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48화 (48/280)

러스트 [RUST]-48

샬롯 호텔 입구.

동산 위에 세워진 호텔이라 들어가는 진입로는 작은 숲과 정원으로 이어져 상당히 수려했다. 호텔과 조금 떨어진 곳에 사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김 실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야. 저 새끼들 이기영네 새끼들이지?”

“그래 보입니다.”

“아니 씹새끼들이 내 말을 귓구멍으로 처먹었나. 죄다 들어가라고 했으면 싹 다 들어갔어야지. 야- 저 앞에 차 세워.”

김 실장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리 질렀다.

“여기 누가 책임자야? 어떤 새끼야!”

안 팀장이 앞으로 나왔다.

쫙!

나오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인 김 실장이 안 팀장의 배를 발로 찼다. 푹-반쯤 주저앉던 안 팀장이 작게 신음을 흘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김 실장이 다시 따귀를 때리려던 찰나, 저쪽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막내가 보였다.

“에이 씨팔- 야 씹새끼야. 내가 싹 다 들어가라고 했지? 이기영이 들어가지 말라고 시키더냐? 너 이름이 뭐야?

“아닙니다. 안동구입니다.”

김 실장이 고개를 돌려 정보 담당을 봤다. 정보 담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냐? 본사에서 명령받지 못했다면서 내 말 씹은 게.”

“예.”

“아- 이 새끼를 진짜.”

김 실장이 따귀에서 주먹질로 바뀌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왜 안 들어갔는데?”

“직접 보십시오.”

안 팀장이 김 실장을 데리고 언덕 위쪽으로 걸어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샬롯 호텔. 1층과 2층까지 마치 철판을 두른 것처럼 막혀있었다.

자세히 보니, 도개교처럼 바닥을 들어 올려 1~2층을 막아 버린 것이었다. 바닥이 들렸으니, 성의 해자처럼 바닥이 쑥 뚫려있는 상황.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고,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저건 또··· 아 씨발··· 썅년이 작정하고 있었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전쟁 대비했나? 임진왜란 시즌 2나, 2차 한국전쟁 대비라고 해도 믿게 생긴 모양새였다.

“그래. 이기영이··· 이 실장은 저기 들어갔고? 몇 명이나 들어갔는데?”

“170명 조금 안 됩니다.”

“남은 애들은?”

“80명 안 됩니다.”

쯧-

김 실장이 혀를 찼다. 다 들어갔으면 좀 여유가 있었겠지만, 170명이면 글쎄, 샬롯 본사에서 받은 정보로 생각해보면 부산으로 들어온 야쿠자들 숫자는 40~50명 내외, 안가에 있는 놈들 1~2명씩 줄었으니, 대략 10명 정도 빠졌다고 봐야 했다.

그럼 남은 숫자는 대략 40명 언저리가 있을 거고, 호텔 보안도 있을 테니, 최대 80명쯤? 이기영이 데려간 애들이 170명 정도라고 했으니 쪽수는 저쪽 2배지만 만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저쪽은 방어하는 쪽이라, 호텔 지형지물을 이용한다면 2배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싶었다. 어쩌면 장비가 딸리는 이기영이랑 애들을 역으로 조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기영이 자체는 능력이 있더라도 데리고 있는 애들이 워낙 근본도 장비도 제대로 된 게 없어서.

김 실장은 안 팀장과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기영네 새끼들을 훑어봤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야구방망이, 쇠 파이프, 철근, 오함마, 오토바이 체인, 소방 도끼. 빨간 목장갑. 보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나마 꼴에 방검복이라도 껴입은 애들이 절반 정도는 있었다. 권총을 가진 새끼들도 홀스터는 없는지, 허리춤 벨트 앞이나 뒤에 꽂아 넣어 있었고 그나마도 권총은 30~40년은 넘어 보이는 경찰용 38구경 리볼버였다.

이런 새끼들을 같은 회사, 같은 시큐리티라고 해야 하나? 김 실장의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후- 그래 이 실장 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

“10분에서 15분 정도 됐습니다. 밖에 정리하고 들어가려는데 저렇게 도개교처럼 바닥이 올라가는 바람에···.”

“됐어. 나도 눈이 있다.”

김 실장은 정보 담당에게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시켰다. 바로 김 실장 직속 직원들 절반가량이 중무장을 한 채, 지하로 향했다.

김 실장이 주변 약도를 휴대폰에 띄워 놓고 안 팀장을 불렀다.

“안 팀장 이리 와서 지도 좀 봐. 여기 이쪽, 그리고 거기 저쪽. 마지막으로 저기 이렇게 3곳에 애들 배치하고, 도망치는 애들 있으면 하체 위주로 공격해서 이동 못 하게 막아. 바로 연락하고.”

“예.”

“좋아 그럼 기다려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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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장은 호텔 안으로 데려온 직원들을 살폈다.

