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73
매콤한 연기? 최루탄이다.
김 양은 바로 산소마스크를 꼈다. 등에 멘 산소통이 묵직했다.
몇 척이나 잡았지?
4척.
그 가운데 2척은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했다.
뭉게뭉게 최루가스가 연막탄처럼 짙은 연기를 뿜어냈다.
퉁-퉁-퉁-
최루탄 발사기에서 계속 최루탄이 갑판 위로 떨어졌다.
그 뿌연 연기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고무보트를 향해, 김 양은 반자동으로 갈겨댔다. 총알을 아껴야 하는데, 아낄 상황도 심정도 아니었다.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 살짝 가빠지는 호흡.
어깨에서 느껴지는 반동만이 현실감을 잡고 흔들 뿐이었다.
투두탁
투두둑
틱!
철컥-
잔탄 수를 확인하고 쐈었는데, 어느새 잊었다. 빈 공이가 때리는 소리가 나서야 반사적으로 탄창을 갈았다. 고무보트에 탄 사람을 조준했던 것이, 지금은 사람이고 고무보트고 보이면 쏘는 것으로 변했다. 고무보트를 쏴봐야, 공기가 빠지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까 조준해서 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서서히 과거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출렁-
카타마란이 낚시에 걸린 참치처럼 요동쳤다.
출렁-
항만에서 밖으로 움직이는 요트가 좌우로 몸을 흔들어댔다.
출렁이던 반동이 덜컹거리는 트럭으로 변했다.
‘이거 꼭 차고 있어. 엄마 꼭 잡고. 만약 엄마랑 떨어지면 이걸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가느다란 실반지를 목에 걸어줬다.
덜컹-
투다다닥-
총소리.
덜컹거리던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바퀴벌레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어디선가 밀려오는 안개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비명과 애원하는 소리. 총소리와 구타하는 소리, 그 소리 사이로 질퍽한 강변의 물 냄새가 비릿한 피 냄새로 변했다.
어디로 달렸을까? 어떻게 달렸을까? 하얗게 앞을 가로막는 장벽 앞. 엄마는 없었다.
투투툭-
그림자가 쓰러졌다.
타타탁
그림자가 뒤로 넘어갔다.
뭔가 고함지르는 그림자들이 하나씩 위로 올라온다. 위로 올라왔다. 이쪽으로 온다.
틱!
틱!
철컥-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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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은 위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듣고 식겁했다.
저격총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김 양이 들고 올라간 탄창이 10발들이 탄창으로 10개에서 11개 사이였다. 그러니까 총알 숫자로 생각하면 100발에서 많아야 110발 안짝이었다.
적들의 숫자는 50명 왔다 갔다. 그러니까 적 한 명당 2발꼴로 잡는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김 양의 상태가 정상이라면 원 샷, 원 킬이 가능할 테니까. 근데 아니었다.
‘미치겠네. 그냥 눈이 돌아갔나 본데?’
그래도 본능적으로 끊어서 쏘기는 하는지 3발 혹은 2발씩 쏘기는 했지만, 3~4번 쏘고 탄창 하나 갈고 있었다.
아아아아
이대로라면 끝장이었다. 어쩌지?
기순은 카타마란을 좌우로 흔들었다. 쌍동선이라서 그런지 일반 요트였다면 크게 휘청였을 것이, 덜 휘청거렸다. 안정적인 항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반대로 작용했다.
씨발.
입고 있는 방탄복 위에 방탄복을 하나 더 껴입은 기순이 산소마스크를 썼다. 아, 산소통! 산소통까지 메곤, 잊지 않고 방탄 헬멧을 썼다.
돕겠다고 나가는 건 아니었다. 분명히 오발 각이었다. 눈이 돌아갔으니, 조종실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무전기로 떠들어대면 김 양의 위치가 노출되니 그것도 아니었고.
결국, 조종실은 자신이 지켜야 할 판이었다.
“그래. 드루와. 드루와.”
조종석 의자와 옆에 있는 의자들에도 방탄복을 덮어씌운 기순이 출입문을 향해 9mm 기관단총의 총구를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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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닥
타닥
풍덩!
뭐라고 고함지르는 그림자들을 향해 김 양은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버려!
자욱하게 안개 낀 강변에서 도망쳐 무턱대고 산으로 계속 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만난 약초꾼 할아버지. 도움을 받았다. 선의라는 게 있구나 싶었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모아둔 약초를 판다고 같이 내려가자고 했었다. 근처 도시에 가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약초꾼 할아버지가 데려간 곳은···.
선의는 없었다. 그래 선의는 없다.
