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85
수술실.
의료진들은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출입 금지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하고 들어온 그 사람.
‘사람인지 오니인지 모르겠다.’라면서 개념 없이 울던 간호사가 잠시 조용한 면담 후 ‘무조건 잘할 수 있다. 제발 수술실에서 내보내지 말아 달라.’며 애원하는 모습에 다들 집중력 최고인 상태였다.
[환자는 내출혈 소견이 있고···.]
[우완 상완부, 척골동맥과 요골동맥, 원형내회근 부분이···.]
커다란 모니터에 CT와 MRI, 엑스레이 사진이 떠올랐다. 이런 방식과 저런 순서로 수술한다는 걸 스태프들에게 반복 숙지시킨 집도의 두 사람이 동시에 수술에 들어갔다. 내출혈과 오른팔 파편 제거 수술을 동시에 시작한 것이다.
마루는 핑크빛 약을 주사기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여차하면 위급한 곳에 바늘로 꽂아 직접 투여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크고 작은 파편 때문에 엉망이 된 기순의 오른팔이 세세하게 해체돼 파편이 제거됐다. 중간에 혈관을 건드려 잠깐 공기가 싸늘해졌던 것을 제외하면 고난도의 수술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릿빠릿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복부, 내출혈 부분이었다. 열어보니 CT와 MRI로 검사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 충격으로 인해 내장이 엉망이 된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진통제와 항생제로 급성 감염을 막고 있었지만,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진행될 것이 의심되는 상황.
집도의는 잠시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멈칫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들자, 마루의 길게 휘어진 눈꼬리가 보였다. 환자가 잘못되면 푹 쉬게 해준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마 영원히 쉬겠지.
[칙쇼.]
[?]
낮게 중얼거린 소리에 스텝들이 반응했다. 확실히 [욕] 나오는 상황이었다.
“순서대로, 소장 절제할 부분부터 시작하고. 간과 비장은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부분을 살리도록 하지···?”
중간에 마루가 난입했다.
“위험한 곳이 어딥니까?”
‘당신이 보면 아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아주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마루는 기순의 내장을 보며 뭔가 기분이 묘해졌다.
이게 친구의 뱃속이구나. 여기저기 시커멓네, 새끼. 이럴 줄 알았어요. 심지어 노랗게 지방 낀 거 보소. 내장 비만이었나?
까맣게 죽어가는 부위에 전부 약을 쓰면 약이 모자랄 것 같았다. 절제 후 봉합한 뒤, 봉합 부위에 써서 빨리 아물게 하는 게 효과 좋을 것 같았다.
“어서 수술하세요. 전 신경 쓰지 말고.”
순식간에 여기저기 뜯어내고 꿰매는 작업이 시작됐다. 친구의 몸으로 인체의 신비를 볼 줄이야. 봉합한 부분에 마루가 살짝 주사기를 댔다. 다들 ‘어쩌나.’, ‘어떡해.’ 하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마루는 태연하게 봉합한 곳에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부그르르르
약이 닿은 곳에 거품이 일면서 살이 꿈틀거렸다. 역시 직접 대는 게 직방이었다.
“봉합사 빼세요.”
“예? 예-”
집도의가 그 황당한 모습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봉합사를 빼자. 순식간에 구멍이 아물었다. 단 한 방울로 깨끗하게 붙어버린 내장.
“다른 쪽도 빨리하죠.”
“예? 예.”
집도의를 비롯한 스텝들의 눈이 마루가 들고 있는 주사기를 향했다. 공포도 잊었는지 이글거리는 눈동자들. 역시 인간이란. 마루의 눈매가 곱게 휘어졌다.
신경이 다쳐 병신이 될지 모른다던 오른팔도 신경 부위에 직접 한 방울 주입으로 끝냈다. 간과 비장도 마찬가지. 중요한 부분에 직접 주사하니 확실히 약이 많이 절약됐다.
그렇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핑크빛 약에 모든 의료진의 눈동자가 집중됐다. 바늘 끝에서 똑-하고 떨어지는 순간을 담으려는 필사적인 눈빛. 떡밥을 던져 버린 걸 알면 샬롯 사장은 어떤 표정이 될까? 어차피 일본은 박살 난 판국인데 이 사람들이 떠든다고 뭘.
어쩌겠나? 앞으로 갈 길은 멀고, 의료진은 있어야 할 거고. 매번 병원 찾아다니고 병원까지 오고 가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곳을 거점으로 둔다고 하더라도 그랬다. 일행에 간호사가 있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했다.
‘뭐 일이 커져도 상관없고.’
문제가 생긴다면, 다들 평안하게 순리대로 하면 될 일이었다.
[3번 수술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외과 미야자키 선생님, 3번 수술실 호출. 코드 블루입니다.]
주사기에 눈이 돌아갔던 의료진 가운데 한 사람이 방송을 듣더니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죠?”
“옆 3번 수술실에서 응급사태가 발생했다는 소립니다.”
어? 3번 수술실이면 경호원1인데.
“응급사태라고 하면?”
