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44화 (44/280)

러스트 [RUST]-44

샬롯 호텔 사장의 목을 치라는 최 전무의 말에, 이 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과 똥을 강제로 먹고 있던 사람까지 모두 놀라 정적에 휩싸였다. 이 실장은 ‘아차.’ 하는 심정을 숨기고 작업실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샬롯 호텔 사장을 담그라니, 과장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위험했다.

이 실장의 당혹스런 목소리를 무시하듯 최 전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김 실장이 부산 전체를 뒤집을 거야. 어쩌면 샬롯 호텔에도 김 실장이 직접 갈 수 있어. 그렇게 되면 호텔의 방비도 느슨해지겠지. 그 틈을 타, 유 이사 라인인 김 실장보다 먼저 작업하라는 소리야.]

이게 무슨 개소린가?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한쪽이 분탕질 치는 동안 머리를 친다? 그게 정말 먹힐 거로 생각하는 건가? 휴대폰도 그렇고 무전기에 CCTV까지 널린 시대인데?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김 양이 터뜨린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문제를 가지고 샬롯 그룹이랑 대화를 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샬롯 호텔 사장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최 전무님 이거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된 일입니까?”

[그걸 자네가 왜 신경 쓰나? 자네는 내 직속 아닌가? 그럼 내가 말한 대로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이 실장의 옆 머리에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전속 맞다. 그래 전속이라고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닌데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 뒤집어쓰라는 거 아닌가?

“전속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일은 너무 큽니다. 정확한 상황을 모르면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이 실장은 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다. 이 실장의 말에 휴대폰 너머 최 전무가 잠시 침묵했다.

[샬롯 본사 임원진과 만나 여러 차례 회의했지만, 샬롯 본사 임원들은 김 양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 전부 호텔 샬롯 사장 미친년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하더군, 그년을 치워주면 샬롯 그룹 전체가 우리를 지지하겠다고 했어.]

“······.”

이 실장은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일의 원흉을 처리하는 공이야. 자네가 김 실장보다 빨리 그년의 목을 베면, 누가 반대하겠나? 자네가 과장 자리에 앉는 것을.]

“······.”

[시간이 촉박하니 그쪽일 빨리 단도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가게. 이번에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네.]

이 실장이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는 최 전무였다.

하- 이- 씨발. 진짜-

조용했던 작업실이 웅성거렸다. 샬롯 그룹 산하 샬롯 호텔, 그룹에서도 상당한 규모를 가진 업체였다. 그런데 그런 곳의 사장 목을 치라고?

직원들이 서로 귓속말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서로 숙덕이는데 흐느끼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 똥을 강제로 먹던 남자가 오열하고 있었다. 이런 소리를 들었으니, 정말로 최 전무라는 사람의 말처럼 공구리 당할 게 분명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집 근처에서 들었던 둔탁한 소음이 총소리라고 SNS에 올렸던 것?

글 내리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서 드립 한 것?

경고하는 걸 보니 진짜 총소리라는 인증이라면서, 경고 온 것도 까발리면서 해봐 해보라고 했던 것?

영화사에서 억대 손해배상 고소를 한다고 한 댓글에, 지랄하네! 뭔 억대? 해보라고 했던 것?

여기저기 퍼 나르며 놀았던 것?

이렇게 잡혀 왔다는 것은 정말 십 수명이 죽은 사건이었다는 의미였다. 그걸 덮고 있는데 자신은 거기에 분탕질을 친 것이었고.

끌려와서 똥을 먹으면서도 생각했다. 죽이려면 당장 죽였을 텐데, 똥을 먹이는 것을 보니 죽이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살 수만 있다면, 다 지우고 SNS고 나발이고 다시는 안 한다고 다짐했건만 샬롯 호텔 사장을 죽이니 마니 하는 소리를 들어버렸으니, 이젠 꼼짝없이 죽었다고 봐야 했다.

끄어어어어엉

끄으으으으윽

서럽게 통곡하는 남자를 배경으로 막내가 1팀장인 안 팀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 실장님하고 이 실장님은 왜 그렇게 사이가 나쁘신 겁니까?”

“그게 다 출신 성분 탓이지.”

“출신 성분이요?”

“그래 임마. 성골 진골 그런 거 말이야. 이 실장님 밑에 우리 같은 애들은 가방끈도 짧고, 좋게 말하면 동네에서 주먹 믿고 꼴통 짓이나 하던 애들 출신, 나쁘게 말하면 조폭도 아니고 찌끄래기 양아치 출신들이 많고.”

“······.”

