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04화 (104/280)

러스트 [RUST]-104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에, 꼬리 빼고 몸통만 팔뚝 크기 쥐새끼가 나오더니, 이제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될 법한 덩치의 일본원숭이?

일본원숭이들 보통 무게 10~12kg 정도 되는 작은 애들 아니었나? 거리가 멀어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뉴투브 같은 곳에서 봤던 것과 비교하면 2~3배는 더 커 보였다. 오랑우탄이나 침팬지 덩치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느낌.

끼끼끼끽

우끽우끽

시끌벅적 늘어나기 시작한 일본원숭이들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헬기 조종사가 닥터 헬기에 시동을 걸자, 헬리콥터 주익이 회전하면서 사방으로 잿가루가 흩날렸다.

소리와 사방을 휘젓는 뿌연 잿가루에 접근하던 일본원숭이들이 뒤로 휙 물러섰다. 빨갛게 달아오른 안면 부위를 보면 발정기? 흥분한 상태 같았다.

“아저씨. 이륙하면 바로 고도 높여요. 무조건 고도 빨리 높여요. 알았죠?”

[갑자기 높이면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않을 선으로 최대한 빨리 높여요. 바퀴고 쥐새끼고 미쳤는데 미친 새 떼가 달려들면 좆됩니다. 그냥 최대한 고도 높···.”

팅-

닥터 헬기 창문을 뭔가가 때렸다. 쩍 갈라지는 유리창. 다시 뭔가 날아왔다. 쩡-하고 금속 두들기는 소리.

돌덩이?

어느새 거리를 좁힌 일본원숭이들이 하나둘씩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둥실 떠오르는 헬기 바닥에 원숭이들이 던진 돌덩이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빨리!”

[올라갑니다! 손잡이 잡으세요!]

고음과 함께 헬기가 머리를 치들었다. 급작스러운 가속으로 인해 눌린 가슴. 후- 작게 숨을 내뱉은 마루가 한 손을 칼손잡이를 꾹 쥐었다.

흡-

깜짝 놀란 숨소리와 함께, 일렁이던 그늘진 곳에서 김 양의 머리가 쏙 나왔다. 불안한 눈빛. ‘저거 갑자기 헬기에 칼침 놓는 거 아닌가?’ 하는 눈빛에 마루가 슬며시 칼에서 손을 뗐다.

뭐? 내가 뭘? 미쳤다고 공중에서 헬기에 칼침 놓을까. 어련히 잘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마루의 눈에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쿠직!!!

징조도 소리도 없었다. ‘어?’하는 순간 칼집을 빠져나온 칼날이 일렁이는 공간 옆을 찔렀다.

하악-

화들짝 놀란 김 양이 자기도 모르게 고양이 소리를 냈다. 반사적인 움직임 소음기 달린 글록 17이 마루의 미간 방향으로 가려고 꾸물거렸다. 방아쇠에서 움찔거리는 손가락. 식은땀이 송송 맺힌 얼굴로 김 양이 빽 소리 질렀다.

“왜! 왜?”

‘갑자기 칼은 왜 뽑고, 지랄이니!’ 부르르 놀란 가슴을 쥐어 잡은 김 양에게 마루가 고갯짓했다. 김 양이 뒤돌아보자, 휘리릭 휘릭 사방을 휘젓는 더듬이가 눈에 들어왔다.

‘바퀴?’

칼에 꿰어진 바퀴가 헬기에 박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엄지손가락 크기의 알집이 이리저리 굴렀다.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칼을 뽑아서 찌르면 어떡하냐고 노려보자,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마루가 헬기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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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병원 3층 병실

기순은 따끔거리는 팔다리를 쳐다봤다. 긁히고 찍히고 총탄이 스친 흔적이 뚜렷했다.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소독 다 됐습니다.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빠르시네요. 붕대 감아드릴 테니, 상처 부위 손대지 마시고요.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사를 엘리베이터를 태워 올려보내곤 침대에 축 늘어진 기순이었다. 잠시 침대 위에서 버둥거리던 기순이 옆에 놓인 노트북을 켰다. 화면 구석에 놓인 폴더를 열자, 다양한 서식들이 죽 펼쳐졌다.

HMR/ 0.3mg/ no response

HMR/ 0.3mg/ no response

HMR / 0.4mg / no response

HMR / 0.4mg / no response

HMR / 0.8mg / no response

HMR / 0.8mg / no response

뭔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서식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투약 반응인가? HMR을 투약했더니 반응이 없었다. 뭐 그런 의미?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간편식)에 뭘 넣었더니 반응이 없다는 그런 내용인 거 같은데. 대체 뭘 넣었는지, 어떤 식단인지, 누구에게 넣었는지 불분명했다.

“아- 진짜- 뭔 자료가 이따위야.”

