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72
얼어붙은 사람에게 무심하게 걸어가는 사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어가는데 3명은 도망치지도 달려들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한 명이 ‘바보’라고 욕했다. 다른 사람들 몇도 동의하듯 ‘빠가’ 새끼들이라며 비웃었다. 1:3인데 뭘 저렇게 얼어있는지, 그걸 거면 왜 덤비나?
더 황당한 건, 슬슬 다가간 남자가 그냥 푹-푹-푹- 세 번 하니까, 세 사람이 그냥 편안하게 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칼질 좀 해봤지만, 대체로 칼로 찌르고 칼에 찔리면 악- 비명을 지르고 어떻게든 칼을 막으려고 발버둥 치고, 살겠다고 버둥거리고, 여기저기 사방으로 피칠하고 그러는 게 정상 아닌가? 한 방이라도 더 찌르려고 하고, 어떡하든 피하려고 하고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야. 저거 봤냐?”
“빠가들이 손에 손잡고 바닥에 드러눕는 거?”
“그래. 쟤들 그냥 초짜 아니야?”
“하는 짓 보니까 초짜네, 그냥 눈이 돌아가서 한탕 하겠다고 그러니까 저렇지.”
“캐리어에 현금 확실하지?”
“야 몇 번을 말해, 저 새끼 저거 현찰로 박치기하고 다녔다니까.”
“야쿠자는 아니겠지?”
“왜 야쿠자면 쫄리냐?”
“쫄리긴. 웃기지 말고.”
“그래서 뭐? 야쿠자는 배에 철판 둘렀냐?”
“잘만 들어가던데. 푹해서 휙 돌리니까 질질 짜면서 ‘그만해 주세요.’ 애원하더라.”
“야쿠자고 야쿠소고 우리가 묻은 애들 가운데 야쿠자가 한둘이냐?”
“그래. 야쿠자 별거 없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찔렀지.”
“맞아. 경찰도 무서워서 나오지 않고 있는데 뭔 야쿠자.”
“야쿠자면 좋지. 총도 있을 거 아니야.”
“나도 총 갖고 싶다고. 총.”
“어? 쟤들 총 있었는데?”
꽃무늬 칼을 든 사내가 드러누운 애들에게서 무기를 챙기는 것 같았다.
“총? 총 빈 총이겠지. 총알 있었으면 왜 안 쐈데?”
제법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던 여러 명이 숙덕였다. 뭔가 이상하게 흥분한 목소리. 눈이 살짝 풀린 사람들이었다.
“야- 총 있으면 쪼냐?”
“웃기지 마.”
“바보냐?”
“개소리 말고 어서. 줘. 어서.”
리더로 보이는 놈이 주머니에서 앰플 주사기를 꺼내 나눠줬다.
“다 찌르지 말고 반만, 알지? 반이다.”
“잔소리 그만하고, 줘!”
서로 앞다퉈 뺏듯이 챙긴 앰플 주사. 팔뚝 혈관에 대충 꽂아 넣는 사람들.
흐이하우하오가
유하오울오바다
쿠해소우쿠유소
몇 명은 그냥 눈이 돌아가 버렸다.
“빠가! 이 쪼다 새끼들이.”
리더의 욕설을 가뿐하게 씹고, 쿠헤훠에헤헤 웃으며 멀찍이 떨어진 마루를 노려보는 약쟁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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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대충 기분이 좀 더러웠다.
이건 야쿠자나 그런 것도 아니고 양아치라고 해야 하나?
그냥 양아치라고 하기엔 너무 나간 것 같고, 어디서 총을 털었는지 38구경을 자랑하지 않나? 영화를 많이 봤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허리춤에 찬 총만 보여줘도 알아서 설설 기었나? 총은 어떻게 구했지? 경찰을 조진 건가? 그럼 일본 경찰은 이런 사람한테 총을 뺏긴 거?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었다.
‘아- 씨발. 좋게 편하게 가자고 했더니.’
다들 사이좋게 편안한 자세로 보내 버렸다.
마루는 한숨처럼 탄식을 내뱉고 수륙양용차에 앉았다. 이런 인간들이 총칼 들고 설치는데 경찰이든 자위대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이 지역의 치안은 사실상 무너진 것 같았다.
마을 단위로 자경대가 조직됐다던 소리가 벌써 3~4일 전 뉴스에 나왔었다. 작은 마을이야 서로서로 아는 사이고 중노년층이 다수일 테니, ‘뭉쳐서 치안 유지하자, 외지인들이 지랄하면 때려잡자.’라는 분위기가 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제법 큰 항만 도시인데 벌써 이렇게 막장인 사람들이 설치다니.’
주유소가 털리지 않은 게 신기했다. 아니, 다행이라고 할까? 이런 분위기면 며칠 안으로 주유소건 요트건 뭐건 다 털고 다니는 분위기가 될 게 뻔했다.
