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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14화 (14/280)

러스트 [RUST]-14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에 마루는 쓰게 웃었다.

최 실장이고 백 실장이고 애먹이더니 여기선 김 양이 지뢰였다.

그 순둥한 얼굴 뒤엔 어떤 과거가 있는 걸까?

칼을 하나 꽂아 넣는 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김 양은 칼이 꽂혔는데도 앓는 소리 하나 흘리지 않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니,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책상 아래에 누워 있을 것으로 예측할 뿐이었다.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총질을 눈앞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연속으로 두 발?’

두 발을 연속으로 쏘는 더블 탭.

대체로 같은 부위에 두 발을 꽂아 넣어 살상력과 명중률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근데 방금 본 총격은 더블 탭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몸통에 2~3발 쏴 저지하고, 머리를 쏴 확인 사살하는 방법은 모잠비크 드릴인데, 김 양의 방식은 첫발로 저지하고 바로 머리를 쏘는 방식이었다.

어찌 됐든 그걸 반사적으로 했다는 건, 김 양은 아주 숙련된 총잡이라는 소리였다.

후-

여자라고 우습게 본다?

웃기는 소리, 총은 남녀를 평등하게 만들었다.

여자든 남자든 총잡이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잘쏘냐?’였다.

숙련된 총잡이에게 칼 하나 달랑 꽂아놓고 시간 끄는 건 위험했다.

‘위?’

‘아래?‘

총구가 어디를 향할까? 어디를 노리고 있을까?

째깍- 째깍-

초침이 재촉했다.

시간 끌지 않는다.

후- 길고 깊게 숨을 고른 마루가 책상 책꽂이 끄트머리를 냅다 발로 찼다.

빽빽한 책꽂이와 컴퓨터, 모니터까지 김 양이 숨어 있는 쪽으로 쏟아졌다.

우탕탕

그 틈을 타, 마루는 총구의 사각인 책상다리 쪽으로 내려와 책상을 엎었다.

강한 힘으로 책상을 빈대떡 뒤집듯 통째로 뒤집었다.

엎어지는 책상을 엄폐물로 삼은 마루가 달려들었다.

확장되는 시야, 예민해지는 감각. 공간 감지가 마치 레이더처럼 머릿속에서 이뤄졌다.

프레임이 하나씩 끊기는 것 같은 모습. 시신경과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밀리는 느낌.

타-아아아-박

테이프가 늘어진 것처럼 들리는 발걸음 소리.

책상이 슬로비디오로 엎어지는 틈에서 김 양을 보았다.

컴퓨터와 모니터, 전선으로 뒤엉킨 잔해에 묻힌 오른손, 그 오른손이 쥐고 있는 권총.

김 양과 눈이 마주친 느낌이었다.

필사적으로 권총을 쥔 오른손을 마루 쪽으로 향하려는 모습.

당겨지는 방아쇠.

투우우웅-

투우우웅-

허공으로 헛발질하며 날아가는 총알.

필사적인 몸부림이 애처로웠다.

하지만 늦었다.

휘릭 뒤엎어진 책상이 김 양을 덮쳤다.

퍼억!

느릿했던 시간이 정상적으로 변했다. 책상이 엎어지고 김 양은 아래에 깔렸다.

마루는 책상 밖으로 삐져나온 김 양의 오른팔에 사시미를 박아 넣고 비틀었다.

푹! 으직!

쑤시고 뼈에 칼날이 비틀리는 소리 그리고 끅- 하는 신음과 함께, 파닥이며 움직이던 김 양의 오른손이 쥐고 있던 권총을 놓쳤다.

마루는 컴퓨터, 모니터가 뒤엉킨 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퉁퉁한 소음기가 달린 글록이었다.

후-

사시미를 비틀어 뽑자, 김 양의 오른팔에서 피가 왈칵 흘렀다.

마루는 한쪽 다리로 책상을 눌렀다. 출혈로 봐서 얼마 버티지 못하지, 싶었다.