“김 실장 그쪽은 정통 조폭 출신, 예체능계에서 빠진 애들, 군대에서 사고 친 애들 뭐 이런 애들이라. 그쪽에서는 우릴 버러지, 양아치 보듯 하니까 그거에 빡친 이 실장님이 들이받고 그렇게 악연이 쌓인 거지.”

“아- 예? 그랬던 거군요.”

안 팀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회사에서 인원수 딸리니까 급히 애들 끌어모아서 시큐리티 직원이라고 명함 파준 걸 좋다고. 에효. 말을 말아야지. 씨발. 막내 너도 시큐리티 직원으로 들어왔잖냐? 다른 경력도 없고 고졸인데. 거기에 너 면제지?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너 혼자라.”

“······ 예.”

“거봐라. 이 실장님 밑에 있는 애들 거의 그런 애들이다. 회사에서 쪽수 채우고 월급으로 목줄 채우기 좋은 애들 모아서 만든 잡역부 같은 거. 시큐리티는 개뿔 씨발. 김 실장 쪽이야 제대로 대접받겠지, 그쪽은 같은 시큐리티라도 끗발 날리니까.”

막내는 생각했다. 줄을 잘 타야겠다고.

“에이 썅-”

태우던 담배를 갑자기 퉤 뱉은 안 팀장이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디서 온 전화인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안 팀장이 작업실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꺼이꺼이 대성통곡하는 사내. 아마도 공구리 행이겠지?

똥을 먹이고 쥐어패서 입 다물게 하는 일 처리 하는 방식도, 아가씨들 입 막겠다고 잡아다 지방이나 해외로 돌리는 것도, 어쩌면 그게 이 실장의 한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실장도 돈이 많으면 7천을 태우든 1억을 태우든 태워서 좋게 처리하지 않겠는가?

면접에서 자길 뽑아준 이 실장이 고맙기는 했지만, 인터넷이나 뉴투브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줄 잘못 타면 병신 되는 게 회사라고, 줄을 잘 탈 수 있을 때, 잘 잡아야 한다고. 군대도 줄 서는 게 절반이라고.

막내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문자를 하나 보냈다.

[저 막내 도민욱입니다. 이 실장님이 호텔 샬롯 사장 작업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더도 말고 딱 이 정도면 되지 싶었다. 김 실장 밑으로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줄까? 김 실장님이 부르면 될 것 같기도 하고. 돈이 필요했다. 더 많은 돈이. 그리고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옮겨야 했다.

[어- 막내. 형 챙겨주는 건가? 고마워. 형이 잊지 않을게.]

정보를 더 요구하지 않고 깔끔하게 고맙다고 하는 김 실장의 태도가 막내는 더 믿음직스러웠다. 보낸 문자와 받은 문자 기록을 삭제한 막내는 통곡하는 사내의 울부짖음을 배경음 삼아 미래를 생각했다.

이 실장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애들 훈련 시킨다고 훈련 시켰지만, 이 실장이 보기에 절반은 반푼이, 남은 절반은 모지리였다. 시큐리티라고 하지만 마트, 백화점, 호텔 고객 통제나 간신히 하던 애들인데, 거기서 그나마 피지컬 좀 되는 애들 빼서 김 양 잡고, 마루인지 하는 놈 잡겠다고 지랄 치는 중이었다.

김 양이야 무장을 했다지만 혼자였고, 마루라는 애는 민간인 A였다. 숫자로 어떻게든 비벼볼 구석이 있는 케이스라는 소리. 근데 호텔 샬롯으로 쳐들어가 사장의 목을 치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거기 있는 애들이 보통 애들일까? 사장을 지키는 애들인데?

심지어 샬롯 호텔은 옛날부터 일본 야쿠자와의 결탁설이 솔솔 있는 곳이었다. 총이나 일본도 들고 설치는 야쿠자들이랑 피 튀기면서 싸운다고? 우리 애들이? 일반인도 제대로 드잡이질 못 해서 자기가 시범 보인다고 직접 똥 퍼먹이고 있는 판국에?

씨발이 절로 나왔다. 이런 게 오토 씨발이라고 하던가? 어쨌든 작업장에 있던 애들이 소리를 들었으니 곧 밑에 애들 전부가 알게 될 상황이었다. 이 실장은 일단 단도리 쳐야겠다고 생각하며 작업실로 들어섰다.

으허어엉

꺼이꺼이

입에 물렸던 깔때기가 빠졌는지, 입에서 똥물 섞인 침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남자가 보였다. 이 실장은 자동으로 욕을 했다.

씨발

저건 또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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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은 꿀잠 잤다.

