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89
어라? 왜 사람들이 왜 슬슬 피해, 이러면 나가리 인데.
인상 풀었나? 풀었지? 풀었는데 왜들 이래, 사람이 좋게 말하는 데 참.
“1층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제가 중요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근데 이게 좀 그런 정보라, 아시죠? 좀 그런 정보라는 말. 원장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무. 무슨 이야기? 난 상관없네.”
“당신이 뭔데 오라 가라야!”
“그럼, 여기서 크게 말해도 됩니까? 부원장님? 거기 2층 실험실과 연관됐다는 소리도 있던데요. 감염내과 과장님도 그렇고요. 다들 이쪽으로 좀 가까이 오시죠.”
“아니, 우린 상관없는 일이라니까.”
“당신이 뭐냐니까?”
“좋습니다. 그냥 말하죠. 다들 들어보세요. 야마츠키 신약 보안과장 노리베 히로시가 증언한 내용입니다.!”
마루가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힐끗힐끗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잠깐. 됐네. 됐고. 무슨 일인데 그러나. 엉?”
원장이 갑자기 체면을 차리겠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나왔다.
“원장님이 말입니다. 야마츠키 신약과···.”
말을 자르려는 것처럼 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그럼요. 증거도 없이 왔겠습니까.”
마루가 휴대폰을 꺼내 들려고 하자, 원장과 부원장을 비롯한 몇 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 우리끼리 저기 저쪽으로 좀 ‘떨어져서’ 이야기 할까요?”
크흠-
크읏-
기괴한 감탄사를 내뱉은 자들이 마루를 따라서 옥상 끝으로 왔다. 졸졸졸 일렬로 따라온 사람들을 바라본 마루가 미소 지었다.
“자. 그럼 이제 진실의 결말을 보겠습니다.”
“자금 장난하나? 무슨 진실의 결말?”
“뭔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래 좋아. 그 증거라는 거, 어디 한 번 보지.”
“그러죠. 폰 화면이 작으니까 이쪽으로 다 모여 보시죠. 여기 있는 분들 아마도 한 번씩 전부 언급된 것 같은데.”
일렬로 길게 섰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였다.
“자 그럼 틉니다.”
따라라- 띠리리- 두구두구둥-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슬쩍 움직이던 마루가 갑자기 동그랗게 뭉친 사람들에게 태클을 박았다. 3명의 다리를 감싸 안더니 확- 밀어, 6명이 뒤엉켜 넘어갔다.
억-
끄아악
우아아아
아아아아앙
스키점프대처럼 경사진 면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지는 사람들. 15층에서 2층까지 비명이 길게 늘어지더니 풍덩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못에 빠지는 소리였다. 저 아래에서 신음과 욕설 소리가 조그맣게 올라왔다.
힐끔힐끔 쳐다보던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마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들었잖아요. 안 죽었어요.”
“미- 미친!”
“바보 같은.”
“사람을 15층에서 밀었어?”
“아니. 안 죽었다니까. 잘 들어보라고요. 저기 살아서 고래고래 고함치는 거.”
“사람들을···.”
“어째서?”
“아니. 말 좀 합시다. 안 죽었다니까. 여기 이거 듣고도 이해 못 하겠으면 말해요!”
마루가 휴대폰을 켜, 최대 음량으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동영상 속 인물을 알아본 몇 명이 움찔하는 모습. 마루는 그 사람들을 잘 봐뒀다.
[···미우라 원장님과 ··· 과장님께서 실험의 재개를 위해, 감염자를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안요원들과 함께 감염자포획에 성공··· 아라키돈산과 포스파티딜세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간과 뇌가 필요했다···]
[1층을 담당하는 병원 직원들은 접수 수납과 청소, 1층 마트 관리와 같은 비전문 직종이기 때문에 중요도가 떨어졌기에···]
[그래서 1층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1층으로 갔을 때, 감염자를 풀었던 건가?]
[그래]
[1층 사람들이 빨리 도망치지 못하게 중간에 막았던 거고?]
[그렇다.]
[원장과 부원장 그리고 실험책임자들과 과장들은 생체실험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어째서지?]
[정부와도 본사와도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곳에서 결과를 내야 할 상황이다.]
휴대폰에서 재생되는 영상과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몇 사람들이 외쳤다.
“거짓말! 조작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들이 그럴 리 없소!”
“옳소. 지금처럼 대재난의 시기에 사람들을 이간질하려고 하다니!”
“지금 소리친 사람들 이리 앞으로 나와보셔.”
“······.”
“······.”
쳐다보는 눈빛이 맹수의 눈빛이라도 되는 것처럼, 양 떼 몰리듯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이었다.
“가만히 들어보자 하니까. 꼴통 새끼들이네, 그럼 감염자들 잡아 온 새끼는 누구고 풀어준 새끼는 누구? 풀려난 감염자들이 일반인들 뇌랑 간 먹고 지랄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시체 치운 사람들 있지 여기? 시신들 머리에는 뇌가, 복부 장기 가운데는 간이 소실된 거 맞지?”
“······.”
“······.”
