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10
히로시마 인근.
헬기 착륙장에서 치솟은 불길과 네이팜 폭격에 맞은 지역을 태우는 불꽃이 사방을 환하게 밝혔다. 도시에서 날아온 소형 지대공 미사일을 생각해 보면, 치누크가 이륙하다 말고 주저앉은 이유가 낡은 부품과 정비 불량만 아닐 수 있었다.
최 전무가 도쿄로 가기 전 마지막 급유를 했던 곳이 바로 이곳 히로시마 인근 비행장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지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적들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뻔했다.
‘최 전무가 이동한 동선이 샜다.’
행적만 읽혔을까? 5대의 헬기 가운데 네이팜과 백린탄을 싣고 있는 헬기를 콕 찍기라도 한 것처럼 터졌는데?
유 이사의 머릿속에서 상황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일본까지 날아온 치누크가 갑자기 추락한 이유는 뭘까? 최악의 상황이라면 민 장군이 보내기로 한 물량을 빼돌린 이유와 연결됐을 수도.
조 사장과 민 장군이 손을 잡았을 가능성은? 서로 물고 뜯고 지랄하는 사이더라도 치워버리고 싶은 게 있으면 손을 잡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들이었다.
조 사장은 저번에 붉은 약을 가지고 하는 짓을 보면 돼지 새끼가 다 됐고. 민 장군은 애초부터 돼지였으니까 그렇고.
‘1개 중대만 보내라고 했더니, 2개 중대를 보내겠다는 이유가 따로 있었군.’
유 이사가 코웃음 쳤다.
‘아주 지랄들을 하세요. 그렇게 서로를 보면서 동물농장 찾더니 한다는 짓이 이런 쪽이라.’
자. 그건 그렇고 이렇게 거하게 잔칫상을 차린 새끼들은 누굴까?
‘어디 새끼들인지 상판대기나 구경해 볼까?’
직원들을 뒤로하고 유 이사가 앞장섰다. 태연하게 걷는 발걸음.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야구장 안쪽 매장이 있는 곳에 들어서자, 살짝 드러난 검은색 머리통. 눈에 보이는 것과 유 이사의 팔이 동시에 움직였다. 허리춤에서 불을 뿜는 콜트 파이슨.
타타탕!!!
싱글 액션으로 펼쳐진 속사가 순식간에 3명의 머리통을 부쉈다. 머리가 살짝 삐져나온 걸 그대로 쏜 것이었다.
다다닥
천천히 걷던 유 이사가 갑자기 내달리자, 가판대 뒤에서 은폐한 놈들이 소총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7.62mm 탄환이 시멘트 기둥에 구멍 자국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류탄!”
고함친 유 이사가 언제 깠는지 가판대 뒤로 섬광 폭음탄과 수류탄을 동시에 던졌다.
번쩍! 콰아아앙!!!
가판대 뒤로 넘어가 공중에서 터진 섬광 폭음탄에 순간적으로 눈이 마비된 적들이 사방으로 총을 갈겨댔다.
그 뒤를 따라 터진 수류탄. 수류탄이 공중에서 터지면서 피보라가 몰아쳤다.
사람이었던 흔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타타탕!
유 이사의 콜트 파이슨이 깔짝이는 순간, 구석에 숨어있던 2명이 터진 머리통으로 바닥을 닦아댔다.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속사를 가볍게 하는 것을 보고 박 중사는 기가 질렸다. 총을 뽑아 쏘는 것까지 1초가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
무엇보다 황당했던 건 수류탄을 던져 공중에서 터지도록 시간 조절을 했다는 거였다. 5초짜리 지연신관이 달려 있어도 잡고 있기 떨리는데 그걸 들고 있다 던지다니, 뭔 미친 짓인지 모를 년이었다.
가판대 뒤에서 꿈틀거리는 생존자를 하나 잡아 복면을 벗긴 유 이사가 총구를 까닥해 박 중사를 불렀다.
“봐. 딱 보니까. 중국 애들이지?”
“······.”
관상쟁이냐? 얼굴만 보고 어떻게 알아. 박 중사는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후두둑- 탄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스피드 로더로 총알을 채운 유 이사가 촤르륵 실린더를 회전시켰다.
“상판을 보니까. 중국 맞네. 쪽수로 애들 갈아 넣는 거 좋아하더니, 이 새끼들은 변하는 게 없어.”
탕-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헤드샷을 날려버리는 유 이사.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아니- 어디서 왔는지 알아는 보고 쏴야지, 그냥 쏘면···.”
“쉬이잇! 조용.”
태연하게 시체를 발로 뒤집은 유 이사가 고개를 까딱였다. 시체를 뒤지라는 소리. 박 중사는 허리를 숙여 주머니를 뒤졌다.
“이건?”
박 중사의 손에 들린 것은 앰풀 주사였다. 반투명한 약제가 들어있는 앰풀. 유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샬롯 애들이 쓴다는 전투자극제거나···. 아니면 크리스털에서 만든 중국 애들 약이겠지. 이리 내.”
