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0
마루는 나루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힘들게 일한 이유가 뭐였나 싶었다.
“그럼 내가 어쩌라고? 엄마 말대로 대학 가서 그냥 다녔으면 되는 건가? 집안이 쫄딱 망했는데, 너고 아빠고 엄마고 돈 버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그냥 내 학비만 챙겨서 다녔으면 되는 거냐고?”
마루의 말에 나루가 빽 소리 질렀다.
“그러지 그랬어! 오빠 고등학교 때 계속 공부만 했으면 한국대도 갈 수 있었잖아! 차라리 한국대를 가서 과외를 하지, 장학금 받겠다고 듣보잡 대학가더니 그마저도 그만두고 그럴 거면 왜 그런 대학엘 갔는데? 한 학기 다니다 말고 군대 가고, 제대하고 그만둘 거면 장학금 받는다고 왜 그런 대학 갔는데? 복학 포기하고 하겠다는 일이, 백정일. 소 잡는 거 보면서 아빠 엄마가 얼마나 괴로워하셨는지 알아!”
“괴로워하시면? 그런다고 생활이 나아지나? 안타까워한다고 뭐가 변해? 누가 됐든, 어떻게든 일을 하고 자리를 잡아서 생활부터 안정시켜야지. 내가 뭐 때문에 그랬는데?”
“뭐 때문에 그러긴! 오빠 마음 편해지자고 그런 거 아니야? 오빠가 오빠 기분 좋자고 그런 거잖아! 나는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나는 장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여동생 학비 대주고 있다! 가족 때문이라고? 오빠가 가족들에게 물어나 봤어? 엄마 아빠한테는 그러겠다고 상의는 해봤냐고? 하고 싶은 대로 결정 내려놓고, 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다못해 나한테는 물어봤냐고!”
마루는 혈압으로 머리가 띵해졌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나 좋다고 꼴리는 데로 해놓고 자부심 부리고 생색내는 거다?”
“아니면? 그게 아니면 뭔데? 내가 회사인지 조폭인지 그 사람들 말 들으라고 한 건 왜 무시하는 건데? 아빠, 엄마, 나 우리 가족 생각했으면 그 사람들이랑 협상이라도 해봤어야 하는 거 아냐?”
“아- 진짜-”
마루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그 사람들이 오빠 연봉 일 년에 2억 넘게 준다고 했어. 보너스도 준다고 했고. 3년만 일하면 엄마랑 아빠가 쓴 병원비 약값 다 제하고 생활비도 충분히 나온다고 그랬어. 그런데 거기 사람들 다 죽여놓고. 어떻게 뭘 한다고 하는 거야?”
“외국···.”
마루가 ‘외국’이라는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나루가 쏴댔다.
“외국으로 도망치자고? 못 움직이는 아빠는? 마약 치료센터에 있는 엄마는? 그냥 여기 두고 죽든 말든 도망치자고? 나는? 한국대 음대 가겠다고 오빠가 그렇게 희생해서 번, 피 같은 돈 써가며 한국대 합격해 보겠다고 몸부림치던 나는 어쩌라고? 이제야 콩쿠르에서 우승 한 번 했는데 학교도 친구도 꿈도 다 포기하고 외국으로 도망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조폭인지 회사인지 하는 사람들 피해 다니면서 평생 그러고 살라고?”
마루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따름이었다.
“그 사람들이 나한테 뭘 시키는 줄 알고? 나보고 사람 죽이는 킬러 짓 하라고 하면 그러라고? 앞으로 인간 백정으로 살라고?”
“오빠가 그랬잖아! 가족들 때문에 인생 포기하고 일하고 살았다고. 오빠가 가족 때문이라며, 가족 때문에 희생한 거라며? 그래놓고 내가 살려달라고 가족들 생각해서 협상하라고 한 거는 뭐 때문에 안 한 건데? 오빠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안 한 거잖아. 오빠가 싫으니까 사람들 죽여가면서 그런 거잖아. 방금 죽인 건 사람이 아니야?”
나루의 말에 마루가 울컥했다.
