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68화 (68/280)

러스트 [RUST]-68

기순과 자칭 사장이 조종실에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그래.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죠?”

“문제랄게 뭐 있나요. 그냥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생기는 게 문제죠.”

심 사장이 툭 던졌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걸요. 벌써 습격만 3번째니까요.”

“뭐 그 습격의 이유가 사장님이라면야 생각을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말을 듣고 저는 오토k(ill) 오토k(ill) 이러면 되는 건가요? 서로 알고 있는 사실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겠죠. 이유가. 근데 그 이유가 이쪽 관점에서 보면 참 그렇단 말이죠.”

“사장님 너무 생략하셨습니다. 너무 생략하셔서 이야기하시면 오해하게 되고 그럼 저는 오예합니다.”

하하하핫

기순의 드립에 호탕하게 웃는 사장이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을 찔끔 흘린 사장이 기순에게 제의했다.

“우리 호텔에 취업하지 않을래요? 호텔이 싫다면 건설 쪽도 좋고요. 실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임원급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것 같은데요.”

“사장님 저도 지금은 비록 휴생이지만(휴학생), 나름 작은 회사 한 개 정도는 집어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어디에 웃음 포인트가 있었는지 까르륵 웃은 사장이 찔끔 흘린 눈물을 닦았다. 언제 웃었냐는 듯, 언제 재밌었냐는 듯 차갑게 식은 눈동자가 기순을 훑었다.

“알아요. 김기순 씨, 김기철. 김기석. 배다른 형제에게 여러 차례 죽을 뻔했고, 종국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잃고 살기 위해 쥐 죽은 듯 살아가는 인간.”

“······.”

“하마루 씨를 조사하면서 당신을 조사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먼저 조사를 시작했지만, 곧 월드에서도 할 거고 당신이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 아닐까 싶은데요. 뭐 월드가 안다면 정부에서도 알겠죠. 그리고 중국업체인 크리스털에서도 알겠고요.”

“그래서 요점이 뭔지 궁금합니다. 사장님.”

기순의 말에, 심 사장의 눈꼬리가 휘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이 참 친했더라고요. 사건 사고도 많이 겪었고, 보통 사람이었다면 죽어도 3~4번은 더 죽었을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도 그렇고요. 그렇게 자료를 읽다 보니, 하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더군요.”

“······.”

“과연. 김기순이라는 인간은 복수를 포기했을까? 김기순이라는 인간이 배다른 형제들에게 복수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

사장의 목소리가 낮은 음색으로 살짝 변했다. 여자의 목소리기에 더욱 음험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가장 확실한 복수는 죽이는 거죠. 암살이든 뭐든. 그렇다면 10년 넘게 옆에서 지켜본 친구가 가진 재능을 몰라봤을까요? 그러니까 그런 의심인 거죠. 정말 김기순이라는 인간과 하마루라는 사람과의 관계를 순수한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

“뭐.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미묘한 일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렇게 하마루 씨와 저희 호텔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걸 보면, 질투심을 넘어서 기순 씨의 계획에 저희가 초를 치는 걸 차단하는 느낌까지 든단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기순 씨.”

“말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기순의 표정은 변함없이 능글맞았다.

“어떤 경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더라고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아? 또 이런 말도 있었죠? 뭐는 자기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해 뭐만 한다? 제가 기억력이 나빠서 뭐만 기억나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빵 터진 사장이었다. ‘이거 너무 재밌는 녀석이었다.’ 대놓고 개기는 것도 재밌지만, 하는 짓이 귀엽지 않은가? 흔들어도 흔들리지도 않고, 잘 키우면 좋은 흑막이 될 자질이 넘쳤다.

결단력도 있고, 공포에도 잘 빠지지 않고, 한번 결정하면 중심도 탄탄하고. 근데 이렇게 능글맞은 놈들이 꼭 자립심이 강하더라. 적당히 아래로 들어오면 좋으련만···. 조금 진 좀 빼볼까?

“그래서 그 뭐의 눈에는 제가 어떻게 보일까요?”

재치 있게 받아친 사장이 기순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태워줄까?

기순은 그 질문에 1초도 걸리지 않고 즉각 대답했다.

“아- 사장 누님은 끝내주죠. 미치게 끝내줘서, 지금 소름 돋았어요.”

역시, 재미있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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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웅-

높은 엔진 소리와 함께

철썩-

파도를 때리는 제트스키

부웅

파도를 때린 제트스키가 살짝 떠올랐다.

촤악

다시 파도에 떨어졌다.

촤아아악

위아래로 튕기는 물수제비 마냥 통통이는 궤적을 남기고 2대의 제트스키가 반원을 그렸다.

‘신기하네.’

