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95
??
!!!
사장과 김 양이 천장을 봤다.
갈라진 틈에서 더듬이가 쑥 삐져나왔다.
더듬이 두 개가 넷이 되고 순식간에 갈라진 틈에서 더듬이들이 돋았다.
툭-
툭-
투두둑-
이어서 하나둘 떨어지는 바퀴벌레
부우우우웅
커다란 바퀴벌레가 윙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천장의 갈라진 틈, 벽에 벌어진 틈으로 바퀴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가 나오더니 둘이 나오고 순식간에 수십 마리씩 나오기 시작하는 바퀴들.
‘미친 새우 맛 따위가!’ ‘감히 어딜!’ 허둥지둥하는 김 양을 보며 사장이 말했다.
“괜찮아요. 바퀴벌레는 살아있는 사람을 물지 않아요.”
‘우리 바퀴는 물지 않아요.’ 톤으로 나긋하게 말하는 사장이었다.
“저건 사람 잡아먹는 바퀴임!”
“잘못 아셨겠죠. 밝은 곳을 싫어하는 바퀴벌레가 무슨 사람을···.”
“아니. 저건 사람 잡아먹는다니까! 거기 머리! 머리에 붙었음.”
사장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바퀴를 떼어냈다. 핏-하고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바퀴가 머리카락을 갉아 먹는 모습이 보였다.
김 양이 거보라고 사장을 봤다.
?!
바퀴가 머리카락을 갉아 먹어? 뭔 이딴···.
[치직- 김 양, 거기 불 지르는 비상 버튼 같은 거 있을 거야. 그거 찾아봐.]
“그쪽은 괜찮음?”
[이쪽은 괜찮으니까. 빨리 비상 버튼 있는지 확인해. 통제실이니까 자폭 프로그램이나, 증거 인멸하게 불 지르는 장치 같은 게 있을 거야.-칙]
“알겠음.”
회사에서도 그랬다. 당연히 뒤가 구린 애들이니 그런 장치 하나 만들어 두지 않았을까? 김 양이 메인 컨트롤 센터를 뒤집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고작 바퀴벌레 때문에 여길 통째로 태워버리겠다고요?”
[치직- 고작 바퀴 따위가 아닙니다. 크기 보셨죠? 손바닥만 한 바퀴가 정상입니까? 저게 조금만 더 커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김 양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거 사람 잡아먹는 바퀴임. 진짜. 방금 사장 머리카락도 씹었음.”
[치직···뭐라고? 다시 말해봐.]
“사람 공격하는 바퀴라고. 사장 머리카락도 뽑아서 먹었음.”
[삐- 일단 자폭 장치든 증거 인멸 장치든 빨리 찾아봐. 그리고 사장님. 반대하실 거면 여기서 찢어지죠. 반대하시면 저랑 김 양은 바로 나가겠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잠시만요. 급하···.”
사장의 등에 내려앉은 바퀴벌레가 등판을 타고 올라 목을 깨물었다. 작게 피부가 뜯겼다. 사장이 권총으로 바퀴벌레를 털어냈다. 콰직- 뒷굽으로 바퀴를 짓밟자, 바스러지는 느낌과 함께 찍- 체액이 튀었다. 몸통이 잘렸음에도 사방으로 휘젓는 더듬이.
후-
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숨을 깊게 내쉬더니. 다시 마구 바닥을 짓밟았다.
콰직-
쿠직-
‘바퀴? 이깟 바퀴 때문에?’
사장이 중얼거리거나 말거나 김 양은 마루의 지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매뉴얼을 뒤지고, 컨트롤 센터 구석이 감춰진 비밀 버튼을 찾았다.
작동 방식은 뭔가 아날로그 느낌이 났다. 안전장치를 푼 뒤, 레버를 내리고 다이얼 타이머를 돌려서 시간을 맞춘 다음, 빨간 버튼을 누르면 소거 작동 시작.
내부가 완전히 타오르도록 밖에서 산소가 공급되면서 안쪽으로는 연료가 공급. 연구실이 가마처럼 변한다고 적혀있었다.
한두 마리씩 떨어지던 바퀴들이 이제는 빗방울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면서 웅웅 날개를 펼쳐 활강하는 바퀴벌레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바퀴들이 서로 엉겨 붙는가 싶더니 서서히 ‘먹이’감을 노리기 시작했다.
군집이 된 듯, 윙윙 소리를 내며 점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퀴들이 뱀처럼 꿈틀댔다.
그 끔찍한 모습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참은 경호원이 바닥을 밟아대는 사장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기서 나가야 했다.
“흐- 가셔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바퀴. 고작 벌레 때문에!”
김 양이 타이머를 돌렸다. 내려왔던 시간을 생각하면 10~15분은 있어야 했다. 혹시 모르니까 넉넉하게 20분 잡고.
“20분 잡았음.”
[치직- 너무 늦어. 바퀴들도 따라 빠져나올 거야. 10분으로 맞추고 뛰어!]
10분은 너무 짧지 않나?
“알겠음.”