한숨 돌리는데, 책상 아래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살려주시라요.”

“응? 뭐라고?”

마루는 처음 듣는 사투리? 비슷한 억양에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살려주세요.”

“······.”

‘아 씨발- 한 번에 끝냈어야 했는데.’

일반인에서 뭔가 일반인이 아닌 것이 된 지 고작 이틀, 만으로는 24시간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어제 금요일 밤 9~10시 사이 일본에서 모리노와 야마츠키를 죽이고 탈주, 오늘 토요일 새벽 6시 8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와, 오전 10시경 집에 도착. 약에 빠진 어머니를 발견, 119를 불러 병원으로 보내면서 덤으로 온 마약반 수사에 질의응답. 11시 20분쯤 찾아온 최 실장과 백 실장을 담그고, 12시 40분 현재.

반쯤 죽인 김 양의 살려달라는 애원을 듣고 있었다.

고작 그 정도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변한 시간이.

일이 닥치면 냉정한 마루였지만,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최 실장처럼 원독에 쌓인 눈빛을 보내거나 그랬으면 무시할 수 있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마루는 자신이 뭔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기존에 있던 평범한 마루는 사라진 것인가? 그건 아니었다.

기순과 장난도 칠 수 있었고 가족 걱정도 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자신은 살귀가 아니었다. 그놈의 백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려달라고 하는 김 양을 살려 줄 건가?

마루는 짜증이 났다. 그냥 한 번에 죽였으면 됐을 걸, 이런 질척한 느낌이 싫었다.

“그냥 조용히 죽어요. 좀.”

마루의 짜증 가득한 대꾸에 책상에 깔린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씨발. 입장 바꿔서 내가 거기 깔려서 살려달라고 했으면, 댁은 날 살려줬겠어?”

마루의 질문은 못 들었다는 것처럼. 책상 아래에서 같은 말이 반복됐다.

“···살려주세요.”

“······.”

“살려주세요. 제발.”

“······.”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할게요···.”

“······.”

“제발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주문처럼 반복되는 살려달라는 소리. 꿈에서 나올 것 같았다.

다시는 실수하지 말자. 보낼 땐, 한 방에 보내자. 마루는 이상한 다짐을 했다.

“아- 씨- 콱 죽여 버리기 전에 닥치라고!”

“······.”

“그냥 남은 시간 조용히 회개도 하고 미련도 버리고 가세요. 좀.”

“살고 싶어요. 정말 살고 싶어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 애절한 목소리였다.

마루는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당신을 왜 살려줘야 하는데? 엉?”

“살려주면? 그래 살려주면? 내 뒤통수에 총알 박으라고 살려주나?”

조금만 더 있으면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을 거고 조용히 갈 거다.

짜증 난다고 여기서 손 써서 죽이면 살인귀가 된 듯한 기분이 들 거 같았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과다출혈로 죽게 그렇게 가기로 했다.

마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 아래서 올라오는 소리를 무시했다.

“신분··· 신분도 바꾸고 멀리 도망쳐서 살게요.”

“정보도 있어요. 약에 대한 것도 알아요. 그거 그냥 약이 아네요.”

‘뭔 이런 사람이 있냐?’

보통 이쯤 되면 막 저주를 퍼붓든지, 울든지 그러지 않나?

진짜 뒤끝 찜찜하게 만드는 여자였다.

“금고도 어딨는지 알아요.”

“살려주시면 다른 나라로 가서 다시는 오지 않을게요.”

“뭐든 물어보세요. 알고 있는 거 다 말할게요. 살려주세요. 제발요.”

마루의 침묵에도 김 양의 애원은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김 양이 던진 말 가운데는 마루가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뭐든 물어보라고?’

지금이라도 묻고 싶은 건 연락이 닿지 않는 아버지와 동생이었다. 본래는 기절한 홍 과장을 깨워서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김 양이 이렇게 나오면 나쁘지 않았다.

김 양의 답과 홍 과장의 말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당장 죽일 건 아니라고 생각이 기울었다.

