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74화 (74/280)

러스트 [RUST]-74

마루는 둥둥 흔들리고 있는 보트를 확인했다.

총탄에 맞은 자국이 있었지만, 딱히 바람이 빠지거나 크게 고장 난 것 같지 않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보트였다. 일반적인 모터보트에 고무보트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양? 어쨌든 보트에 달린 모터도 멀쩡해 보였다.

마루는 수륙양용차량의 손잡이를 로프와 테이프로 묶어 방향을 고정했다. 카타마란이 요동치는 방향으로 잡고, 자동운행이라고 쳤다. 두두둥- 낮은 소리와 함께 5km 정도의 속도로 전진하는 수륙양용차량. 마루는 풀쩍 모터보트로 옮겨 탔다.

후-

약간의 불안감. 있는 거라곤 사시미 하나, 중식도 하나. 김 양이 챙겨줬던 45구경 글록 41이 두 자루, 탄창은 6개. 산소마스크도 있었지만, 그걸 차면 둔해졌다. 총알이든 칼이든 본능을 이용해 작게 스치듯 피하는데 산소통에 맞으면 그것도 참사였다. 그래서 달랑 방탄복과 방탄 마스크, 방탄 마스크 안쪽에 끼는 방탄 고글만 챙겼다.

보트에 달린 모터가 높을 소리를 냈다.

위이이이잉

휙- 앞이 들리며 쏜살같이 전진하는 모터보트.

보트의 앞이 바다를 가를수록 이상했다. 뭔가 불안했다. 칼 때문일까? 그럴지도 몰랐다. 카타마란에 까진 최루탄 때문에 불안한가? 김 양이 맛이 가서 기순이까지 쏴버릴지 몰라서 불안한가? 김 양과 기순이가 달라붙은 놈들에게 당할까 불안한가?

존나.

뭔가 이상하게 찝찝하고 불안했다. 파도가 끈적이는 것 같았다. 바다가 딱딱했다가 물렁물렁해지는 느낌이었다. 저번에 일본 공항에서는 바닥이 푹신푹신 물컹한 느낌이 들더니, 이제는 바다가 지랄이었다. 물이 딱딱해지고 끈적이다가 물컹해진다니.

“조오오오온나!”

마루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막 카타마란으로 향하던 낚싯배와 보트들, 모터보트에 타고 있던 몇이 측면으로 돌격하는 마루의 모터보트를 발견하곤 방향을 틀었다.

그래 와라. 와라. 와.

지금은 어그로를 끌어야 했다. 불안감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다.

마루가 탄 보트가 조금 큰 낚싯배를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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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김 양을 관리했다.

총이 녹슬지 않게 관리하는 것처럼, 김 양은 말 그대로 관리가 필요한 회사의 자산이었다. 그랬기에 김 양은 살아갈 수 있었다. 김 양의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회사가 백업해주고 관리를 해줬기에.

그리고 지금 백업을 받지 못하고,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는 김 양은 타오르고 있었다. 가장 밝게 타오르는 초가 가장 빨리 꺼지는 법.

깁스한 오른팔이 아팠다. 진통제를 두 알이나 먹었는데.

세상은 아직도 안갯속이었다. 분명히 시간이 지났는데.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회사에서 백업은? 아- 회사는 이제 아니지.

김 양은 깁스한 오른팔로 방독면을 쓴 사내의 얼굴을 때리고 또 때렸다. 둔탁한 소음이 연기 속으로 내려앉았다. 얼굴에 들어간 충격 때문에 사내가 비틀거리는 순간, 김 양의 왼손에 들려 있던 총이 불을 뿜었다.

툭! 툭!

턱밑으로 한 방. 관자놀이에 한 방.

꿰맨 곳이 터졌는지 오른팔에서 핏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틱!

아- 잔탄을 잊었다. 발터 P22는 탄창 용량이 작았다. 글록 17이든 19든 17발은 들어갔는데, 발터 P22는 꼴랑 10발.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왼손 하나로 반동을 제어할 수 있는 총은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거기에 당장 소음기까지 완비한 총은 그것 하나였으니까.

연기 건너편이 소란스러웠다. 김 양은 그대로 몸을 웅크려 앉아 건너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선 무심한 툭 소리가 연달아 나왔다. 소란스러웠던 건너편이 잠잠해졌다.

몇 발을 쐈더라? 7발? 8발인가?

김 양은 앞이 약간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연막 때문이기도 했지만, 약간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뭔가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

최루탄의 연막 때문에 김 양의 의식은 과거로 갔다. 과거의 굶주림과 고통에 빠져 날뛰었지만, 그런 김 양을 현실로 불러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통증과 배고픔이었다.