끄아아악
흐으으윽
전신에 수류탄 파편이 박혀 버둥거리는 사람의 목에 앰풀 주사를 박아 넣자,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부상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에 거품을 물며 덤벼들었다.
탕!
퍽-
총성과 함께 머리 터지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사방으로 흩어진 핏자국과 뇌수 조각들. 다시 고개를 까딱이며 시체와 부상자를 뒤지라고 신호를 보내는 유 이사. 박 중사는 욕이 나왔다.
“씨발.”
욕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상스러운 유 이사의 모습에, 박 중사는 입을 다물고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시체마다 1개에서 2개씩 나오는 약들. 밖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거침없던 유 이사가 가판대 의자에 앉으며 통신기를 꺼내 들며 말했다.
“자. 그럼 보고.”
[치직- 네이팜 폭격 지역 수색 중입니다.]
“피해 상황은?”
[경상 3명, 중상 1명, 사망자 없습니다.]
“좋아.
[인근 지역으로 불길이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작전에 지장 있나?”
[···없습니다.]
“하나. 적들이 전술 마약 사용 가능성이 크다. 머리를 쏘고, 확인 사살할 것.”
“둘. 즉시 2중대가 교전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포위, 협공하도록. 이상”
[확인 사살, 포위 협공. 확인.]
[칙- 화재구역 주변으로 지역 경찰과 자경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프간, 이라크에서 어떻게 했었지? 했던 대로 해. 조용히.”
[···알겠습니다.]
네이팜 폭격의 효과로 다른 부대들도 별다른 문제 없이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자경단이나 지역 경찰과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아프간식으로 처리해 뒤탈을 없앴다.
거기에 대놓고 네이팜으로 폭격해 버리고 인근까지 수색해 씨를 말리는 걸 보여줬으니, 어지간한 놈들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약점이 있다면 미사일로 계속 공격받는 건데, 최 전무의 동선이 까발려졌으니 최단 거리를 피해야 했다. 문제는 최단 거리를 피해 돌아가면 연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유 이사의 눈이 남쪽으로 향했다. 도쿄 남부에 있는 대형병원에 멈춘 시선.
‘도난 병원이라고 했지. 헬기 착륙장과 연료가 넉넉하게 있다고.’
부상자들도 생겼고 하니, 그곳을 거점으로 하면 좋았다.
“현장 정리 시작해. 최대한 빨리 도난 병원으로 출발한다.”
도쿄로 바로 가지 않고 중간에 아래로 새면, 뒤따라오는 1중대는 어떤 선택을 할까? 도난 병원으로 올까? 아니면 바로 도쿄로 갈까?
‘도쿄로 가겠지.’
우선 자료부터 찾으려고 할 테니, 이번에는 먼저 가서 길을 닦아 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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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악
물보라가 튀는 선수 부분을 긴 장대로 쿡쿡 찔러보는 기순. 매끄럽게 들어가지 않고 거칠고 울퉁불퉁 걸리는 느낌이 장대를 타고 손에 전달됐다.
쿡쿡- 주변을 찔러보니 빼곡하게 달라붙은 부분이 약간 우는 것 같았다. 단단하지 않고 뭔가 삭아서 얇아진 느낌이라고 할까?
“어떠냐?”
“확실히, 이것저것 다닥다닥 붙었네.”
“뭐가 붙었는데?”
“따개비 같은데, 엄청나게 크다. 주먹 크기부터 그보다 더 큰 것까지.”
마루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한데? 이 배를 타고 돌아다닌 지, 이제 보름도 안 됐잖아.”
“그렇지.”
“본래 따개비가 이렇게 빨리 생기냐?”
“다른 곳에 있다가 옮겨붙은 경우는 듣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생겼다고 보기도 힘들고.”
기순이 대걸레 자루를 이어 붙인 장대를 옆으로 뉘었다. 장대 끝에 박힌 갑각질 조각 끝이 날카로웠다. 이건 또 뭐래? 기순이 미간을 찌푸렸다. 따개비 껍데기가 날카롭기는 하다만 이렇게까지 심한 건 처음 봤다.
“김 양아 거긴 어때?”
“잠잠함.”
김 양이 낚싯대를 휙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텅 빈 낚싯바늘엔 미끼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일본 근해에서는 물고기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피라냐도 아닌 주제에 그보다 더한 공격성을 보이던 물고기들.
바다 전체가 미쳐 돌아갔나 걱정했지만, 다행하게도 일본에서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정상적인 바다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김 양에게 확인시킨 기순이었다. 낚시를 통해 물고기들의 공격성과 바다의 위험성을 살펴보는 식이었다.
“계속 던짐?”
“그래. 조금 더 던져봐.”
대답 대신 다시 낚싯대를 휙 던지는 김 양의 옆에는 간호사가 토템처럼 박혀서 우물쭈물했다. 그 모습을 본 마루가 기순에게 물었다.
“설마, 저거 간호사를 괴롭히는 건가?”
“자기 말로는 괴롭히는 게 아니라, 케어하는 거라고 하던데?”
“케어?”
“저기 봐봐.”
