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70
마루는 등 뒤에서 울리는 총성이 이젠 거슬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점차 감각이 앞쪽으로 집중됐다.
탕!
탕!
자동 조준장치로 움직이는 20mm 발칸에 총구멍이 여럿 뚫리며 기동이 멈췄다. 고속 순시선의 승무원들은 무장을 한 채 밖에 나와 있었다.
광학 은신 장비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쿼드 스키를 타고 고속으로 접근하는 마루를 본 승무원들이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고작 한 명이 접근하는데 항복하라든지, 아니면 멈추라는 경고도 없었다.
마루는 방탄 마스크를 눌러썼다. 숨이 가려지고 시야도 가려졌다.
흔들리는 파도, 쿼드 스키의 엔진소리, 살의 담긴 총탄. 그렇게 하나씩 지워지는 것들 가운데 남은 것은 총탄과 살의였다.
위잉잉잉-
마루가 강하게 액셀을 돌리자, 쿼드 스키가 말처럼 울부짖었다.
파도가 보였다.
파도를 보았다.
파도 둘이 바람에 겹쳤는지 세모꼴로 치솟는 파도가 있었다.
3D 영상처럼 세상이 느껴졌다. 마루는 그곳으로 향했다.
투명한 파도가 치솟고, 그 위를 내달리는 쿼드 스키. 붉은색 쿼드 스키가 적토마처럼 파도의 언덕을 뛰어올랐다.
철썩
찰나에 솟아오른 파도의 언덕에서 공중으로 떠오른 쿼드 스키.
타타탕
파파팍
투두둑
9mm 기관단총의 총탄 몇 발이 쿼드 스키의 하부에 박혔다.
히에에에엥
허공에서 비명 지르는 쿼드 스키에서 마루가 뛰어 내렸다.
부웅
주인을 잃은 쿼드 스키가 조타실 유리창 안으로 틀어박히곤 마지막 폭음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조타실이 폭발로 날아가면서 고속 순시선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렸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리는 순시선 위로 방탄 마스크를 쓴 마루가 떨어졌다.
그것은 추락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빨리 내리꽂혔다.
강림이라고 하기엔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숨이 가빠졌다. 흔들리는 순시선 속 승무원들은 무언가가 이 배에 내려앉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의 밖에 있던 사람들부터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무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이이익
피리를 부는 소리. 어쩌면 공기가 찢어지며 울부짖는 소리.
수평으로 휘둘러진 단 한 번의 칼질에 세 사람이 사라졌다. 비명도 없었고 파도 소리만 들렸다.
출렁
풍덩
파도 소리와 무언가 갑판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 붉게 점점이 번지는 바다.
“쏴!”
침묵을 깨뜨리는 외침이 총소리로 변했다. 마루는 그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입술이 마르는 것 같았다. 입술을 축이고 내달렸다.
틱-
잠시 입술을 축이는 사이, 총탄이 스치듯 방탄 마스크를 스쳤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랬다.
그런데······. 어째서?
마루는 자기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그 낯섦을 지우듯.
한일자로 입을 꾹 다시 물은 마루가 그대로 조타실을 향해 점프했다.
불꽃이 창문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조타실 외벽을 밟고 선수 부분에서 선미를 향해 내달렸다.
마루의 움직임을 쫓듯이 따라오는 탄흔과 총성. 마루를 따라오느라 일렬로 죽 늘어선 승무원들.
타다다닥.
탕-
철컥. 철컥.
틱- 틱-
빈 공이를 치는 소리, 빈 탄창이 토하는 소리.
조타실 외벽 갑판을 따라 길게 늘어선 승무원들이 마루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어느새 총알을 따 썼는지 탄창을 허겁지겁 갈고 있는 승무원들의 눈동자엔 공포만 남아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운 마루가 발을 굴렀다.
쿵! 고속 순시선이 발 구름에 출렁였다. 순간 일직선으로 쭉 뻗는 신형.
끼기기기긱-
조타실 외벽을 긁어대는 칼날 소리를 뒤로, 낙과처럼 팔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탄창을 갈던 팔이 떨어졌다. 탄창을 갈고 공이를 잡아당기던 손이 떨어졌다. 허리춤에서 탄창을 꺼내던 팔이 떨어졌다. 하나둘 팔이 먼저 떨어지고, 이어서 붉고 긴 선이 조타실 갑판 외벽에 그어졌다.