마루는 광학 은신 장비가 신기했다. 마이크로 카메라와 특수 LED 소자를 접목해 만든 것이라는데, 장비 바깥을 촬영하는 마이크로 카메라를 이용해 은신 효과를 내는 것이었다. 이걸 써보니 약점과 장점을 알 수 있었다.

장점은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곳에서는 티가 난다는 것이었다. 특수 LED 소자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빛과 색을 재현해야 한다. 아주 밝은 광량이라면 LED 소자가 재현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주 어두운 곳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어두운 곳이라면 차라리 전원을 끄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테니까.

확실히 자칭 사장의 말대로 광학 은신 장비를 쓸 수 있게 해준 것은 모험이었다. 장비의 약점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마루는 슬쩍 옆을 쳐다봤다. 투명하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마루의 옆에서 내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진짜 배경 같았는데 이것도 익숙해지니까 감이 왔다. 아마도 카메라가 촬영한 배경을 화상으로 전환하는 것 사이에 아주 미세한 시차가 있는데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살기가 없으면 찾기 힘들고.’

특히, 난전 속에서 이런 걸 장비하고 총을 쏴대면 잡기 어려웠다. 다만, 기순의 예상대로 후면은 가려지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둘러싸면 후면은 노출된다는 것. 확실히 호텔 사장으로서는 비장의 장비가 가진 장단점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한 게 맞았다.

‘여러모로 신경 쓰이게 하네.’

확실히 깨달은 점은, 같은 편이 되면 계속 굴려 먹으려 할 거라는 점. 적당히 서로 윈-윈하면 좋겠는데, 어디 대기업이 그런 상생을 선택하기로 하기 쉽겠는가? 바로 이익이 눈앞에 보이는데?

쯧-

몇 분 지나지 않아, 속도를 조금씩 올리고 있는 일본 순시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략 50m 정도의 크기. 소형 고속 순시선이라더니, 길이 50m가 작은 건가? 마루는 30m짜리 카타마란도 커 보였다.

크기도 크기지만 문제는 속도였다. 50m짜리 배가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빨라졌다. 30노트 그러니까 55km는 넘을 것 같은 속도. 그마저도 계속 가속이 붙었는지 빨라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쪽이 타고 있는 제트스키의 최고 속도는 100km가 넘었다.

[치익- 제가 왼쪽을 맡겠습니다.]

[동시에 들어가죠.]

경호원에게서 무전이 왔다.

[10초 뒤에 갑시다.]

[3초에 후면에 투척]

[그 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져서 발칸 포대에 투척으로]

[알겠습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순시선이 카타마란까지 근접하게 한 뒤, 4km 안쪽으로 접근하면 전파방해 장치를 켜고, 그 뒤에 처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까이 접근한 뒤, 저쪽에서 속도를 높여 밀고 들어와 그대로 20mm 발칸을 쏴버리면 답이 없었다.

위험 요소도 있고 단점도 많지만, 일단 이렇게 해 볼 밖에.

[10]

[9]

[8]

순시선이 점점 가까워졌다. 순시선 쪽에서도 견시가 쌍안경을 들고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레이더에 잡혔다가 사라지는 작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경호원이 탄 제트스키가 왼쪽으로 돌고, 마루는 그대로 오른쪽으로 향했다.

[7]

[6]

[5]

순시선이 바로 코 앞이었다. 경호원은 왼쪽 꽁무니를 잡았고, 마루는 오른쪽 꽁무니를 잡았다. 폭탄을 투척하려면 앞을 가린 은신 장비를 거둬야 했다.

[4]

은신 장비를 거두자, 갑자기 나타난 2척의 제트스키. 후미에 있던 보안청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3]

휙- 휙-

순시선 후미로 날아가는 폭탄 묶음. 마루와 경호원이 재빨리 속도를 높여 각기 오른쪽과 왼쪽 측면을 타고 올라갔다.

콰아아앙!

콰콰콰앙!

순시선 후미에서 강력한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순간적으로 속도가 줄어든 찰라.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폭탄이 순시선 위로 올라갔다.

재차 이어진 폭음.

콰르르릉

2번의 폭음이 동시에 겹쳐졌다. 사방으로 튀는 파편. 순시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장인 20mm 발칸이 박살 났다. 그럼 이제 돌아가면 되는 건가?

4번의 폭발로 순시선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됐다. 해상보안청 사람들이 우왕좌왕했고 일부는 마루가 탄 제트스키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몇몇이 흉악한 표정으로 마루를 향해 총구를 겨눴고 마루는 가볍게 연막탄으로 답해줬다.

이래서 총은 별로였다. 시야가 막히면 그냥 아웃 아닌가? 칼은 시야가 좁아지면 땡큐지. 마루는 김 양이 골라준 글록 41을 뽑지 않았다. 연막탄 몇 번 까면 끝인데 굳이?

