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93
벽 옆에 바짝 붙어있던 김 양은 마루의 외침에 갸웃했다.
‘수?’
아니, 수류탄은 그렇다며?
하지만 백정에게 단련된 몸은 정직했다. 재빨리 수류탄을 까서 ‘하나-둘-’ 속으로 센 김 양이 휙- 동그란 문 안쪽으로 던졌다.
뻐어어엉!!
“섬!!”
‘어? 바로 또?’
반사적으로 섬광탄, 더블 플래쉬 뱅을 꺼내 든 김 양이 던진다고 수신호를 보냈다. ‘아 맞다. 나 은신하고 있지.’ 일단 던지면서 말하자.
“눈 꼭!”
눈감아도 아니고 눈 꼭 이라니, 말해 놓고 뭔가 그랬지만 알아서 눈 감겠지.
퍽! 파아아아앙
치익- 퍼엉! 파아아앙
약간의 시차를 두고 두 번 터진 섬광 폭음탄.
바사사사삭 소리를 내며 밀려왔던 것들이 썰물처럼 뒤로 빠졌다.
사장을 업고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경호원이 노랗게 뜬 얼굴로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뭔데 그래요?”
김 양이 광학 로브에서 얼굴을 쏙 빼며 물었다. 경호원은 말없이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야만 하는데 내딛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대체 뭣 땜시?’
김 양은 슬쩍 백정을 바라봤다. 백정도 마찬가지 표정이었다. 혼이 반쯤 나갔다 들어온 표정. 다들 왜 이러는 거?
다시 광학 은신 로브를 둘러쓴 김 양이 포부도 당당하게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삭-
쿠직-
순간, 신발 밑창에서 올라오는 바삭바삭하면서도 툭 터지는 것. 적외선 감지로는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쿠직-
크직-
아 뭐야 진짜. 김 양은 로브 안쪽으로 살짝 라이트를 비췄다.
짙은 갈색으로 번들거리는 몸체, 손바닥 크기의 거대한 B들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수류탄으로 갈가리 찢긴 몸통에 달린 털 다리가 버둥거리고, 잘린 머리에 붙은 더듬이는 촉수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흐으으흐흐흐
애미나이들 단백질 공급원을 가지고 오두방정이었어? 좀 많이 크긴 하지만 그래봐야 벌레다. 튀겨서 먹으면 새우 맛 나는. 귀엽네. 들.
김 양이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가자, 마루와 경호원도 굳은 얼굴을 하곤 문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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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들은 어딨는 거야?’
마루는 전술 라이트로 어둑한 앞을 비추며 나갔다.
입구를 지나면서 밟았던 끔찍한 감촉이 발바닥을 맴도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탈출했을 때, 공항 벤치에서 봤던 바퀴벌레 크기가 손가락만 했다. 그것도 끔찍하게 큰 크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밀물처럼 밀려든 바퀴벌레는 그 2~3배는 돼 보였다. 미친 크기.
연구실에서 뭘 연구했길래 바퀴가 저딴 크기가 된 건지. 아무리 생명력이 질린 벌레라고 하지만 몸통이 찢겼는데 부위별로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존나. 불은 왜 꺼져있고.’
들어오기 전 터널에 비상등이 켜져 있던 것을 생각하면, 문 안쪽도 전기가 살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전기가 나갔을 뿐만 아니라 비상등까지 꺼져있다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쿨럭-
기침 소리와 함께 왈칵 피를 뱉는 사장.
“어디로 가?”
경호원이 잡아준 방향에 있는 실험실 문은 회백색 뼈들이 껴있어 살짝 열려있었다. 안쪽에서 바깥으로 도망쳐 나오다 걸렸는지, 아니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다 걸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냄새가 없네.’
부패는 아니었다. 시체 썩는 특유의 냄새가 없었으니까. 하얗게 뼈만 남은 게 이상했지만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김 양이 문 안쪽을 살짝 살피고 왔다. 광학 은신 장비를 본래 사용하던 사람처럼 잘 쓰고 있었다.
[문 바로 앞쪽으로는 일없음.]
“입구 부분 엄호해줘.”
[알겠음.]
슥- 칼을 뽑은 마루가 다른 손으로 전술 라이트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툭- 툭-
마루가 발로 문지방에 널려있는 뼈다귀들을 치워내고 문을 닫았다.
[스위치 찾았음.]
“주변에 이상 없으면 켜봐.”
[알겠음.]
[이상 없음. 3초 뒤에 불 켬. 3···2···1]
잠시 뒤 천장에서 하얗게 빛이 쏟아졌다. 그렇게 드러난 백색의 실험실, 저절로 욕 나오는 모습이 실험실 안쪽을 채우고 있었다.
첨단 과학 장비가 가득한 공간. 전형적인 실험실의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것들은 전혀 아니었다.
