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5
마루는 대포폰으로 김 양의 위치를 확인했다. 대략 700~800m 정면에 있었다.
‘역시 김 양.’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루가 걷고 있는 으슥한 이면 도로는 주도로와 평행으로 길게 쭉 이어져 있었다.
다만 중간중간 작게 빠지는 골목과 돌아가는 골목이 붙어있어, 어둑한 곳에 숨어 있으면 잘 보기 힘든 곳이었다.
‘저기에 몇 명씩 숨어 있겠군.’
특히 LED 조명의 밝기가 어중간했다. 충분히 밝게 할 수 있지만, 창문 밖이 환하다고 민원이 들어와 조도를 낮췄다고 했다. 이 애매한 밝기는 자동차 블랙박스나 빌라에 달린 CCTV 녹화에 영향을 줄 것이다.
어두운 조명은 저쪽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처럼 마루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30~40m 안쪽에서 따라오는 덩치들, 덩치 넷에 안 형사. 넓지 않은 도로 중간을 차지하곤 따라간다는 걸 감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마루는 이렇게 대놓고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안 형사 혼자 오거나 아니면 끽해야 2명 정도 더 붙어서 길을 막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 형사까지 5명이었다. 골목 골목에 숨어 있을 인원까지 생각하면 족히 15명은 넘지 않을까 싶었다.
‘좋지 않은데.’
예상보다 인원이 많았다. 뒤따를 마약 3과 인원은 끽해야 3~4명? 조직에서 그냥 담그자고 생각하면 바로 담가질 숫자였다.
설마 안 형사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마약 3과 한 형사를 제껴버릴 생각을 한 건가? 마루는 안 형사가 화장실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순직이니 어쩌니 했던 말.
마약 3과 내에서도 정보를 빼내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자기 몸의 위치추적기라든지 카메라, 도청기가 붙어있다는 걸 알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끌고 가서 쌈빡하게 고문한 뒤 처리하면서 겸사겸사 미행하는 한 형사까지 세트로 정리할 생각이라면?
안 형사를 조지려고 했는데 조짐 당하게 생겨버렸다.
끙-
‘젠장 쉽게 되는 일이 없네.’
김 양이 제대로 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당장 방법이 없었다. 마루는 대포폰으로 짧게 문자를 보냈다. 김 양이 뭐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하나씩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알아서 하겠지.’
이 상황에서 어쩌겠나?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마루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안 형사님, 살려주십쇼!”
이면 도로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저녁 8시경 사람들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치는 마루를 힐끗 보고 지나갔다. 몇은 고함치는 마루를 휴대폰으로 슬쩍 촬영하기 시작했다.
“아- 씨발 새끼 끝까지 속을 썩이네! 저거.”
안 형사가 가느다란 모발을 뒤로 넘기며 혀를 찼다.
“야 저거 입 막아라, 저기 위에 거기 알지? 공사장. 거기로 끌고 가.”
“예.”
덩치들이 무전기로 연락하자 으슥한 골목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우루루 마루를 향해 다가섰다. 마루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사람 살려!”
“안 형사님 전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살려 주세요!”
“누가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
“119라도 불러주세요.”
“납치다. 사람 살려!”
목청이 우렁찼다. 덩치들은 마루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으르렁댔다.
“너 죽고 싶냐?”
“조용히 안 해?”
마루는 힐끗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렇게 난장을 피웠는데, 한 형사도 마약 3과 형사들도 오지 않고 있었다.
마루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한 형사. 주둥이만 산 타입인가?
그렇다면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는 수밖에.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이 있으니 폭력을 직접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때리든 때리지 않든 마루는 그냥 있을 생각이 없었다.
“으악! 사람 살려‘”
마루는 마치 집단 구타를 당하는 것처럼 둘러싼 덩치들을 향해 팬터마임을 시전했다.
덩치들이 그 모습을 찍는 사람들을 위협했다.
“찍지마! 찍지 말라고!”
“어이 학생 이리와. 이리 와봐. 폰 들고 와봐.”
“거기 아저씨? 그래 당신 말이야. 가방에 넣은 폰 꺼내 봐. 어서.”
덩치 몇이 가까이 있던 사람들을 어르고 폰을 뺏어 동영상을 지우고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마루는 덩치들이 밀치면 마치 폭행을 당한 것처럼 붕 날라서 뒤로 엎어지고 허우적거리면서 도청 장치와 마이크를 부쉈다.