김 양은 소심하게 11분으로 타이머를 맞추고 뛰기 시작했다. 사장과 경호원도 같이 밖으로 달렸다.
“문!”
한 단어를 외친 김 양이 슬쩍 광학 은신 로브를 둘러써 사라졌다.
“······.”
“······.”
경호원이 뒤로 돌아 반쯤 열려있는 문을 향했다. 갑자기 먹잇감이 사라져서인지 바퀴벌레들이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번들번들한 웅웅 소리가 가득한 공간.
경호원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비명을 삼켰다. 끼이이- 경호원이 문을 닫으려 하자 바퀴들이 한 덩어리처럼 뭉쳐 달려들었다. 발을 타고 올라온 바퀴들이 순식간에 얼굴까지 올라왔다. 따끔거리는 통증보다 더 끔찍한 건, 기름기 흐르는 껍질과 털 달린 다리들이 온몸을···.
끼아아아악!!!
더는 참지 못한 경호원의 비명이 복도를 울렸다.
“섬!”
?!
경호원을 덮치며 문에서 막 빠져나오는 바퀴벌레들에게 섬광 폭음탄이 떨어졌다. 번쩍-섬광과 함께 터진 폭음!
바사사삭- 바다다닥- 달려들던 바퀴들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흩어졌다. 영혼이 빠지게 비명 지르던 경호원은 넋이 나갔는지 눈을 껌벅거렸다. 일렁이는 그림자가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
“문 닫고 뛰라.”
======
======
에에에에엥-
[해당 시설에 대해 비상 소거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반복합니다.]
[해당 시설에 대해 비상 소거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붉은색 비상등 점멸됐다. 이어서 길게 이어진 사이렌 소리와 안내 방송이 섞이기 시작했다.
[···연구원들과 관계자들은 절차에 따라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연구원들과 관계자들은 절차에 따라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호원은 수치스러웠다.
바퀴가 덮친 옷은 순식간에 여기저기 헤져 있었다. 점이라도 뺀 것처럼 베어 물린 자국이 얼굴에 가득했다. 광학 은신 로브가 있었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 증오.
앞서 달려가는 사장의 심정도 복잡했다.
30개의 급속치료제 가운데 회수한 것은 달랑 9개, 다행히 중요한 연구 자료와 여러 레시피는 확보했지만, 재료를 전부 날려 버릴 판이었다. 그렇다고 저 미친 바퀴들이 있는데 여길 그냥 둘 수도 없었다.
어디 가둘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고 보니 전체가 금속으로 된 곳이 있었다. 그쪽으로 유인해서 가두면? 유인은 어떻게 하지? 먹잇감은? 일단 뭘 어떻게 하든 소거 장치를 멈춰야 하는데, 거길 돌아간다고? 까득- 엄지손톱을 뜯었다.
“빨리!”
앞에서 마루가 등에 짐을 잔뜩 지고 뛰면서 외쳤다. 지금도 뛰고 있는데 더 빨리 뛰라고? 사장과 경호원이 뒤를 힐끗 돌아봤다.
갈라진 틈새마다 더듬이들이 삐죽삐죽 솟아나고 있었다. 툭- 위이잉- 떨어지고 날아오르는 바퀴들.
분노와 증오가 날아간 경호원이 다리에 힘을 줬다. 이런저런 고민이 지워진 사장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렸다.
ㄹ자로 꺾인 복도를 따라 달리자, 들어올 때 열었던 커다란 원형 금속 문이 있었다. 문을 닫은 기억이 없었는데 닫혀있는 문.
“열쇠!”
사장이 허겁지겁 열쇠를 꺼내 꽂아 돌렸다. 윙- 망막 스캔이 끝나자,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나갈 때는 인증 절차가 복잡하지 않았다.
사장과 경호원이 밖으로 나가자, 마루가 동그란 문을 밀었다. 위잉-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두툼한 금속 문이 닫히며 으직-크직 소리를 냈다. 그새 따라 나오던 바퀴 몇 마리가 찌부러졌다.
“뭘 보고 있어? 빨리 뛰어.”
사장과 경호원, 마루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사장과 경호원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헉헉 거칠게 숨을 내몰아 쉴 때쯤 도착한 엘리베이터. 사장이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열쇠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소리 없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세 사람이 숨을 몰아쉬었다.
“김 양.”
마루의 부름에 그림자가 일렁거리더니 김 양의 머리통이 허공에 동실 떴다.
“탔냐? 그럼 됐고. 올라가죠.”
위잉-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마치 탄광용 수직 승강기처럼 쉼 없이 계속 올랐다. 마루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살피며 말했다.
“왜 안 터지지?”
10분인데? 더러운 기분이 가시지 않아 찝찝했다. 마루의 독백 같은 짜증에, 김 양이 냉큼 자진 신고했다.
“아? 11분으로 했음.”
아니 왜? 마루는 김 양에게 한 소리 하려다 말았다. 1분 가지고 뭐라고 하긴 그랬다. ‘1분이 이렇게 긴가?’ 잠시 뒤, 비상경보방송이 반복되는 엘리베이터 아래쪽으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후우우우욱
덜컹. 덜컹.