일본어에는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표현들이 몇 있다. 예를 들어 일본어로 어린이를 뜻하는 코도모(子供)가 그런 독특한 표현 가운데 하나다.
공(供)자에는 ‘바치다’, ‘먹이다’, ‘제물’이라는 뜻이 있는데, 인신공양(人身供養, human sacrifice)이라고 할 때의 공(供)자이다.
그러니까 어린아이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공이라는 단어가 어린이를 지칭하는 데 쓰이게 된 유가 뭘까? 그에 대한 대답이 실험실에 있는 것만 같았다.
“씨발.”
미쳤다.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난 병원에서 지랄했던 야마츠키 신약 연구원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짓을 태연하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개 같은 일들이 미친놈들에겐 일상이었을 뿐이었다.
사장이야 의식이 반쯤 나가서 그렇다지만, 경호원과 김 양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대체 다들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경호원이 약품 보관 냉장고 같은 곳에서 약을 꺼내왔다. 붉게 빛나는 약이었다. 뭔가 불길함이 느껴지는 붉은빛. 저게 느껴지지 않나?
“잠깐. 그거 색이 너무 붉은데? 본래 사장 대리가 가지고 있던 약은 핑크빛 아니었어?”
“······.”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실험실 꼴을 보니까 미친 새끼들이 넘치는 것 같은데, 생긴 게 비슷하다고 같은 효과일까? 진하게 생겼다고 효과가 진한 걸까? 나라면 그거 안 쓰겠는데.”
“······.”
경호원이 들어갔던 약품 보관실에 들어가는 마루였다.
‘찾았다.’
유리문으로 된 냉장고 한쪽에 일렬로 쭉 늘어선 핑크빛 앰풀들. 족히 30개는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작은 냉장고에 몇 개 없는 붉은빛 앰풀. 이래서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던 건가? 더 엄중하게 보관하고 있고 숫자도 적으니까?
마루는 핑크빛 앰풀을 케이스에 옮겨 담았다. 뒤따라온 경호원이 분홍색 앰풀 가운데 10개들이 한 줄을 들고 나가며 마루를 째려봤다.
‘째려보기는.’
[여기 뭔가 이상한 게 있음.]
“건드리지 마!”
[······.]
슬쩍 가까이 가는 거 아니야?
“거기 스톱. 가까이 가지도 마.”
[···!]
“일단 뒤로 물러서.”
마루가 발작적으로 말했다. 이럴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최고였다.
[알겠음. 근데 진짜 이상함.]
그쪽으로 오라는 소린가? 이상하면 자기만 보지 왜 다른 사람에게까지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꼭 더럽고 비위 상하고 그런 거 볼 때면 사람을 부르더라. 마루는 한숨을 푹 쉬고 김 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칸막이로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
하얀 벽 위에 검붉게 흘러내린 흔적들이 기괴한 문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 중앙에 있는 것은 실험대라기보다는 마치 제단 같았다. 그리고 그 제단 아래 참호처럼 파인 곳에 쌓여있는 것들은 뼈와 무슨 부산물? 그런 것들이었다.
한쪽에는 첨단 실험 장비가 있고 그 뒤에는 뼈와 내장에 둘러싸인 제단이 있는 풍경. 미신과 과학이 같은 공간에 있다니 이런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여긴 전부 다 이상하잖아. 여기서 뭐가 더 이상한데?”
[저기 제단처럼 생긴 거 위에.]
“뭔데···?”
공간이 약간 흐릿해 보였다. 공간이 흐릿하다는 게 말이 되나? 홀로그램 같은 건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불쾌감이 그곳에 있었다. 바퀴벌레,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수만 단위로 뒤섞여 꿈틀거리는 것을 본 느낌.
마루는 낮게 욕을 뱉었다. 흐릿한 공간 저편에서 더듬이인지 촉수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주변을 휘젓고 있는 느낌.
“빨리 나와.”
일단 김 양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대체··· 지금 본 게 뭐지? 갈매기들이 미쳐 날뛰더니, 이상한 감염자는 갑자기 사람들 뇌랑 간을 파먹지 않나,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가 파도처럼 몰려다니는 것도 모자라. 저건 대체 뭐야.
그 불길했던 느낌이 저것 때문이었나?
대체 뭘 연구했던 거지? 약이랑 저게 무슨 상관인데?
“야. 정신 차려.”
나오라고 하니까 반쯤 걸쳐 있는 김 양이었다.
[······.]
“정신 안 차려?”
머리가 있음 직한 곳에 딱밤을 때려 갈겼다.
딱.
일렁이던 곳에서 김 양의 머리가 쏙 나왔다. 왜 때렸냐는 불퉁한 눈빛.