“그래. 내가 싫어서 그랬다. 가족들 인질 잡는 새끼들 날 사람 잡는 백정으로 만들려는 새끼들 죽여서라고 자유를 얻고 싶었다. 가족들 구하고 싶었다. 너 구하고 싶었다고!”
“회사랑 척지고, 그 많은 사람을 죽여서 복수하겠다는 사람들 떼로 만들어 놓고 뭘 구해? 누굴 구해? 아빠나 엄마 당장 구할 수 있어? 구할 수 있으면서 그런 거냐고? 그냥 사람 죽이는 흥분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일 저지른 거 아니야? 홍 과장이 그랬어. 오빠는 그런 사람이라고. 강제로라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설마 했는데 그 사람 말이 맞잖아. 아니야? 아니냐고!”
개 같은 홍 과장, 뭔 소리를 어떻게 했는지 나루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마루의 지친 목소리를 신경 쓰지 않는 나루가 높은 소리를 계속 냈다.
“오빠 하고 싶은 대로, 죽이고 싶은 대로 다 해놓고 뭘 어떻게 해? 오빠는 오빠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난 주현 언니랑 살 테니까.”
“오진 제약 나주현이? 나오진 사장 딸?”
“그래. 나오진 회장 외동딸 나주현 언니, 오진 제약이 오진 그룹이 된 지 언젠데. 그 언니랑 같이 다니면 거기 경호원에게 같이 보호받으니까 괜찮을 거야.”
“너 제정신이니? 나오진 회장이든 사장이든 그 사람 소문 못 들었어? 그 사람 미성년자 아니 학생들이랑 그런 소문 있는 거 몰라?”
“소문이 어떻다고? 그 사람 소문이 아무리 나빠도 사람 닥치는 대로 죽여댄 오빠만 하겠어?
“아이 씨발- 진짜 돌아버리겠네!”
“왜? 마음대로 안 돼? 착한 오빠, 착한 아들, 정상인 코스프레 하는 게 힘들어? 대체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죽이는 건데? 진짜 우리 오빠 맞아? 내가 아는 오빠 맞냐고!”
마루는 심장까지 욱신거렸다.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갑갑했다.
“그래. 다 내가 잘못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다고? 나주현이랑 같이 살겠다고? 걔가 뭐가 좋아서 너랑 살겠다고 그러냐? 나랑 같이 외국 가지 않으면, 너 여기서 한국대 입시하겠다는 건데. 아빠는 요양병원에 엄마는 센터에 있는데 너 혼자 자취하면서 입시 하겠다고? 그놈들이 찾아오면?”
“내 말 못 들었어? 주현 언니랑 같이 살겠다니까.”
“아니 나주현이가 왜 너랑 같이 사는데? 왜 그러겠다는 건데?”
“주현 언니 친언니처럼 날 아껴줬어. 저번부터 주현 언니 학교 근처 자취하는 아파트에서 같이 살자는 거 엄마 때문에 거절하고 있었어. 오빠가 엄마 마약 치료센터로 보냈으니 주현 언니 집에서 살면 거기 경호원 경호 받으면서 있을 수 있어.”
마루는 미치고 환장하고 팔딱 뛰고 싶었다.
아 씨발,아 썅,아 개씨좆 욕을 삼키고 삼켰다. 마루가 경험한 조직 애들은 장난이 아니었다. 최 실장, 백 실장, 김 양을 제외하더라도, 4 작업장에 있던 조폭들은 영화에서 보던 그런 덩어리들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특수부대? 용병? 그런 거에 가까웠다. 그런 애들이 민간 경호원을 무서워라 피할까? 지하 창고에 있던 장비도 그랬다. 나루를 납치하든 주현을 납치하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애들이었다.
“후- 나루야 진짜-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냐···. 민간 경호원이 걔들 못 막아. 오빠가 정말 목숨 걸고 너 빼내자고 그런 거다. 한국대도 좋지만, 외국 가자. 외국 가서 신원 만들고, 너 눈이랑 코랑 조금 손보면 좋겠다고 했잖냐?”
