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94화 (94/280)

러스트 [RUST]-94

흑- 사장이 코와 입을 막고 뒷걸음질 쳤다. 경호원도 문에서 떨어졌다. 뒤섞인 냄새도 문제였지만 유독 가스가 섞였는지 어지러운 모양.

휙- 김 양이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내 경호원에게 던졌다. 방독면을 받은 경호원이 냉큼 뒤집어쓰곤 고개를 끄덕했다. 사장에게는 산소마스크와 작은 산소통을 넘긴 김 양이 방독면을 다시 점검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쿠당탕 넘어지고 자빠지고 뒤엉키는 소리 끝에, 감염자 특유의 고성이 터졌다.

크루어어어!

이윽고 문이 안쪽으로 콱 당겨졌다.

“3. 2. 1. 지금!”

경호원의 외침과 같이 피칠한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퉁! 투둑!

툭툭!

“머리와 심장!”

외친 김 양이 벽 옆을 타고 자리를 옮겼다.

감염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경호원과 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각선 좋은 자리를 잡은 김 양이 총구만 살짝 내밀고 속사를 시작했다. 낮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9mm 탄환을 쏟아냈다.

머리, 가슴, 머리.

머리, 무릎, 머리.

머리를 맞고 쓰러졌던 감염자가 버둥거리며 일어서다 무릎이 꺾였다. 버둥거리다 다시 머리에 맞고 침묵. 아까 그놈. 가슴 쏜 놈. 명치 어림 심장에 맞췄는데 발광하다 머리에 2방을 박아 넣고서야 조용해졌다.

김 양은 착실히 머리에 2~3방을 박아 넣었다. 경호원과 사장도 눈치껏 머리 위주로 쏴댔다. 어느 순간 감염자 특유의 괴성이 뚝 끊겼다.

사방에 널린 감염자들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머리에 최소한 2방, 몸통과 사지에 1~2방씩 맞았을 텐데, 아직도 움직이다니···.

감염자들과 직접 맞닥뜨린 건 처음이었는지 경호원과 사장은 말이 없었다.

“······.”

“······.”

둔탁한 총성이 멎을 무렵 구석에 있던 것이 사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툭-투툭-

사장을 향해 점프한 놈이 김 양이 쏜 총에 맞고 공중에서 회전해 처박혔다. 사장은 재빨리 놈의 머리에 두 발을 갈겼다. 바로 경호원이 바닥에서 꿈틀대는 감염자들의 머리에 확인 사살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8명의 감염자를 처리한 3명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딱히 대화가 없었는데도 생각보다 합이 잘 맞았다.

“······.”

“······.”

합이 너무 잘 맞아서 이상했다. 무엇보다 사장이 총을 너무 잘 쐈다. 예전에 작업했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더 그랬다.

타겟 가운데 취미로 사격하는 사람이 없었겠나? 일반인들이라면 과녁에 대고 쏘거나, 잘해야 클레이 사격이었다. 그러니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자기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쏘기 마련.

근데 사장은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총을 쏴댔다. 적이 달려오는데 침착하게 이동하면서 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쓰고 있는 총도 그랬다. 자기야 총잡이니까 익숙한 글록 17을 쓴다지만, 일반인 특히 여자에게 글록 17은 큰 총에 속했다.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니, 다른 것도 걸렸다. 자연스럽게 양손으로 잡고 반동을 제어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탄창을 교환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경호원이 수신호를 보냈다. 김 양이 위치를 바꾼 것을 모르는지, 처음에 있던 장소를 향한 신호였다.

‘돌입.’ ‘엄호.’

활짝 열린 문 안쪽은 캄캄한 어둠이었다. 경호원이 먼저 들어가고, 사장이 뒤따랐다. 잠시 뒤 불이 들어왔다. 통제실은 바닥부터 벽까지 정상인 곳이 없었다.

지진의 여파 때문인지 이곳저곳 갈라진 부분이 있었다. 누렇게 찐득한 것들이 뭉쳐있는 벽, 바닥에서 썩고 있는 부산물들에 분변들, 조각들.

“엉망이군요.”

“서버실에 생존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통제실 안쪽에 있는 서버실로 통하는 문을 바라보며 경호원이 말했다. 김 양은 두 사람이 서버실로 가는 것을 보곤 통제실을 살폈다.

확인해야 할 것은 전체 시설에 대한 전력 공급과 CCTV 재기동 가능성 파악. 시설에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면 차단벽이라든지 방어시설 같은 걸 움직일 수 있고, CCTV를 재기동한다면 직접 들어가지 않더라도 안쪽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시설은 통제실에 비상 전력망이라든지 전력 복구 시스템을 뒀었는데.’