쯧-
직접적인 화산 피해도 없었고, 지진도 터지지 않은 시코쿠인데 이 정도였다. 그럼 대지진에, 태풍까지 겹친 도쿄와 그 인근은 그냥 답이 없다고 봐야 했다.
‘순리대로 해야지 뭐 어쩌겠어.’
평화롭게 순리대로. 마루는 음- 고개를 끄덕이며 시동을 걸었다.
부두두두-둥- 두둥- 두두둥-
어쩐지 가슴이 웅장해지는 소리와 함께 수륙양용차량이 8바퀴를 일제히 굴렸다. 마루는 카타마란이 정박하고 있는 항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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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강 산책로를 따라 두둥두둥 달리는 수륙양용차.
산책로는 텅 비어 있었다. 몇 군데 들리지 않았는데 벌써 해가 기웃기웃 기울고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산책로와 이어진 골목 사이에서 괴상한 소리와 함께 마구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붓고로쇠테세
거기훠서어라
야로호키레키
마루의 표정에 금이 갔다.
로얄 마리나에서 봤던 약쟁이들? 이게 왜 여깄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구 달려오는 것들을 자세히 보니 눈이 빨갛지 않았다.
“사쿠라가 아니네?”
빨간 사쿠라가 아니었다. 호텔 샬롯은 아니라는 소리.
그럼 짝퉁인가? 그러한가? 약도 짝퉁이 있던가?
“아니, 뭐가 이렇게 풍년이지?”
지랄이 풍년이네.
크흐흐흐흑
혼자 웃던 마루가 액셀을 당겼다.
그냥 차도 아니고 수륙양용을 타고 있는데 굳이 엮일 필요가?
입에 반쯤 거품을 물면서 뛰어오는 약쟁이들을 뒤로하고 그대로 강변 산책로에서, 강으로 점프해 버리는 마루였다.
풍덩
첨벙
쿠오소고로쉐
붓붓쳐해ㄴ썹
약쟁이들 몇이 달리던 그대로 뛰어들곤 허우적거렸다.
두우우우웅-
뛰고, 허우적거리고, 가라앉고, 침 흘리는 것들을 뒤로한 채, 유유히 강을 따라 내려가는 마루였다.
‘좋게. 평화롭게. 순리대로.’
음- 찝찝했던 기분이 좀 풀린 마루였다.
그렇게 강을 따라 내려가자, 멀리 항만 근처에 정박하고 있는 카타마란이 보였다.
근데. 저긴 왜 또?
작은 고무보트들이 사탕에 달라붙은 개미처럼 카타마란을 둘러싸고 있었다.
“올해 진짜 풍년이네.”
부우우두두둥-
마루는 액셀을 끝까지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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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살롯 그룹 본사.
심은규는 심기가 불편했다.
부산과 큐슈는 거리상으로 가까웠다.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부산 샬롯의 영향력이 큐슈에 뿌리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본사에서는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큐슈 지역을 공략했다.
일본에 대지진이 터지고, 본사는 한국의 영주권을 미끼로 큐슈의 유력자들을 중심으로 야쿠자들까지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부산 심은영의 뒤통수를 칠 작업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후 일본에 있는 심은영의 세력이 흔들린다는 소문을 풀었다. 당연히 그년은 일본으로 가서 세력을 다잡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부산이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서로 깎아 먹기 체력 싸움으로 가면 덩치 큰 서울 본사가 이기는 건 확정적이었다. 그러니 그년에게 있어 일본 세력은 본사와 싸울 때 꼭 필요한 세력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뭐야? 놓쳤다고?”
큐슈 7관구 해상보안청 고속 순시선까지 수배해서 잡는다고 하더니, 소식이 없었다. 그럼 놓친 거 아닌가?
“아닙니다. 수배한 순시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7관구 해상보안청에서 순시선 2척을 추가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년이 타고 간 게 카타마란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걸로 고속 순시선을 침몰시켜? 정말 상식을 초월한 년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그 월드 그룹도 발랐겠지. 그래도 해상보안청 배를 침몰시켰으니 그쪽에서 움직이는 게 당연했다.
“그쪽에서 알아서 손을 썼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심은규가 계속하라고 턱짓했다.
“큐슈의 화산프론트대에 있는 화산들이 전부 분화해서 상황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전향한 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건 곤란했다. 이번 일로 그년도 큐슈 세력 일부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배신자를 찾으려고 하겠지, 설마 큐슈 지역 전부가 배신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면 그년의 뒤통수를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전부 한국으로 넘어오면 소는 누가 키우나?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가?”
“미세한 화산재가 너무 짙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정도라고 합니다. 공기청정기를 돌려봐야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필터를 교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일반 마스크로는 턱도 없었다. 방독면도 마찬가지,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산소마스크 정도가 대안인데 그게 넉넉할 리가.
“화산재도 문제지만, 변형 코로나도 극성입니다.”