“······.”
“네 마음에 들게 손 보고, 외국 대학 가자. 엄마랑 아빠랑은 이쪽에 아는 형사가 있으니까 거기에 정보 주면 경찰이 보호해 줄 거야. 그러니까 일단 우리만 외국으로 뜨자. 외국에서 외국인 신분 만들어서 가끔 한국 와서 엄마 아빠 보면 되잖아. 엄마 중독 치료하고 외국으로 모시면 되고, 아빠는 대학병원에 모시면 되고 그러면 되잖아. 그러니까 제발 오빠 말 좀 듣자.”
“······.”
나루는 대답 없이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훌쩍였다. 아까처럼 위아래 구분 없이 고주파 쏘아대는 것도 난감했지만, 지금처럼 즙만 짜대는 것도 환장했다.
“넌 정말 오빠가 인간 백정이 돼서 사람 죽이고 다니면 좋겠어? 사람 죽이는 거로 돈 벌고 그럼 좋았겠어?”
“······.”
“아- 울지만 말고. 정말 외국 안 갈 거야?”
“안 가! 안 간다고!”
눈물을 짜내던 나루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말했잖아. 난 주현 언니랑 있을 거라고!”
아이- 진짜- 돌아버리겠네. 마루는 속이 썩었다.
다시 도돌이표였다. 이게 그 ‘여자어’라는 건가?
동생도 여자니까 여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는 걸까?
김 양에게 통역을 부탁해야 하나?
마루는 정신적으로 피곤해졌다.
고3인 동생과 이렇게 대화가 힘든 건가?
세대 차이라도 나는 건가? 나도 24살인데?
이럴 시간이 없는데. 최대한 빨리 나루를 피신시키고 하루 이틀 사이에 외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근데 지금처럼 시간만 잡아먹으면 답이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나주현이가 왜 너랑···. 됐고, 진짜 일반 경호원들은 그 조폭들 감당 못 한다니까. 그냥 단순한 조폭이 아니라 뭔가 느낌이 달라. 정말 위험한 놈들이야.”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나 살려주는 셈 치고 그 사람들이랑 협상하라고. 엄마 아빠 생각해서 수그리라고 했잖아! 그게 가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가족을 먹여 살린다면서 왜 그랬는데? 오빤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놓고 가족 핑계 대는 거잖아. 가족들이 그 사람들 깡그리 죽여 달라고 했어? 내가 그 사람들 다 죽여달라고 했어? 아니잖아.”
마루가 숨을 깊게 골랐다. 말로 될 일이 아니었다.
“됐고.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너 오빠가 거기 안 갔으면 무슨 꼴 당했을지 몰라? 알면서 그러는 거야?”
“싫어 싫다고! 왜 오빠 맘대로 하는 건데? 오빠는 오빠가 알아서 하라고, 난 아빠랑 엄마랑 있는 한국에서 안 떠나.”
마루는 꼭지가 돌았다.
“아이 쌍- 너 그러다 뒈진다고. 그냥 뒈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살려 달라고 할 때는 사람 죽이더니, 나 죽는 건 못 보겠어? 오빠가 아는 형사 있다며? 엄마 아빠 괜찮을 거라며? 근데 나는 왜? 나는 왜 외국에 가야 하는 건데? 아는 형사도 있는데 왜 가야 하는 건데? 거짓말이었던 거지? 아빠 엄마 버리고 우리 둘만 도망치려고 했던 거지? 그러니까 나 억지로 끌고 가려는 거잖아.”
“미친년아 오빠 말 좀 들어! 아빠랑 엄마는 당장 움직일 수 없잖아! 내가 남을 테니까 너만이라도 먼저 가라. 제발 좀!”
“싫어! 싫다고! 가기 싫단 말야! 이제 겨우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이제 겨우 한국대 합격이 눈앞인데 엄마 아빠까지 버리고 인연들 다 버리고 어디를 가! 난 못 가. 못 간다고! 억지로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오빠가 살인범이라고 신고한다고!”