기순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도표와 그래프가 난무하는 서식을 닫았다. 잠깐 뒤졌을 뿐인데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잠시 스트레칭하고 작게 잔잔한 재즈를 틀은 기순이 반쯤 졸기 시작했다.

똑- 똑-

힘 있는 노크 소리에, 졸지 않았다는 것처럼 태연한 목소리로 답하는 기순.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기순과 같이 치료받는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위험한 고비는 다 넘겼고, 며칠 있다가 실밥만 풀면 되는 경호원이었다.

“이제 움직이시는 건 괜찮으신가 보네요.”

고작 이틀 사이에 이렇게 빨리 회복하다니, 마루가 쓴 급속치료제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했다. 양이 더 많았다면 바로 회복했다는 말 아닌가?

“네. 보다시피.”

전쟁 시 발생하는 총상 환자의 사망 원인 1위가 과다출혈이었다. 급속치료제만 있다면 살릴 수 있다는 말, 심지어 일부 작게 소실된 인체조직을 재생까지 한다고 하니, 거의 미친 약이었다. 레시피는 손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다짐하는 기순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도쿄로 간 일행들과 연락이 되나 해서요.”

경호원의 이야기에 기순이 말을 아꼈다.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알고 진짜 위험한 일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라고.

뭔가 교전하는 도중 무전기가 울린다거나 그러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무전기를 꺼놓고 있으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진짜 위급한 상황이 터졌을 때 병신 되는 거고. 그러니 진짜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쪽에 연락해야 할 급한 일이 생기셨나요?”

기순의 질문에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은 경호원이었다.

“어제부터 계속 꿈자리가 사나워서요.”

“악몽이라도 꾸셨나 봅니다. 마루와 김 양이 같이 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아시잖아요. 그 둘의 실력.”

뭣보다 마루 녀석 최근 보면 진짜 탈인간 중이었다. 요트도 자르는 것을 보면 장비만 좋다면 건물도 혼자 해체할 수 있을지 몰랐다. 진지하게 정말로.

“예. 그쪽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산에 연락을 좀 하고 싶습니다.”

경호원이 기순의 침대 옆에 놓인 위성 통신기를 보며 말했다. 기순이 살짝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썼다. 반사된 역광으로 렌즈 속 기순의 눈이 가늘어진 것이 감춰졌다.

“호텔에요?”

“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기순이 경호원에게 위성통신기를 내밀었다.

“쓰시고 돌려주시면 됩니다. 오래 걸리시나요?”

“아니요. 5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통신기를 건네받은 경호원이 살짝 목례하고 밖으로 나갔다. 기순이 문밖을 보곤 숨을 내쉬었다. 부산에 연락한다? 호텔에 연락한다는 소리겠지. 애인에게? 그럴 리가.

‘다들 복잡하게 사네.’

5분이면 충분하다더니 가져가서 하세월 걸리는 것을 보곤 고개를 흔드는 기순이었다. 3층이지만 통창이 커서 노을을 감상하기는 좋았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헬기가 병원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새끼. 며칠 걸릴 것처럼 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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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착륙장.

기순과 아재들, 경호원 1이 옹기종기 헬기를 기다렸다. 뭔 일이 있었는지 창문이 깨지고 여기저기 겉이 우그러진 모습의 헬기가 착륙장에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고 마루와 김 양이 내렸다. 경호원 1의 눈동자가 김 양이 걸치고 있는 광학 은신 장비에 꽂혔다가 다시 헬기로 향했다. 마루와 김 양이 내리고 시간이 지났는데도 뒤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당황하는 경호원.

“여- 브로- 어떻게 잘 다녀왔어?”

“미친 씨발. 일단 아래 내려가서 상처 좀 보자.”

기순의 장난스러운 인사에 학을 뗀다는 표정을 지은 마루가 손을 내저었다.

“왜? 도쿄가 그렇게 엉망이야?”

“엉망이고 뭐고 진저리난다. 아주 진저리가 나. 내려가서 뭣 좀 먹고 말해 줄 테니까. 그만 물어봐. 지친다.”

경호원이 막 헬기에서 내리는 헬기 조종사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본 마루가 헬기 조종사를 불렀다.

“아저씨도 거기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 오세요. 일단 내려가서 밥 좀 먹고 이야기하죠. 거기 경호원도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같이 내려갑시다.”

마루가 헬기 조종사를 붙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우걱우걱

후루룩후루룩

기순은 한 소리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기다렸다. 천천히 먹으면서 이야기하나 싶더니, 개뿔 그냥 마루 놈이고 김 양이고 그냥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어댔다.

“종일 굶었냐?”

“거의 굶다시피 했지.”

“이젠 입만 열면 구라구나. 비상식량 챙겨가는 걸 봤는데 굶어?”

“한 번 먹으니까 없더라.”

그래 지금 먹는 걸 보니까 인정하긴 하는데, 라고 할까 보냐.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호원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중간에 끼어들었다.