‘김 양은···. 모르겠다.’

마루는 본능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지금 죽이기 꺼림칙하면 일단은 두자, 살려주기로 했는데 계속 찜찜하면 눈 딱 감고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마루는 밟고 있던 책상에서 발을 뗐다.

짓밟던 무게가 사라졌다는 걸 알자, 김 양은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려주시는 거죠?”

“일단 나와.”

마루는 기둥 뒤에 몸을 반쯤 가린 채, 김 양이 있는 방향으로 총구를 겨눴다.

손에 뭐가 들려 있으면 그대로 쏠 생각이었다. 그런 마루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책상을 옆으로 밀고 나오는 김 양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뭘 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른팔은 팔뚝 아래로 엉망이었고, 왼쪽은 등에 박힌 칼이 앞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마루의 시선이 김 양의 오른팔을 향했다.

‘하- 저걸 저렇게 쓰네.’

언제 그랬는지, 김 양은 오른팔 출혈 부위를 마우스 선과 볼펜을 이용해 지혈하고 있었다.

김 양의 순둥한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지혈했다고 해도, 시간 단위로 버티긴 힘들어 보였다.

“나 알지?”

김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가 일본으로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 양이 작업량 확인해서 월급 정산을 했었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월급날에는 얼굴을 마주한 사이였다.

“그럼 우리 아버지, 동생 어딨는지 알아?”

김 양의 고개가 다시 살짝 끄덕여졌다.

“어딨어?

“살려주시는 거죠?”

하- 살려준다고 하고 쏘면 어쩔 건데?

“하는 거 봐서. 울 아버지 어딨어?”

“신세계 요양병원이요.”

요양병원에?

“동생은 어딨어?”

김 양은 입이 바싹 말랐는지, 침을 삼켰다.

“내 동생은 어디 있냐고? 꼭 두 번씩 말해야 하겠어?”

마루의 다그침에 바싹 마른 김 양의 입이 열렸다.

“4번 작업장이요.”

“어디에 있는 4번 작업장? 여기?”

“네.”

4번 작업장? 돼지 작업하는 곳인데? 거기에 나루를?

마루의 살기가 짙어지자 김 양이 높은 목소리를 냈다.

“살아있어요! 살아있어요! 동생 살아있다고요!!!”

김 양은 마루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같은 사람? 인간이라고 이런 게?

주변 분위기가 칙칙하게 변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김 양은 시체가 널려있던 중국 뒷골목이 떠올랐다.

홍수와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

썩어가는 시체들을 밟고 돈과 물품을 챙기겠다고 흉기를 들고 싸우는 폭력배들.

그걸 보며 낄낄대는 사람들. 그곳에 가득했던 죽음의 그림자.

김 양이 과거의 늪에 가라앉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하이고- 김 양아- 다 의미 없다. 저 아 눈깔 보면 모르겠나? 저거 껍데기만 사람인기라.”

광대뼈 어림에 사시미가 손잡이 끝까지 박힌 홍 과장이 정신을 차렸는지 중얼거렸다.

김 양은 홍 과장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칼이 얼굴에 박히고도 살아있다니?

“와 그렇게 보노? 내 아직 안 죽었다. 점마가 귀신같이 찔렀다 아이가.”

마루가 홍 과장을 노려봤다.

“그래 보지 말고. 니 혼자 온 거 보이, 최 실장하고 백 실장은 갔나?”

“이- 썅- 내 동생이 왜 여깄어?”

홍 과장의 입술이 위쪽으로 일그러졌다. 미소도 아니고 비소도 아닌 표정. 광대뼈에 박힌 사시미 때문에 한쪽 입술이 올라가지 않아 더욱 기괴했다.

“내 말하지 않았나? 니 때문에 니 가족들 좆 될끼라고.”

마루가 그대로 총구를 홍 과장에게 겨눴다.

“잠깐만요. 아직 안 죽었다니까요!”