“코드 블루가 뜨면 생존율이 30~40% 이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진짜 죽을 줄도 모른다는 소리잖아. 약 가져가 놓고 경호원1이 죽으면 그것도 그랬다. 주사기에는 아직 약이 남아있었다. 마루도 미야자키라는 의사와 같이 옆 수술실로 갔다. 그리고 그 핑크빛 약이 코드 블루를 해제시켰다.
마루는 이왕에 일을 벌인 거, 수술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1번 수술실에도 들어가, 배랑 가슴을 찔린 간호사에게 두 방울을 썼다. 단 두 방울로 위급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상태로 변하자. 간호사를 수술하던 의료진들의 눈도 돌아갔다.
수술+약의 조합은 정말 미친 듯한 효율을 보여줬다. 싣고 온 중상자 3명도 거의 경상 수준으로 치료됐다. 그리고 거의 한두 방울 남았을 때, 마루는 김 양의 오른팔에 나머지를 썼다.
그렇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것처럼 마지막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의료진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샘플이! 마지막 한 방울이!’, ‘중상자를.’, ‘말기 암 환자 수술에.’ 소리 없는 절규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김 양의 표정은 뭐라고 할까? 좀 뾰로통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표정이었다. ‘이런 약이 있었으면 진작 쓰지, 뭐했습니까? 깁스만 했다 풀었다, 실로 꿰맸다 뺐다 하게.’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눈이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감사한 얼굴로 변했다.
“그래도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서 남겨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수술과 병행한다면 두 방울이면 치명상도 치료할 수 있었다. 그걸 오른팔 깁스 푸는 데 썼으니, 김 양의 걱정도 이해는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네 팔이 더 중요해.”
“예?”
“전투력이 중요하다고.”
“아··· 네.”
주사기 바늘에 남은 두 방울 언제 증발할지 몰랐다. 2mL도 아니고 두 방울이다. 여차하면 공기 중으로 날아갈 분량. 그거라도 샘플로 주면 연구하겠다고 여기 있을 것 아닌가? 따라와야 연구할 수 있다고 해야 낚을 것 아닌가? 어차피 바로 써야 할 것, 원거리 공격력이 확실한 김 양을 치료하는 게 맞았다.
핑크빛 약에 대한 소문은 병원을 강타했다. 약의 효과를 실제로 본 의료진의 숫자는 모두 15명. 보지 않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순간 재생 약을 믿지는 않더라도, 코드 블루가 해제될 정도로 뛰어난 약이 있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는 추세였다.
“그 약은 더 없습니까?”
“부디 샘플이라도 주십시오.”
“의학사에 길이 남을 발견입니다. 그걸 독점한다는 것은 죄악입니다.”
“어째서 급속치료제가 있다는 걸 숨긴 겁니까?”
“그런 약이 있다면 대량 생산해서 사람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류를 위해 공유해야 합니다!”
난리가 났지만, 진압은 간단했다. 스윽- 마루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자 다들 합죽이가 됐다.
“약 없어요. 다 썼습니다. 봤잖아요? 주사기에 담긴 약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쓴 거. 봤으면서 왜들 이래요? 시력에 문제가 생기셨나?”
“그리고, 약에 대해서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그런 약에 대해서 알게 생겼습니까? 그거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
휙휙- 요래조래 칼을 흔들자, 사람들의 눈동자가 칼을 쫓았다. 뭔가 말에 신빙성이 있었다. 그래 칼이 개연성이었다. 저 칼잡이가 의학에 대해서 뭘 알겠는가? 그럼. 칼 휘두르는 걸 봐. 아무것도 모를 거야.
“여기서 입 아프게 말해 봐야 의미도 없고요. 약을 구한 곳에 같이 갈 생각이 있으신 분은 알아서 자기소개서? 그런 거 적어서 주세요. 검토 후 딱 2~3분만 모십니다. 아셨죠?”
바글바글 몰려온 의료진은 금방 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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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악-
전신마취에서 깬 기순이 가래를 뱉었다. 가래가 끓어 죽을 맛이었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있지만, 큰 상처는 아문 상황. 약을 최소한으로 썼기 때문에 여기저기 잔 상처가 남았다. 기순은 배에 감긴 붕대를 보곤 신기해했다. 보통 개복 수술하면 이렇게 금방 아물지 못했다.
“아주 속이 시커멓더라. 그렇게 속이 썩었으니까 그 모양이지.”
마루가 이온 음료를 건네며 말했다.
“씨발.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할 말이냐?”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세상에 착한 척도 좀 작작 하고 살아라. 아주 속이 음험해요. 음험해. 곱창에 기름도 징글징글하고. 그러니까 속은 시커멓고 배때기에 기름 낀 부르주아였다는 거지. 아닌 척했으면서.”
“닥쳐. 콜록. 콜록. 아 죽겠네. 진짜.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뭘 어떻게 해, 계획대로 가는 거지. 근데 여기 상황 보니까, 확실히 망한 거 맞다.”
“그렇게 심각해?”
“존나. 아주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뭣보다 꺼림칙해.”