도망쳤다.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대로변과 달리 도시의 골목은 좁고, 더럽고, 어둡고, 냄새났다. 팔뚝만 한 쥐들이 빼꼼히 쳐다봤다.
며칠이 지났을까? 쥐를 잡아먹었다. 잡기 힘들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먹은 건 별거 없는데 배가 이상하게 불편했다. 엄마를 찾겠다고 골목 밖에서 돌아다녔다가 끌려갈 뻔한 뒤로 골목의 복잡함과 어둠만이 쉼터가 됐다.
깜깜한 골목 안쪽에서 밝은 도로를 보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목에 건 실반지를 꼭 움켜쥐었다. 팔 수 없어. 이걸 팔면 엄마를 다시는 보지 못할 거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가끔은 쥐를 잡고 또 가끔은 취객의 지갑을 털었다. 취객은 어디론가 금방 사라졌다. 공안이 골목을 뒤지고, 숨고, 옥상에 오르고 지붕 틈에서 지내길 얼마나 지났을까? 날짜를 세는 것도 잊었다. 그저 낮에는 밝은 대로변을 보며, 혹시라도 하는 희망뿐이었다.
기적이란 게 있는 건가?
어두운 골목길 바깥, 바싹 마른 중년 여자가 우두커니 걷고 있었다. 야위었지만, 알 수 있었다. 깊게 번들거리는 눈빛이 낯설었지만, 확실히 맞다. 엄마였다.
“엄마!”
어둠을 박차고 밝은 대로를 향해, 엄마를 향해 뛰었다.
어른들이 말하던 하늘이란 게 어쩌면 있었다. 그래 그래서 엄마와 만날 수 있었다.
다다닥
발걸음이 가벼웠다. 무거웠던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엄마가 앞에 있었다.
콱!
포근한 포옹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코 놓칠 수 없다는 것 같은 그 아픈 포옹이 더 가슴을 울렸다.
엉엉 울었다.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바싹 말라 갈고리 같은 엄마의 손이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괜찮아요.’, ‘다친 곳 없어요.’ 말을 하고 싶지만, 울음만 나왔다. 엄마라는 말만 나왔다.
그렇게 몸 구석구석을 살피던 손이 목덜미를 향했다.
툭!
바싹 마른 손이 목에 걸려있던 실반지 목걸이를 끊어갔다.
?
꽈악!
팔뚝을 붙잡은 손.
앙상한 손가락이 팔뚝을 파고들었다.
질질.
“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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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탁
다다닥
털썩
갑판 위로 올라오는 그림자들. 얼굴에 방독면을 쓴 놈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안개에 먹혔다.
그래 엄마는 안개에 먹혀 버린 거였다.
안갯속 그림자에게 잡혀간 엄마는······.
타다닥
철컥!
틱-
탄창을 갈기 위해 반사적으로 앞을 더듬던 손이 갈 곳을 잃었다. 없다. 탄창이.
김 양은 바로 발터 P22를 뽑았다. 최루탄 연막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툭! 툭!
무릎 어림에 두 발.
방독면을 쓴 남자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퉁! 퉁!
머리에 두 발.
계단을 밟고 올라왔다가, 엉거주춤 쓰러지는 것을 발로 찼다.
꽈득. 퍽 소리를 내며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시체가 뒤따르던 사람과 엉켰다.
갑판으로 올라온 한 사람이 총구를 돌렸다. 김 양은 고개를 팍 숙이곤 방아쇠를 당겼다.
툭! 퉁! 툭!
다리. 머리. 가슴.
방금 엉켜 쓰러져서 일어나겠다고 시체를 밀어내고 있는 사람의 머리에 두 방.
툭! 툭!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틱- 본능적으로 탄창을 갈았다. 약실에 1발. 탄창을 갈았으니 10발, 합해서 11발.
산소마스크가 갑갑했다.
등에 짊어진 산소통이 과거처럼 묵직했다.
최루탄에서 뿜어지는 연기는 오늘처럼 더러웠다. 그러니까 죽어. 죽어버려. 다 죽어.
툭! 툭! 퉁!
머리. 머리. 머리.
뒤에서 느껴지는 감각. 김 양의 멍하게 풀린 눈동자가 뒤를 향했다.
칼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오던 남자가 발각됐다는 걸 알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죽어어어어!”
퉁!
발등에 총알이 박히자 ‘악.’하고 주저앉은 남자.
눈앞에 겨눠진 총구에 두 팔을 들기도 전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옆에 숨어있던 사내가 풀 스윙으로 일본도를 휘둘렀다.
김 양은 당연하다는 듯 오른손을 내밀었다.
칵!