머리가 멍했다. 척수반사 개구리처럼 팔이 움직였고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에 한 발 맞은 사내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살짝 빗겨 때린 22구경이 사내의 두개골을 뚫지 못했다.

죽어어엇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사내.

흐릿한 시야. 다시 반사적으로 휘둘러진 깁스한 오른팔. 카운터로 들어간 깁스한 주먹.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멍해졌던 정신이 다시 날카롭게 살아났다. 왼손가락이 방아쇠를 두 번 당겼고 이어서 빈 총이 됐다.

탄창을 갈아 끼우는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지금 갈면 탄창도 하나 남았다. 자욱한 연기 저편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살고 싶어.

살고 싶지만 살 수 있을까? 왜 살고 싶지?

어차피 부모가 팔아먹은 년이? 살아서 뭘 하고 싶었던 거지?

맛있는 거 먹고 싶다.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

그게 행복 아니었던가?

뚝. 뚝.

깁스한 오른팔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팔이 무거웠다. 두 팔 다 잘 올라가지 않았다.

김 양은 흐릿한 눈동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총알이 더 필요했다. 아래에 총알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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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욱- 후욱-

산소마스크 안쪽에 입김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기순은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반 요트보다 넓긴 했지만, 그래 봐야 조타실이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꼭지가 돌아 버서커 빙의를 잠깐 했지만, 버서커는 근딜 아니었던가? 원딜이 버서커 켜고 달려들면 죽여달라고 하는 거 아니었나?

‘진짜 죽겠네. 씨발. 그냥 자리나 지키고 싶었는데.’

안에 있다가 또 수류탄이 까진다면? 만약 방금처럼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다른 의자들은 전부 고정식이었다. 달랑 하나만 이동 가능한 의자였는데, 그걸 수류탄 막는 데 썼으니 다음은 없었다.

좋든 싫든 밖으로 나가서 조종실로 오는 놈들과 싸워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꼭지가 돈 김에 밖으로 나가 발광을 한 뒤로 적들이 잠잠했다. 적들이 공격하지 않자, 오히려 기운이 빠진 기순이었다.

몇 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호흡이 가빠지고 9mm 기관단총을 쥔 손이 떨려왔다.

‘씨발. 씨발! 씨발!! 괜찮다. 난 괜찮아! 괜찮다고. 존나 김기순, 수전증 걸렸냐? 왜 떠는데? 병신플하려고? 멈춰라. 떨지 말라고!’

기순은 거칠어지는 호흡을 악다물며 버텼다. 달달 떨리기 시작하는 팔을 팍팍 때려가며 총을 고쳐잡았다.

파도를 가르는 소리, 바람이 좀 강해졌는지 카타마란을 휘감고 있던 최루탄 연막이 제법 옅어졌다. 시야가 조금이나마 트였다. 그렇게 열린 시야 사이로 김 양이 보였다.

어딘가 멍한 김 양. 가끔 보여주는 멍함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휘청휘청. 그러다 다시 잠깐 멀쩡해졌다가 다시 휘청휘청. 저러다 난간 밖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해 보였다.

‘이리 끌고 와야 하나?’

아니. 데려온다고 근처에 갔다가 오인 사격받을 수 있었다. 기순은 이쪽으로 오라고 소리를 지를까 하다 입을 다물었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김 양의 앞에 놈들이 달려들었다. 칼과 도끼를 든 두 사람이 김 양을 향해 냅다 뛰었다. 방탄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얼굴을 가리고 김 양을 향해 뛰는 두 사람.

김 양은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두 사람의 센터에 총알을 박아 넣더니, 머리에도 꼼꼼하게 때려 넣어 확인 사살을 했다. 기순은 방탄복이 방호하는 곳을 피해, 무심하게 사내들의 센터에 총알을 박아 넣는 김 양의 모습에 부르지 않고, 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구석에 쭈그려 있는 기순의 눈에 3층 콕핏에서 살짝 삐져나온 총구가 보였다.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것처럼 총구가 휙휙 움직이더니, 김 양이 움직이는 쪽으로 방향이 고정되기 시작했다. 김 양은 비척비척 걸어 기순이 있는 곳까지 몇 걸음 남지 않은 상황.

방탄 헬멧도 쓰지 않은 김 양이었다. 방탄복은 챙겨 입었겠지? 입으라고 했었는데? 맛이 갔으니까 반사적으로 날 쏘겠지? 생각과 달리 기순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김 양. 엎드려!”