어차피 한 형사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상황만 보자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관련자를 방치한 것으로 보일 테니까.
위치추적기까지 깔끔하게 날려버린 마루가 후련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제 한 형사와 안 형사를 한 번에 묶으면 그만이었다.
“한 형사님! 위험해지면 온다면서요!”
“안 형사님. 전 정말 모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 외침을 들은 안 형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왜용- 왜용- 왜용-
주변에서 신고했는지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왔다. 안 형사가, 형사증을 꺼내 목에 걸고 순찰차로 갔다.
안 형사의 형사증을 본 순경이 경례했다.
“신고받고 나왔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은 무슨 일. 마약반이 약쟁이 하나 잡아가는 거지.”
덩치들이 마루를 짐짝처럼 다루는 걸 본 순경이 이걸 어쩌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 형사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건이 좀 큰 게 걸려서 그래. 나 알잖아. 마약2과 안 형사. 이거 처리하고 들어가면···.”
안 형사의 표정과 고갯짓, 억양을 본 순경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이대로 보고 들어갑니다. 안 형사님이 정리한다고요.”
“그럼. 그럼. 수고해 수고.”
안 형사가 순찰차를 보내곤 인상을 팍 썼다.
마루는 자기 양팔을 붙잡은 덩치들을 뿌리치고 안 형사 앞으로 달려갔다. 마루의 옷이 찢어지며 도청기를 붙인 자국이 드러났다. 망가진 도청기를 본 안 형사가 피식- 웃었다.
“아 진짜- 다들- 사람 피곤하게 하네. 왜 인생을 이렇게 피곤하게 사나?”
“살려주십쇼. 안 형사님. 그냥 살려만 주세요.”
외치며 마루가 안 형사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안 형사가 이런 또라이 새끼를 봤나.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머리통에 구멍이 뚫렸다.
퍽-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안 형사.
15명이 넘는 덩치들이 순간 굳었다. 그리고 그 짧은 2~3초 동안 덩치 넷의 머리통에 날아갔다.
그렇게 ‘어!?’ 하는 순간 7.62mm 저격총탄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어?
아아아!
으악!
한 덩치가 놀라 주저앉았다. 부르르 떨리는 다리, 급작스러운 상황에 쥐가 났을까?
퍽!
주저앉은 상태로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강력한 운동에너지를 가진 탄환이 덩치의 뒤통수를 뚫고 아스팔트 도로에 자국을 냈다.
퍽!
그 장면을 보고 고개를 숙인 덩치도, 채 고개를 들기 전 뒤통수에 총알이 박혔다. 뒤통수를 뚫은 총알이 안면을 들어냈다.
덩치들이 고개를 숙이든, 주저앉든, 전봇대 뒤로 숨던, 머리나 가슴에 총탄을 맞고 축 늘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제자리에 있으면 죽는다.
으으악!
도망쳐!-
살아남은 놈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렁이처럼 몸을 꼬며 도로 옆으로 기어갔다. 벌써 10구가 넘는 시체가 쌓였다.
“전화- 지원을!”
“지원 요청해!”
한 덩치가 휴대폰을 들고 뭐라 하려는 순간. 휴대폰과 그걸 들고 있던 손이 한 번에 날아갔다.
끄아아아악!
손이 날아간 덩치가 고통에 허우적댔다. 그렇게 전봇대 옆으로 머리가 나오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잠잠해졌다.
마루도 이건 놀랐다. 저게 가능한가?
몇 남지 않은 덩어리들이 최소면적을 만들기 위해, 납작 엎드려 그대로 굳어 있었다.
덩치들은 전화기도 꺼내지 못했고, 고개를 들지도 못했으며, 도망치겠다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얼음 왕국에 온 것 같은 상황.
마루는 그 시체들 사이로 포복하면서 자리를 이동했다.
비명과 몸부림이 흘러넘친 도로는 고작 10~12초 만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대로변까지 포복으로 이동한 마루가 벌떡 일어나 다다닥 달렸다.
마루가 대로변으로 나가든 말든 살아남은 놈들은 그저 그 자리에 얼음 동상처럼 굳어 있었다.
이제 됐다. 마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큰길로 나가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쉽게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마루는 찢어진 재킷을 대충 벗어 수습했다. 택시 기사가 백미러로 넝마가 된 옷을 벗는 마루를 힐끗거렸다.