툭- 퉁툭-

투툭-타닥-

안쪽에서 나는 소리. 서버실에도 생존자가 없나 보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회색빛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비상 전력 공급’이라고 적힌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

‘찾았다.’

전력 공급을 시작하자, CCTV도 다시 복구됐다. 깜깜한 터널에 불이 들어오는 모습. 그리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운 B들의 모습이 CCTV 화면에 잡혔다. 깜깜했던 터널이 밝아지자 어두운 쪽으로 도망치는 것들. 짙은 갈색으로 번들거리는 등딱지들이 뒤엉켜 움직이는 모양이 조금 징그러웠다.

‘아- 이렇게 보니까 좀.’

튀기거나 볶으면 새우 맛인 애들이었지만, 저렇게 바글바글한 것을 보니 그랬다.

‘배가 불렀네. 불렀어.’

옛날에는 저것도 귀했는데 말이야.

‘어?’

바퀴들이 이동한 자리에 남겨진 것이 보였다. 하얀 백골들이었다. 바퀴들도 사람을 공격하나? 새우들이 사람 공격한다는 거랑 동급인 이야기 아니야? 김 양이 CCTV를 조작해 확대했다. 확실히 인골이었다.

갈매기가 미치더니 바퀴도 미쳤나?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쏟아지는 바퀴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김 양은 CCTV를 하나씩 확인했다. 서버실에서 총질하고 있는 사장과 경호원, 둘이서도 여유롭게 잘하고 있었다. 딱히 지원이 필요하거나 그러지 않아 보였다.

‘흐음-’

확실히 이렇게 보니까 사장 잘 쏘네. 경호원이야 뭐 잘 쏘는 게 당연한 거고.

CCTV가 고장 났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CCTV는 잘 작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슬쩍 지나가는 모습.

‘아- 백정이다.’

백정이 뭔가 고심하는 모습이 보였다. 막 이쪽으로 갔다가도 다시 뒤돌아서 가는 것을 보니. 고민이 많아 보였다.

‘일단 바퀴들이 다시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고.’

바퀴들이 도망친 쪽에 있는 차단벽을 내렸다. 차단벽이 닫히자 어둑어둑한 한 쪽에 바퀴들이 갇혀서 바글거리는 모습이 잡혔다. 막 벽을 타고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천장에 붙었다가 떨어지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냄새도 그렇고 유독 가스도 있는 것 같으니 환기 시설도 다시 작동시키고 자율 방어 시스템은···. 일단 패스.

김 양은 매뉴얼을 대조해가면서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통제실 운영할 수 있음. 요청 있음?]

[치직-아까 제단 같은 거 있는 공간, 소각하거나 치워버릴 수 있어?]

아? 거기.

하긴 그런 기능이 있을 법도 했다.

[근데, 잘못 건드렸다가 터지면 어쩜?]

[삐- ···사장한테 물어봐. 가능하면 없애는 쪽으로 하고.]

[알겠음.]

[그리고. 칙- 아니다. 삐익-]

‘?’

[띠- 거기서 통제할 수 있으면 일단, 우리 있는 문 빼고 다른 문들은 전부 잠가버려.]

[치직- 우리 돌아가는 길 빼고 차단벽도 다 내려 버리고.]

[알겠음.]

아- 바퀴들이 사람 공격한 거 같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다 잠그고 차단할 거니까 상관없나? 나중에 말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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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실.

복도를 따라 감염자들이 하나씩 나와서 처리하기 쉬웠다.

김 양은 어디 있지? 사장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전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는지 CCTV가 다시 작동하는 것이 보였다. 양쪽에 길게 늘어선 서버들에도 불빛이 깜빡였다. 낮은 소리와 함께 환풍구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거 찾아서 한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확실히 능력 있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폭탄이었다. 특히 마루는 어디로 튈지 몰랐다. 병원장과 참의원을 던졌다고 했을 때는 ‘뭐 그런 놈이 있지?’ 그랬다면, 자기를 그대로 발로 차버렸을 때는 미친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 미친놈.

침착하게 미친놈이라는 말은 그놈을 의미하는 거였다. 병원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면서 던진 이유를 말할 때는 도덕적인가 싶다가도 정작 하는 짓을 보면 ‘다들 편히 쉬어. 평안히.’ 그러는 꼴. 기순이처럼 뭔가 기준이 잡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 통하나 싶다가도 여차하면 꼴리는 대로 하니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멍청한 것 같다가도 한 번씩 보여주는 통찰력은 얻어걸린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웠다. 만약 그게 본능적인 판단이라면, 단순히 동물적인 육감을 가졌다고 넘기기엔 위험한 놈이라는 것.