“그건 누가 설명할 건데? 그리고 1층 정리하라고 사람들 내려보낸 건 누구지? 환자도 없는데 접수처 직원들 내려보내고 통제실, 기계실 인원들, 청소하던 용역들, 죄 내려보낸 건 누가 한 거지? 상황이 이 꼴인데, 사람들 내려보낸 게 누구냐고? 병원장을 비롯한 고위직들이 연관되지 않았으면 가능한 일임?”
“······.”
“······.”
“발광하다가 불리하다 싶으면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무는데, 입 다문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애써서 안전지대 확보해 놨더니, 위에서 생체실험하겠다고 아랫사람들 죽여대는 상황인데 뭘 믿고 마음대로 활개 치게 두나?”
“휴대폰 속에 증언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증언만으로 사람들을 15층 밖으로 던져버려 놓고는 무슨 소리냐!”
“어이. 말 잘했어. 거기 뒤에서 말하지 말고 나와서 말해.”
다시 조용해졌다.
“아니. 씨발 진짜. 돌겠네. 숨어서 그러지 말고 나와서 하라고.”
“······.”
“······.”
빡쳤다. 스륵- 칼을 뽑아 들자,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거의 1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마루가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몰렸다.
“이게 무슨 짓들인가! 거기 자네, 흉기는 왜 꺼내고 그러나! 여긴 병원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의료진이네.”
열혈 중년 의사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역시 그냥 자기들은 숨어서 만만한 사람 고기 방패로 쓰는 건 만국 공통이구나 싶었다.
“제 눈에는 민간인으로 생체실험이나 해대는 인간 말종들로 보이네요.”
“말조심하게! 자네 친구, 자네가 데려온 사람들 살리겠다고 애쓴 사람들도 있어!”
“그거야 뭐, 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1층에서 터졌던 사건을 보면, 사람들로 생체실험하겠다고 하는 인간들도 있는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죄인 10명을 잡는 것보다 무고한 1명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옳은 걸세!”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위험한 상황에서는 죄인 10명 아니라 1명만 놓쳐도 개판 되는 건 시간 문제라서 말이죠.”
“여기, 이 사람들은 자네의 도구나 수단이 아니야!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고 지켜져야 할 곳이야!”
“누가 뭐랍니까? 근데 병원에서 생체실험하고 일반인들 감염자의 먹이로 던져주던데 그건 병원에서 할 짓이래요? 그리고 지금 선생님은 그런 새끼들 옹호하고 있고요. 근데 제가 뭘 믿고 엘리베이터 열쇠 주고, 통행 자유 주고 그럽니까?”
“···그래서 자넨 뭘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건가?”
“그냥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생체실험이니 연구니 했던 사람들 전부 밖으로 보내드리고, 남은 분들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병원을 병원답게 운영하셨으면 한다는 거. 그겁니다.”
“···방금처럼 밖으로 던지겠다는 말인가?”
“안 죽어요. 저도 사람 막 죽이고 그러지 않습니다. 저기 연못에 딱 들어갈 만하니까 그쪽으로 던졌죠. 죽이려고 했으면 그냥 이쪽에서 던졌습니다. 그리고 진짜 죽일 생각으로 죽였으면 던지는 것보다 이걸 썼겠죠.”
마루가 들고 있던 칼로 옆을 툭-쳤다. 팅-하는 소리가 울렸다. 확실히 던지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 칼이 쉽고 빨랐다. 중년 의사는 태연 당당한 마루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
“제가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 금방 간다고요. 저 가고 나서 생체실험하겠다고 그러다가 감염자가 휙 변해서 뇌 파먹고 간 빼먹고 다니면 누가 막아요? 다 뒈지는 겁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통제실에 있던 감염자가 밖으로 나왔으면 진짜 순식간에 아비규환 됐습니다. 1층에서 터진 사건도 그렇습니다. 사람 여럿 잡아먹은 그 감염자, 제가 없었다면 그거 누가 막을 겁니까? 뭐로 막을 거고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야. 있지도 않은 일로 사람들을 밖으로 던지는 건 반대일세. 무엇보다 그들도 전문의고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지식은 미래야. 무작정 일반인을 희생시키는 생체실험은 죄악이지만, 그들의 지식으로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 그들이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자네 마음대로 할 수 없네.”
마루가 칼을 집어넣으며 한숨 쉬었다.
“하- 좋습니다. 대신 뭘 어떻게 하시든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는데, 좀 나중에 하시죠.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열흘 안에 저랑 제 일행들이 떠날 테니까 그 뒤에 지지든 볶든 하시고, 지금은 제 통제에 따라주세요. 그러면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까지 할까요? 아니면 하던 거, 마저 할까요?”
열혈 의사가 뒤를 돌아봤다. 사람들 전부 중년 의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중년 의사가 깊게 숨을 내쉬곤 말했다.
“여기까지 하지.”
“그럼 우리 얘기 끝난 겁니다. 일주일에서 열흘, 15층에서, 통제에 따르기로.”
“지금 헬기로 이송되는 응급환자는 어떻게 하려고 하나?”
“일단 봐야죠. 처음 이야기했던 대로 15층에 있는 의료기기로 해결하세요. 도저히 힘들다 싶으면 그때 수술팀만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해드리죠.”