계속해서 변이를 일으켜 백신이 듣느니 마느니 하는 판국이었다. 지금도 극성인데 더 극성이라고? 심은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일본에서 변이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환자의 폐와 뇌를 중점적으로 공격한다고 합니다. 뇌에 바이러스가 들어가면 성격이 단순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래서 일본에서 소요사태가 계속 번지고 있고 치안이 무너졌다는 소문이 도는 건가?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폐 섬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극심한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화산재로 인한 호흡 곤란에 코로나로 인한 호흡 곤란이 겹쳐, 질식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상황입니다.”
쯧- 상황이 그렇다면 무작정 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차하면 다시 심은영에게 붙을 놈들이니까. 살 구멍은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건데.
“일단 가족들 가운데 일부가 넘어올 수 있도록 크루즈를 준비했고, 조직원들은 시코쿠로 보내 심은영 사장이 갈만한 길목을 잡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좋아. 잘했어!”
그래. 큐슈 북부에서 공격당했으니, 아마도 큐슈 남부를 돌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큐슈 남부에서 일본해상보안청과 엮여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겠지. 갈 수 있는 방향은 오키나와 아니면 시코쿠.
당연히 시코쿠로 갈 게 분명했다. 아니면 오사카로 가든지.
“오사카 쪽은 아직 연락되나?”
“예. 시코쿠, 고베, 오사카, 교토, 나고야까지는 연락됩니다. 그쪽 심 사장 세력도 계속 흔들고 있으니, 심 사장이 그쪽으로 간다면 행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심은규의 표정이 조금 느슨하게 풀렸다. 그래. 일본으로 간 게 네년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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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삐빅- 통신기가 울렸다. 이어서 들리는 김 양의 목소리.
[무장한 자들이 탄 고무보트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3층 콕핏에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던 김 양의 통신에 기순이 벌떡 일어났다. 이틀 넘게 야간 운항을 하느라 제대로 숙면하지 못했던 기순이었기에 죽을 맛이었다.
“어느 방향에서? 몇 명이나 되고?”
[이대로라면 포위됩니다. 이쪽에서 확인한 고무보트의 숫자는 13척, 한 척에 4~5명씩 타고 있습니다.]
존나, 이건 또 뭔.
[쏩니까?]
“야- 잠깐. 확실히 우리한테 오는 거야?”
[···근처에 정박한 배는 이 배 하나입니다.]
씨발.
숫자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이쪽은 꼴랑 2명인데 저쪽은 고무보트 하나에 4명으로 쳐도 50명이 넘었다.
“쏴- 난 바로 엔진 시동 걸고 빠질 테니까.”
[마루 씨는 괜찮겠습니까?]
“수륙양용 타고 나갔으니까 괜찮아. 달라붙지 못하게 거칠게 움직인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마루가 기름부터 챙겨줘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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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에 들어온 적.
방탄복도 입지 않고 있었다.
들고 있는 베레타엔 소음기도 없었고.
김 양은 가늘고 작게 호흡했다.
항만이라 파도가 잔잔했다. 카타마란의 엔진이 꿈틀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고무보트가 물결을 타고 살짝 떠오르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가벼운 반동이 김 양의 몸을 흔들었다.
고무보트에 타고 있던 4명 가운데 2명이 나란히 파도에 빠졌다. 모터를 움직여 조종하던 놈이 죽자, 고무보트가 방향을 잃고 휘청였다. 완전히 끝장을 보고 싶지만, 저거 잡겠다고 하다가는 다른 놈이 붙게 생겼다.
바렛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바렛으로 머리통이든 모터든 날려 버리면 끝인데, 김 양은 묵직한 바렛의 손맛이 그리웠다. 하지만 바렛은 총알이 얼마 남지 않아 아껴야 했다.
선두로 나오는 고무보트들을 쏘자, 일직선으로 내달리던 고무보트들이 갈지자 모양으로 방향을 틀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훗-
김 양은 가소롭다는 미소와 함께, 7.62mm 반자동 저격총의 방아쇠를 아낌없이 당겨댔다.
투다다닥
타닥타탁
다시 한 척이 회까닥 뒤집혔다.
‘다음.’
스코프가 다른 사냥감을 찾는데,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유탄발사기?”
설마? 김 양은 화들짝 놀라. 유탄발사기를 든 놈을 쐈다.
풍덩-
유탄발사기를 든 놈이 바다로 떨어졌다.
작게 안심하며 스코프를 본 김 양의 동공이 커졌다.
유탄발사기를 든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퉁- 퉁- 퉁-
세 곳에서 날아오는 유탄, 시간이 느릿하게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탄식이 끝나기도 전에, 유탄이 갑판 위로 떨어졌다. 김 양은 머리를 숙여 폭발에 대비했다.
툭- 툭- 투툭-
퓌시시시식!
유탄에서 최루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요트 갑판이 최루가스로 뿌옇게 변했다.
조종실에 있던 기순은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최루탄 연기를 보며 도배를 하기 시작했다. 마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씨발.
김 양이 유탄발사기로 착각한 최루탄 발사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