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51
칼질이 자르라는 어깨는 못 자르고, 픽- 공기만 썰었다.
‘잡았나?’ 했더니, 칼질 나가기도 전에 낙법 치듯 옆으로 굴러서 피하는 김 실장이었다.
‘야- 이걸 피하네.’
분명 칼질하기 전에 반응했다.
이거 실장급 같은데? 최 실장, 백 실장이 보여준 반응과 비슷했다. 등 뒤에 느껴지는 살기, 볼링핀처럼 무너졌던 직원들이 하나둘 일어나고 있었다.
역시 장비가 좋으니까 ‘질기네.’
찌릿!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감각. 마루는 그대로 옆으로 낙법 친 김 실장에게 달려들었다.
낙법치고 일어나려는 놈의 권총 쥔 오른손을 비틀어 밀어, 있는 위치를 서로 바꿨다.
탕!
탕!
방패로 쓴 김 실장의 몸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지는 게 느껴졌다.
“김 실장님!”
팀 킬 한 직원이 김 실장을 부르짖었다. 지가 쏴놓고 애절하게 부르기는 마루는 역시 이놈이 실장이었구나, 끄덕였다.
응?
이렇게 근거리에서 맞았는데 방탄복이 버티나? 버틴다고 해도 몸이 못 버티지 않나?
크으- 가래 끓는 숨을 내쉬며 김 실장이 마루의 바짓단을 쥐어 잡고, 다리를 휘감으려고 했다.
“아- 진짜-”
마루의 분위기가 바뀌기 무섭게, 잡았던 바짓단을 화들짝 놓고 데굴데굴 굴러 도망치는 김 실장. 김수현 실장이 거리를 벌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 하나가 마루를 향해 기관단총을 쏴댔다.
투다다다닥
팍!
마루가 흐릿한 연기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투다다다닥
기관단총을 쏘던 직원은 생각했다. 예측 사격으로 화망을 구성···.
‘어?’
직원은 뭔가 번쩍하고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둥실 떠오르는 기분, 바로 앞에서 기관단총을 쏘고 있는 자기 몸을 보았다. 머리가 없···.
투다다닥
머리를 잃은 몸은 계속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이어서 튀어 오르는 피.
털썩-
데구르르-
김 실장은 말을 잃었다. 욕도 나오지 않았다. 뭔가 초고속 카메라로 물방울 떨어지는 모습의 칼질 판을 본 것 같았다. 김 실장과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바닥에서 허우적대던 직원들은 그 모습 하나로 깨달았다. 부산 외곽에서 봤던 토막 난 시체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
누군가 현실을 부정하는 것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먼저 마리나를 향해 출발한 16명 가운데, 6명이 발목 나가서 낙오, 남은 사람은 10명. 마리나를 뜨는 요트를 막으려고 했다. 이후 두 사람은 투척에 맞고 의식 불명, 하나는 몸통 박치기 맞고 의식 불명, 방금 하나는 목이 잘렸다. 저게 튀어나온 지 10초나 지났을까? 10명이 6명이 됐다.
데굴데굴 굴러 거리를 벌린 김 실장이 몸을 일으켰다. 욱씬- 칼날을 막은 왼팔이 부러졌거나 금이 간 게 확실했다. 우악스럽게 꺾였던 오른팔도 손목에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쌰아ㅇ노--”
김 실장이 본능적으로 내뱉은 욕설이 완성되어 허공으로 사라지기 전에, 픽- 공기가 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 실장의 발치로 허망한 눈을 한 것이 굴러왔다. 김 실장은 직원의 동공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이 씨발 새끼이가아아!”
마루를 향해 달려 나가려는 김 실장의 허리를 누군가 끌어 앉고 눌렀다. 정보 담당이었다.
“안 됩니다. 김 실장님 참으···.”
정보 담당의 말이 끝나기도 전, 마루는 볼링핀처럼 쓰러졌다가 간신히 옹기종기 몸을 일으키는 직원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안 돼에에에!”
김 실장의 비명을 배경으로, 마루의 칼이 꽉 찬 만월처럼 둥그렇게 휘감겼다.
찢어지는 소리는 없었다.
잘리는 소리도 없었다.
비명도 없었다.
무언가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만 있었다.
툭- 투툭- 투두둑-
마루는 날이 빠지고 뭉개진 일본도를 바닥에 던졌다.
빨갛게 철퍽-하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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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던 요트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있었다.