순시선 위로 떨어진 연막탄들이 뿌연 연기를 내뿜었다. 순식간에 순시선이 연막에 휩싸였다. 위에서 연막탄을 찾아 바다로 던졌지만, 계속까진 연막탄 숫자가 더 많았다.

[처리합니까?]

경호원의 목소리.

[그만 가죠.]

[······.]

마루의 말에 경호원은 대답 대신 연막탄과 수류탄을 순시선 위로 까 넣었다. 폭음과 연막으로 순시선에 타고 있던 보안청 요원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몇은 구명튜브와 조끼에 의지해 바다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마루는 경호원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수상스키의 핸들을 카타마란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경호원은 따라오지 않았다. 등 뒤에서 폭음과 비명이 차올랐다. 잠시 뒤 총소리가 파도 소리에 섞였다.

자기도 모르게 칼을 쥔 마루가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후- 깊게 숨을 내쉰 마루는 제트스키의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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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남부 지역을 담당하는 7관구 해상보안청은 시끄러웠다.

중앙청은 지진으로 인해 초토화. 생존자 수색도 불가능하고 통신도 두절 됐다. 그 상황에서 고속 순시선 한 척이 ‘정체불명의 적에게 공격받고 있으며 구조를 요청한다.’라는 통신을 끝으로 침묵했다.

“다른 고속 순시선을 인근 해역으로 보내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함선을 계속 내돌릴 수 없습니다. 중국 쪽에서 계속 밀고 들어오는 상황인데 여기서 더 빼긴 힘들어요.”

“지금 정체불명의 적이 일본의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을 공격했단 말입니다. 그냥 있자는 겁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요?”

“제일 좋은 것은 항공자위대의 지원을 받는 것인데. 화산 폭발로 인해 큐슈 전 지역이 항공기 운항 불가능인 상황이라···.”

“해상 자위대에 구조를 요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해상 자위대도 상황이 심각합니다. 자위대원들 가운데 가족들 생사를 확인하고 싶다며 대규모로 이탈한 곳도 있고. 자위대 소형 함선 같은 경우에는 배로 탈출하려는 난민들의 공격을 받고 있기도 한 상황이라.”

공격받고 있다고 구조 요청을 한 뒤, 침묵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았다. 길어야 5분 안쪽? 그렇게 짧은 시간에 고속 순시선을 나포하거나 침몰시킬 수 있는 정체불명의 적은 어딜까? 한국?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역시 중국?

“중국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해상 자위대가 출동해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중앙 정부가 붕괴해 임시 재난 정부가 구성됐다고 하더니 이틀도 못 버티고 통신두절됐다. 결국, 각 지방이 각자 지방정부를 구성해 자치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분열된 상황. 자원에 여유가 있던 오사카와 교토, 기타큐슈와 홋카이도에서 식료품을 비롯한 핵심 품목에 대해 반출을 금지했다.

그에 따라 인근 지역은 사재기 대란이 터졌고, 심각한 지역에서는 약탈까지 보고되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중국과 무력 충돌이라니, 군부라도 하나로 묶여서 대응해야 하는데, 자위대 본부는 지진으로 끝장났고, 각 지역 담장 자위대는 서로 명령권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이건 해상보안청도 마찬가지였다. 정체불명의 적이라고 한 시점에서 큐슈 남쪽을 담당하는 제7관구 역시 오사카를 담당하는 5관구에 도움을 요청해, 해상특수기동대 SST를 파견해 달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해상특수기동대를 파견해 달라고 하는 것은 7관구가 5관구에게 흡수되는 것처럼 될 가능성이 있었다. 중앙이나 정부가 살아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언제 복구될지 모르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아래로 들어가면 보급도 아래로 받게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보급도 보급이지만 급여는? 당장 중앙과 정부가 날아갔으니, 다음 달 생계는? 걸리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였다. 그렇다면 그걸 감당할 물주를 끌어들여야 했다. 전쟁 억지력을 가지면서 물주까지 해줄 수 있는 나라를 끌어들여야 했다.

“일단 중국의 소행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형 순시선을 보내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으니, 고속 순시선 2척을 보내 확인하는 거로 하죠.”

“2척을 보낸다는 것은 남은 고속 순시선 전부를 보낸다는 소립니다.”

“압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보내지 않으면, 우리 순시선이 무엇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흔적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체불명의 적이 중국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물주를 물기 위해 고속 순시선 2척이 사고 해역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중국이 아니어도 중국이다. 중국이어야 했다. 그게 지금 약해진 일본을 지킬 전쟁 억지력을 가짐과 동시에 물주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를 깊숙이 끌어들일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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