통찰력을 숨긴 채 본능적인 척을 하고 있든, 꼴리는 대로 하는 본능적인 놈인데 그 본능적 육감이 괴물급이든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급속치료제는 어떻게 할까요?”

마루의 눈빛이 떠올랐다. 이제 경고는 없다고 했다. 아마 뒷일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뒷일을 생각했다면 자기를 발로 차지 않았을 테니까.

“···건드리지 마세요.”

“···예.”

경호원이 분함을 삼키며 대답했다. 광학 은신 장비까지 뺏겼으니 한 번에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것도 노렸던 걸까?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30개의 급속치료제 가운데 10개를 회수했고 그 가운데 1개를 사용했다. 지금 남은 것은 9개. 부족했다. 연구 자료와 레시피가 있는 하드디스크를 회수한다고 해도 다시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문제였다.

무엇보다 재료 조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재료 수급 문제 때문이든 생산시설 문제 때문이든 이곳 연구실을 어떡하든 살려야 할 판이었다. 최소한 이곳에 있는 재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는 생산해야겠는데···.

“일단 자료부터 챙기죠.”

“네.”

서버 하드디스크를 뽑자, 경호원이 받아서 하드케이스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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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실에서 사장이 나오자마자, 김 양은 마루의 요청을 이야기했다.

“실험실을 소각할 수 있냐고요? 왜죠?”

“글쎄요. 없애고 싶다는데요?”

김 양이 ‘모르겠소요.’ 자세를 지었다. 차렷한 자세와 모르겠다는 표정의 조합. 그 모습을 본 사장은 뭔가 두통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급속치료제를 만들 재료까지 다 타버리기 때문에 소각하긴 어렵다고 하세요.”

“아- 그러죠. 나머지는 직접 이야기하세요.”

바로 무전기를 꺼내 마루에게 말하는 김 양이었다.

“급속치료제 만들 재료까지 타버려서 소각하기 어렵다고 하심. 직접 이야기하기 바람.”

‘여기요-’하곤 무전기를 건네는 걸 받아 든 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급속치료제는 실험 자료와 레시피가 있다고 바로 생산할 수 없어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아니라서요.”

[치익- 실험실 한쪽에 있던 이상한 거 말입니다. 그것도 필수 재료입니까?]

“그쪽 실험실에 있는 건 전부 급속치료제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되도록 보존해야 할 것들이라는 소리죠.”

[-- 소각할 방법은 있다는 거군요.- 치직-]

사장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마루와 사장의 대화에 관심 없는 김 양은 CCTV를 멍하니 확인하고 있었다. 건물 밖은 그냥 밖이었다. 적외선 감지 CCTV 화면도 딱히 이상징후 없이 평화로웠다. 실험실엔 마루가 인상을 쓰고 있었고, 경호원은 통제실 문밖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백정이 인상 쓰는 거 좋지 않은데.’

사장이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화면을 살피는데 텅 빈 곳이 나왔다. 그러니까 바퀴들이 도망친 곳이었다. 차단벽을 내려서 가뒀었는데···.

바글바글하던 바퀴들이 보이지 않았다. 몇 마리가 왔다 갔다 하기는 하는데, 그 많던 바퀴가 어디로 갔지?

“어- 저기요. 여기 바퀴들이 사라졌는데요?”

“뭐라고요?”

마루와 이야기하던 사장이 뾰족하게 말했다. 이야기가 잘되지 않고 있는 모양.

“여기 가둬둔 바퀴벌레들이 없어졌다고요.”

사장이 무전기를 들고 김 양이 보고 있는 화면으로 다가왔다. 화면을 살펴보던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풍구로 들어갔나 보네요.”

환풍구면 이쪽으로도 올 수 있다는 거 아닌가? 그 바퀴들 사람 공격하는데?

“환기구는 각기 독립적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이쪽으로 올 일은 없을 겁니다.”

[치직- 환풍구가 아니라, 지진 때문에 생긴 틈으로 움직인다면?]

애초에 그 많은 바퀴가 어디서 왔을까? 단순한 실험체라고 하기엔 너무 많았다. 그렇다면 완벽히 밀폐된 곳이나 다름없는 연구시설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어? 그러네. 사장과 김 양이 서로를 마주 봤다.

툭-

천장 갈라진 틈에서 손바닥 크기의 바퀴가 하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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