‘샬롯인가?’
서울 샬롯인지, 부산 샬롯인지 모르겠지만, 귀찮게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마루의 바램이었다.
기순이 메가 요트라고 설레발쳤던 그 메가 요트에서 우루루 내리더니 버글버글 몰려오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한 130m? 150m쯤 떨어진 거리였는데 어슬렁거리는 속도로 보아 여기까지 오는 데 족히 5분은 걸릴 것 같았다.
둠둠거리며 다가오는 꼴이 영 지랄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양아치들이, ‘어이 아저씨 잠깐만. 거기 아저씨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귓구멍이 막혀서 말이 안 들려? 말이 말 같지 않아?’ 이러면서 슬슬 다가오는 그런 느낌?
“아- 씨발-”
마루는 허리춤에 있는 일본도를 가볍게 뽑았다. 두 자루 들고 오길 잘했다.
곡선이 들어가서인지 잘리기는 잘 잘렸는데, 내구성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국산도 요즘엔 가성비 진짜 괜찮던데, 방금 쓴 게 불량품이었나? 저번에는 나쁘지 않았었다. 품질 관리 실패했나?
그나저나 몰려오는 저것들은 어째야 하나? 90명은 넘고 100은 확실히 아니고, 장전된 글록 한 자루, 예비 탄창 2개, 합해봐야 51발.
중국산 일본도는 아까는 6명 간신히 버텼고, 월드 축산에서는 10명 넘게 버텼으니까 평균 따지면 한 8명 간다고 하면 그래도 60명이네. 한 발에 한 명씩 잡는다고 해도 30명이랑 주먹질하게 생겼다.
“아- 빌어먹을-”
픽- 픽- 흔들.
짜증 나서 허공에 칼질을 몇 번 했더니, 칼날이 살짝 흔들렸다.
마루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언제부터 이런 칼 썼다고.
픽- 허리춤에서 사시미를 하나 꺼냈다. 장미무늬 회칼이었다.
마루는 또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언제부터 광고 믿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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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김 실장과 직원들이 출항하는 요트를 향해 총을 쏘며 쫓았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남자가 칼을 들고···.
‘미친.’
CCTV로 현장을 본 이기영 과장의 얼굴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칼밥, 주먹밥, 총알밥 다 먹어본 그였기에, 지금 자기가 본 장면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장면인지 알 수 있었다.
김 양이 들어가면 뒈진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20명이 들어갔어도 전부 다 뒈졌다. 30명이 들어갔다면? 40명은? 40명이라면 저걸 막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저런 게’ 김 양이랑 같이 움직였으니, 회사에서 김 양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 양 하나만으로도 미치는데 ‘저런 게’ 옆에 붙어있으면 ‘답이 없음’ 그 자체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저걸 어떻게든 스카우트 할 수 있다면, 욕심을 조금 내서, 김 양과 저걸 묶어서 스카우트할 수 있다면, 어설픈 애들 30~40명 쓰는 것보다 백배 나았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100명을 쓰는 것보다, 저 2명을 쓰는 게 효율적이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심은영 사장의 전화였다. 언제나 고요했던 심 사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보셨나요?]
“예. 저도 봤습니다.”
자신도 떨리는데, 심 사장이라고 다를까. 심 사장의 목소리에는 떨림과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김 양, 잡을 수 있을까요? 저 사람이랑 같이요.]
“김 양은 종잡을 수 없는 여자지만 금괴에 애착이 심한 것으로 보아, 아주 많은 돈을 제시한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저게 문제였다. 김 양이 했던 행동을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가 있었다. 김 양은 저거랑 마주치기 껄끄러웠던 게 분명했다.
친한 동료라면 그렇게까지 불편해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렇다면 애초에 동료가 아니었던 건 아닐까? 그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잠시 손을 잡은 사이? 어떤 목적 때문에 손을 잡았을까? 그 목적을 이뤄준다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김 양과의 관계가 그렇게 돈독한 것 같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그래요? 의외네요. 호텔 CCTV로 봤을 때는 자연스럽게 같이 있던데, 방법이 있을까요?]
흠-
“아마···, 뭔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잠시 손을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손을 잡았는지만 알 수 있다면, 저희 샬롯이 그 목적을 이뤄 줄 수 있다면, 용병 제의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준다고 저거가 자리를 잡고 샬롯에 충성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게 한 곳에 소속되어 충성하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보고 생각해도 저게 사람 새낀가 싶었다. 저런 게 입사해서 월급 받고 산다고? 그냥 용병처럼 개별 케이스로 의뢰하는 정도로 거리를 두는 게 맞았다. 저런 게 갑자기 휙 돌아버리면 누가 막나?