풍덩
철퍽
후두둑
빠지고 쓰러지고 쏟아지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침묵을 강요했다.
“······.”
“······.”
기관실에서 막 해치를 열고 나온 승무원과 반대편에서 뛰어온 승무원이 현장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척- 한 손으로 글록 41을 뽑은 마루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당!
타당!
머리에 두 발씩 45구경 총알을 맞은 승무원들이 풀썩 쓰러졌다.
잠시 뒤, 커다란 폭음이 고속 순시선의 후미에서 터져 나왔다.
불꽃과 폭음을 낸 고속 순시선이 제자리를 빙빙 돌더니, 물 밖으로 나온 고등어처럼 옆으로 누워 펄떡이다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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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미군기지, 핸리 게리슨 소장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도쿄 대지진으로 도쿄에 있는 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일본 항공자위대 항공총대가 동시에 지워졌다. 졸지에 주일 미군의 머리가 사라진 상황.
본부에 있던 사령관인 중장과, 부사령관인 소장이 한날한시에 사라졌으니, 다음으로는 오키나와 기지에 짱박혀있던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오키나와가 평화롭냐? 그것도 아니었다. 몇 년 전,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두고 투표를 했고 그 투표가 결과가 폭발했다.
기지 이전에 대한 문제도 짜증 나는데, 뭘 잘못 먹은 꼴통들은 사고를 치기일 수, 그나마 일본과 밀약을 맺어 사건 사고를 최대한 은폐하는데도, 잊을 만하면 덮기도 벅찬 사고들이 터져 나왔다. 거기에 일본 본토에 지진 터진 여파로, 그렇지 않아도 불안 불안한 동네에 기름이라도 뿌린 것처럼 상태가 안 좋았다.
“그냥 전부 처넣어야 하는데.”
핸리 게리슨은 나름 조금 길게 기른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었다. 대지진 여파로 일본 본토 특히 관동지역이 박살 났고 일본 정부도 같이 터졌다. 임시재난 정부라고 나왔던 애들은 삼 일을 버티지 못하고 통신두절됐다.
이제 당분간 일본 정부의 도움 없이 중국, 북한, 러시아 같은 적성국으로부터 아시아 태평양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인 오키나와를 지켜야 했다. 오키나와가 뚫리면 바로 뒤에 있는 괌, 하와이가 위험했다.
만에 하나 괌과 하와이가 적성국에 넘어간다면 미국 본토까지 위험했다. 그러니 오키나와 지방정부에서 미군 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해도 옮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어쨌든 괌과 하와이를 지키고, 적성국이 태평양 지역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틀어막는 골목 역할을 오키나와만큼 할 수 있는 지역이 없었으니까.
가만히 있어도 위산과다로 위에 구멍이 뚫릴 판국인데, 일본 해상보안청 7관구에서 계속해서 중국이 일본 큐슈 남부 해역을 침범했니, 중국군 특수부대가 움직인 정황이 있다고 지랄을 해대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는 일본 대지진 이후 굉장히 잠잠했다. 이례적으로 보일 정도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있는 중국이었다. 그런데 큐슈 남부 지역을 관할하는 7관구에서는 무슨 일본과 중국이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난리였다.
“그러니까. 중국 특수부대가 일본에 잠입하려고 했다고?”
“잠입이 아니라, 일본 샬롯 그룹의 호화 요트를 나포해서 중국으로 끌고 가려고 했답니다.”
“거기에 중요한 사람이라도 탄 거야? 아니 중요한 사람이라도 탔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요즘 중국도 나름대로 사리는 추세인데 사고를 쳤다고?”
“일본 7관구 해상보안청에서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톤급 고속 순시선 2척이 공격당해 침몰했다고 합니다. 당장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중국을 막을 방파제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고···.”
핸리 게리슨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주한미군으로 한국에서도 복무한 경험 있는 그였기에, 찰진 한국 욕이 입안을 맴도는 걸 참기 힘들었다. 한국 욕 마렵다. 그래 씨발 하자.
“아- 좆도 씨발. 무슨 지랄이 풍년이라서 지랄만 처먹었나? 킴팝 사이드 터지는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서 딸이나 잡고 있으라고 해.”
“어- 음-”
부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닥치고 있든, 아니면 중국이 지랄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해.”
“옛!”