엉망진창인 연장들. 통일된 것도, 통일될 일도 없어 보이는 행색. 거기에 여기 있는 새끼들은 대부분 통수를 준비하고 있던 새끼들. 안 팀장이 호텔로 밀어 넣은 애들은 딴생각을 한 애들이거나, 그런 생각을 한 녀석과 친한 놈들이거나, 이미 몇 번 통수를 쳤던 실력 있는 통수 전문가들이었다.

그래서 이 실장은 마음이 편했다.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이길 생각만 하면 되니까. 수단과 방법 따위야 살아남은 놈이 평가하는 거였다. 뒈진 놈은 수단이든 방법이든 나발이든 의미 없을 테니까.

그럼 미련을 털어 볼까.

“유 이사님, 저 이기영 실장입니다.”

[그래 오랜만이야 이 실장. 지금 부산이겠네?]

유 이사는 어쩐지 느낌이 불길했다.

“예. 부산입니다.”

[한창 바쁠 텐데, 어쩐 일이지?]

“저와 제가 대리고 있던 애들, 오늘부로 퇴사하려고 해서 마지막으로 인사차 연락드렸습니다.”

부산에 내려갔으면서 거기서 퇴사하겠다고? 칼을 거꾸로 들겠다는 소린가? 이래서 불길한 느낌이었나?

[야- 이기영.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더군요.”

[너 이- 뭐야? 뭐가 문제인데? 돈 때문이야? 샬롯? 크리스털? 어디야? 이기영이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너 돈 때문에 나랑 회사 뒤통수친다는 거냐?]

목소리가 분을 못 이겨 끝에 이르자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유 이사가 현장에 있었을 시절에 났던 쇳소리 섞인 목소리.

“···예. 돈 때문입니다. 돈. 유 이사님. 제가 대리고 있는 애들 두 달째 월급 못 받았습니다. 오늘이 월급날인데 부산 내려오는 동안,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데도 월급 들어온 애들이 없다고 하더군요. 오늘로 석 달째 월급 없이, 견습 기간이라면서 애들 월급을 주지 않았습니다.”

유 이사는 뭔 개소리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회사에 돈이 없나? 사람이 없지, 돈이 없어?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이 새끼가, 통수치고 나가는 마당이라고 개소리를 해?

[그래? 좋아 이 실장, 어차피 뒈질 텐데··· 까놓고 말해보라고, 그 말 사실이야?]

“그 말씀 맞습니다. 어차피 뒈질 상황에서 뭘 바라고 거짓말하겠습니까?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대리고 있는 애들, 제대로 싸우기엔 모지리랑 반푼이들 인 거. 그런 애들이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는데, 싸그리 호텔로 끌고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김 실장이. 그냥 다 들어가 뒈지면서 시간 끌라고··· 어쩌겠습니까? 저는 뒈져도 저 믿고 따라온 애들 그냥 갈아 넣을 수는 없잖습니까? 다 살리지는 못해도 살리는 데까지는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실장의 말에, 유 이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지금은 어떡하든 봉합해야 했다.

[이 실장. 그래 회사에서 그랬다면. 내가 확인하고 직접 처리하겠네···. 아직 늦지 않았으니, 퇴사 이야기는 못 들은 거로 하겠네.]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미 호텔로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려고 한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유 이사가 말했다.

[그래. 그런가? 알고는 있겠지? 회사에서 퇴사한다는 의미를?]

“그럼요. 건강 하십쇼.”

전화가 끊겼다. 유 이사의 신경도 같이 끊겼다. 유 이사는 인터폰에 소리 질렀다.

“최 전무 당장 오라고 해. 그리고 김 실장에게 전화 넣어. 지금 하는 작전 전부 취소하고 올라오라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라크 도시, 아프간 고원에서 매복에 당했을 때의 느낌. 이 실장의 전화를 받고 느껴졌던 불길한 감각.

[유 이사님, 김 실장에게 연락되지 않습니다. 신호는 가는데, 아니 신호가 차단되는 것 같습니다. 전파방해가 유력합니다.]

샬롯 본사에서 몰랐을까? 전파방해장치까지 달아 놓은걸. 유 이사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정상이었던 눈동자가 삼백안으로 치켜 떠졌다. 멀쩡했던 손을 가늘게 떠는 유 이사가 주먹을 쥐었다 피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문이 열리고 최 전무가 들어오는 순간, 언제 뽑았는지 유 이사의 손에 들린 콜트 파이선이 불을 뿜었다.

탕!

총소리는 한 번 들렸는데, 최 전무의 왼쪽 귓불과 귓바퀴 두 곳에 스치듯 총알이 지나갔다. 엄청난 속사.

큭.

총알이 귀를 스치고 지나가서야 반응한 최 전무, 조금만 옆으로 지나갔으면 얼굴에 총알이 박힐뻔했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최 전무를 삼백안으로 노려보던 유 이사가 총구를 까딱여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최 전무는 손수건을 꺼내 상처 입은 귀에 대고 지혈하며 소파에 앉았다.

“최 전무. 내 말에 똑바로 대답해야 할 거야. 두 번은 없어.”

“······.”