“김 양아- 소용 읎다. 내 말했잖노. 점마 저거 타고난 백정이라꼬.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지, 저건 그냥 사람 쮜잡는 백정이라. 짐 봐라, 김 양 니 없었으면 점마는 쏘고 봤을끼라. 일단 쭉이고 봤을끼라. 그냥 그렇게 생겨 먹은 놈인기라.”

“닥쳐! 이 씨발 새끼야. 니가 뭔대 사람을 평가해!”

“사람은 다 재능이 따로 있다- 아이가? 마- 니 같은 거는 사람 잡는 재능이 있는 기고, 내 같은 거는 사람 보는 재능이 있는 기고, 저기 김 양은 총 쏴 뿔는 재능이 있는 기고. 내가 처음 봤을 때 안 캤나? 니는 백정이라고. 지금 이래와 보니 우짰노? 내 말이 틀맀나?”

마루는 분노했다. 애초에 이 새끼가 일본으로 보내지만 않았어도, 이 새끼가 자기를 백정 만들겠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와- 그냥 찍이삘고 싶지? 그체? 사람 죽이 삐니 마음이 어케··· 막 아련하고 그러드나? 아니제? 그런기라. 마- 그래 보지만 말고 쏘고 싶으면 쏘라. 내 구질구질허니 살지 않켔다. 근데 그건 하나 궁금하네, 니 내 쭉이삘고 나면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끼라 생각하나? 살 자신은 있꼬? 가족들 챙겨가며 살 자신이 있기는 한기가?”

“······.”

“한 손이 열 손 못 막는다 했다. 그래도 니는 니 가족들 보다 오래 살 끼라. 그래 가족들 하나 하나 죽는 꼴 보면서 이래 생각할 끼라.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우쨌을까?’ 하고.”

“······.”

“다 떠나서. 이리한 걸 얼마나 숨기겠나? 회사에서 가만히 있을 끼라 생각카나? 내가 과장인데 그 위에 뭐가 있나? 부장이 있고 이사가 있고 전무가 있고 사장이랑 회장이 있다. 과장인 내가 관리하는 업장 규모가 이라믄, 회사 규모는 상상이 가나?”

“회사를 피한다고 끝이 아닌기라. 짭새는 우짤낀데? 흔적은 우짤낀데? 니 혼자서 처리할 수 있나?”

“약 빤 니 어매, 동생은 또 어카고? 그 약이 그리 좆 같은 약이믄 부자들이 비싼 돈 주고 먹겠나? 다 효과가 있고 좋은 거니까 그 돈 주고 쓰제, 독이랑 약이랑 한끗 차이라 안카나.”

“아지메 먹은 약도 그런 기라. 니는 내가 약으로 인질 잡았다고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그 약 아니었으면 더 큰 일 날 뻔한 기라.”

“니 이리 사람 잡이 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카나? 피를 보기 전이라믄 몰라도, 피를 보고 난 뒤는 다른기라. 니도 느끼지 않나? 회사 말고 니를 케어할 수 있는 곳이 있을 끼라 생각하나? 시작은 내 잘못이었어도, 끝까지 이럴 필요 있겠나?”

홍 과장이 한쪽 손을 내밀었다.

“쏠 거 아니믄, 이 손 잡으라. 최 실장하고 백 실장 내가 키운, 내 두 팔 같은 아-들이었다. 그래 가버렸지만 우짜겠나. 내 니가 가들 보냈다고 맘 속에 담아두고 그래 안 칸다.”

“······.”

“이 상황이 니 잘못이겠나? 내 잘못이지. 니를 감당 못 할 꺼 생각 못-한 내 잘못이고, 최 실장 백 실장 빈손으로 보낸 내 잘못이제. 카니, 우리 둘 다 잘못이든 원한이든 내려놓자. 내려놓고 같이 살자, 살아보자. 이 손 잡으라. 잊고, 같이 가자. 후회 안 할 끼라.”

홍 과장의 상태와 비슷한 엑스레이 사진입니다.

실제로 저 상처를 입은 환자는 멀쩡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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