김 양이 낚싯대를 간호사에게 건네자 쭈뼛쭈뼛 낚싯대를 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야. 근데 뭔 케어?
“계속 저랬냐?”
“어제부터 옆에 잡아다 놓고 이것저것 시키더라.”
“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지는 사람이 있는데, 저 간호사가 그런 타입 같다고.”
“호- 그건 또 어떻게 알고 그랬데. 근데 김 양이 너한테는 말 잘하나 보다?”
“미친- 아니야. 아니라고! 난 일편단심이다.”
“누가 뭐라고 했냐?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한다고 한 거지.”
“지랄 말고. 내가 물어봤으니까 대답하는 거지. 김 양 대답 음슴체라고 하던가? 명사로 끝내고 있는 판국에.”
기순이 김 양을 보며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싫은가? 마루가 보기엔 제법···. 요즘 부쩍 착해지기도 했고. 알아서 백업도 잘하고, 통제실에서 전원 고치고 소각 장치 가동하는 걸 보면 은근히 여러모로 능력 있는 김 양이었다.
“그래서 따개비 붙은 건 어떻게 할 생각인데?”
“물에 들어가서 떼어내야지. 장대로 눌러 보니까 이게 선체를 부식시키고 있는 거 같다.”
“뭐? 따개비가 배를 부식시킨다고? 레알이냐?”
“나도 듣기만 했지, 보는 건 처음이라서 설마 했는데, 장대로 눌러보고 때려보니까 따개비가 붙은 곳이 확실히 약해졌어. 앞으로 15일에서 20일 정도 더 가야 하는데, 며칠 만에 이렇게 부식시킨 걸 보면 그냥 무시하고 가긴 위험하지 싶다.”
기순의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며칠 만에 선체를 부식시켰다니, 보름 넘게 가다가 구멍이라도 뚫리면 곤란했다.
“물고기가 미쳐 날뛰더니, 따개비는 방사능 돌연변이라도 생긴 건가? 무슨 며칠 만에 배 밑판을 부식시키고 지랄이래?”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런 건 처음 본다.”
“떼는 건 좋은데, 어떻게 뗄 건데?”
“도끼로 긁어내 보고, 힘들면 수중 용접기로 지져서라도 떼야지.”
바다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영 찝찝해진 마루였다. 물속에서는 속도가 죽었다. 썰기도 어렵고 피하기도 힘들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로 들어가게?”
“그래야지.”
“그거 장비는 하나뿐이지 않냐?”
“어.”
메가 요트에 있던 제트 스키를 챙겼지만, 도난 병원 지하에 두고 온 수륙양용 차량을 생각하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같이 작업을 할 치라면, 자리가 넓어 운신하기 편한 수륙양용 차량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제트 스키 타고 팔 닿는 곳은 내가 할게.”
“좋지. 근데 배까지 자르진 마라.”
“설마 미쳤다고 배 밑창을 뚫겠냐.”
마루와 기순이 두런두런 장비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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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잔잔한 틈을 타, 카타마란을 멈춰 세우고 작업을 시작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갖춘 기순이 바다로 입수했다.
풍덩.
짙고 푸른 바다. 수면 아래로 보이는 끝없는 공간. 제주도에서도 괌과 사이판에서도 스쿠버다이빙을 했었던 기순이었지만, 이렇게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오긴 처음인지라 긴장됐다. 이상하게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고개를 카타마란 선체 하부를 확인했다.
‘미친.’
주먹보다 더 큰 따개비들이 더덕더덕 붙은 모습. 환 공포증이라도 있는 사람이 봤다면 기절했을 정도로 징그럽게 붙어 있는 따개비들.
작게는 새끼손톱 크기부터 크게는 밥공기 크기까지. 대체 언제 저렇게 큰 게 생겼는지. 며칠 만에 저렇게 자라는 건 불가능했다. 가능하다고 하면 정상은 아니었고.
‘씨발.’ 작게 욕한 기순이 도끼를 고쳐잡고 따개비를 향해 갔다. 따개비 근처에는 뭔가 점액질 같은 액상이 뭉쳐있었다.
뭔가 촉수 같은 게 따개비 구멍 안에서 밖으로 나와 흐느적거리는 모습.
‘어우야.’
그렇지 않아도 비위 약한 기순은 울고 싶었다. ‘에잇’하고 도끼로 내려찍었지만, 물의 저항 때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지 껍질만 조금 깨지고 촉수를 웅크린 따개비였다.
에라.
죽어! 죽으라고!
죽어 좀! 제발!
떨어지든지!
열심히 도끼질했지만, 효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차라리 쇠꼬챙이 같은 거로 구멍을 쑤셔서 죽인 뒤에 긁어낼까?
이 많은 걸 언제 쑤시고 있나. 몇 개 부수고 떼어내는 데 15분도 넘게 도끼질한 기순이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를 망연자실 쳐다봤다.
기순이 잠시 도끼질을 멈추고 멍하니 떠 있는 찰나. 슉- 뭔가 긴 촉수 같은 것이 뻗어왔다.