‘느낌이 좋지 않다니까.’ 통제실에서 봤던 광경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너랑 경호원 나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고, 도쿄 갔다 올 테니까 잘 지키고 있어.”
“니가 가면 나도 간다. 이거 몰라? 느낌이 좋지 않다면서? 같이 가야지.”
“같이 가긴 어딜 같이 가? 걍 좀 있어라. 그게 외상은 치료해 줘도,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까지 치료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얌전히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있어. 약도 얼마 없어서 아끼느라 위급한 부분만 썼다고 몇 번을 말하냐. 너도 그렇고 경호원도 일주일은 치료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일주일이면 육로로 도쿄를 왕복해도 두 번은 할 시간이었다. 기순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따라갔다가 덧나기라도 하면 그게 더 지랄 같았다.
“씨발. 그래. 있을 테니까 후딱 다녀와라.”
“사장 쪽 아저씨들이랑 무기 좀 두고 갈 테니까. 뭔 일 생기면 단호하게 해, 감염자들 인간이랍시고 통제할 수 있다, 치료제 나올 때까지 어쩐다고 하는 새끼들 생기면 걍 밖으로 던져버려. 지금 상황에서 감염자들 챙기다간 다 골로 간다.”
[코드 블랙. 코드 블랙.]
[1층 통제실 복도에 코드 블랙 상황 발생.]
[코드 그레이로 인한 코드 블랙입니다.]
기순이 미간을 찌푸렸다. 코드 블랙이라고 어디서 들었었는데.
“뭔 일이 터졌나 본데? 블랙이면 환자가 갑작스럽게 증가했다는 표시던가?”
“환자가 왜 갑자기 생겨? 코드 블루는 아까 들어서 알겠는데, 그레이는 뭔.”
상황이 개판인데도 자기들끼리만 알아먹는 코드 찾고 있는 걸 보니, ‘아주 징글징글하네 정말.’ 마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야, 뭔 일인지 가봐야겠다. 혹시 모르니까 문 잠가놓고 있어.”
“그래. 쿨럭. 조심하고.”
‘이거 좋게 좋게 가려고 했더니.’ 좋게 가면 안 되겠다. 마루는 대답 대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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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는 난리였다. 코드 찾고 비상 찾고 아주 호들갑이 그냥.
“김 양. 거기는 문제 있고?”
[치직- 일없습니다.]
확인해보니, 2층은 일없었다. 그럼 자신이 있는 3층도 별일 없었고, 김 양이 있는 2층도 별일 없는데, 1층에만 일이 생겼다?
“일단 그쪽에 있는 아저씨들이랑 바리케이드 확인하고, 보강할 부분 있으면 보강하고 있어. 문제 생기면 연락하고.”
[삐- 바리케이드 확인 및 보강. 치직- 알겠음.]
4층부터 1층까지 뻥 뚫린 중앙으로 가, 1층 로비를 내려다봤다. 사람들이 로비에서 우왕좌왕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개판이었다. 계단은 바리케이드를 쳐서 막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로만 이동할 수 있었다.
휙-
3층 난간에서 2층 난간으로 뛰고, 2층 난간을 붙잡고 1층 테이블로 착지했다.
크아아아아
덜컥덜컥덜컥
1층 통제실 안쪽 복도. 막아 놓은 바리케이드가 몰려든 감염자들 때문에 덜컥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면 더 개판 난다는 건 알고 있는지, 1층 로비에 몰려든 사람들은 끅끅거리면서도 용케 비명은 지르지 않고 있었다.
‘어쩌다 이 지랄이 난 거야?’
재난 물품 보관소 문이 열려있고, 1층 통제실 문도 열려있었다. 방송실 문은···. 그러고 보니 방송이 어느 순간부터 끊겨 있었다.
통제실을 보니 안이 개판이었다. 두 명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씨발.
복부가 파헤쳐져 있고, 머리가 깨져있었다. 처음 통제실 안쪽에서 봤던 모습과 비슷한 상태. 물품 보관실에는 세 사람이나 죽어있었다. 마찬가지로 머리와 복부가 파헤쳐진 모습이었다.
살짝 열린 방송실 문틈으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우걱우걱도 아니고 후루룩도 아닌 소리.
후-우-
마루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가늘게 뱉어냈다. 좆 같음, 씨발 같음, 찝찝함이나 역겨움 모두 날려 버리고 살포시 문을 열었다.
아직 살아있는지, 눈물 흘리는 여자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가늘게 떨리는 눈동자엔 삶의 갈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여자의 배를 갈라 안을 국밥 먹듯 후루룩하고 있는 감염자의 등판이 보였다.
푹-
소리 없이 감염자의 목덜미에 박힌 칼날. 후루룩하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는 감염자의 뒷덜미를 잡아 옆으로 뉘었다.
쑥- 뽑히는 칼날.
까딱. 까딱.
느낌이. 좀 달랐다. 아침에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점심에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칼날에 느껴지는 감각이 좀. 변했다.
너무 예민해졌나?
일단 어쩌다 이 지랄이 났나?
바리케이드가 밀렸던 자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