“신촌. 아니 홍대 입구로 가주세요.”
“홍대 입구요? 입구 어디로 갈까요?”
“홍대 입구 역이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몇 번 출구로 갈까요?”
“가까운 쪽으로요.”
“예, 알겠습니다.”
택시 기사가 약간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갔을까? 5분? 빨간불에 멈춘 택시.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한 형사가 마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계속했다. 몇 번 받지 않던 마루가 휴대폰을 열고 소리 질렀다.
“지금 뭡니까 한 형사님! 예? 저 그냥 죽게 버린 겁니까? 미끼로 버린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바로 온다고 하더니 죽게 생겼잖아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들 죽어 나가는데, 살려 달라고 해도 아무도 안 오고, 이게 지금 뭡니까? 뒈지든 말든 안 형사 꼬리 잡겠다고 저 밀어 넣고 그냥 지켜본 거 아닙니까?”
[정말 그럴 의도는 아니었네. 오해야.]
“오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말하면 3종 세트 완성이네요. 됐습니다. 저 변호사 선임할 테니, 저한테 연락하지 마시고 제가 선임한 변호사한테 연락하세요. 변호사 선임 즉시 번호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니까.]
“제가 욕해야겠습니까? 그게 아니면 저 뒈진 뒤에 그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소주잔 올릴 생각이었습니까? 됐습니다. 연락하지 마세요. 또 연락하면 언론에도 뿌릴 겁니다. 지금 이 상황 전부 언론, 인터넷, 뉴투브 전부 뿌릴 겁니다. 연락하지 마세요.”
한 형사가 뭐라고 했지만, 마루는 듣지 않고 그대로 휴대폰을 끄고 전원도 꺼버렸다.
후- 마루가 한숨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이제 이쪽으로는 신경 쓸 일이 없겠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총기 사건이 터진 상황이었다. 거기에 피해자들은 조폭.
치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에서 총기대량 살상이 터졌는데 피해자는 대부분 조폭. 이건 경찰들에게는 폭탄이 터진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폭들도 마찬가지. 단순한 권총이나 공기총, 가스총, 엽총도 아닌 전문적인 저격총이 흉기였으니, 경찰들은 조폭과 연관된 애들이라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 것이고. 조폭들 시체 더미 사이에 형사가 하나 끼었다는 걸 알면 더 환장할 것이다.
한 형사도 마찬가지, 당장 마루에게 붙인 감시카메라에 찍힌 영상이나 도청기를 녹음한 음성만 생각해 봐도. 까발려지면 엿 되는 건 한 형사였다. 붙여놓고 방치한거니까. 그걸 피한다고 하더라도 마루가 따로 휴대폰으로 녹음한 음성이 있으니 피할 곳은 없었다.
그래- 됐어- 마루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베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악을 피한 게 어딘가?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자. 힐끗- 백미러로 마루를 보는 택시 운전사.
마루는 그 힐끗거리면서 눈이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는 순간, 길이 이상했다. 신촌로 타고 그냥 직선으로 가면 되는데, 이 길은 서강로. 그러니까 강변북로를 타는 길이었다.
“아저씨? 홍대입구역 2호선 출구 가까운 곳이라니까요?”
마루를 다시 백미러로 힐끗 쳐다본 운전사가 말없이 운전을 계속했다.
기분 나쁜 눈빛.
뭐지 이 사람?
마루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앉은 방향의 문을 봤다.
내부 도어 당김 핸들이 없었다. 문을 안쪽에서 열 수 없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다?
“이런 씨발! 당신 누구야!"
"이게 뭐야 지금!”
마루가 소리치거나 말거나, 택시가 규정 속도는 엿이나 먹으라는 식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토요일 8시경 차가 제법 있음에도 칼치기를 하면서 점차 속도를 높이는 택시. 곧 강변북로로 빠질 기세였다.
마루는 재빨리 안전벨트를 맨 뒤, 그대로 택시 운전사의 뒤통수 해드레스트를 걷어찼다.
뻐걱!
해드레스트가 뽑히듯 박살 나면서 택시 운전사의 목이 반쯤 부러진 상태로 핸들에 박혔다가 튕겼다.
뻥-
에어백이 터지면서 핸들이 확 꺾였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