호텔 사장이 바뀌고 인테리어 개장 공사를 하면서 침구를 좋은 거로 바꿨다고 하더니, 확실히 그 전보다 좋아진 샬롯 호텔이었다. 어제 요트 내부 개장한다고 거의 밤 10시 넘어서까지 현장에서 굴렀던지라 꿀잠이 필요했는데, 오래간만에 푹 자고 일어난 기순이었다.

어이없는 건 밤 10시 반이 넘어, 11시가 되도록 마루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체 뭘 때려 실었길래 차가 그렇게 안 나가는 걸까? 배에 뭘 싣겠다고 그러는 거지?

기순은 궁금했다. 그러니 지금 깨워야지, 신발 새끼 속을 썩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쯧-

마루를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짠했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든든하게 곁을 지켜준 친구였지만, 고등학교 진학하고 집이 망한 뒤 끝없이 무너지던 친구.

젠장.

은혜 갚는 까치도 아니고 그거 설화가 떠올랐다. 구렁이에게서 새끼를 구해준 선비를 구하기 위해, 까치들이 대가리가 깨지도록 종을 울려서 보은했다는 설화. 부모 까치가 대가리 깨져 죽었으니 새끼들은 죄 굶어 죽었을 거 아닌가? 꼭 그 꼴 비스므리 한 느낌이었다.

썅- 생각하면 진짜 빡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을. 졸라 뭔가 숨기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걸 물어봤다가는 또 폭탄이 터질 것 같아서 묻지도 못하겠고,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하면서도 그냥 모르고 싶은 느낌적인 분위기랄까?

마루네 집이 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대 갈 놈이라고 했었던 놈이었다. 집이 망했어도 신촌대나 안암대는 학과만 낮추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갑자기 4년 장학금을 받겠다고 인서울 낮은 순위 대학으로 원서를 쓰고는 냅다 군대행.

그 뒤, 경기도까지 내려가서 회사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학교는 자퇴. 미친 씨발 그럴 거면 차라리 학벌이라도 만들어 놓든지, 아니면 어떡하든 학교를 높여서 과외를 하든지,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집이 망했다고 뇌도 같이 망한 건지. 졸라 고집도 세서 말을 들어 먹지도 않았다.

“하- 진짜 이놈을··· 이걸 어째야 하냐?”

진짜 뭘 싣고 온 거지?

기순은 그래 지금이라도 새벽형 벌레가 되라는 심정을 가득 담아, 마루에게 전화했다. 역시 한 번에 받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지.

[어- 으- 몇 신데?]

“몇 시면? 지랄하지 말고 빨리 나와. 이따 아침 일찍부터 짐 들어오고, 탑차에 싣고 왔다는 짐도 미리 내려서 분류해야 요트에 실을 거 아냐. 닥치고 빨리 나와.”

[30분만··· 아니, 10분만···]

“닥쳐! 어제 뭐라고 했어, 부르면 튀어나온다며?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나와! 당장 안 나오면 걍- 나도 다시 잔다. 내일 가지 뭐. 모레 가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호텔 이벤트 당첨됐다고 공짜로 2박 3일에, 하루 플러스까지 해서 3박 4일까지 있어도 된다고 하던데.”

[아- 진짜 5분만···]

“좆 됐다며? 여유 있는 거 보니 괜찮나 보네, 그래 잘자. 내일이든 모레든 푹 쉬었다 가자. 나도 더 잔다.”

[아- 알았어- 일어났어. 미안.]

짜식 진작 그럴 것이지. 기순은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나왔다.

그래 뭘 가져왔는데 졸라 뭔가 잘못 먹고 부작용 뜬 느낌이냐?

무겁다고 한 걸 보니까, 제트스키? 수륙양용 오토바이? 궤도형 특수차?

그렇게 생각하던 기순이 있었습니다.

“야··· 이··· 너, 설마. 거기 불 지른 업장에서 털어 온 거냐···.”

기순은 입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도 그랬다더니 여기서도?

내 친구가 방화 전문 털이범이었던?

왜 널 좆 만들겠다고 죽자고 추격하는지 정말 모르겠니?

그렇게 기순의 눈동자에 한가득 들어오는 것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금괴.

비닐에 통째로 포장된 세계 주요 화폐 뭉텅이들.

그리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총화기에, 무슨 특수부대 장비처럼 보이는 것들···.

그런 것들이 탑차에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진짜로··· 어머니··· 저 미칠 것 같아요.

정말 미칠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돌아버리겠어.

일단 때리자. 참을 수 없어. 무조건 저 십새끼를 때리고 보자.

기순이 고함을 빽 질렀다.

“야- 씨발 하마루! 이 미친 새끼야!”

이리 와. 이리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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