“나오라고 했잖아. 넋 놓고 불구경도 아니고 왜 저딴 걸 그렇게 쳐다보는데?”
“······.”
승자가 정해져 있는 눈싸움을 시작하려는 찰나, 사장이 파리한 얼굴로 다가왔다.
“급속치료제를 챙기셨다고요.”
“예. 그보다 여긴 뭡니까? 여기가 제약 연구실 맞습니까? 이러는 걸 지원했다고요?”
치료제 챙긴 것에 당당한 마루였다. 이 고생을 했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것 아닌가? 광학 은신 장비도 그렇고. 기브 앤 테이크였다. 사장은 주변을 둘러보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샬롯만 지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지원했지요. 일본 내각정보실과 일본 유력 가문들도 참여한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요? 그건 됐고요. 저쪽에 있는 제단 같은 거, 저건 뭡니까? 저것도 실험의 일환입니까? 애초에 여긴 뭘 연구하던 곳입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건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거 같은데.
사장이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알게 되면 좋든 싫든 저희와 같이 가게 됩니다.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아뇨. 됐습니다. 챙길 건 다 챙기셨죠? 그럼 바로 나가죠.”
마루가 단호하게 철벽을 쳤다. 지금도 피곤한데 완전히 엮인다고? 들은 것만으로? 미쳤나, 그걸 듣고 앉아있게? 김 양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루의 눈빛에 찌그러졌다.
“급속치료제는···.”
마루가 김 양을 째려봤던 눈빛으로 사장을 노려봤다.
‘이건 내 것임.’ ‘건드리면 재미없음.’ ‘호구로 보심?’
그 강렬한 눈빛에 사장이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중앙통제실과 서버실에 들려야 합니다. 필요한 자료가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어디 안 가고 기다릴 테니, 다녀오세요.”
훠이훠이 잘 다녀오라는 듯 말하는 말투에 사장이 황당해했다.
“같이 안 가고요?”
“김 양이 같이 갈 겁니다.”
언제 광학 은신 로브를 뒤집어썼는지 모습을 감춘 김 양이었지만, 마루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김 양이 있는 곳을 향해 말하는 마루.
“김 양아 사장님 경호해서 다녀와.”
[···알겠음.]
사장과 경호원, 김 양이 실험실 밖으로 나가자 마루는 실험실을 살폈다.
기괴한 공간 반대편에는 검은색 유리로 된 공간이 일렬로 쭉 붙어있었다. 앞에 있는 터치 패드로 밝기 조절하자, 검은색이 빠지며 투명해지는 유리. 투명한 벽 건너편에는 붉은 흔적만 남은 텅 빈 침상이 덩그렇게 남아있었다.
스르륵- 검은색이 빠지자 다음 공간도 텅 빈 침상이 드러났다. 그다음도, 다음다음도.
안으로 들어갈수록 셔터가 있거나 유리 안쪽으로 철창이 있는 공간이 나왔다. 마치 병실이라기보다 감옥 같은 느낌. 그리고 마지막엔 금속으로 완벽히 차단된 곳이 나왔다.
‘위험.’ ‘경고.’ ‘접근금지.’ 같은 단어들이 부적처럼 삥 둘러 박혀 있는 곳이었다.
많이도 붙여놨네, 왜 열어보나 저걸.
그렇게 마루가 밀폐된 금속 상자 같은 공간을 스쳐 지나가는데 소리가 들렸다. 작게 들려오는 소리. 귀가 아닌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오는 소리.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마루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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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 듯 사장의 걸음걸이가 불안했다. 경호원이 주변을 살피며 앞장서고 있었고 김 양은 한쪽 벽에 붙어 꼭꼭 숨어 움직였다.
“마음에 드나 보죠?”
[······.]
김 양은 침묵했다. 말하면 위치가 들통나니까.
“그렇게 가져가는 건 좋지 않아요. 강탈이잖아요. 아무리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해도 처지 바꿔서 생각해 보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어요?”
당연히 그럴 수 있는 말이지만, 그게 또 백정이 한 일인지라. 저랑은 상관없거든요. 사장의 말에 하나도 타격받지 않는 김 양이었다. 이건 모두 다 백정 탓이라니까.
앞장서 움직이던 경호원이 손을 들어 손가락을 쫙 폈다가, 주먹을 쥐었다.
뭐가 있다는 소리. 경호원이 통제실 문을 향해 총을 겨눴고, 사장도 언제 총을 뽑았는지 자세를 잡고 있었다. 김 양도 벽에 붙어 소음기 달린 글록을 준비했다.
경호원이 살짝 문을 열었다. 약간 뻑뻑하게 열리는 문 안쪽에서 냄새가 빠져나왔다. 퀴퀴한 냄새, 부패한 냄새, 그리고 똥통 냄새. 잠시 조용했던 안쪽이 서서히 소란스럽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