[그렇군요. 아쉽지만, 무리해서라도 전속 용병으로 계약했으면 해요. 그것도 힘들다면 이쪽을 적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금을 거는 것도 좋고요.]
“알겠습니다.”
이기영 과장이 CCTV 화면 구석을 봤다. 저건 일단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지금 중요한 건 김 실장이었다. 김수현 실장이 구석에 있었다.
“자- 슬슬- 우리 김 실장님 얼굴이나 보러 갈까?”
너클 장갑을 차며, 이기영이 목과 어깨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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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담당은 꿈틀거리며 뛰쳐나가려는 김 실장의 허리를 잡고 누르고 있었다. 악다문 입술 사이로 피를 흘리는 김 실장의 눈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런 김 실장과 정보 담당에겐 흥미도 관심도 없다는 듯, 마루의 시선은 저쪽에서 슬금슬금 몰려오는 자들을 향해 있었다.
얼마나 꿈틀거렸을까, 김 실장이 몸에서 힘을 뺐다.
흥분이 조금 가시자, 여기저기 통증이 올라왔다. 장미무늬 사시미를 맞은 가슴팍이 숨을 쉴 때마다 아팠다. 갈비뼈가 금이 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칼을 막은 왼팔도 잘리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쪽도 금이 갔거나 부러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벌써 서서히 붓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은 그나마 좀 나았지만, 이쪽도 좋은 상태라고는 할 수 없었다.
끄응-
김 실장은 주머니에서 앰플 주사를 꺼내 허벅지에 찔렀다. 따끔하더니 뜨거운 기운이 허벅지를 시작으로 전신으로 퍼졌다. 고통이 잦아들고, 머리가 약간 멍해졌다. 이래서 마약성 진통제가 싫었다. 둔해지니까.
“씨발 저거 쪽바리지?”
팍 갈라진 김 실장의 목소리. 정보 담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새끼가 부산 보안팀 잡아먹은 새끼 맞지? 존나 30~40명은 개뿔, 저 새끼 혼자서 다 썰었겠구먼.”
정보 담당은 할 말이 없었다. 당장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데, 당시 그 현장을 보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지금 다시 보라고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근데 저 새끼가 왜 우릴 끝내지 않는 거지?”
정보 담당이 한쪽 손에 꼭 쥐고 있던 것을 내보였다.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이었다. 그리곤 허리춤에 매단 크레모아를 내밀었다. 김 실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미친 또라이 새끼.”
낄낄
아- 씨발 갈비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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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옆에서 낄낄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수류탄이야 그냥 그랬지만, 크레모아는 완벽하게 피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굼실굼실 다가오는 거의 90명은 넘을 법한 양아치들이랑 드잡이질 할 수 있는 판국에, 달랑 두 명 남은 월드 조직원에게 신경 쏟을 건 아니었다. 딱히 살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죽자고 달려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보다는 저쪽에서 몰려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생각해 보니 저게 서울에서 원정 나온 애들 상태는 아니겠고. 그럼 부산 샬롯이라는 건데. 왜 이쪽으로 오는 걸까?
쯧-
마루는 일본도와 장미칼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시체를 뒤져봐야 하나? 김 양은 시체에서 잘만 파밍 하던데, 아직은 시체 뒤지기가 좀 그랬다. 이럴 때 김 양이 있어야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마루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방탄 마스크를 쓰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들은 방검복에 방탄복을 겹쳐 입고 있었다. 이러니 칼이 안 박히지. 팔뚝 토시에 전술 장갑, 낭심보호대, 정강이보호대, 신발은 특수 전술화로 발목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비싼 신발이었다.
이걸 보니 진짜 템빨이 세긴 세다 싶었다.
오-
시체를 뒤지던 마루가 칼을 하나 꺼내 들었다. 전체 길이 50~55cm 내외, 날 길이만 38~40cm가 됨직한 보위 나이프였다. 굵직하고 무엇보다 튼튼해 보였다. 그 외에도 군용 대검 같은 것들이 몇 개 더 나왔다.
마루가 정신없이 칼을 수거하고 있는데, 저쪽 무리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이기영 과장이었다.
그를 본 김수현 실장이 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