, 가져간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잡으면 중간 끈, 피라미만 잡아 변죽만 울리곤 그나마 그 공도 나 과장 밑에 놈들만 나눠 가졌다.

수사하던 자료 중간에 통으로 가져가서 한다는 짓이 수풀 건드리고, 기어 나온 놈 몇 잡고 마는 것도 지랄이지 지랄이야.

“어이- 한 형사. 입 조심하고. 공적인 자리에서 상급자에게 욕하는 모습 좋지 않아.”

“상급자고 나발이고, 나 과장은 2과잖아. 2과가 3과 사건 빼가는 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이건 아니지. 그냥 달라면 주니까 우리 3과가 그냥 물로 보여? 이 사건 가져가려면 우리 3과 과장한테 허락받고 가져가.”

안 형사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꼭 그래야만 하겠어? 한 지붕 아래 있는 사람들끼리?”

“한 지붕이고 두 지붕이고, 같은 지붕에 살아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지 옆에서 수사하던 거 빼가면서 그래야만 하겠냐고? 저번에 가져간 거 그 지랄 해놓고 염치가 있어야지.”

“야- 한 형사! 너 지금 진짜 해보자는 거야?”

“그래 해보자. 이번에 가져가서 또 지랄 낼지 누가 알아? 이번엔 그냥 안 지나간다. 과장님 부장님까지 내가 다이렉트로 들이받아서라도 함 끝까지 간다. 해보자고 어디.”

한 형사의 대거리에 안 형사가 분한지 식식거리다 나갔다. 쾅-소리 나게 문이 닫혔다.

이 순경은 나는 없는 사람이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지 않으면? 내가 몇 번을 참고 또 참았는데. 이젠 더 못 참겠다. 자료 좀 정리해서 줘봐 바로 과장님께 가게.”

"지금요?"

"그래. 지금 당장."

보자보자 했더니

‘아주 염치가 없어요. 염치가.’

한 형사가 진심으로 빡쳤다.

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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