기순은 버럭 소리 지르곤, 벌떡 일어나 김 양을 향해 뛰었다.

잠깐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순간 턱하고 머리가 울렸다. 방탄 헬멧을 타고 느껴지는 충격. 기순은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더 걸었다. 묵직한 충격이 배꼽 아래를 때렸다.

22구경은 새총이라고 토끼나 새 잡을 때 쓰는 거라던 외국 뉴투버가 떠올랐다. 지랄. 22구경이고 38구경이고 근거리에서 처맞으면 뒈지는 건 마찬가지라는 게 진리였다.

김 양을 덥석 끌어안으려고 하자 고개가 휙 돌았다. 뭔가 좀 두꺼운 뿅망치로 맞은 느낌? 다시 휙 돌았다. 힘 빠진 주먹질이 기순이 쓴 산소마스크 위로 반복됐다. 투명한 마스크 위로 핏방울이 튀었다. 김 양의 깁스한 오른팔에서 튀는 핏방울이었다.

기순은 무시하고 김 양을 자빠트려 끌어안았다.

동시에 뒷머리부터 어깨까지 이어지는 무거운 충격.

안 죽었다. 살았어.

방탄복 두 겹으로 껴입길 잘했다.

잊지 않고 방탄 헬멧 쓰길 잘했다.

이어지는 총소리.

뻐근하다 못해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

티팅!

그리고 뭔가 금속을 때린 듯한 소리

?

!!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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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쩍 뛰어오른 마루가 공중에서 내려꽂혔다.

5명이 타고 있던 작은 낚싯배의 선두가 쿨렁 물속에 잠겼다가 튀어 올랐다. 앞뒤로 요동치는 낚싯배. 2명이 배 밖으로 튕겨 나갔고, 둘은 뒤엉켜 난간을 붙잡고 늘어졌다.

척- 양손에 뽑아 든, 45구경 글록 41. 2개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마루는 얼굴을 구겼다. 총소리가 너무 컸다. 고막이 얼얼한 느낌. 김 양이 쓰던 아기자기한 발터 P22 소음기 달린 건 작게 퉁-하는 소리만 났었는데···.

반동으로 선수가 튀어 오른 낚싯배 조종석에 조타를 붙잡고 늘어진 한 명까지 마무리. 마루는 그대로 작은 낚싯배의 선수에서 선미로 내달렸다.

하체 근육들이 힘을 받아 꿈틀거렸다. 대퇴직근, 외측광근, 중간과근, 비복근, 전경골근··· 그 모든 하체 근육들이 마루가 달릴 때마다 팽창하고 수축했다.

마루의 점프에 낚싯배 후미가 바닷속으로 풍덩 처박혔다.

높이 뛰어오른 마루가 공중에서 아래에 있는 모터보트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타고 있던 자들은 마루의 점프에 놀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총을 맞았다.

콱!

가까이 있던 모터보트에 망치가 떨어지듯 착지하자, 그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중간 부분이 꺾이는 모터보트. 마루는 보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 다시 벅차올랐다. 살짝 꺾였던 보트 중간이 완전히 부러져 버렸다. 이어 조금 큰 배로 뛰어든 마루가 버벅거리는 적들에게 총알을 먹였다.

“저··· 저···”

“어? 어? 엇!”

“정신 차려!”

“뭐 하고 있는 거야! 쏴!”

순식간에 배 3척이 털린 뒤에야 정신을 차린 듯 마루를 향해 총을 쏴대는 자들이었다.

틱!

틱!

순식간에 비워진 탄창. 이래서 총이 싫다니까.

마루는 글록 41을 홀스터에 꽂고 사시미와 중식도를 뽑아 들었다. 마루가 탄 중형 보트를 향해 작은 모터보트들과 고무보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좋아 어그로를 끌었어.

마루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상태를 점검했다.

보트에서 보트로 옮겨 뛰는 게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 높고 멀게 단번에 뛰어야 했기 때문일까? 고작 3척 처리했는데 이렇다면···. 다 처리하려면 여력을 남기기 어려웠다.

중화제 꽂자. 그래 꽂자.

지금 중요한 건 오버히트 관리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필사적으로 좌우로 움직이던 카타마란이 어느새 좌우의 요동을 멈춘 채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간간이 터지는 총소리가 기순과 김 양이 살아있음을 토로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조금만 더.’

콰직!

중형 보트 갑판이 부서지며 발자국이 새겨졌다. 동시에 마루의 몸이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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