아- 씨발 진짜 모르겠다. 마루가 고개를 들었다. 힘을 주면 핸들을 부숴버릴 것 같았다. 숨을 골랐다. 후- 가늘게 호흡을 고르자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후- 그래. 내가 졌다.”
“왜 내가 신고한다고 하니까 무서워?”
“아가리 싸 물고 있어. 말꼬리 잡지 말고.”
마루의 전신에서 살기가 피어오르자 나루가 히끅거리며 구석으로 몸을 말았다. 마루는 내가 왜 이 지랄을 했지? 뭐 하자고 이러는 거지? 현타가 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루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뒤에서 뺐다. 5만 원짜리 뭉텅이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였다. 마루는 그 비닐봉지를 웅크리고 있는 나루에게 밀어 건넸다.
“너도 약했지? 홍 과장이 그러더라 엄마랑 너랑 약했다고.”
“······.”
“그 약 적당히 쓰면 감각이 예민해지고, 운동신경이 좋아진다면서? 9월 마지막 콩쿠르 우승한 거 약 쓰고 우승한 거냐?”
“······.”
“도핑했든 하지 않았든, 마약을 한 거 까발려지면 한국대 입시는 고사하고 너도 바로 재활센터행이야. 한국대는 무슨 한국대, 꿈은 무슨 꿈. 걔들이랑 엮여서 약에 손댄 순간부터 꿈이든 한국대든 쫑난 거야.”
나루가 고개를 더 푹 숙였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이상한 놈들에게 납치됐던 여학생이 신고하면? 당장 마약 수사로 난리 난 경찰에 뭣부터 할까? 혈액 검사부터 하지 않을까? 약 먹은 사람이 신고하면 경찰이 믿겠냐? 검사해서 약 성분 검출되면 약해서 헛것 봤다고 하지.”
“······.”
“그러니까 네가 신고한다고 해서 무서울 것도 없어, 네가 날 짜증 나게 해서 내가 네 맘대로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야.”
“······.”
“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 내가 한 최선이 네 말대로 가족의 입장에서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 인정해. 네 말대로 내가 장남 부심, 내 희생 부심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도 인정해. 하지만 정말 나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고, 너를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손에 피 묻히는 거 마다치 않았고.”
“······.”
“근데,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다 잘못했다네, 어쩌겠냐? 전부 잘못했다는데···. 이제까지 네 말대로 내 마음대로 했으니까. 이제는 진짜 마지막으로 네 의견을 물어볼게. 정말 나랑 외국에 가지 않을 거냐?”
나루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해. 같이 갈 거냐? 아니면, 안 갈 거냐?”
“안 가···.”
후- 길게 숨을 쉰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거기 봉지에 든 거 현찰로 2억 좀 안 될 거다. 은행에 넣지 말고, 현찰로 보관해서 써라. 은행에 넣는 순간, 너도 생각이 있으면 어떻게 될지 알겠지?”
“······.”
대답 없이 고개만 파묻고 있는 나루였다.
“내 핸드폰은 곧 없앨 거라, 당분간 연락이 되지 않을 거다. 해외로 가서 새로 개통하기 전까지는 연락이 안 될 거야. 급한 연락은 힘들 테지만 일주일에 한 번 늦어도 보름에 한 번은 이메일 확인할 테니까, 메일로 연락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이후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각자의 책임이다. 지금부터 너는 널 책임져야 해. 오빠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살든 죽든 네 책임이라는 소리야.”
“······.”
“뭘 하든 어떻게 하든 신중하게 생각해서 하고, 혹시라도 경찰이든 놈들이든 나에 관해 묻는다면 모른다고 답해, 군대에서 제대한 뒤로는 독립해서 생활했고, 1년에 몇 번 왔다가 그냥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고···. 그게 사실이고. 그래. 이런 오빠라서 미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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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시내 인근에서 애플 콜택시에 타는 나루를 백미러로 지켜봤다.
근처 가게에서 산 백팩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안고 뒷좌석에 타는 나루의 모습.
택시가 출발할 때까지 나루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