“사장님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옆에 놓인 생수통을 들어 물을 벌컥 마신 마루가 즉답했다.

“죽었습니다.”

“네?”

경호원의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에 대고 마루가 다시 말했다.

“죽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 미야코··· 동생은···.”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군지 몰랐는데 동생이었나, 반대가 아니었고? 마지막에 두고 온 모습이 떠올랐다. 망연자실 조각난 시체를 껴안고 오열하는 모습.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몰라요?”

경호원의 흔들리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힐끗 김 양이 두르고 있는 광학 은신 로브를 쳐다보는 경호원. 마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뭐.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알겠지만··· 우리가 하기로 한 건, 도쿄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거였다는 걸 잊지 마세요.”

“좋아요. 그럼 저건 뭐죠? 왜 동생이 가지고 간 장비가 저 여자한테 있는 거죠? 동생도 죽었나요?”

“아니요.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살아있었습니다. 저건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받은 겁니다.”

“동생이 저걸 넘겨주다니, 그럴 리 없어요.”

경호원이 물고 늘어질 기미가 보이자, 마루가 피곤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그럴 리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렇게 됐으니까 그렇게 알아요.”

“뭐라고요? 그렇게 알라고요? 지금 그게 말입니까? 설마···.”

마루는 경호원의 반응을 무시하고 기순에게 말했다.

“야. 여기 의료진들하고 연구진들도 내려오라고 해. 전부 있을 때 한 번에 말하게.”

“알았다.”

“김 양아 그것 좀 올려봐.”

김 양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리자, 검은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며 움직였다. 병원 의료진들과 연구원들이 내려와 테이블 근처를 에워싼 것을 확인한 마루가 입을 열었다.

“도쿄 다카이치 제약 비밀 연구소에서 발견한 바퀴벌레입니다. 일단 직접 보시죠.”

검은 비닐봉지를 뜯자, 몸통이 반쯤 잘린 바퀴벌레가 드러났다. 몸통 크기가 20cm는 족히 넘을 거대한 바퀴벌레였다. 기다란 더듬이가 촉수처럼 사방으로 흔들렸다.

“뭘 먹고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바퀴벌레가 다카이치 제약 실험실에 떼로 있었습니다. 생존자는 없었고 시체도 없었습니다. 바퀴벌레가 사람을 공격하는 거로 봐서는 생존자들이나 시체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마루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바퀴만 문제가 아닙니다. 야마츠키 신약 실험실에서는 제 팔뚝보다 큰 쥐 떼가 있었습니다. 시멘트로 된 벽을 갉아댔더군요. 그리고 일본원숭이들도 알려진 것보다 2~3배 덩치가 컸고, 떼로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야마츠키 신약에도 생존자가 없었습니까?”

“생존자는 있었지만, 데려올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 야마츠키 신약이나 다카이치 제약에서 가져온 연구 자료는 없습니까?”

“제가 가져온 것은 없고, 두 회사 모두 비상 소각 장치를 가동해 모조리 태워 버렸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연구 자료를 소각해!”

“피땀 흘려 만든 연구 성과를 없앴다고?”

쾅!

마루가 칼집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분노 조절을 하는 사람들.

“지금 그 바퀴 봤죠? 저걸 태워 죽이겠다고 소각했는데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 헬기에 붙어 있더군요. 바퀴 알집도 그 안에 있으니까 나중에 확인해 보시고. 저런 바퀴가 실험실 밖에서 번식한다고 생각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시멘트를 갉아 먹고 사람을 먹이로 생각하는 쥐 떼가 번식한다고 생각하고도 연구 자료가 중요합니까?”

“뭐 중요할 수 있겠죠. 연구도 계속하고 싶을 거고요. 일단 바퀴벌레랑 알집은 포장해 둘 테니 알아서들 하시고. 약속대로 저흰 떠나겠습니다. 오늘까지 불편하셨다면 미안하고요, 나중에라도 다시 보게 된다면 좋은 얼굴로 좋게 만났으면 합니다.”

경호원도 부산 샬롯 아재들도, 병원 의료진과 연구원들과 기순까지 순간 조용해졌다.

“야 지금 바로 간다고? 하루 쉬지 않고?”

“어. 너 상처 치료하고 바로 뜬다.”

“왜? 뭐가 급해서.”

“야. 헬기 타고 오고 가는 동안 밖에서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그게 정상이냐?”

“아니지···.”

아무리 재난이라고 하더라도 생존자들이라든지 피난민이라든지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헬기를 타고 오고 가는 동안, 일반인 생존자나 피난민을 볼 수 없었다는 건 이상했다.

“헬기도 그래. 하룻밤 사이에 뭔 일이 터지면 어쩌려고. 귀찮게 할지도 모르고. 계획대로 바로 가자.”

“그래.”

기순도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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