열 받는 대로 하기는 했는데, 이게 또 그냥 무시하기는 좀 그런 사안이었다. 정말 중국 특수부대가 샬롯 그룹의 요트를 나포하려고 했다면? 그 배에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면? 그 정보가 미합중국의 안보에 직결되는 정보였다면?
핸리 게리슨 소장은 한국인들이 부모님 안부를 그렇게 묻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일본 해상보안청 큐슈 남부 7관할, 거기 애들이 보낸 자료 모아서 가져오고, 글로벌 호크 올라가면 일본 애들 말이 사실인지 그쪽 해역도 돌아보라고 해.”
핸리 게리슨은 부디 사고 터지지 말고, 제발 중국이 아니길, 천국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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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시선을 정리하고 하루가 지났다.
위치추적기를 주고 간, 호텔 사장님은 흔적이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하루가 지났으니 서로 마주칠 일이 없지 싶었다. 걱정은 사람에게 할 게 아니었다. 마루는 아재칼을 들고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봤다.
마루의 시무룩한 표정을 본 기순은 조용히 배를 조종했다. 항로가 많이 틀어지긴 했어도, 어떻게 큐슈 남부와 시코쿠 남쪽 해역에 한 발 걸치는 데 성공했다.
끝이 조금 떨어져 나간 아재칼을 들고 몇 번을 한숨 쉰 마루가 다시 칼을 갈아대기 시작했다. 그래 한숨만 쉬고 있는 것보다, 칼이라도 가는 게 낫겠지. 기순은 그렇게 생각했다.
“큼- 크음- 아 이거 목이 간지럽네.”
일본으로 접근할수록,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눈이 조금 뻑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 좋지 않은 기분.
“마루야 넌 목 괜찮냐? 이거 좀 느낌이 좋지 않네.”
“좀 그렇긴 한데, 그냥 황사 생각하고 중국발 미세먼지 독했을 때 생각하면 순한 맛인데?”
그런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기순이 라디오를 켰다. 잡음이 심해 듣기 어려웠다. 장파 라디오는 재난방송만 재탕해서 최신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뭔가 안개도 아니고 잿빛으로 물든 바다는 우울한 분위기였다.
“이거 화산 엄청나게 터졌나 보다. 대체 몇 개가 터졌길래 이 모양이지?”
큐슈 남부든 시코쿠든 50km 이상 떨어진 해역인데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견디다 못한 기순이 방독마스크든 산소마스크든 쓰자고 난리 쳤다. 그렇게 화산재인지 화산 안개인지와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날이 저물어 갈 무렵. 레이더가 맛이 살짝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이더가 그러더니, 전자기기의 오작동이 잦아졌다. 날이 저물어 엔진을 돌리고 있는데 엔진 소리도 조금씩 이상해졌다.
“화산재 때문에 엔진 맛이 가겠다.”
선배가 자기 로망을 쏟아부은 요트인지라, 일반적인 요트에는 없는 공기정화기, 전열교환기까지 달려 있었다. 근데 그 필터가 반나절을 가지 못하고 꽉 차버렸다. 회색빛 화산재로 막혀 버린 필터를 꺼내 교체하면서, 이거 일본 본토가 화산재에 묻혀 버린 건 아닌지 싶은 생각이든 기순이었다.
밤이 되자 어둠은 더욱 깊었다. 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고, 서치라이트라도 키면 뿌연 먼지를 힘겹게 뚫은 빛줄기가 얼마 가지 못했다.
삑삑삑삑
삐비빅
삑삐빅
레이더는 뭣 때문에 맛이 갔는지 난리였다. 결국, 오작동이 너무 심한 레이더를 끄고 눈으로 보고 항해를 해야 했다.
그나마 GPS는 잡혀서 자동항법장치가 작동하니 다행이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암초 같은 장애물이나 작은 섬들을 해도 보고 피해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순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천천히 운항했다. 해가 뜰 시간이 되자, 마치 옛날 전통 창호지 밖에서 해가 뜨는 것처럼 희뿌연 공간이 흐릿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퉁-
퉁-
선수에서 뭔가 살짝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마루야 앞에 가봐. 뭔가 배 앞에 있다.”
“어야.”
마루가 아재칼을 들고 배의 앞부분으로 향했다.
“아- 씨발-”
마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잔해와 부유물들 그리고 그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시신들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
“······.”
기순과 김 양도 그 광경에 말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