중년 의사가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마루는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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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이랑 부원장님, 사람들 괜찮을까?”
“괜찮기는 팔다리든 어디든 크게 다쳤을 거다.”
“그래 15층이야. 15층. 경사로를 타고 미끄러졌다고 해도 위험한 높이라고.”
“연못에 빠졌으니까 살았다? 미친 새끼다 저건.”
“어쩌겠어요. 저 사람을 막을 방법이 없는데.”
“보안요원들이 쓰는 삼단봉이나, 테이저건, 스프레이 같은 거로는 제압할 수 없을까? 여럿이서 한 번에 달려들면···.”
“바보냐? 저게 칼 쓰는 거 못 봤어?”
“그래도 한 명인데.”
“몇 명이 칼에 찔리면서 제압했다고 쳐, 저 사람 동료들은? 총기로 무장했던데.”
“그래도 이렇게 일주일 넘게 이렇게 있는 건.”
“계속 쫑알대지 말고 그럼 너부터 해봐. 어이. 여기 사람 모아서 한번 해보자는 사람이 있는데 동의하는 사람 있어?”
잠잠했다.
“일주일 길어야 열흘이야. 미친놈이랑 엮여서 허무하게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하고 싶으면 알아서 사람들 설득해.”
두두두두-
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명을 켜고 접근하는 닥터 헬기가 헬기 착륙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뭔데 다들 나와 있는 겁니까? 응급의학과 사람들만 빼고 다 내려가세요.”
참의원이라고 하면 상원의원 비슷한 거라고 하던데, 그게 그렇게 유명한 건가? 마루가 사람들을 15층으로 내려보냈다. 헬기를 장악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많으면 좀 그랬다.
“헬기 접근중. 아저씨들 가운데 헬기 조종할 수 있는 사람 있다고 했지?”
[치직- 그렇다고 함.-]
“그 아저씨 올려보내고. 이쪽 경비할 수 있게 두 명 같이 보내줘.”
[치익- 알겠음.-]
“그리고. 기계실 공구함에 용접기 있던데 그것도 같이.”
[삐익- 헬기 조종사 외 2명, 용접기. 확인. 삐-]
3층에 있는 김 양과 통신하는 사이, 깜빡이는 불빛 사이로 헬기가 약간 흔들거리며 착륙했다. 생각보다 큰 헬기의 옆문이 열리자,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내리고, 나이 많은 노인이 경호원의 부축을 받고 내렸다.
윙윙거리는 프로펠러 소리가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헬기에서 내린 노인이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발목이 접질린 것 같았다. 절뚝이는 노인 뒤로 헬기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렸다. 7명, 8명, 9명. 먼저 내린 경호원과 노인을 합하면 벌써 11명이나 됐다. 환자 이송 침대를 버리고 사람들로 꽉 채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발목 접질린 것 가지고 응급환자 발생이니 뭐니 그 난리를 쳤다고?’
어이없었다.
“이게 뭔가? 환자가 왔는데 의사들이 뭐 하고 있는 거야!”
노인이 일갈했다.
옥상에 있던 응급의료진들이 환자 이송용 병상을 가지고 가려는 걸, 중간에서 가로챈 마루가 해맑게 웃으며 굽실거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서 누우세요.”
짜증을 감추지 않은 노인이, 뭐라고 하려다 말고 침상에 누웠다. 뒤에서 따라오던 응급의료진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 모시겠습니다.”
다다다
병상을 밀며 내달리자, 경호원과 비서가 마루를 따라 쫓아왔다.
“어이. 천천히 가!”
“응급환자라면서요.”
마루는 모르쇠 경사진 곳으로 달려갔다.
“어디로 가나! 엘리베이터는 저쪽이···.”
콱 멈추며 병상을 치켜들었다. 으어어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병상에서 튕겨 나갔다.
“어?”
뒤따라 달려오다 노인이 튕겨 오르는 광경을 보고 버벅거리는 경호원의 멱살을 잡았다. 그대로 잡아 던지려고 하자, 유도를 배웠는지 역으로 마루의 팔을 엮어 제압하려는 경호원.
한 칼이면 끝날게, 이거 참.
마루가 헛웃음을 짓고 힘으로 잡아끌었다. 유도 실력이 제법 좋아선지 쌩 힘으로 잘 끌려오지 않았다. 경호원이 붙잡고 늘어진 옷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대로 경호원의 명치를 때렸다.
컥!
숨이 막히자 아귀힘이 풀어진 경호원을 그대로 내던졌다. 커어어억- 제대로 소리 내지 못한 경호원이 경사를 타고 내려갔다.
꺄아아아악
반 박자 늦게 비명 지르는 여자 비서도 가뿐하게 집어 던졌다. 허공을 잠시 부유했다가, 경사진 곳에 떨어져 쭉 미끄러지며 길게 늘어진 비명을 질러댔다.
헐레벌떡 달려온 중년 의사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진짜 자네 미쳤나? 왜?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
띵동-
[문이 열립니다.]
총기로 무장한 3명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그렇지 않아도 차갑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