열기에 휩싸여 좌우상하로 흔들리는 엘리베이터. 여기서 갇히면 119가 와서 꺼내 줄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생 로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죠?”
“······.”
“······.”
아니, 씨발?
======
======
마루의 욕설과는 달리 엘리베이터는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 외부 바닥과 측면에서 매캐하게 탄 냄새가 났다.
머리만 동동 떠 있는 김 양이 으쓱하는 표정으로 마루를 봤다. 세상을 바꾸는 1분 아니라, 생사를 바꾸는 1분이었다. ‘1분 빨았어, 봐. 아차 했으면 엘리베이터 통구이였을 걸.’ 의기양양한 김 양을 외면한 마루가 사장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헤어지죠.”
“예? 무슨 말인가요?”
멘탈이 살짝 갈렸던 사장이 정신을 차렸다.
“야마츠키 신약은 사장님이랑 경호원 둘이 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 이 꼴을 보고서도 그런 말입니까?”
대체 뭔 생각이지? 귀찮다는 건가?
“여기. 이 꼴이 이래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거기서도 이 꼴이면 전 무조건 불 싸지르자고 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괜히 같이 가서 못 볼 꼴 보는 것보다. 각자 볼일 보고 모이는 게 낫지 싶은데요.”
“······.”
“그것도 그렇지만, 헬기에서 이야기했듯 도난 병원에 있던 야마츠키 신약 쪽 사람들이 도쿄 본사로 가지 않았습니까? 죽지 않았다면 야마츠키 신약에 사람들이 있을 텐데, 저랑 김 양이 가서 분위기 작살내는 것보다 이쯤에서 헤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좋아요. 그럼 중화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죠? 같이 가지 않겠다면서요?”
사장의 말에 마루가 미소 지었다.
“교환하죠. 급속치료제와 중화제. 비율은 1:20 정도로. 아- 레시피는 그냥 주시기로 하셨었죠?”
‘뭔 이런 날도둑놈 같은 새끼가 다 있냐?’라는 표정에도 마루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왜? 뭐?
야마츠키 신약까지 호위하지 않았다 뿐이지, 도쿄까지 데려왔으면 되지 않았나? 심지어 다카이치 제약은 안에까지 들어가 케리 했다. 이쯤 되면 레시피 정도는 받을 만했다.
그리고 급속치료제도 그랬다. 급속치료제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에게든 여벌의 목숨이 됐지만, 중화제는 오버 히트만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었고 당장 쓸 사람도 자기밖에 없지 않은가? 1:20이면 후하게 쳐준 거였다.
“······.”
“······.”
왜 또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정들게.
마루가 가방에서 무전기를 꺼내 사장에게 건넸다. 당신이 뭐라고 말하든 됐고, 자기는 그렇게 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표시였다. 사장이 가만히 마루가 내밀은 무전기를 바라보다. 건네받았다.
“지금 헬기 부를 테니까 그거 타고 가십쇼. 도착해서 저랑 김 양이 필요하면 헬기 쪽에 연락 남기시고요.”
부르는 건 부르는 건데, 우리가 가면 뒷감당은 알아서 해야 할 거리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며 말하는 마루였다.
“어딜 가는 거죠?”
“바로 신분 좀 파게요.”
고작 신분 때문에? 애초에 말했다면 그깟 신분 따위야 10개라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근데 직접 만들겠다고?
“······.”
사장의 침묵에 마루는 무전기로 헬기를 호출했다. 착륙했었던 건물로 헬기를 부른 마루가 고개를 까딱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사장과 경호원이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좀 너무 까칠한 거 아님?]
“뭐가?”
[그냥 신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잖음?]
편하고 좋잖아. 샬롯이면 금방 만들어 줄 텐데.
“너 까마귀 고기 먹었냐?”
‘와- 갑자기 말하는 본새 보소?’ 김 양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홍과장이 만든 신분 어땠어? 회사에서 만들어준 신분은? 일이 생겼을 때 쓸 수 있었어? 없었잖아.”
[······.]
말을 참 이쁘게도 한다.
샬롯에서 만든 신분은 샬롯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다. 거기에 무슨 일이 생겨 샬롯이 정보를 잃어버리든, 정보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기라도 하면 좆되는 건 이쪽이었다.
배신했니, 배신당했니. 그러는 것보다 깔끔하게 서로 할 것하고 정리할 것 정리하는 게 좋지 않나?
“···그러니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우리가 직접 챙기는 게 제일이지. 특히 신분 같이 중요한 건 더욱 그렇고. 그래서 이 고생하는 거잖아?”
[······.]
똥 진짜 굵고 건강해 보이는 건 인정하겠는데, 말 좀 이쁘게 해라. 천 냥 빚도 말로 갚는다던데.
“자.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야쿠자 빌딩. 거기가 좋다며?”
[······.]
어두운 밤하늘 헬리콥터 소리가 김 양을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