오른팔 깁스를 내밀어 칼을 막고, 왼손에 든 발터 P22로 사내의 배와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팍- 투명한 산소마스크 전면에 핏방울이 튀었다가 흘러내렸다.
“빨리 올라와! 빨리 와서. 저년 죽여. 죽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남자를 김 양이 풀린 눈동자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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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박! 팍!
의자에 씌워 놓은 방탄복에 총탄이 틀어박혔다.
“씨발. 드루와. 문 앞에서 깔짝거리지 말고 드루와 새끼들아.”
다다다다닥!
소음기 달린 기관단총이 낮게 불을 뿜었다. 문밖에 놈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위가 잠잠한 걸 보니, 저격총 탄창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김 양은 알아서 할 테니까 여기가 문제였다. 이거 총알 떨어져 탄창 갈려고 하면, 그때를 노려서 달려들 각인데.
‘존나. 내가 병신이냐?’
기순은 계속 총알을 쏟아냈다.
타타타탁 총알을 뱉어내던 기관단총이 틱-하고 입을 다물었다. 쏟아지던 총알이 멈추자마자 문 뒤에 숨어있던 놈들이 ‘와하핫 너 죽었어.’ 하며 달려들었다.
기순은 옆에 장전해 뒀던 기관단총을 겨누며 겨 들어온 애들을 반겼다.
“그래. 어서 와.”
타다다다닥!
두 놈이 벌집이 됐다. 기순이 크게 소리 질렀다.
“드루와. 새끼들아 드루와!”
타다닥! 타다닥!
한 손으로 기관단총을 끊어 쏘면서, 총알 떨어진 기관단총의 탄창을 한 손으로 갈아끼는 기순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2자루만 깔아 놓는 게 아니라 한 4~5자루 깔아 놓을 걸 그랬다.
“오라니까? 왜 쫄리냐?”
기순의 고함에 화답이라도 하듯 클립 튀는 소리가 들렸다.
팅!
데구르르르.
어? 그게 들어오라는 건 아닌데?
동그란 게 굴러온다.
조종실 날아가고 안녕 엔딩?
그건 반사적이었다. 기순이 방탄복을 겹쳐 씌워 놓은 의자를 굴러오는 것 위에 엎어뜨렸다.
쾅!
의자가 산산조각이 났다.
방탄복을 겹쳐 씌웠던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수류탄 파편이 사방으로 튀지는 않았다. 한껏 웅크렸던 기순이 몸을 더듬었다. 사지 멀쩡했다. 조종석과 기계들도 멀쩡했다.
수류탄이 터진 것을 확인한 놈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죽다 산, 기순의 꼭지가 돌았다. 기순은 기관단총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소리 질렀다.
“다 죽었어! 씨발 새끼들아!”
투두두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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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이 제대로 쏘고 있는지 여러 척의 고무보트들이 무력화됐다. 그런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고무보트들.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달라붙은 고무보트를 떼어내려는 카타마란. 열심히 좌우로 흔들어 보지만, 고무보트들은 하이에나들이 들소에게 달라붙은 것처럼 악착같이 달라붙고 있었다.
매콤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마루의 후각을 자극했다. 최루탄이었다. 10발 넘게 쏘아진 최루탄이 짙은 연막을 피워 올렸다. 연기로 인해 시야가 차단됐는지, 김 양은 가까이 있는 고무보트만 쏘기 시작했다.
카타마란 갑판에 계속해서 떨어지는 최루탄. 연기에 휩싸인 카타마란은 마치 안갯속 유령선처럼 연기에 휩싸여 몸부림쳤다.
순간, 수륙양용차량을 운전하는 마루는 살기를 느꼈다. 어둡고 끈적한 살기, 생명이 꺼져가는 허무, 죽이겠다는 살의가 뒤섞이고 있었다.
쿵!
카타마란 안쪽에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다!
소음기로 억눌린 총성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총성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루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 속도로 가다간, 어떻게 될지 몰랐다. 액셀을 최대한으로 당겼는데도 물 위에서의 속력이 너무 느렸다. 아무리 짐을 싣고 있다지만, 시속 5km 언저리라니.
뒤에서 들리는 모터 소리에 마루가 고개를 돌렸다. 고무보트와 낚싯배들이 카타마란이 요동치는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보였다.
후-
막아야 했다. 저것들까지 간다면 기순이든 김 양이든 위험했다. 어쩌지? 수륙양용차량의 속도로는 모터보트든 낚싯배든 쫓아가기 요원했다.
방법이 없어 갑갑했던 찰나, 탑승한 사람을 잃고 표류하는 모터보트가 마루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