최 전무의 표정은 오묘했다. 치욕스럽다는 것과 분노 그리고 공포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 최 전무의 표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삼백안이 최 전무를 노려봤다.

“이 실장. 이기영 실장 밑에 애들 밥그릇에 손댔나?”

“손댔습니다.”

“왜?”

“여의도 쪽에서 갑자기 요구···”

빡-

재떨이가 최 전무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순간적으로 소파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최 전무.

콱!

최 전무의 주둥이에 틀어박힌 콜트 파이선.

“최 전무. 여의도는 회사에서 관리하잖아. 여의도에서 너 새끼에게 개인적으로 요구했다는 건, 너 새끼가 여의도에 뭔가를 청탁했다는 소리잖아. 너 새끼가 필요한 걸 청탁하는데 애들 밥그릇은 왜 건드린 거지? 넌 월급 받고 배당받아서 뭐에 쓰는 새끼지?”

끼이이이

방아쇠가 당겨질 듯 말 듯 한 소리를 냈다.

미친년이다. 알고 있었지만, 이년은 진짜배기 미친년이었다. 최 전무 자신도 칼로 사람 좀 썰어본 새끼였지만, 같은 지붕에 있는 사람을 그것도 같은 임원진인데도 그냥 죽여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근데 이년은 지금 그러려고 했다.

죽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그런 최 전무를 바라보는 삼백안.

[유 이사님. 여러 차례 다시 시도했지만, 김 실장을 비롯해 부산에 내려간 직원들 전부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어떡할까요?]

유 이사는 최 전무의 아가리에 꽂아 넣은 콜트 파이슨을 빼지 않은 채, 고요히 최 전무를 내려봤다. 그 잠시의 시간이 최 전무에게 있어서 영원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 이사 입술이 달싹였다.

“최 전무. 마지막 기회야. 헬기 타고 부산에 내려가서, 우리 애들 살려서 데리고 나와. 김 실장이 죽으면 최 전무 당신도 죽어. 알았나?”

최 전무는 총열을 입에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남은 이야기는 부산에 갔다 와서 하지.”

우악스럽게 쑤셔 넣었던 총구가 입에서 빠져나오자 최 전무는 작게 기침을 했다. 피 섞인 침이 주루룩 흘렀다.

“가 봐.”

최 전무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수치스러움, 분노, 공포, 복수심 그 모든 것을 비벼낸 최 전무의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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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침투조 24명이 조용히 전진했다. 비상 출입구 잠금장치는 샬롯 본사 인력이 빼낸 마스터키로 쉽게 열 수 있었다. 비상 출입구 내부는 노출 콘크리트와 백색 비상등으로 삭막한 느낌이었다.

[치?이이-익. 작전 개시?이이잉]

[이잉-이이이잉- 하라···이이잉]

지하 깊은 곳이라 그런지 무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전이 끊겨도 작전대로 하면 될 일이었다. 목표는 사장실. 건축물 평면도가 있었기에 가는 건 문제없었다.

“방패 앞으로. 스캔 시작.”

방탄 방패를 든 4명이 선두로 향했다. 옆에 붙은 직원은 네모난 페트병 2개 크기의 열 감지 장치로 스캔을 시작했다. 삐이이이이. 왼쪽과 오른쪽은 군청색과 파란색이었다. 열원이 없다는 소리.

정면에 약간의 노란색과 주황색 기운이 있었다. 누군가 이곳에 방금까지 있었다는 의미. 스캔병이 주먹을 쥔 채 오른팔을 들었다. 소리 없이 이동하던 대열이 뚝 제자리에 멈췄다.

“이야 역시 성골은 다르네. 달라. 장비도 다르고 때깔도 다르고 훈련도 다르고. 간지나네. 간지.”

“누구냐? 나와!”

“이건 또 병신이네. 누군지 알려 줄 거 같으면 숨어서 말하겠냐?”

이 실장이 빈정거렸다.

이 실장의 목소리를 알아챈 한 직원이 소리쳤다.

“이 실장?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설마? 배신이냐?”

“그래 배신이다. 씨발롬들아. 니들이 그렇게 쳐입고 껴입고 챙기고 지랄이 날 때, 나랑 내 새끼들은 두 손에 달랑 빨간 목장갑 끼고 삽질했다. 씨발들아. 그랬더니 가서 뒈지라고? 너희들이나 뒈져라. 새끼들아.”

노란색이 부분부분 있던 화면이 붉은색으로 점점 변했다. 붉은 덩어리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정면이다. 정면에서 몰려온다!”

방패를 바닥에 고정한 선두를 중심으로 화망을 구성한 호텔 침투조가 목표를 기다렸다. 잠시 뒤 코너를 돌아 나오는 사람들.

흐에에에

후아아아

크아아핳

눈이 돌아간 자들이 흉기와 둔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씨발 이게 뭐야?”

“What the F···”

“쏴!”

"이 새끼들 눈 돌아갔어."

"닥치고 쏴!"

투두두두두둑

탕 탕탕 타탕

지하 깊은 곳, 총성이 노출 콘크리트 벽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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